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4화
부제가 머뭇거리는 틈을 타, 언럭키는 아이템 정보를 확인했다.
[고대 흑기사의 판금갑옷]
-아이템 등급 : 레전더리.
-현재는 손상되어 착용할 수 없는 갑옷이다.
-뛰어난 실력의 대장장이만이 갑옷을 복구할 수 있다.
-그럼에도 오랜 세월과 큰 충격으로 완벽한 복구는 불가능하다.
‘손상된 상태?’
언럭키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기껏 남색 빛이 난다고 좋아했건만, 당장 쓸 수 없는 물건이다.
물론 나중에 도시로 가져가서 수리하면 되겠지만…
‘저 놈이 그렇게 쉽게 넘겨줄 리가 없다는 거지.’
미친소처럼 뛰어오던 부제가 처음으로 걸음을 멈춰 섰다.
언럭키를 보며 쩔쩔매기까지 한다.
이 갑옷이 어지간히 중요한 모양이다.
일단 언럭키는 갑옷을 인벤토리에 넣어보려고 했다.
-띠링!
[소유권이 있는 아이템입니다.]
[습득이 불가능합니다.]
‘역시나.’
그럼 그렇지.
이렇게 쉽게 얻을 수 없을 거라는 건 짐작했다.
이 아이템의 소유권은 부제가 가지고 있을 테니, 이러나저러나 놈을 쓰러트려야 얻을 수 있는 거겠지.
언럭키가 부제를 쳐다봤다.
단검을 던질 테니 막지 말라고 했지만, 정말로 그딴 명령을 들을 리는 없었다.
시간을 번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이 귀중한 시간에, 언럭키는 어떻게 하면 놈을 이길 수 있을까 고민했다.
‘정면 대결은 위험 부담이 커.’
권사 보스몹을 상대로 암살자가 정면에서 싸운다?
뭐. 직업이 직업이다보니 이길 수도 있겠지만, 그리 좋은 방법은 아니다.
‘일단 다시 은신을 해야겠지.’
은신 후 기습. 이 시스템을 이용해야 한다.
그게 암살자의 정체성이다.
그렇게 싸워야 했다.
물론 놈이 쉽게 은신을 하게 내버려두지는 않겠지만….
“야. 뒤로 가.”
“뭐?”
“못 들은 척 하지 말고. 뒤로 가라고.”
언럭키가 단검을 휘휘 흔들었다.
부제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 역시 거리가 벌어지면 언럭키가 은신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는데, 물러날 리가 있나.
물론.
“안 가? 이거 부서지는 꼴 보고 싶어?”
“그, 그만. 가겠다. 갈 테니 그 빌어먹을 단검 좀 치워!”
언럭키가 갑옷에 가볍게 단검을 갖다 대 기스를 살짝 내자, 태도가 싹 바뀌었다.
쩔쩔매며 부제가 한걸음 물러났다.
“더 가. 겨우 한 발자국 움직여? 장난해? 진짜 찌른다?”
“…….”
부제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나쁜 새끼. 흑마법사보다 사악한 놈.’
놈은 알까? 자신이 저 갑옷을 얻으려고 어떤 노력을 벌여왔는지?
당연히 모를 것이다. 안다면 저렇게 할 수가 없겠지!
-터벅. 터벅.
결국 부제는 조금씩 뒤로 물러났다.
눈만큼은 더욱 부리부리하게 뜨며 언럭키를 쳐다봤다.
마치 거리는 벌어지지만 절대 쉽게 은신하게 내버려두지 않겠다는 것처럼.
언럭키도 그걸 알고 있어서 계속 단검을 휘둘렀다.
찌를 듯 말 듯.
“더 가라니까? 빨리 가. 그렇게 천천히 움직이면 네가 사랑하는 갑옷은 갑/옷으로 나누어지는 거야.”
과장된 액션을 취할 때마다 부제는 몸을 움찔거렸다.
어찌나 놀랐는지 몸은 힘들지도 않을 텐데 녀석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이거 은근 재밌는데?’
언럭키가 슬쩍 웃었다.
보스몹을 말로도 협박할 수 있다니.
이런 식의 신박한 공격 수단이 있다는 걸 다른 사람들도 알까 모르겠다.
확실히 월드 사가가 대단한 게임이기는 하다.
이러니 유저 숫자가 매일같이 폭증하며 10억 명을 돌파했겠지.
이렇게 거리가 계속 벌어지다 보면, 아무리 놈이 눈을 부릅뜨고 있어도 은신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길 것이다.
“계속 가. 아예 저기 벽에 가서 붙어.”
“…….”
그렇게 언럭키가 계속해서 지시를 내리는 순간이었다.
한참 거리가 벌어진 그때.
-띠링!
[거리가 멀어져 아이템의 소유권이 해지됩니다.]
“어?”
갑작스레 메시지가 나타났다.
언럭키는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갑옷을 집어, 그대로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아까는 안됐던 게, 이번에는 그대로 사라졌다.
“뭐…?”
부제가 입을 쩍 벌렸다.
“…….”
“…….”
둘의 시선이 허공을 교차했다.
언럭키가 어색하게 뒤통수를 긁적였다.
“고맙다 야. 잘 쓸게.”
그리고는 뒤로 훌쩍 물러났다.
안 그래도 멀었던 거리였건만, 그림자 진 곳까지 가자 다시 재은신 할 수가 있었다.
“으아아아!”
부제는 공동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소리쳤다.
그의 눈동자에서 용암 같은 분노의 빛이 흘러나왔다.
“내 갑옷! 이 비열한 도둑놈 새끼가!”
그 말을 들은 언럭키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네 갑옷이라니. 말은 똑바로 해야지.’
그게 왜 네 갑옷이란 말인가?
내 인벤토리에 들어온 순간부터 이건 내거다.
-쾅! 쾅!
열이 받았는지 부제는 주변으로 쉴 새 없이 주먹을 휘둘러댔다.
땅이 갈아엎어지며 흙먼지가 비산한다.
잘못 걸려 한 방이라도 맞았다간 최소 치명상이다.
하지만 아무리 강한 공격이라도 맞히지 못한다면 무용지물.
언럭키는 은신한 채로 여유롭게 놈에게 다가갔다.
그의 단검이 어둠 속에서 빛을 발했다.
이제, 이 싸움을 끝낼 때였다.
***
언럭키가 폐광산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그 시간.
‘스트리머 언럭키’ 채널은 조금씩 그 명성을 높여가고 있었다.
좋은 퀄리티의 영상, 인기 급상승에 들어갈 정도로 실력 있는 모습 등.
미튜브 구독자 수가 눈 감았다 뜨면 자릿수가 달라질 정도로 증가했으며, 월벤에서도 한번씩 언급이 될 정도였다.
그리고 이번에 새로 공개된 영상.
‘악에 물든 오크’를 처리하는 건 꽤 화제가 되었다.
[레벨 차이 5개나 나는 몹들을 3대1로 이기는 거 실화냐?]
[얜 분명 조만간 랭커된다. 내가 장담한다.]
파티 플레이가 반쯤 강제되는 게임이 월드 사가이다.
솔플도 가능하긴 한데, 어지간히 잘하지 않고서는 죽을 수밖에 없다.
반대로 말하면, 솔플이 가능한 유저는 그만큼 주목을 받게 된다는 뜻이다.
심지어 언럭키는 그냥 솔플이 아니었다.
특별하게 화려한 스킬은 없지만 실력으로 찍어 누르는 플레이.
거기에 객관적으로 밀리는 전력으로 여러 마리의 몬스터를 처리했다.
그게 상위권 유저들과 달리 레벨 낮은 언럭키를 특별하게 만드는 점이었다.
-도대체 이딴 좆밥은 왜 자꾸 얘기 꺼내는 거냐. 알바야?
└내 말이. 내 레벨 78인데, 솔직히 쟤랑 PVP 뜨면 10초 만에 이길 자신 있음.
└나도ㅋㅋㅋㅋㅋㅋㅋ. 초보자나 다름없는 놈인데 왜 저렇게 빨아주는 거냐.
물론, 언럭키가 명성을 얻을수록 그를 시기하는 사람들 역시 많아졌다.
커뮤니티는 익명의 공간.
남을 질투하고 까내리는 음습한 마음들이 활개 쳤다.
그런 사람들은 한 둘이 아니었다.
[제목 : 언럭키가 그렇게 특별하지 않은 이유.]
-영상 몇 개 봤는데 솔직히 거의 직업빨임. 무슨 직업인지는 모르겠지만 레어 이상. 유니크급 정도 되는 것 같은데. 나도 그런 직업 있으면 저 정도는 할 수 있음. 오크랑 3대1로 싸워서 이기는 거? 솔직히 레벨 50대 구간에서 그런 거 못하는 유저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ㅋㅋㅋㅋㅋ.
언럭키가 잘해 보이는 건 오직 직업 때문이다. 라는 요지의 글이 올라왔다.
그리고 이건 꽤나 화제가 되었다.
-맞는 말 같은데? 솔직히 나도 유니크 직업 있었으면 저 정도는 충분히 하지.
└나였으면 더 잘할 자신 있었음. 운빨 좋거나 돈빨로 밀어붙여서 좋은 직업을 얻었다? 그 때부턴 5대1, 6대1도 쉽지 뭐.
월드 사가는 한국 게임이다 보니 아무래도 확률과 행운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언럭키가 대단한 실력을 보인 게 다른 이유 때문이라고 몰아가는 의견이 많아졌다.
“편집자님. 혹시 이거 보셨어요?”
그리고 컵라면 역시 이 글을 확인했다.
그는 곧장 이용승에게 이 내용을 공유해 줬다.
-봤습니다.
컵라면은 지금은 카메라맨 업무만 하고 있지만, 언젠가 영상 총괄 PD가 되어달라는 언럭키의 부탁을 받았다.
총괄 PD로서 해야 할 일은 단순히 영상을 찍고 업로드가 잘 되었는지 확인하는 것만이 아니다.
반응이 어떤지. 앞으로는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보완해야 할 점이 무엇인지 등.
여러 가지를 고민해야 한다.
“언럭키님에 대한 논란이 조금씩 생기고 있습니다.”
-예. 하지만 딱히 별 대응은 안 해도 될 것 같은데요?
이용승이 살짝 의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가 볼 때, 이건 심각한 문제가 아니었다.
운 좋게 좋은 직업 얻어서 이런 활약을 보이는 거다?
그건 다른 잘나가는 스트리머나 상위권 랭커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 중에 노멀 직업을 가진 사람은 손에 꼽았다.
그런 사람들마저 아이템은 유니크 이상으로 둘둘 두르고 있었다.
월드 사가는 애초에 그렇게 해야만 강해질 수 있는 게임이었다.
운빨X망겜!
언럭키의 직업이 좋다는 악소문이 퍼진다면, 그건 그거대로 화제가 되어 미튜브에 유입이 될 것이다.
이용승이 볼 때는 따로 이렇게 전화까지 해서 걱정할 만한 문제가 아니었다.
“저도 알죠. 이게 우려할 만한 게 아니라는 건. 저는 대책을 마련하자고 전화드린 게 아닙니다.”
그리고 컵라면 역시 알고 있었다.
원래 스트리머였던 그였기에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빠삭했다.
그는 더 좋은 방법을 찾아냈다.
-대책 마련이 아니라고요?
“네. 그 반대로, 이걸 이용해 보자는 겁니다. 언럭키님 액션캠 영상 있죠? 다음번 업로드는 그걸로 하죠. 좋은 기회가 빨리 찾아왔으니까요.”
액션캠 영상.
언럭키는 (주)머니앤캐시 덕에 사냥터를 받아서(반쯤 빼앗았지만) 썼다.
초반에는 던전의 존재를 모르고 혼자서 오크의 숲과 악에 물든 지하에서 사냥을 했다.
현재 업로드가 된 악에 물든 지하 영상은 그 다음 번에 컵라면과 함께 던전에 들어가서 찍었던 것이다.
지금껏 미튜브에 올렸던 영상들은 전부 3인칭 형태의 영상들뿐이다.
사람들은 보던걸 계속 보는 것에 익숙해진다.
언럭키가 혼자서 액셤캠으로 찍어가며 사냥했던 장면들은 멋있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1인칭이다 보니 느낌이 확 달라졌다.
나중에는 둘 다 써야겠지만, 지금은 채널이 한창 탄력받아 성장하는 중이다.
이럴 때는 잘 하던 원래 것만 계속 하는 게 맞다.
괜히 방향을 틀었다가 문제가 생길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 논란을 기회 삼아 액셤캠 영상을 업로드하면?
“잘만 하면 탄력을 더 받을 수도 있어요.”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바로 준비 들어가겠습니다.
이용승도 컵라면의 말에 동의했다.
논란을 역으로 이용해 기회로 만드는 것.
새삼 그가 다르게 느껴졌다.
위기를 기회삼아 움직이라는 건 말이 쉽지, 평범한 사람은 실천하기 어려웠으니까 말이다.
‘백현 씨는 어떻게 이런 사람을 알게 된 거지?’
앞으로 총괄 PD를 시킬 거라고 전해 듣기는 했는데, 확실히 그 자질이 보였다.
저런 사람을 찾아낸 백현에 대해서도 신뢰도가 높아졌다.
컵라면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영상이 완성되려면 시간은 얼마나 걸릴까요?”
편집에 대한 건 잘못 물으면 자존심을 건드릴 수도 있는 것이기에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했다.
하지만 물을 수밖에 없는 게, 이 논란이 식지 않을 때 업로드를 해야 한다.
나중에 떡밥이 다 식어버렸는데 뒤늦게 뒷북 때려봐야 뭐하겠는가.
허나 이용승은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내일까지 완성해 보겠습니다.
“내일이요? 그렇게 빨리 되나요?”
-오늘 하루 안 자면 됩니다.
“…며칠 전에도 밤새고 작업하신 거 아니었어요?”
-일상이라 괜찮습니다.
“…….”
컵라면은 할 말을 잃었다.
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언럭키님 주위는 하나같이 왜 다 이 모양이야?’
그 사람도 새벽같이 게임에 접속해 밤 12시에 로그아웃하는 게 일상이더만.
그 동료라서 그런가, 열정 하나는 굉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