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1화
대가의 검술.
연속 공격에 성공한다면, 7번째 공격에서 커다란 데미지를 입히는 스킬.
이 스킬은 꽤 많은 유저들이 알고 있었다.
잘만 쓰면 가격대비 굉장히 좋은 스킬이다.
스킬 수준에 따라 150~200% 정도의 데미지를 먹이는데, 여기서 치명타까지 터지면 그 이상의 데미지가 한 번에 터지니까 말이다.
게다가 쿨타임이 있는 스킬들과 달리, 이건 실력만 좋으면 계속 쓸 수 있다.
그래. 실력만 좋으면 말이다.
-뭔 이딴 개똥같은 스킬이 다 있어.
-이걸 천만 원이나 주고 샀다고? 미친 거 아냐?
레어 스킬이지만 사용자의 숙련도에 따라 노멀만도 못해질지, 유니크 이상이 될지 정해진다.
대부분은 노멀급 스킬로 전락해버린다.
언럭키가 쓰면 명백히 유니크 급이었고.
-훅.
-서걱!
언럭키는 악에 물든 오크들을 신들린 듯이 처치했다.
일반 공격들 대부분은 치명타로 들어갔고, 그러다 7번째 타격이 되면…
-쾅!
-꿰에엑…!
명백히 커다란 폭격음과 함께 오크가 바스러져나갔다.
“와…지린다….”
김동엽이 멍하니 입을 벌린 채 중얼거렸다.
혹시 싼 거 아냐?
다행히 팬티는 젖지 않았지만, 분명 그만한 슈퍼 플레이였다.
던전에 들어올 당시 언럭키의 레벨은 겨우 20.
악에 물든 오크들과는 5레벨이나 차이가 났다.
헌데 막상 몰아치는 건 언럭키였다.
스킬 없이도 귀신같은 움직임으로 우세를 점했고, 그러다 7번째 타격이 돌아오는 순간 전투는 끝났다.
“대가의 검술이 저렇게 좋은 스킬이었구나….”
김동엽 역시 대가의 검술을 알고 있었다.
꼴에 레어 스킬이라 획득하면 짭짤한 값어치를 하는 스킬.
하지만 자신은 줘도 안 쓰는 스킬이 바로 그것이다.
헌데 언럭키의 손에 들어가니 자신이 알던 것과 완전히 달랐다.
7번째 타격마다 스킬이 발동하는데, 언럭키는 몇 초마다 한 번씩 그걸 터트리고 있었다.
기본 평타 공격이 미친듯이 빠르게, 핀 포인트로 적중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툭툭툭 쾅!
언럭키의 검술 리듬을 보니 거의 그런 식이었다.
그렇게 토굴 형태의 던전을 미친듯이 질주하는데, 보는 사람의 가슴이 다 두근거렸다.
처음에는 공포 영화 같은 분위기였건만.
지금은 그냥 언럭키의 슈퍼 액션 무비가 되어버렸다.
“아 맞다. 이럴 때가 아니지.”
홀린듯이 영상을 시청하던 김동엽은 문득 정신을 차렸다.
월벤에 일단 링크라도 빨리 올릴 생각이었다.
“어?”
그러나 월벤에 들어가 보니 한 발 늦었다.
이미 언럭키의 링크가 올라와 있는 것은 물론이고, 주요 장면들만 클립을 따서 올린 것도 있는 것이다.
“와…나 말고 언럭키 팬이 또 있나보네?”
김동엽은 신기하다는 듯 게시글을 쳐다보더니 곧 싱글벙글 웃었다.
자신이 응원하는 스트리머의 팬이 많아지니 괜시리 기분이 좋았다.
물론.
그건 이제 언럭키의 부하 직원이 된 컵라면이 올린 것이었다.
앞으로 월급을 받는 직원이 될지도 모르는데, 미리미리 좋게 보이기 위해 홍보 업무까지 하고 있는 셈이다.
***
도시 네르센의 동쪽에 있는 폐광산.
한때는 철광석이 풍부하게 매장되어 있는 곳이어서 도시 네르센의 자금줄 역할을 톡톡히 했다.
허나 지금은 전부 다 캐내어 반쯤 버려지다시피 했다.
인간들로부터 버려진 폐광산은 몬스터들의 훌륭한 거주지가 되었고,
“광산 초입부 들어갈 파티원 두 분 구합니다.”
“탱커 두 분 모십니다.”
광산의 입구 근처에서 몇몇 유저들이 고래고래 소리치고 있었다.
빌리프펜과는 굉장히 다른 모습이다.
거기는 어느 사냥터를 가더라도 유저들이 바글거렸다.
저렇게 파티원을 구입할 필요도 없었다.
대충 앞에 서 있기만 하면 알아서 ‘혹시 자리 있나요?’ 하면서 찾아오기도 했으니까.
물론, 네르센의 다른 사냥터들도 비슷했다.
아직까지도 이곳은 유저 숫자가 넘쳐나서, 줄 서서 사냥터를 이용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여기는 폐광산이다.
안전하게 사냥할 수 있는 사냥터가 아니고, 죽을 위기가 대폭 높은 곳.
여기에 오는 종류는 딱 둘이다.
하나는 어려운 사냥을 즐기는 변태같은 성향의 소유자들.
둘째는 사냥터를 줄 서서 기다리기 싫고 돈도 없어서, 몸으로 때우려는 사람들이었다.
“자랑은 아니지만 저희 파티는 탱커가 둘이나 있습니다. 파티의 안전은 어느 정도 보장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딜이 강력하신 분이나, 혹은 탱커분들은 환영합니다.”
이런 던전에서 가장 인기가 좋은 직종은 탱커였다.
사실 탱커는 어딜가나 수요가 높다.
월드 사가는 난이도가 높아서 파티 사냥이 반 필수인데, 실력 좋은 탱커는 누구나 모셔가려고 하니까 말이다.
특히 폐광산은 시야가 좁아서 탱커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았다.
그때, 파티장들의 눈에 언럭키가 들어왔다.
‘새로운 유저다!’
‘여긴 사람도 많이 없는데, 반드시 우리가 채가야지.’
빨리 받아들여야 파티가 사냥터로 출발할 수 있다.
그들은 곁눈질로 5초만에 언럭키를 스캔했다.
나쁘지 않은 장비를 착용한 그의 모습에 잽싸게 다가가려고 했다.
허나 그때, 언럭키의 허리춤에 걸려있는 무기를 보고 발걸음을 멈췄다.
‘…잠깐만. 단검? 설마 암살자 직업이야?’
‘이런. 저 친구는 사냥터를 완전 잘못 찾아왔는데.’
폐광산의 몬스터들은 어둠 속에서 살아가는 지라 시력이 많이 퇴화되었다.
그 대신 청각이나 촉각을 비롯한 다른 감각과 육감이 비정상적으로 발달했다.
이런 곳에서 은신 능력을 지닌 암살자는 사냥이 굉장히 힘들다.
어지간한 은신 숙련도로는 접근하기도 전에 들켜서 선제 공격을 받는 것이다.
그렇기에 암살자는 폐광산에서만큼은 기피받는 직업이었다.
거기에 언럭키의 단검은 검집 안에 들어가 있으면 수수해 보여서, 남이 볼 때는 그리 좋아 보이지도 않는다.
‘눈 마주치지 말아야겠다. 괜히 말 걸라.’
‘혹시라도 쩔 해달라고 붙으면 골치 아파.’
파티장들이 슬쩍 언럭키에게서 물러났다.
그가 부디 자신에게 다가오지 않기를 바라면서.
물론 언럭키는 파티장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여기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좋군.’
괜히 기다릴 필요 없이 바로 들어가면 되겠다.
게다가 몇몇 있는 유저들도 이상하게 자신으로부터 멀어지고 있어서, 특히나 이 주변은 널널했다.
고개를 갸웃거린 언럭키였지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훌쩍 폐광산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여러 개 뚫려있는 광산의 입구로 쏙 들어갔다.
그 모습을 본 파티장들이 화들짝 놀랐다.
“허…혼자 들어가?”
“뭐지? 자살 희망자인가?”
뭐 하는 미친놈인가 싶었지만, 곧 신경을 껐다.
월드 사가에 유저들은 많았고 또라이는 그보다 더 많았으니까.
특히나 초창기에는 이상한 히든피스를 찾아보겠다고 연속으로 수십 번 넘게 죽는 유저들도 있었다.
‘미친놈이 나타났다고 월벤에 글이나 하나 써야겠군.’
‘신기한 사람이야.’
언럭키에 대한 감상은 고작 그 정도였다.
그 후로 그들은 언럭키에 대한 것을 머릿속에서 잊었다.
***
폐광산.
이곳은 지금까지 언럭키가 들어갔던 던전들과는 상당히 달랐다.
얼핏 볼 때는 비슷하다.
대부분의 던전은 석굴이나 토굴 형태이니까.
유일한 차이점이 있다면 너무 어둡다는 점이었다.
‘진짜 시야가 거의 안 보이는군.’
보통 던전은 유저 친화적이다.
일정 간격마다 횃불이 걸려져 있거나 빛을 내는 광석이 천장에 박혀 있다.
몬스터들도 그걸 통해 시야를 확보해야 하기에 어쩔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폐광산은 달랐다.
한 발 한 발 내딛기가 두려울 지경이었다.
그렇다고 스스로 횃불이라도 가져와서 켜면?
굉장히 멀리 떨어져 있는 몬스터들의 어그로까지 끌어버릴 것이다.
물론, 언럭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말이었다.
그는 자신 있게 발을 내딛었다
-스르륵.
그의 신형이 어둠 속에 녹아들었다.
레전더리 직업 ‘사신’.
어둠은 그의 벗이자 요람이다.
그 누구보다 어둠 속을 편하게 다닐 수 있는 직업인 것이다.
그 상태로 얼마나 걸어갔을까.
언럭키의 시야에 처음으로 몬스터가 걸려들었다.
[투포]
-레벨 : 33.
투포라는 몬스터로서, 레벨은 33이었다.
두더지를 닮은 몬스터였다.
가까이서 보니 눈이 멀었는지 흰자위만 미세하게 있었는데, 거의 감고 있었다.
그 대신 쉴 새 없이 코를 킁킁거리고 귀를 쫑긋거렸다.
시각 대신 청각과 촉각이 극도로 발달된 상태.
폐광산에 최적화된 신체 감각인 것이다.
물론, 레전더리 암살자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 언럭키를 알아챌 수는 없었다.
은신된 상태인 그는 대담하게 움직였는데, 투포는 그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언럭키는 대담하게 놈의 목에 단검을 찔러 넣었다.
-푹!
[치명적인 일격이 터졌습니다.]
[데미지 330% 상승!]
가만히 있는 놈을 공격하는 것이니 유치원생이 해도 치명타가 뜰 만했다.
암살자로서의 능력이 추가되어 무려 데미지가 250%로 올라가는데, 사신극검의 효과로 300%까지 뻥튀기되었다.
게다가 이 데미지란 건 무기에 따라 달라진다.
공격력 91. 레전더리 단검으로 급소를 찔렀으니, 일반몹 정도는 한 방감이었다.
‘사냥이 너무 편하잖아?’
등골을 타고 전율이 흘렀다.
검왕 때도 어렵진 않았지만, 이건 느낌이 더 달랐다.
가만히 서 있는 표적을 다가가서 찌르는데, 눈감고도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적을 처치하셨습니다.]
[소량의 경험치를 획득하셨습니다.]
‘응?’
투포가 죽은 후에 들어온 경험치 양을 보고 언럭키의 눈이 살짝 커졌다.
예상보다 꽤 많았던 것이다.
월벤에서 슬쩍 둘러본 비슷한 다른 사냥터보다 거의 1.3배는 되었다.
잠시 추측하던 언럭키는 곧 그 이유가 짐작 갔다.
‘어려운 사냥터라서 같은 레벨이어도 경험치를 많이 주는 모양이군.’
유저들이 별로 없을 정도로 난이도가 높은 사냥터이니, 그만한 보상 역시 존재하는 것.
언럭키의 눈이 번뜩였다.
남들에겐 어려울지 몰라도 그에게는 여기보다 더 효율 좋은 곳을 찾기 힘들 정도였다.
‘푸흐흐. 다 뒤졌다고 복창해라.’
공격하느라 은신이 풀렸었는데, 그가 다시 은신을 펼치며 광산의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
“연락이 두절됐다고?”
“그렇습니다 부제님.”
로브를 뒤집어쓴 채 어둠 속에 잠겨있던 남자는 부하의 보고에 생각에 빠졌다.
얼마 전 감히 이곳을 정탐하려던 쥐새끼를 붙잡았다.
온갖 고문을 했는데도 뒷배를 불지 않아서, 신의 품으로 보내주었다.
다만 놈이 남긴 흔적을 역추적해서 의심가는 도시의 유력자들을 감시하고 있었는데, 그중 몇 명으로부터 정기 보고가 끊어졌다.
“만약 감시가 들킨 거라면, 이곳으로 적들이 올 수도 있습니다.”
감시당하던 자들은 하나같이 도시의 힘 있는 자들이었다.
그들이 움직인다면 자신들의 아지트가 위험할 수도 있었다.
“괜찮다.”
부제라 불린 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하들이 황송해하며 뒤로 물러났다.
“이 폐광산이 어지간한 적들은 모두 막아줄 것이다. 몬스터들의 배만 부르게 해 줄 테지.”
“그건 그렇습니다만…”
“설령 기사급 다수가 움직인다고 해도 상관 없다. 그들이 이 아래에 똬리를 틀고 있는 우리를 어떻게 찾겠느냐.”
그들의 아지트는 폐광산 지하.
그들로서도 천운이 따라 발견한 곳을, 더욱 교묘하게 숨겨놓기까지 했다.
그렇기에 여기는 그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다.
전에 사로잡은 놈도 광산 위쪽을 헤매던 걸 기습해서 잡은 거였지, 놈이 이 안쪽까지 들어온 건 아니었다.
“확실히 그건 그렇겠군요.”
“그래. 그러니 더 이상 신경 쓸 것 없다. 그것보다 중요한 건 이거다.”
부하들을 안심시켜 준 부제가 옆으로 움직였다.
거기에는 커다란 갑옷 한 벌이 걸려 있었다.
다만 건틀렛이나 어깨 부근이 비어있었는데, 그걸 찾기 위해 계속해서 이 주변을 탐색하고 있었다.
“이것만 완성되면 나도 사제급으로 올라갈 수 있겠지.”
그들 조직이 찾고 있던 유물 중 하나.
비록 오래되고 손상을 입어 그 상태가 많이 안 좋았지만, 그래도 ‘그분’의 유물이었다.
위력은 물론이거니와 그 역사적 가치만으로도 자신은 조직에서 인정받을 수 있을 터.
“하하핫.”
부제가 히죽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