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6화
“커허억….”
베르멘베거가 땅을 뒹굴었다.
‘대가의 검술’ 효과로 인한 7번째 타격.
보스몹으로 분류되지만 베르멘베거는 체력과 방어력이 좋은 타입이 아니다.
아니. 오히려 일반 몹보다 못하다.
아무리 추가 데미지를 입었다고 해도, 한순간에 놈의 HP가 30% 미만으로 떨어졌다.
“어, 어떻게 내게 공격을…!?”
베르멘베거는 한껏 당황한 목소리였다.
현재 자신은 물리력 면역이다.
일반 검사는 자신에게 손톱만큼의 타격도 못 입혀야 정상이다.
상식을 벗어나는 일이 벌어졌다.
바닥에 쓰러진 베르멘베거를 내려다보며 언럭키가 히죽 웃었다.
“네 능력을 너무 자신하고 있는 거 아냐?”
검왕의 특성 중 하나.
[검을 활용한 공격에 ‘물리력 + 마법력’이 적용됩니다.]
유령 계열 몬스터도 특별한 스킬 없이 손쉽게 잡아버릴 수 있다.
베르멘베거로서는 상상도 못한 일이겠지만.
“크아아아!”
그때, 뒤편에서 달려온 투르카가 몽둥이를 내리쳤다.
언럭키가 혀를 차며 뒤로 물러났다.
‘쯧. 아쉽네.’
한두 방만 더 때리면 잡을 것 같았는데.
허나 그러면 투르카의 공격에 그대로 노출된다.
놈의 공격은 한 방 한 방이 위험하기 때문에 괜히 무리할 필요 없었다.
언럭키가 물러나자 베르멘베거도 한시름 돌렸다.
꼼짝없이 이대로 죽는 줄 알았건만.
그는 한층 더 경계심을 끌어올렸다.
‘젠장! 젠장!’
디버프 계열의 마법은 잘 통하지도 않는데, 거기에 물리력 면역인 자신을 공격했다.
베르멘베거의 안색이 흐려졌다.
놈이 무슨 수를 쓴 건지는 모르겠지만, 하나는 확실하다.
이대로 있다가는 죽는다.
살아서 도망치려면 필사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다크 에로우]
[솟구치는 어둠 가시]
[암흑의 장막]
베르멘베거가 투르카의 뒤에 숨은 채 다시금 공격을 시도했다.
아까와 같은 디버프가 아니었다.
실체를 가지고 있는 마법 공격들.
새카만 어둠의 화살이 날아가고 언럭키의 발밑에서 가시덤불이 솟아올랐다.
거기에 시야를 가리는 안개가 꼈다.
“크르르! 크아아아!”
안개 속에서 투르카의 고함이 울려 퍼졌다.
“그래 투르카! 아주 묵사발을 내버려라!”
베르멘베거가 환호했다.
칙칙한 안개는 바로 근처에 있는 물체도 제대로 분간하지 못하게 만든다.
저런 환경에서는 무식하게 전투하는 투르카가 유리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장기는 아니지만 마법 공격까지 계속 쏴댔다.
“취익! 취익! 크아아!”
-펑! 펑!
-콰앙!
한동안 안개 속에서는 투르카의 괴성과 자신의 마법이 터지는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해치웠나?’
베르멘베거의 머릿속에 그런 희망찬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 그 놈이 아무리 신기하게 싸운다고 해봤자다.
시야도 제대로 뚫리지 않은 곳에서 투르카랑 근접전을 펼치다니.
무조건 죽었을 것이다.
그 순간이었다.
-촤악!
안개가 반으로 뚝 하고 갈라졌다.
그 안에서 언럭키가 불쑥 튀어나왔다.
“으헉!”
깜짝 놀란 베르멘베거가 허둥지둥 움직이려 했지만 언럭키의 검이 더 빨랐다.
조금 전 놓쳤던 것에 대해 보답이라도 하는 듯, 번개처럼 움직인 것이다.
-콰직!
-푹!
단 두 방.
그것만으로 베르멘베거의 HP가 모두 닳기에는 충분했다.
쓰러지는 그의 눈동자에는 억울함이 가득했다.
“내가 이런 곳에서….”
할 일이 많았다.
이번 연구 성과만 제대로 가져다줘도 조직에서 조금 더 높이 올라갈 수도 있었을 테고.
그러면 자신의 최종 목적지에도 가까워졌을 텐데.
쓰러지는 그의 눈앞에 언럭키의 뒤편이 보였다.
마력이 흩어지며 안개가 사라진 광경.
투르카가 자신가 비슷한 모양새로 바닥에 누워 있었다.
기껏 쏘아 보냈던 화살과 가시는 두 동강난 채 옆에서 나뒹굴고 있고.
‘내 마법을…검으로 베어냈다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광경.
그게 그의 마지막 생각이었다.
***
“후우.”
언럭키가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
방금 전 전투는 꽤나 빡셌다.
디버프는 검왕의 특성으로 무시했다지만, 물리력이 깃든 마법 공격은 아니다.
그건 꽤나 위험했다.
심지어 바로 앞에는 투르카까지 있지 않았나.
잘못 맞아서 동작이 둔해지면 끝장이었다.
‘놈이 안개를 일으켜 준 게 천만 다행이었지.’
안개는 투르카와 언럭키의 시야를 완전히 차단했다.
베르멘베거는 그런 상황에서 투르카가 우위일거라 생각했지만 실상은 반대였다.
언럭키의 말도 안 되는 실력은 레전더리 직업 ‘검왕’의 특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예지에 가까운 회피 능력과 판단력.
그건 단순히 시야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청각, 촉각, 후각을 비롯한 육감까지 활용한다.
시야가 가린 상황에서 불리한건 투르카였다.
언럭키는 아무렇게나 내려치는 몽둥이를 피하고, 더 크게 드러난 놈의 빈틈에 쉴 새 없이 칼을 꽂아 넣었다.
대가의 검술을 활용해서 연속으로 14번 이상의 검격을 성공시키니 놈이 쓰러졌다.
그 와중에 베르멘베거가 쏘아 보낸 마법을 잘라내기까지 했다.
‘잘 될까 싶었는데 문제 없어서 다행이지.’
마법도 자를 수 있다는 건 검사에게 있어서 말도 안 되는 장점이다.
그걸 이번에 톡톡히 느꼈다.
날이 갈수록 검왕 직업이 얼마나 사기적인지 깨닫고 있었다.
-띠링
[레벨업!]
[보스 몬스터를 처치하셨습니다.]
[두 마리의 보스 몬스터를 동시에 처치하셨습니다.]
[믿을 수 없는 성과!]
[업적이 주어집니다.]
[‘더블 헌트(레어)’ 업적을 획득합니다.]
보스룸에 보스몹이 두 마리나 동시에 나타나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거의 드물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경우, 사냥에 성공하면 월드 사가는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반드시 그에 대한 보답을 해 주기 마련이다.
남들과 다른 대단한 업적을 보여 줬으니까!
[업적 : 더블 헌트]
-업적 등급 : 레어.
-보스 몬스터 두 마리를 동시에 사냥했습니다.
-보스 몬스터를 상대할 때 힘, 체력 능력치 + 3 상승.
업적 효과를 확인한 언럭키가 눈을 반짝였다.
‘한정적으로 능력치를 상승시켜주는 업적이군.’
보스몹을 상대할 때 한정이긴 하지만, 상당히 좋다.
솔직히 말해서, 언럭키가 일반몹을 상대로 어려움에 처할 일이 얼마나 있겠는가.
나중은 몰라도 당분간은 그럴 일이 없다.
문제가 되는 건 보스몹 정도인데, 그런 경우에 이 업적은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을 때, 컵라면이 다가왔다.
“와. 언럭키님. 이제는 보스몹 두 마리도 아무렇지 않게 잡아버리네요?”
그가 자신의 머리 위쪽 허공을 가리켰다.
“영상은 제대로 다 찍혔습니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이번에도 결과물이 엄청날 것 같아요.”
뒤에서 지켜본 그의 감상은 간단했다.
퍼펙트!
언럭키는 방금 전 전투를 아슬아슬했다고 평가했지만, 제 3자의 입장에서는 정 반대였다.
갑작스럽게 두 마리가 된 보스 몬스터.
한 마리는 근접 전사형이고 다른 한 마리는 흑마법사인 최악의 조합이다.
뒤에서 디버프를 비롯한 온갖 마법을 쏘아대는데 몸체마저 연기로 변신하는, 까다로움의 극치인 보스몹들이었다.
헌데 언럭키는 놈들을 손쉽게 처리했다.
뭔가 휘리릭 하더니 두 놈 다 바닥에 누워버린 것이다.
‘솔직히 이번에는 내가 도와야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2대2로 싸워도 승산은 그리 높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은 암살자였고, 탱커가 없는 암살자는 정면 대결에서 매우 약하니까.
그런데도 언럭키는 완벽하게 해치웠다.
컵라면이 새삼 다른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미래의 거인이 될 게 분명한 남자.
그게 언럭키였다.
“운이 좋았죠 뭐.”
언럭키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보스몹들이 쓰러진 곳에 다가갔다.
죽은 놈들은 가루가 되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아이템만이 남아있었다.
[투르카의 흑색 몽둥이]
-아이템 등급 : 레어.
-아이템 효과 : 공격력 + 25상승.
-오크 전사 투르카가 사용하던 몽둥이이다. 철의 기운을 머금은 철목으로 만들어져 굉장히 단단하다.
-아이템 착용 제한 : 레벨 20 이상.
-거래 가능.
하나는 투르카가 쓰던 몽둥이였다.
언럭키는 곧바로 결론을 내렸다.
‘볼 것도 없이 팔아야겠군.’
시작의 도시에서부터 지금까지 쓰고 있는 검, ‘명예의 시작 롱소드’ 보다 공격력이 낮다.
게다가 명예의 시작 롱소드에는 힘과 체력 상승 옵션까지 붙어있다.
확실히 레어와 유니크의 등급 차이란 무시할 수 없는 것 같다.
거래 가능이니 팔아서 자금으로 쓰면 되겠고.
‘어디. 다음 거는…’
[베르멘베거의 마력 증폭 장갑]
-아이템 등급 : 노멀.
-아이템 효과 : 마법 공격력 +15 상승.
-흑마법사 베르멘베거가 사용하던 장갑이다. 성능이 그리 좋지는 않다.
그가 인상을 찌푸리더니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생긴 것도 지저분하더니 어떻게 드랍템까지 지저분하냐.”
보스몹 주제에 노멀템을 뱉어?
게다가 거래도 불가능이다.
그나마 같이 나와 줘서 더블 헌트 업적이라도 얻을 수 있었지.
그게 아니었다면 괜히 난이도만 높이는 쓸데없는 놈이었다.
“어?”
그 때, 저 멀리 쪽에 떨어져 있는 노트가 한 권 눈에 띄었다.
다른 아이템들과 달리 구석에 튕겨져 드랍된 모양인데.
하마터면 못 보고 지나칠 뻔 했다.
[베르멘베거의 연구 일지]
-아이템 등급 : 퀘스트 아이템.
-베르멘베거의 흑마법에 대한 연구 일지이다.
-그의 개인적인 사생활에 대한 내용도 기록되어 있다.
-특정한 NPC에게 가져다주면 적절한 보상을 받을 수 있다.
‘오 퀘스트 아이템이잖아.’
여기서 말하는 특정한 NPC가 누구인지는 뻔하다.
레전더리 퀘스트, 악의 태동.
퀘스트에서 말한 조건은 오크의 숲 어딘가에 있는 악에 물든 존재들을 토벌하고, 그 증거를 가져오는 것이다.
토벌은 완료했고 이 연구일지라면 충분한 증거물이 될 터.
언럭키가 싱글벙글 웃었다.
‘빨리 돌아가야겠다.’
벌써부터 호르헤른이 뭘 줄지 기대가 된다.
언럭키가 컵라면에게 말했다.
“얼추 마무리가 되었으니 도시로 돌아갈까요?”
“알겠습니다.”
두 사람이 던전을 벗어나 도시로 복귀했다.
***
언럭키는 곧장 호르헤른의 저택으로 향했다.
“왔나?”
“예 어르신.”
언럭키가 공손하게 인사했다.
허리까지 아예 90도로 굽혔다.
“허허. 그렇게까지 할 필요 없네.”
“아닙니다. 제가 원래 웃어른을 보면 공경하고 싶어 해서요.”
호르헤른이 손을 내저었지만 언럭키는 요지부동이었다.
노인들의 시선에서는 젊은이들의 이런 예의가 좋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역시 명예를 아는 친구라서 그런지, 인성이 훌륭하구먼.”
-띠링
[호르헤른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명예 수치가 +1 상승합니다.]
‘예쓰!’
언럭키가 속으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귀족 NPC를 상대하다보면 자다가도 떡이 나온다더니.
명예 수치가 올라가면 알게 모르게 받는 이득이 얼마나 많은데, 허리 한 번 굽혀주는 게 대수인가.
열 번이고 백 번이고 더 할 수 있다.
“그래도 이제 그만하고 어서 들어오게. 내 부탁은 어떻게 되었나.”
“말씀하신 악들을 다 토벌했습니다. 도저히 살아있어서는 안 될 놈들이더군요.”
언럭키는 정의감에 불타는 것처럼 연기했다.
사실 악에 물든 오크들은 그의 입장에서 나쁘지 않았다.
강하고 레벨이 높지만, 그만큼 경험치도 쏠쏠한 놈들!
유저 입장에서야 다 똑같은 몬스터 아니겠는가.
오히려 더 좋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렇게 대답할 수는 없는 법.
호르헤른은 언럭키의 말에 만족스러워했다.
“그렇겠지. 악에 물든 놈은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의 마음 속에 불쾌감을 만드니까.”
“실로 그렇습니다.”
“혹시 특이한 점이 없었던가?”
“있었습니다. 오크들을 사악하게 만들어 조종하던 흑마법사가 있었는데…”
“흑마법사!”
“예. 놈을 처치하고 그 연구 일지를 가져왔습니다.”
언럭키가 인벤토리에서 연구일지를 꺼내 건냈다.
호르헤른은 그걸 받아들더니 심각한 표정으로 읽기 시작했다.
언럭키는 그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앞에 얌전히 있었다.
잠시 후.
“수고했네. 이 연구가 성공했다면 아주 끔찍한 일이 일어날 뻔 했어. 그리고 전대 공작께서 왜 돌아가셨는지도 적혀있군.”
“그렇습니까?”
“그래. 그 분과 정치적으로 대립하던 몇몇 귀족들이 독살용 약을 의뢰한 모양이야. 이 흑마법사 놈이 저주와 독이 섞인 비전의 물약을 누구에게 팔아먹었는지 똑똑히 적혀있어.”
호르헤른이 연구 일지를 덮으며 눈을 부릅떴다.
그 순간이었다.
[레전더리 퀘스트 ‘악의 태동’에 성공하셨습니다.]
[레벨업!]
보스몹 2마리를 잡았는데도 레벨업은 한 번이 끝이었는데, 퀘스트를 완료하자마자 또 한 번이 레벨업을 했다.
경험치만으로 따져도 굉장히 쏠쏠하다.
물론 경험치는 부가적인 것이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게 남아 있었다.
“일단 이것부터 받게. 자네에게 약속했던 보상일세. 훌륭히 임무를 성공한 모험가에게는 마땅한 대가가 있어야지. 그 후에 다시 얘기를 시작하지.”
그가 자신의 손가락에 끼어져 있는 반지를 꺼내어 건넸다.
[퀘스트 보상이 주어집니다.]
때깔 고운 금색 반지.
행운의 무지개가 열심히 경종을 울려대고 있었다.
무지개가 비추는 색깔은 파란색!
“감사합니다!”
언럭키가 공손히 두 손을 내밀어 반지를 받았다.
진짜 표정 관리하기 힘들다.
콧구멍이 벌렁거릴 것 같은데도 애써 입을 꾹 다물고 있다.
“한 번 확인해보게. 만족스러울 거야.”
“알겠습니다.”
무려 귀족이 보증하는 아이템이다.
‘어디….’
언럭키가 기대된다는 표정으로 곧장 아이템 정보를 오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