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7화
장인 헤사루의 대장장이 앞.
오묘한 기색으로 쳐다보던 언럭키와 백발의 여자의 시선이 잠시 허공에서 부딪쳤다.
“…….”
“…….”
무표정한 얼굴이던 그녀의 눈이 어느 순간 살짝 커졌다.
허나 워낙 미약한 변화였기에 언럭키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언럭키는 금세 그녀에게서 관심을 껐다.
보아하니 유저 같은데, 굳이 말 걸 필요 있나.
그보다는 원래 목적인 헤사루에게 집중했다.
장인이라고 찾아왔건만 이상한 추태를 보이고 있는 헤사루.
언제까지 그걸 구경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크흠. 안녕하십니까.”
언럭키가 헤사루에게 인사했다.
그러자 지금까지도 백발의 여자에게 쩔쩔매던 그는, 그제야 언럭키의 등장을 알아챘다.
“…음. 손님이 왔군.”
모르는 사람 앞에서 추태를 부린 게 부끄러웠던 걸까.
헤사루는 어색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귓가까지 살짝 얼굴이 붉어진 채로 헛기침을 몇 번 하더니, 언럭키를 바라봤다.
“그대는 누구신가?”
“예. 저는 헤사루님께 의뢰할 일이 있어서 찾아온 사람입니다.”
언럭키는 그렇게 말하면서 살짝 긴장했다.
헤사루는 도시 네르센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받는 장인이다.
대장장이 장인의 특징이 무엇이겠는가.
사람을 무시하고 자기만의 고집이 완고한 것.
월드 사가의 유명한 대장장이 NPC들은 대부분 그와 같은 성향을 지녔다.
그렇기에 언럭키는 ‘네까짓 게 뭔데 내게 의뢰를 해?’ 라며 욕이 튀어나와도 웃을 준비를 했다.
설마 웃는 얼굴에 욕을 많이 하지는 않겠지!
“흐음.”
헤사루는 자신의 무성한 턱수염을 슬슬 쓰다듬으며 언럭키를 위아래로 한 번 쳐다봤다.
과연 어느 정도 수준인지 평가하는 모양이었다.
“흠. 혹시 자네, 원래 뭐하던 사람인가? 복장만 보면 모험가 같은데….”
“모험가 맞습니다. 왜 그러십니까?”
언럭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은은한 기품이 느껴지는 것 같아서 말이야. 혹시 뭐 귀족 가문의 사람이라거나 그런 줄 알았네만.”
“귀족 가문의 사람은 아닙니다. 다만 귀족 가문의 의뢰를 받아 처리한 적이 몇 번 있지요.”
“허. 귀족의 의뢰를 받은 모험가? 이거 실력 있는 친구였군. 그래서 말투에서부터 뭔가 다르게 느껴진 거야.”
헤사루는 그제야 이해했다는 듯 껄껄 웃으며 언럭키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가 이러는 이유는 간단했다.
언럭키가 쌓아놓은 명예 수치.
도시 경비병들이 인사하게 만드는 그 수치가, 헤르손에게도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으허헛. 그래. 나한테 의뢰를 맡길게 있어서 왔다고?”
“예, 그렇습니다. 헤사루님이 도시 최고의 대장장이라고 소개를 받았거든요.”
“뭐, 그렇긴 하지. 물론 실력도 없는 놈이 내게 의뢰를 하러 왔으면 당장 망치를 그 대가리에 휘둘러줬겠지만. 자네 정도면 얘기를 들어 볼만 하겠어.”
“하, 하하. 그렇습니까.”
“그래. 정확히 의뢰하고 싶은 내용이 뭔가?”
“오래된 갑옷을 얻게 되었는데 수리가 필요해서요.”
“흐음. 갑옷이라. 한 번 보여 줄 수 있겠나?”
언럭키가 인벤토리에서 ‘고대 흑기사의 판금갑옷’ 을 꺼냈다.
[고대 흑기사의 판금갑옷]
-아이템 등급 : 레전더리.
-현재는 손상되어 착용할 수 없는 갑옷이다.
-뛰어난 실력의 대장장이만이 갑옷을 복구할 수 있다.
-그럼에도 오랜 세월과 큰 충격으로 완벽한 복구는 불가능하다.
헤사루는 조심스러운 손짓으로 갑옷을 여기저기 살폈다.
진지한 그 눈빛을 보면 그가 왜 장인으로 불리는지 알 것 같았다.
살짝 손으로 두드려도 보고 심지어 맛(?)도 보던 헤사루.
얼마간 시간이 지난 후 그가 다시 언럭키를 쳐다봤다.
“이걸 어디서 났나?”
“왜 그러십니까?”
“보통 물건이 아니군. 아주 오래되어서 정확히 추정할 수는 없지만, 굉장한 실력의 대장장이가 만든 갑옷이야.”
언럭키는 심장이 뛰는 것을 느꼈다.
이미 이걸 처음 봤을 때부터 남색빛이라는 걸 보긴 했다.
긁지 않은 복권이랄까.
하지만 장인으로부터 복권의 등수까지 확답 받으니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그렇군요. 혹시 수리가 가능하시겠습니까?”
“음. 쉽지 않은 일일세.”
헤사루는 침음성을 흘렸다.
“우선 희귀한 재료가 많이 필요해. 고대의 갑옷이라 지금 시대에는 쓰기 어려운 광물과 혼합물이 들어가 있거든.”
“…….”
언럭키의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다.
희귀한 재료가 많이 필요하다. 이 말인즉슨, 돈이 많이 든다는 뜻이었다.
사실 구하지 못하는 재료는 거의 없다. 다만 예산이 부족할 뿐.
안 그래도 이제 이번 달에 ‘(주)머니앤캐시’에 내야할 이자도 고민인데, 또 돈 들어갈 구멍이 생기다니.
‘괜찮아. 레전더리 아이템인데, 그깟 재료비 몇 푼 아끼면 안 되지.’
언럭키가 쓰린 속을 달래며 말했다.
“그럼 재료만 구해오면 됩니까?”
“일단은. 그래도 사실 완벽하게 복구가 불가능할 것 같네.”
“예? 왜요?”
“이런 귀물을 복원하는 건 사실 본능의 영역이거든. 손끝에서 느껴지는 미세한 감각과 과거 완성품의 모습을 상상해야 하는데, 이거야말로 그 무엇보다 재능이 필요한 일이지.”
고대 아이템의 복원.
그건 후천적으로 실력을 쌓은 대장장이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젓는 일이다.
통탄스럽게도 가장 재능이 필요한 영역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헤사루는 장인 소리를 들을 정도로 실력이 뛰어나고, 어렸을 때부터 재능 역시 출중했다.
그럼에도 자신하지 못했다.
“아마 오래 전의 완성품보다 떨어지는 성능으로 복구될 걸세. 그래도 괜찮겠나?”
“…….”
언럭키는 고개를 끄덕이지 못했다.
성능이 떨어지게 된다니.
그게 얼마나 떨어진다는 말이란 건가?
‘아주 조금 떨어질 수도 있지만…이래놓고 레어급으로 될 수도 있는 거지.’
사람 일 모르는 거다.
악명 높은 월드 사가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당장 월벤에 가보면 월드 사가를 욕하는 내용들이 수두룩 빽빽이니.
레어급이 아니라 조금 떨어져서 유니크급이 되어도 마찬가지다.
레전더리 아이템을 후처리 잘못해서 유니크급으로 만들어버렸다?
차라리 처음부터 유니크급을 얻은 거라면 기뻐했겠지만, 사람 심리라는 게 이러면 짜증이 날 수밖에 없다.
“…혹시 이걸 완벽하게 복구할 수 있는 다른 대장장이는 없을까요?”
언럭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잘못하면 헤사루의 자존심을 건드릴 수 있는 질문이었으니까.
“일단 이 도시에는 없지. 내가 최고거든. 하지만 다른 도시라면…흠. 듣기로는 어떤 도시에는 드워프 대장장이가 머물고 있다고 하던데. 그들이라면 아마 이걸 완벽하게 복원할 수 있을 거야.”
“아….”
드워프 대장장이.
그들을 만나려면 최소 레벨 150 이상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드워프 대장장이 정도 되면 이미 영주를 전담하고 있어서 일반 유저인 언럭키가 만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을 테고.
‘하. 이걸 어떻게 한다.’
기껏 레전더리 갑옷을 얻게 될 줄 알아서 좋아했더만.
상황이 굉장히 꼬였다.
언럭키가 머리를 부여잡았다.
선택지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이걸 가지고 있다가 언젠가 드워프 대장장이를 만날 때까지 잊고 사는 것.
두 번째는 그냥 헤사루에게 맡기는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도시 최고의 장인 소리를 듣는 사람이니만큼, 최소한 유니크급은 나올 것이다.
정말 운 좋으면 레전더리 수준으로 복원할 수도 있겠지.
세상일은 모르는 거니까.
‘물론 그런 운빨에 기대야 한다는게 불안하긴 하지만…’
유니크 아이템도 절대적으로 훌륭하지만, 아무래도 이건 좀 아깝다.
원래 레전더리급이었으니.
언럭키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고민하는 순간이었다.
“그거…고칠 수 있을 것 같은데….”
“?”
뒤에서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던 백발의 여자가 입을 열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자그맣게 중얼거렸지만, 워낙 갑작스러웠기에 귓가에 팍 꽂혔다.
“예?”
언럭키는 의아해하며 그녀를 쳐다봤다.
‘뭐야, 이 여자?’
아까 헤사루가 그녀에게 애걸복걸하는 모습을 보긴 했었다.
얼핏 들었을 때는 헤사루가 그녀에게 제자가 되어달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 같던데.
사실 이해가 잘 안가긴 했다.
도시 최고의 장인 소리를 듣는 헤사루가 왜 저렇게 매달리는 걸까?
그 정도의 NPC라면 주변에서 사람 구하는 건 일도 아닐 텐데 말이다.
하지만 뭐, 어쨌거나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고, 지금은 헤사루가 언럭키와 대화를 나누고 있으니 알아서 떠났을 거라 생각했다.
헌데 뒤에서 우리들의 대화를 다 듣고 있었던 모양이다.
“음.”
헤사루는 다시금 기억났다는 듯 그녀를 쳐다봤다.
“그러고 보면 이 친구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군. 아까 내가 말했지 않나. 이걸 고치는 데는 재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그런데 이 자는 내가 살아오면서 본 모든 대장장이들 중 한 손에 꼽히는 재능을 가지고 있거든.”
“!”
언럭키는 깜짝 놀라서 백발의 여자를 쳐다봤다.
갑자기 사람이 달라 보이는 느낌이 확 들었다.
언럭키가 화사하게 미소를 지었다.
“하하. 안녕하세요. 유저 분 맞으시죠? 이야. 정말 예쁘시네요.”
처음 보는 사람과 대화를 할 때는 우선 칭찬부터 하는 게 좋다.
그리고 빈 말이 아니다.
그녀는 정말로 예뻤다.
물론 월드 사가는 캐릭터 커스터마이징이 가능해서 남자고 여자고 전부 미남미녀뿐이긴 했다.
그러나 외모 칭찬을 싫어하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
그러나 그녀는 언럭키의 말에도 무표정하게 있을 뿐이었다.
‘내가 싫나?’
처음에는 소심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정도면 그냥 성격이 많이 이상한 것 같다.
물론, 언럭키는 여전히 웃어보였다.
“이렇게 뵙게 된 것도 인연인데 이름이 어떻게 되시나요? 저는 언럭키라고 합니다.”
보육원 출신으로 사회생활까지 해 봤던 언럭키이다.
우리나라는 고아 출신이 살아가기에 많이 불리하다.
그가 살아오면서 당해본 무시는 셀 수가 없었다.
무표정으로 말을 무시하는 것? 이 정도면 약과다.
대놓고 꼽을 주거나 막말을 퍼붓는 사람도 잔뜩이었다.
오히려 싫은 표정이 아니라 무표정이라는 것만으로도 사람이 괜찮게 느껴질 정도였다.
“…….”
백발의 여자는 언럭키의 소개에도 여전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누군가 옆에서 보면 대화를 하기 싫어한다고 느낄 것이다.
그러나 언럭키는 전혀 상관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하하. 말수가 적으신 분이군요. 뭐, 좋습니다. 본론으로 들어가죠. 아까 전에 이걸 수리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정말인가요?”
“…….”
여자는 고개만 끄덕였다.
언럭키는 아무렇지 않게 다시 물었다.
“성능까지 완벽하게 복구할 수 있고요?”
“…….”
이번에도 대답은 없었지만, 그녀는 확신을 담는 듯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언럭키의 눈이 번뜩였다.
이 여자가 벙어리건 자신을 싫어하건 상관없다.
그의 입가에 더욱 친절해 보이는 미소가 매달렸다.
“하하. 그러면 혹시 수리를 좀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저에게는 정말 중요한 겁니다.”
단순히 아이템으로서의 성능뿐만 아니라, 이건 퀘스트와도 연관되어 있었다.
최고의 결과를 내야 한다.
“…….”
여자는 언럭키를 빤히 쳐다보다가, 곧이어 고개를 끄덕였다.
언럭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래. 말도 없이 고갯짓만 하건 무시하건 무슨 상관인가.
현재 급한 건 자신인데.
“하핫 정말 감사…”
“돈.”
그때 그녀가 툭 하고 말을 뱉었다.
언럭키가 갸웃거렸다.
“네?”
“돈. 필요해요.”
“…….”
그녀는 손까지 내민 채 언럭키를 빤히 쳐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