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7화
겉으로 봐도 고급스러운 황금색 반지.
자세히 보면 더욱 그 퀄리티가 좋았다.
단순한 금반지가 아니라, 세공이 아름답게 되어 있었다.
[호르헤른 가문의 반지]
-아이템 등급 : 유니크.
-아이템 효과 : 모든 능력치 + 10 상승.
-명예롭기로 소문난 귀족, 호르헤른 가문의 반지입니다. 착용자는 명예 수치가 + 10 상승합니다.
-귀족은 존중하는 자들은 이 반지를 알아보고 당신을 존중할 것입니다.
-아이템 착용 제한 : 레벨 10 이상.
-거래 불가.
아이템 효과를 확인한 언럭키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모든 능력치가 10씩 상승한다고?’
레어급 무기나 장비를 주워도 능력치 상승은 끽해야 1이나 2 정도이다.
이런 저레벨 구간에서는 유니크 급으로 가도 +5 정도는 될까.
헌데 이건 +10 상승이었다.
그것도 모든 능력치의 상승이니, 도합 50의 상승 아닌가.
‘…진짜 말도 안 되는 오버 스펙인데?’
레벨 10개를 올린 것과 같은 효과를 이 조그만 반지 하나가 보여 주고 있었다.
어디 그 뿐이랴.
명예 수치도 10 상승했다.
명예 관리는 고레벨 유저가 되면 필수적으로 해야 하는 건데, 언럭키는 벌써부터 꽤 높은 명예 수치를 갖게 되었다.
거기에 NPC들의 존중을 받게 된다는 내용까지 명시되어 있었으니.
‘이게 어떻게 유니크야.’
아무리 봐도 레전더리로 분류되어도 될 것 같은데?
거래 불가라는 게 살짝 아쉽긴 한데, 이런 건 돈을 아무리 많이 준다고 해도 스펙 증가를 위해 내가 끼는 게 더 낫다.
“어떤가. 마음에 드나?”
호르헤른이 물었다.
언럭키는 그제야 반지에서 시선을 떼고 얼른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어르신!”
한층 더 공손해진 자세. 두 손은 자연스레 앞으로 모았다.
물질적인 보답을 받게 되자 아주 그냥,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공경심이 솟아오른다.
“우리 가문의 일원들은 모두 그 반지를 끼고 다니지. 자네는 외부인이지만 가문의 일원으로 대우해 줄만한 일을 해서 주는 걸세.”
가문의 일원은 모두 이걸 낀다고?
그럼 여기서 지나가는 NPC들은 모두 유니크 반지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는 것 아닌가.
갑자기 가문 자체가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왜 다른 사람들이 귀족 귀족 하는지 알겠다.
‘그래. 이런 게 바로 귀족이지!’
언럭키는 다시 한 번 다짐했다.
간신히 생긴 이 인연을 절대 놓치지 않겠다고.
“어쨌거나 다시 이 이야기로 돌아가지.”
호르헤른이 아까 덮었던 베르멘베거의 연구 일지를 들어올렸다.
“이 안에는 놈이 그간 해왔던 행적 외에도, 연구하던 내용까지 적혀있네. 흑마법으로 몬스터를 더 강하게 만들고 조종하는 짓을 해왔더군.”
호르헤른은 불쾌감을 느끼는지 인상을 찡그렸다.
언럭키가 얼른 동조했다.
“용서하지 못할 놈들이군요! 제가 더 빨리 처리하지 못한 게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허허. 아닐세. 자네는 충분히 잘해주었어. 자네 덕분에 결과적으로 이 놈을 잡아냈으니 말이야.”
그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감히 우리 호르헤른님의 기분을 나쁘게 하다니!
용서할 수 없는 놈이었잖아 그거?
언럭키의 그런 모습을 보고 호르헤른이 흐뭇하게 웃었다.
“어쨌거나 자네가 얼마나 정의로운 지는 잘 알았네. 그래서 말인데, 혹시 내가 부탁 하나 더 해도 되겠는가?”
“당연히 됩니다.”
“이 연구를 하던 흑마법사는 자네가 처치했지만, 이 연구를 어딘가로 가져가려고 했네. 마음 같아서는 그 배후가 어디인지 내가 직접 나서고 싶다만, 난 감히 전대 공작을 시해한 놈들과 한 판 붙어야 할 것 같아서 자리를 비울 수 없을 것 같군. 그래서 말인데, 자네가 좀 도와주면 좋겠어.”
언럭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기다렸던 질문이다.
“물론입니다. 어떤 임무를 내리시건 이 한 몸 다 바쳐 수행하겠습니다.”
그 순간, 메시지가 나타났다.
-띠링
[퀘스트 조건을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연계 퀘스트가 발동합니다.]
[레전더리 등급 퀘스트 : ‘악의 정체’ 를 수행하실 수 있습니다.]
[퀘스트를 수행하시겠습니까?]
[Y/N]
또 레전더리 퀘스트!
언럭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예! 지금 당장 출발하겠습니다!”
무조건 고!
못 먹어도. 아니, 못 먹으면 절대 안 되지만 어쨌거나 고!
허나 그 순간이었다.
-띠링
[퀘스트 수행 조건에 걸맞지 않습니다.]
[퀘스트가 거절되었습니다.]
갑작스레 나타난 메시지와 함께, 레전더리 퀘스트가 사라졌다.
‘엥? 왜?’
갑자기 나타난 뜬금없는 현상에 언럭키는 머리가 하얘짐을 느꼈다.
천당에서 지옥으로 떨어지는 듯한 기분.
호르헤른이 턱을 쓰다듬었다.
“흠. 헌데 자네는 아직 실력이 조금 부족해 보이는군.”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조금 더 강해져서 돌아오게. 놈들은 아주 무서운 녀석들일 테지. 지금 자네 수준에서는 괜한 목숨만 잃을 수 있다는 뜻일세. 나는 더 이상 켈리그 도련님 때와 같은 희생을 보고 싶지 않군.”
언럭키는 그제야 깨달았다.
레벨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퀘스트 수행 조건을 달성한 후에 해당 NPC에게 다시 퀘스트를 받으실 수 있습니다.]
[퀘스트 수행 가능 레벨 : 레벨 30 이상.]
그 순간 언럭키의 시선 한편으로 추가 메시지가 나타났다.
“알겠습니다.”
그의 눈이 이글이글 타올랐다.
다행히 퀘스트가 사라진 건 아니다.
레벨만 올려서 돌아오면 다시 받을 수 있다는 뜻!
“최대한 빠르게 강해져서, 호르헤른님께서 내리신 임무를 완수하겠습니다!”
“허허. 믿고 있겠네.”
***
월드 사가를 시작하면 처음 발을 내딛게 되는 시작의 도시.
시작의 도시는 레벨 1~10의 유저들이 머무르는 공간이다.
그 후로는 경험치를 얻을 수 없고 다음 도시로 넘어가야 되는데, 선택지는 여러 개가 존재한다.
그 다음 도시들 중 하나인 빌리프펜의 유저 레벨은 11~30까지.
“후우.”
칙 소리와 함께 연기가 피어오르면 캡슐의 뚜껑이 열렸다.
백현이 안에서 빠져나왔다.
좁아터진 고시원 방에서 대충 몸을 풀었다.
어깨를 풀고 목도 풀고.
아무리 캡슐이 좋아도 계속 누워 있었던지라 몸이 굳은 상태다.
허리와 다리 스트레칭을 마치고, 방문 사이에 걸려있는 철봉바에 매달렸다.
-월드 사가를 본격적으로 하려면 현실에서 체력을 기르는 것도 중요합니다.
편집자 이용승이 한 말이다.
그는 자신이 뱉은 말의 증거를 눈 앞에서 보여주고 있었다.
키 190에 근육으로 꽉 찬 덩치.
그야말로 강철같은 신체를 보유한게 이용승이었다.
툭하면 밤새서 편집할 수 있는 체력도, 그 신체 능력 덕분 아닐까 싶었다.
그는 백현에게 긴 봉을 하나 건네며 말했었다.
-저는 편집자로서가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언럭키의 팬입니다. 앞으로 스트리머 언럭키가 성장해서 성공하는 걸 보고 싶습니다.
-하하. 감사합니다.
-그래서 드리는 겁니다. 방문에 걸고 하루에 풀업 100개씩만 하세요. 건강을 책임지는 건 물론이고, 그 날의 스트레스를 다 날려줄 겁니다.
-…….
이용승은 진성 헬창이었다.
운동 중독.
빚쟁이가 되어 이 감옥에 갇히기 전에는 매일 헬스장에서 몇 시간씩 살았다고 한다.
지금은 그게 불가능한 대신, 맨몸운동에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고.
-음…혹시나 해서 물어보는데 용승씨는 하루에 몇 개나 하세요?
-전 500개씩 합니다.
-…500개요?
-예. 백현 씨도 노력하시면 충분히 할 수 있을 겁니다.
-…….
어쨌거나.
개수는 몰라도 백현 역시 운동을 해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했다.
‘체력이 있어야 돼.’
정신력만으로 무언가를 이룰 수 있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라 생각한다.
강한 체력과 몸에 강인한 정신이 깃드는 법!
그렇기에 일부러라도 시간을 내서 운동에 매진했다.
“후욱. 후욱.”
나중에. 이 지옥에서 빠져나가면 다른 운동도 할 생각이었다.
검도나 태권도, 무에타이나 주짓수 등.
월드 사가는 직접 몸을 움직여서 플레이해야 하는 게임이다.
그런 운동들을 배워 놓으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터.
한창 열 내며 운동하는 와중에도 그의 머릿속에는 온통 월드 사가에서의 일이 가득했다.
‘그나저나. 드디어 레벨 30이 머지않았군.’
레벨 29에 경험치는 90% 가량.
현재 언럭키의 상태였다.
그가 여기까지 오는데 걸린 시간이 무려 열흘 가까이 되었다.
오크의 숲에 있었던 던전, ‘악에 물든 지하’는 던전 공략을 마치자마자 없어졌다.
퀘스트용으로 만들어진 던전이었는지 더 이상 이용할 수가 없었다.
때문에 이후로는 사냥터를 전전해야 했는데, 호르헤른을 만난 직후 언럭키의 레벨은 24.
30까지는 무려 6레벨이나 올려야 했다.
그건 쉽지 않았다.
악에 물든 지하의 오크들은 레벨이 높아서 경험치가 쏠쏠했고, 보스몹 두 마리는 처치하자마자 레벨을 하나 올려줬다.
거기에 퀘스트 성공으로 레벨업까지.
레벨 20즈음부터 쉽게 성장했던 언럭키였기에, 그 이후로는 상당히 고난이었다.
새로운 사냥터를 탐색하고 줄서기.
무작정 기다릴 수 없어서 다시 돈을 써서 사냥터 시간 구매.
아무런 퀘스트 없이 몬스터를 사냥하는 것만으로 레벨을 올렸다.
엄청난 시간을 쏟는 일이었다.
월드 사가의 레벨업은 굉장히 어렵고, 언럭키가 지금껏 쉽게 했던 것 뿐이지만.
‘빌리프펜 지하 수로를 팔지 않았더라면 큰일 날 뻔 했지.’
사냥터를 단순히 줄서서 기다려 이용했다면 언제 레벨 30을 찍었을지.
생각만 해도 앞이 깜깜했다.
어쨌거나 이제 그것도 끝이 보인다.
지난 열흘 가까운 시간은 정말 힘들었지만, 보상이 눈앞에 있었다.
“후우.”
운동을 끝낸 백현이 거울을 봤다.
상의는 벗고 있었는데 펌핑되어서 그런가. 몸이 꽤나 괜찮게 느껴진다.
생긴 것도 이 정도면 나쁘지 않고.
이리저리 돌려보며 생각했다.
‘나중에 미튜브가 더 성장하면, 나도 아예 얼굴 까고 방송할까?’
잘생기거나 예쁜 사람들은 그렇게 하기도 한다.
화면 한 쪽 구석에 플레이하는 현실의 얼굴을 띄워놓는 형식인데, 의외로 그건 상당한 호평을 얻었다.
이 시대에 외모 또한 상당한 경쟁력인 바.
가상 캐릭터가 아니라 본판이 뛰어나다면 굉장한 인기를 얻고는 했다.
운동을 마무리한 백현이 다시 옷을 걸쳐 입었다.
그의 표정이 진중해졌다.
오늘은 자기 전에 해야 할 중요한 일정이 있었다.
백현이 자신의 방을 나간 뒤, 좁은 복도를 걸어갔다.
고시원 같은 방들을 쭉 통과해 가면 공용 부엌이 존재한다.
항상 그 길로만 다녔지만, 오늘은 반대로 갔다.
출입구 방향. 거기에는 사무실이 있었다.
-똑똑.
가볍게 노크를 하고 심호흡을 했다.
“들어오세요.”
나직한 목소리가 들리자 문을 열었다.
안에 있는 건 성강호 팀장이었다.
수트를 맞춰 입고 깔끔하게 넘긴 머리는, 빚쟁이들만 있는 이 곳에서 가장 이질적이다.
심지어 부하들마저 전부 덩어리 같은 놈들인데, 그 혼자서만 저렇게 고고하게 존재했다.
“성 팀장님.”
“예, 백현 씨. 시간 맞춰서 잘 오셨네요. 이리로 앉으세요.”
성 팀장이 자신의 맞은편 의자를 가리켰다.
“어떻게. 커피라도 한 잔 드릴까요?”
“…예, 주세요.”
거금 쓰려고 왔는데. 최소한 커피라도 얻어먹어야지.
성 팀장이 손을 까딱이자 덩치 한 명이 종이컵에 프림 커피를 휘적거리며 가져왔다.
“…맛있게 드십쇼.”
그는 백현을 보며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휑하게 반짝이는 정수리가 눈에 띄었다.
성 팀장의 부하 중 한 명이자, 백현과는 몇 번 맞부딪쳤던 김덕현이었다.
김덕현은 사냥터를 빼앗긴(?) 이후로 우연히 백현을 볼 때마다 저렇게 쏘아보곤 했다.
“수고했다 덕현아.”
“아닙니다 형님.”
“그래. 얘기할 게 있으니 나가있어.”
“알겠습니다.”
김덕현이 허리를 푹 숙이더니 방을 빠져나갔다.
후룩.
백현은 뜨거운 커피를 단숨에 들이켰다.
그리고는 눈을 부릅뜬 채 성 팀장을 쳐다봤다.
“커피 잘 먹었습니다. 시간 없으니 바로 본론으로 넘어가죠.”
성 팀장이 무표정한 얼굴로 백현을 마주봤다.
“너무 급한 거 아닙니까?”
“당신이랑 마주보고 있는 이 시간에 잠이라도 더 자는 게 이득이니까요. 계좌번호나 부르세요.”
성 팀장이 어깨를 으쓱였다.
“뭐. 깔끔하고 좋네요.”
성 팀장이 계좌 번호가 적힌 명함 한 장을 내밀었다.
백현은 곧장 스마트폰으로 뱅킹 앱에 들어간 다음, 송금했다.
-띠링
[10,500,000원 이체 완료했습니다.]
그가 자신의 화면을 성 팀장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이번 달 빚 천만 원 갚았고, 당신한테 줄 커미션 5%도 확실하게 입금했습니다. 나중에 딴소리 하지 마세요.”
“…하핫.”
처음으로 성강호 팀장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재미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