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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빨로 레벨업-48화 (48/218)

#048화

“화영아. 이것 좀 봐봐. 이 사람이 내가 말했던 그 스트리머야.”

김동엽이 스마트폰을 들고 동생을 찾아갔다.

“언럭키라고. 기억나지?”

“응.”

김화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월드 사가를 클로즈 베타 때부터 플레이했던 김동엽이다.

오빠가 월드 사가에 얼마나 진심인지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본인의 캐릭터를 열심히 키우는 건 물론이고, 월벤 커뮤니티에서 의견이 안 맞는 사람과 밤새서 서로 싸움을 벌인 적도 있었다.

그런 김동엽이 최근에 빠진 스트리머가 한 명 있었다.

어찌나 좋아하는지 최근에는 그 이름을 매일 달고 살았다.

그래서 김화영 역시 보지는 않았지만 언럭키에 대해 알고 있었다.

“이번에 업로드 된 영상이 진짜 장난 아니거든. 오크의 숲을 혼자서 들어갔는데 아주 그냥 학살을 해버렸다니까?”

김동엽은 흥분해서 영상을 보여 주었다.

확실히 김화영이 볼 때도 잘한다는 게 느껴졌다.

“어때? 죽여주지 않아?”

“응.”

“너도 요즘 월드 사가 하고 있다며. 이 사람도 시작한지 얼마 안됐어. 운 좋으면 만날 수도 있지 않을까?”

김동엽은 그렇게 말하더니, 만약 정말로 그렇게 되면 자신을 위해 싸인 좀 받아달라고 했다.

화영은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래. 역시 동생밖에 없다니까?”

김동엽은 슬쩍 화영의 눈치를 보며 억지로 웃어보였다.

하지만 화영은 봤다.

마지막에 그의 눈동자에 들어있던 숨길 수 없는 걱정의 기색을.

괜히 자신을 찾아와서 미튜브 영상을 보여 준 것도, 오랜 기간 우울증으로 고생한 그녀를 놀아주기 위함이었다.

어렸을 때는 죽일 듯이 싸웠던 오빠였는데, 커서는 확실히 가족이라는 게 느껴졌다.

화영은 월드 사가 접속기에 몸을 뉘였다.

“게임 하려고?”

“응.”

“그래. 너무 오래 하지는 말고. 선생님이 얘기해 주셨던 거 기억나지?”

“응.”

화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몇 년간 정신과 진료를 봐오던 화영이었는데, 얼마 전 선생님이 월드 사가를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얘기했다.

그녀 역시 흥미를 느꼈기에 알겠다고 했다.

가족들은 좋아했다.

특히나 자신을 많이 걱정했던 오빠는 같은 취미를 한다는 것에 많이 기뻐했다.

“역시 지금이라도 오빠 길드에 들어올래? 그러면 조금 더 편하게…”

“으응. 괜찮아.”

화영은 고개를 저었다.

몇 번이고 받았던 제안이었지만 굳이 그러고 싶지 않았다.

“이번에는…나 혼자 해 보고 싶어.”

사람으로 얻은 상처, 비록 가상 현실에서라도 사람으로 치유하고 싶었다.

오빠의 도움을 받는다면 그들은 가식적으로라도 자신에게 잘 대해 줄 것이다.

그보다는, 혼자서 해 보고 싶었다.

“후. 그래. 그렇지. 알겠어.”

김동엽은 여전히 걱정스러운 어조였지만 동생의 의견을 존중했다.

“이만…접속할게.”

“그래. 알겠다.”

화영이 접속기에 몸을 뉘였다.

***

벨라.

월드 사가에서 김화영의 닉네임이었다.

처음에는 정신과 의사의 권유로 시작하게 된 게임이었지만, 그녀는 여타 다른 사람들처럼 금방 월드 사가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오빠를 포함한 가족과 친구 그 누구도 모르지만, 그녀는 꽤 좋은 직업을 얻었다.

아니. 그냥 좋은 직업이 아니다.

레전더리 직업 ‘헤파이스토스의 후계자’.

생산직 대장장이 계열 중 최고봉으로 손꼽히는 직업이다.

레전더리 직업 덕분에 시작한 대장장이 일이었는데, 그건 의외로 그녀의 적성에 잘 맞았다.

굳이 사람을 상대할 필요도 없고 쇠를 두드리는 것에서 힐링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시작의 도시에서부터 대장장이들을 찾아다니며, 어느새 그녀는 네르센까지 도착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대장장이 NPC를 찾아온 것뿐인데, 헤사루는 그녀를 보자마자 곤란한 요구를 했다.

-이, 이럴 수가. 자네 설마 헤파이스토님의 후계자인가?

-…네.

-내, 내 제자가 되어 주게! 제발 내 기술을 배워 줘!

헤사루는 반쯤 애원하다시피 말했다.

사실 실력이 뛰어난 장인들은 눈높이가 깐깐해지기 때문에 제자를 구하기 어렵다.

자신이 평생 걸려 터득한 기술을 제자가 더 발전시키길 원하는데, 그런 재능 있는 제자가 어디 쉽게 구해지겠는가.

그런 점에서 헤사루는 벨라의 재능을 한 번에 알아본 것만으로도 뛰어난 실력의 대장장이라고 할 수 있었다.

어쨌거나 그런 와중에 벨라는 언럭키를 보게 되었다.

‘아….’

그녀는 언럭키를 한 눈에 알아봤다.

오늘도 접속 전에 오빠가 말한 사람.

‘그 스트리머다.’

신기했다.

오빠가 한 번 보게 되면 사인이라도 해달라고 했는데, 설마 진짜로 보게 될 줄이야.

그녀는 언럭키를 빤히 바라봤다.

‘꽤 잘생겼네.’

물론 게임 캐릭터 외모는 다들 예쁘고 잘생겼기에 큰 의미는 없지만.

그는 헤사루에게 어떤 아이템을 고쳐달라고 의뢰했다.

헤사루는 한참 그럴 보더니 쉽지 않다면 난색을 표했다.

벨라는 옆에서 그걸 지켜보고 있었는데, 순간 메시지가 나타났다.

[고대 흑기사의 판금 갑옷.]

[해당 아이템을 완벽하게 수리할 경우 <신의 망치질> 숙련도 0.4% 상승.]

[아이템 수리에 필요한 재료.]

[화염 불꽃 깃털, 에르난의 숨결, 물망초 꽃봉오리…]

신의 망치질.

벨라가 가지고 있는 직업 전용 스킬이자, 헤파이스토스의 후계자 직업의 가장 중요한 스킬이다.

생산계 직업 특성상 그녀는 대장장이 일로 레벨이 오른다.

좋은 아이템을 만들고 수리할수록 경험치와 스킬 숙련도를 함께 얻는 것이다.

물론 레전더리 스킬이기에 숙련도를 높이는 건 극악이었다.

현재 레벨이 45인데, 지금껏 쌓은 숙련도는 고작 0.38%.

헌데 저 아이템을 수리할 경우 여태껏 쌓은 것보다 더 많은 숙련도를 준단다.

그렇기에 그녀는 용기를 내서 말을 걸었다.

“그거….”

이 한마디를 하는데도 목소리가 덜덜 떨려왔다.

가족과 의사 선생님 이외의 사람에게 말을 거는 게 언제가 마지막이었을까.

원래라면 부담이 되서 그냥 떠났을 테지만 이번만큼은 불가능했다.

스킬 숙련도 0.4%.

이건 정말로 포기하기 힘들었던 것이다.

게다가 그녀는 이 대장장이라는 직업에 재미를 많이 느끼고 있었다.

숙련도를 떠나서, 망치를 두드리고 아이템을 만드는 그 과정 하나하나가 마음을 치유해 주는 기분이었다.

그렇기에 저렇게 좋은 아이템을 자신이 다뤄보고 싶다는 욕심도 함께였다.

“고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러나 그 이후로는 말문이 턱 막혔다.

긴 문장은 가족들 앞에서도 나오지 않는데,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나올 리가 없었다.

그때부터 주욱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럼에도 언럭키는 웃으면서 계속 자신에게 말을 걸어 주었다.

왜 말도 안하고 고개만 끄덕이냐고, 자신을 무시하는 거냐고 화내지도 않았다.

오히려 더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부디 갑옷을 고쳐달라고 말했을 뿐이다.

자신이 먼저 하고 싶었던 부탁인데 말이다.

‘착한…사람인 가봐.’

자신의 태도를 보면 가족 빼고 답답하다고 하는데, 이렇게 친절할 수가 있다니.

벨라는 당연히 고개를 끄덕였다.

갑옷의 수리 정도는 얼마든지 해 줄 수 있었다.

‘아.’

그 때 문득 눈에 다시 띈 게 있었다.

[아이템 수리에 필요한 재료.]

[화염 불꽃 깃털, 에르난의 숨결, 물망초 꽃봉오리…]

아이템 수리를 하기 위해서는 저 재료들이 필요했다.

당연히 벨라가 구할 수는 없는 것들뿐이다.

그래도 대장장이라고, 그녀는 재료 시세를 꽤 잘 알고 있었다.

아이템이 좋은 거라 그런지, 재료 수준도 높았다.

돈이 필요했다.

“…돈.”

그래서 고맙다며 활짝 웃는 언럭키를 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벨라는 짧은 순간 굳어지는 그의 표정을 놓치지 않았다.

“네?”

“…돈. 필요해요.”

완벽하게 수리하기 위해서는 저 재료들이 필요하다.

그러나 벨라에게 돈이 있을 리가 없다.

“하, 하하….”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언럭키는 결국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 모습을 보며 벨라는 생각했다.

‘역시 착한 사람이야.’

오빠가 왜 이 사람을 그렇게 좋아하는지 알 것도 같았다.

***

“젠장. 빌어먹을 게임. 완전히 돈 먹는 귀신이라니까.”

언럭키는 도시 네르센 내부를 걸으며 씩씩거렸다.

이상한 대장장이 유저를 만나서 아이템 수리에 대한 확답을 받았다.

도시 최고의 대장장이 NPC가 보증했으니 거짓은 아닐 터.

거기까진 좋았다.

문제는 그 다음. 수리에 필요한 재료를 들었을 때였다.

왜인지 모르지만 말하기를 싫어(?)해서 재료를 듣는데 애먹었는데, 그 내용물이 가관이었다.

하나같이 구하기 힘들고 비싼 것들 투성이었던 것이다.

‘그걸 다 돈 주고 구하려면 내가 탈탈 털릴 거야.’

지금 남아있는 자금을 전부 쏟아도 다 구하진 못할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다 쏟지도 못한다.

아직 이번 달 수익이 얼마일지도 모르는데, 모아놓은 돈을 썼다가 빚을 못 갚게 될 수도 있었다.

만약 그러면…

‘성 팀장 그 자가 날 가만히 두지 않겠지.’

안 그래도 지난번에 꼼수 아닌 꼼수를 써서 설전을 좀 벌였었다.

헌데 한 달도 안 되어서 문제가 생긴다면, 당장에라도 붙잡아 작업장에 처넣을 것이다.

결국 돌고 돌아 문제는 돈이었다.

돈이 부족하니 무언가 일이 터져도 해결하기가 힘든 것이다.

금수저였다면 이런 고민 할 필요도 없이 쉽게 쉽게 갔을 텐데.

언럭키는 휘휘 고개를 저었다.

그런 쓸데없는 가정해서 무엇 하겠나.

이 시간에 해결책이라도 한 번 더 궁리하는 게 낫다.

‘후. 일단 머리 좀 식혀야겠군.’

백현은 잠깐 접속을 종료한 다음 월벤을 뒤적거렸다.

커뮤니티에는 수많은 정보들이 올라온다.

그 중 대부분은 쓸데없는 것들이지만, 아주 가끔씩 도움 될 만한 것들도 있었다.

지금은 혼자 고민해 봐도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기에, 뭐 좀 볼 게 있나 살펴봤다.

‘음?’

그리고 우연찮게, 어느 게시글 하나를 보게 되었다.

<네르센 인스턴트 기록 내기>

네르센.

지금 백현이 머무르는 도시였기에 절로 눈길이 갔다.

게시글에 들어가니 링크가 하나 있었는데, 눌러보니 웬 사이트로 이동되었다.

<1위 - 네리즈 - 13분 22초>

<2위 - 그렌우드 - 14분 36초>

<3위 - 호피발 - 14분 37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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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르륵 써 있는 기록들.

‘이게 뭐야?’

백현은 의아한 채 조금 더 자세히 내용을 읽었다.

[도시 네르센의 ‘인스턴트 던전’ 기록 배팅.]

[배팅은 일주일 단위로 개최되며, 이번주에 새로운 1~100위 사이에 어떤 순위가 새롭게 갱신되는지에 관해 최대 1만원까지 배팅 가능하다.]

인스턴트 던전.

이건 들어본 적 있었다.

월드 사가는 마치 진짜 판타지 세계에 들어간 것 같은 현실감이 있었지만, 아주 드물게 인스턴트 던전이란 게 존재했다.

혼자만 입장할 수 있고, 몬스터를 죽여가며 클리어해야 하는 장소이다.

그러나 경험치를 얻지는 못한다.

그럼 이걸 왜 하냐?

인스턴트 던전은 클리어 순위가 기록에 남기 때문이다.

백현이야 게임이 곧 인생이었기에 경험치도 안 되는 저딴 걸 할 리가 없었지만, 다른 많은 사람들은 생각이 달랐다.

내가 최고다!

혹은 내가 지금 이 정도 수준이다!

라는 걸 증명하고 싶어 했다.

인스턴트 던전을 클리어하면 영구 기록으로 남길 수 있으니, 많은 사람들이 도전했다.

그리고 월벤에는 이 기록을 가지고 배당까지 벌어졌다.

이번 주에 몇 위가 새롭게 바뀌고 갱신될지에 대한 배팅이었다.

[100위가 새로 갱신되었을 경우 - 53.42배.]

[99위가 새로 갱신되었을 경우 - 55.66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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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규제를 받기 때문에 배팅은 만원밖에 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100위 안쪽의 순위는 갱신될 확률이 굉장히 낮기 때문에, 배팅에 성공했을 경우 당첨 금액이 굉장히 컸다.

기본 50배부터 시작이었으니 뭐.

최대 배팅 금액인 만원을 넣었다면 50만원인 것이다.

그리고 곧, 백현의 눈동자가 크게 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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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위가 새로 갱신되었을 경우 - 1677.84배.]

1위의 당첨 액수는 무려 1677배!

만원을 넣으면 1677만원으로 돌아온다는 뜻이다.

‘이거다!’

백현의 눈이 번뜩였다.

그의 시선은 1677.84배라는 숫자에서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배당금이 이렇게 높다는 건, 당연히 1위가 새로 갱신될 가능성이 극히 낮기 때문이었다.

현재 네르센 인스턴트 던전의 1위 기록은 네리즈라는 유저의 13분 22초.

지금은 유명한 길드 소속의 탑랭커였는데, 그가 레벨 50이던 시절에 달성한 것이다.

무려 1년 넘는 시간 동안 깨지지 않은 전설적인 기록이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아무도 못 깰거라는 소문이 자자했다.

그렇기에 배당률이 이런 천문학적인 숫자가 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백현에게는 랭커고 뭐고 알 바 아니었다.

‘저 돈. 저건 내가 가져간다.’

역배 대박을 노린다!

그의 눈이 불타올랐다.

최대 배팅액인 만원을 1위에 걸었다.

그 후, 주먹을 불끈 쥔 다음 접속기에 몸을 뉘였다.

인스턴트 던전을 조져버리러 갈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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