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3화
-쐐액!
[특수 스킬 ‘비검’이 발동합니다.]
언럭키는 가장 먼저 손에 들고있던 사신극검을 던졌다.
은신 상태에서 타격에 성공하면 은신이 풀린다.
하지만 공격에 맞기 전이라면 여전히 은신은 유지된다.
때문에 비검이 날아가는 동안, 언럭키 역시 그 뒤를 따라 움직였다.
비검의 목표는 놈들의 대장.
단검이 대장 놈에게 거의 다다른 순간, 동시라고 봐도 될 타이밍에 언럭키는 주변의 부하 한 놈 앞에 도착했다.
그의 손에는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 예비로 인벤토리에 장만해놓은 노멀급 단검이 있었다.
-푹!
[치명적인 일격이 터졌습니다.]
[데미지 250% 상승!]
사신극검이 없어서 250%의 데미지 상승량밖에 되지 않는다.
노멀 단검이라 공격력 자체도 낮다.
허나 그럼에도 그가 노린 인간형 몬스터는 한 방에 죽었다.
[적을 처치하셨습니다.]
[소량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애초에 스펙 자체가 동레벨을 훨씬 뛰어넘고 있는 언럭키였다.
이런 일반몹쯤이야, 잡히면 한 방이다.
언럭키가 부하몹 한 방을 잡았을 때, 사신극검은 대장의 치명타 부위에 정확하게 꽂혔다.
-쾅!
“커헉!”
이곳의 대장, 부제의 입에서 헛숨 삼키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앞으로 튕겨 나가듯 밀려난 놈은 당황해서 고개를 돌렸다.
“이게 무슨…!?”
이제 갑옷을 조립만 하면 완성이라 흥분된 상태였는데, 피가 차게 식는 기분이었다.
은신처 내부에서 공격을 받다니.
배신인가?
허나 고개를 돌리자 보인 것은, 처음 보는 얼굴의 남자였다.
“암살자?”
“쳇.”
언럭키는 놈이 죽지 않은 것을 보고 아쉬움에 혀를 찼다.
과연 보스몹이라고 해야 할지.
사신극검이 놈에게 닿았을 때, 녀석이 입고 있던 망토가 찢어지며 공격을 막아냈다.
겉보기엔 하늘하늘한 천인데, 방어력이 상당한 모양이다.
망토를 망가트리는 것으로 사신극검은 그 쓸모를 다했다.
한편, 부제는 어이가 없었다.
암살자는 부하 중 한 명의 목에 단검을 꽂아 넣고 있었다.
자신도 기습을 받았는데, 부하놈 역시 죽었다니.
‘여럿이 쳐들어온 건가?’
지금 눈앞에 있는 놈과 자신을 노린 놈. 최소한 2명의 암살자가 이 공간에 있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뒤로 물러나서 주위를 경계해라!”
부제가 명령을 내렸다.
은신처에 있는 부하들의 숫자는 총 5명.
그중에 한 명이 죽어 이제 4명밖에 남지 않았다.
부하들 대부분은 지금 도시에서 귀족들을 감시하고 있었다.
작업하는 노예들은 여럿이었지만 놈들은 비전투 인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런 상황에서 몇 명인지도 모르는 암살자들이 왔으니, 일단 조심하는 게 맞았다.
‘뭐야? 왜 물러나?’
언럭키는 놈들을 보고 어리둥절해 했다.
그가 세운 계획은 간단했다.
비검으로 보스몹에게 데미지를 먹이고, 처음에 한 명 기습으로 처치한 다음, 개싸움으로 유도해 하나씩 처리하는 것.
암살자라고 해도 그의 직업은 레전더리 등급이다.
스펙이 장난 아닌데, 일반몹 정도는 은신하지 않은 정면 대결로 가뿐하게 이길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물러나 준다면…
‘이게 웬 땡큐냐.’
언럭키가 훌쩍 뒤로 물러났다.
놈들의 은신처였지만 넓은 동공인지라 어둠에 잠긴 곳이 더 많았다.
어둠은 암살자들의 것.
-스르륵.
언럭키는 성공적으로 은신할 수 있었다.
손을 까딱이니 보스몹을 맞힌 후에 바닥에 굴러다니던 사신극검이 날아와 잡혔다.
레전더리 아이템답게, 비검에는 회수 기능도 함께 붙어있었다.
“…….”
“…….”
보스몹을 비롯한 놈의 부하들이 긴장한 채 어둠 속을 노려봤다.
언럭키는 조심스레 움직였다.
그럼에도 그들은 언럭키가 사라진 방향만 뚫어져라 응시할 뿐이다.
‘역시. 보스몹이라고 해도 내 움직임은 못 알아채는군.’
원래도 그러긴 했지만 혹시나 전투 중에는 다를까 싶었는데 다행이다.
언럭키는 여전히 아무것도 없는 곳만 쳐다보는 놈들의 뒤로 이동했다.
가장 외곽에 있는 놈에게 단검을 찔렀다.
-콰직!
[치명적인 일격이 터졌습니다.]
[데미지 300% 상승!]
“크허억….”
잠시 경련하던 놈은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적을 처치하셨습니다.]
[소량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한 방에 죽은 것이다.
은신이 풀린 언럭키는 다시금 물러났다.
부제의 눈가가 일그러졌다.
“이 빌어먹을 놈이…!”
그러나 부하들은 물러나는 언럭키를 보며 갈팡질팡했다.
“어떻게 합니까? 계속 지켜만 볼까요?”
부제는 또다른 암살자를 경계해 자리를 지키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렇기에 함부로 쫓아갈 수 없었다.
허나 이 상황을 보자면, 놈의 은신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또다시 기습을 받는다면 누구 하나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일단 저놈부터 잡아야 한다.’
벌써 부하놈이 두 명이나 죽었다.
더 죽으면 위험하다. 작전을 변경해야 했다.
판단을 내린 부제가 버럭 소리쳤다.
“잡아! 죽여버려!”
“네!”
자리를 지키고 있던 부하들이 뛰쳐나갔다.
다만 부제는 움직이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
아직 또 다른 암살자가 어디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황.
‘간신히 완벽하게 발굴한 갑옷인데. 무조건 지켜야 한다.’
안 그래도 낡은 갑옷인데, 혹시나 전투 중에 어디가 상하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호오.”
그리고 달려오는 부하들을 보며 언럭키가 눈을 반짝였다.
“5대1을 예상하고 있었는데 3대1이라니.”
그가 물러나던 걸 멈춘 채 단검을 들어올렸다.
보스몹도 없는 일반몹 3마리?
이러면 그냥도 붙어볼 만하지!
단검술 마스터리를 믿고 맞서 달려들었다.
“엇!?”
“이 미친놈이?”
부제의 부하들은 당황했다.
암살자가 정면 대결에 취약하다는 것은 상식이다.
애초에 은신 후 기습이 암살자의 본질이니까 당연하다.
헌데 그 상식을 어기는 암살자가 여기 있었다.
“죽어!”
한 놈이 검을 휘둘렀다.
언럭키는 옆으로 몸을 비틀어 피했다.
검왕으로 한 달간 지내본 짬이 있는데, 이제 그때의 스킬은 없지만 얼추 흉내는 낼 수 있었다.
-스걱!
그러나 완벽하게 피하는 건 무리였다.
상처가 났지만 언럭키는 그걸 무시한 채, 대담하게 더욱 놈에게 파고들었다.
그 상태로 단검을 내질렀다.
-푹! 푹!
단검은 리치가 짧은 대신 같은 시간 동안 더 많이 휘두를 수 있다.
[치명적인 일격이 터졌습니다.]
[치명적인 일격…]
“크르륵….”
한 놈이 쓰러졌다.
허나 상황은 좀 더 나빠졌다.
“개자식!”
“죽어라!”
다른 두 놈이 언럭키를 향해 검을 휘둘러온 것이다.
그가 손목을 털어 단검을 던졌다.
-쐐액!
[특수 스킬 ‘비검’이 발동합니다.]
사신극검이 짧은 거리를 빛살처럼 날아가 한 놈의 심장에 틀어박혔다.
-푹!
“커헉….”
놈은 그대로 절명했다.
그러나 휘두르던 검은 그 속도를 잃지 않고 언럭키의 가슴팍을 베고 지나갔다.
-서걱!
[HP가 줄어들었습니다.]
반사적으로 미세하게 물러나 피해서 치명상은 면했다.
언럭키는 떨어진 HP에 신경쓰지 않은 채 마지막 놈에게 집중했다.
어느새 손에는 인벤토리에 있던 예비용 단검이 들린 상황.
-푹!
-콰직!
서로 손을 뻗은 둘의 공격이 서로에게 적중했다.
결과는 판이했다.
일반몹의 데미지는 아무리 암살자인 언럭키가 종이몸이라고 해도 한 방에 죽을 정도는 아니다.
반면에 언럭키의 단검은 일단 맞기만 하면 최소 사망.
[적을 처치하셨습니다.]
[소량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후우.”
언럭키가 메시지 창을 치우며 힐끗 시선만 돌려 체력을 확인했다.
HP가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역시 암살자 직업으로 정면 대결을 하는 건 쉽지 않네.’
원래는 이럴 생각이 없었다.
열심히 도망다니며 기회를 노릴 생각이었는데, 무슨 생각인지 보스몹이 자리만 지키고 있으니 속전속결로 끝냈을 뿐이다.
다행히, 이제 남은 건 보스몹 한 명뿐이었다.
“내, 내 부하들이….”
부제는 이 참담한 상황을 보며 침음성을 흘렸다.
5명이었던 부하들이 어느새 전부 죽고 없어졌다.
작업하는 노예들은 머리를 땅에 처박은 채 덜덜 떨기만 하고 있었다.
저런 놈들을 윽박질러봤자 아무런 도움도 안 되겠지.
“으득. 할 수 없구나. 갑옷이 손상되는 걸 감수하더라도 넌 내가 잡아 죽여주마!”
부제가 어금니를 거세게 깨물며 앞으로 나섰다.
이제는 넝마처럼 찢어진 망토 사이로 놈의 무장이 보였다.
두 주먹에 거대한 강철 글러브가 끼어져 있었는데, 그 위로 두껍고 날카로운 가시들이 삐죽삐죽 나 있었다.
‘권사 타입인가?’
언럭키 역시 긴장했다.
권사는 암살자처럼 리치가 짧지만, 체력과 방어력은 더 높다.
검사보다 짧은 리치를 빠른 스피드로 극복하는 타입이었다.
심지어 녀석은 보스몹.
지금 남아있는 체력으로는 잘못하면 한 방에 이쪽이 죽을 수도 있었다.
“이리 와라! 나는 부하들처럼 쉽지 않다는 걸 알려주마!”
“어 그래. 쉽지 않아 보이네.”
언럭키는 놈의 말을 무시하고 뒤로 물러났다.
“……?”
녀석은 살짝 당황했다.
3대1로 싸운걸 보면 암살자이면서 정면 대결에도 자신을 보이는 놈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
“놈! 놓치지 않겠다!”
부제가 빠르게 뛰어 언럭키를 쫓았다.
그는 필사적이었다.
잘못해서 동작을 놓친다면 은신할 테고, 그럼 그 무시무시한 기습이 다시금 날아올 터.
방어하지 못하는 괴물같은 일격이니 두 눈 부릅뜨고 계속 놈을 쳐다봐야 했다.
언럭키는 물러나면서 사신극검을 날렸다.
-쐐액!
-쾅!
부하놈들은 원샷원킬이었건만, 역시 대장은 쉽지 않았다.
주먹을 교차해 번개처럼 날아오는 단검을 막아낸 것이다.
“크으.”
인상은 찡그렸어도 꽤나 멀쩡한 모습.
확실히 부하놈들과는 달랐다.
‘이렇게 싸워서는 답이 없겠네.’
언럭키는 금세 판단을 내렸다.
첫 공격처럼 은신한 채로 놈의 인식을 벗어나서 공격해야 한다.
문제는, 놈 역시 그게 위험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두 눈 부릅뜨고 언럭키를 놓치지 않으려고 발악하고 있었다.
“거기서라 암살자!”
암살자 계열이라 움직임이 가볍고 민첩 수치가 높은 덕에 붙잡히지는 않았다.
언럭키는 달리면서 계속 머리를 굴렸다.
‘뭔가 다른 방법이 있을 것 같은데….’
이 공동 안에 들어와서 봤던 광경들을 하나씩 떠올렸다.
그러다 문득, 다시금 그 아이템으로 눈이 향했다.
이제는 건틀렛이 얼추 조립되어 있는 낡은 갑옷 세트.
여전히 남색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는데, 보스몹은 저걸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는지 그 주변을 벗어나지 않았다.
지금은 잔뜩 열이 받아 따라오고 있었지만…
‘저걸 한 번 건드려볼까?’
언럭키가 움직였다.
쫓아오는 부제에게서 도망치지만, 조금씩 방향을 바꾸면서.
어느 순간 그는 동공을 한 바퀴 빙 돌아 갑옷 근처에 위치해 있었다.
“멈춰라. 이거 부서지는 꼴 보고 싶지 않다면.”
언럭키가 단검을 들어 갑옷에 갖다 대며 소리쳤다.
그러자 놀랍게도.
“기, 기다려. 그건 건들면 안 된다!”
황소처럼 쫓아오던 부제가 당황한 채 처음으로 걸음을 멈췄다.
언럭키가 눈을 반짝이더니 손목을 털어냈다.
-쐐액!
그의 단검이 허공을 가르고 나아갔다.
-쾅!
“크윽!”
단검을 막은 채 신음만 흘리는 부제.
원래라면 더 열이 받아 쫓아갔겠지만 지금은 그러지 못했다.
저게 어떻게 찾은 갑옷인데 함부로 행동하겠는가.
언럭키는 그걸 보고 확신했다.
‘이게 저 놈의 약점이었군.’
자고로 약점이란, 발견했으면 더 후벼파줘야 하는 법.
“단검 또 던질 건데, 이번에는 막지 마라.”
“뭐?”
“막으면 갑옷 부서진다.”
“…….”
히죽 웃는 언럭키.
부제가 황당한 표정으로 그런 언럭키를 쳐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