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행운빨로 레벨업-32화 (32/218)

#032화.

레전더리 퀘스트라는 단어.

그리고 거기에서 흘러나오는, 선명한 보랏빛 광채까지.

빨주노초파남보. 그중 가장 윗등급의 보라색 광채가 나오는 퀘스트가 눈앞에 생성되었다.

‘…말도 안 돼.’

언럭키는 혹시나 자신이 잘못 봤나 몇 번이고 두 눈을 깜빡였지만 여전히 보여지는 건 똑같았다.

‘레전더리 등급의 퀘스트라니…!’

유니크 등급 퀘스트를 수행하게 되었을 때도 얼마나 기뻤던가.

그런데 이건 한술 더 뜨고 있었다.

놀란 언럭키의 반응을 받아넘기며 호르헤른이 입을 열었다.

“혹시 자네는 켈리그 도련님이 어떤 신분이었는지 알고 있나?”

알 리가 있나? 아무런 설명도 해주지 않았는데.

언럭키가 고개를 저었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호르헤른이 말을 이어 나갔다.

“그 분은 공작가의 자제분이셨네.”

“…! 그러면 호르헤른님이 공작님이십니까?”

“그럴 리가. 나는 도련님과 그저 친한 사람일 뿐, 인척 관계는 아니라네. 전대 공작께서 돌아가셨기에 잠시 내 집에 계시는 것뿐이었지.”

“아 그렇군요.”

“켈리그 도련님은 전대 공작께서 돌아가신 원인을 파헤치고 다녔다네. 주무시다가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는데 그럴 만한 분이 아니었거든. 그 과정에서 수상한 정황도 많이 발견했고.”

“그래서 원인을 발견했습니까?”

“아니. 증거를 조금 발견했다 싶으면 그 너머의 끈이 계속 사라졌거든. 나는 도시의 다른 귀족들과 마찰이 있어서 도와줄 수 없었기에, 도련님은 혼자서 조사를 이어나갔네.”

호르헤른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포기하지 않던 어느 날, 도련님은 흉수가 고대의 악(惡)과 연관된 조직이라는 걸 알아냈지.”

“고대의 악이라면?”

“그건…좀 위험한 얘기이기에 나중에 말해 주지. 일단 도련님이 돌아가신 곳 근처를 조사해주겠나? 필시 심상치 않은 흔적이 있을 거야. 성공하면 전에 주기로 약속했던 이 반지를 주겠네.”

호르헤른이 자신의 반지를 가리켰다.

언럭키는 덮어놓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레전더리 퀘스트인데 무조건 오케이 해야지.

[퀘스트를 수락하셨습니다.]

[퀘스트 : 악의 태동]

-퀘스트 등급 : 레전더리.

-퀘스트 설명 : 켈리그 도련님이 사살된 오크의 숲 어딘가에 악에 물든 존재들이 있는 것 같다. 그 장소를 찾아내어 토벌하고, 증거를 가져오자.

-퀘스트 보상 : 호르헤른의 가문의 반지(유니크), 악(惡)의 비밀.

-퀘스트 성공 시, 연계 퀘스트 수행 가능.

가만히 퀘스트 설명을 읽던 언럭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라? 악에 물든 존재들?

이거 되게 익숙한데?

***

월드 사가를 하면서 언럭키는 자신의 강함을 잘 알았다.

동레벨에 이 정도의 활약을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당연히 알 수밖에 없다.

동시에 한계도 뚜렷하게 느꼈다.

특히 이번에 말이다.

‘악에 물든 지하 던전에서 뼈저리게 깨달았지.’

자신은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

눈깔 검정색의 레벨 25짜리 오크들이 등장하는 그 던전은 노다지였다.

한 마리 한 마리 잡는 게 빡세기는 하지만, 그만큼 대가도 충분한 던전.

허나 공략을 끝까지 해내지 못했다.

아니. 공략률이 50%도 채 되지 않았다.

시간이 4시간 정도밖에 없었다는 건 변명이 되지 못한다.

인정할 건 인정해야 했다.

더 깊이 들어갈수록 눈깔 검은 오크는 많아졌고 전투는 까다로웠다.

솔직히 말하면, 혼자라는 한계 탓에 끝까지 전진할 수 있을지 미지수였다.

레벨 차이도 나고, 결정적으로 던전의 보스몹도 존재했으니까.

퀘스트에서 찾아내라는 곳은 ‘악에 물든 지하’가 확실했다.

켈리그 도련님을 발견한 장소 근처이기도 했고, 이름부터가 비슷하지 않나.

운 좋게 길찾기를 하며 헤맬 걱정은 없어졌지만, 전력 보강이 필요하다.

‘나한테는 결정적인 스킬이 없어.’

보통 유저들은 직업을 얻은 뒤, 아이템과 스킬을 구하기 위해 애쓴다.

언럭키는 아이템은 빵빵하지만, 놀랍게도 지금까지 단 하나의 스킬도 구하지 못했다.

‘검왕’ 직업에 포함된 검술 마스터리같은 기본 스킬들만으로도 충분했기 때문이지만, 이제는 필요성을 느꼈다.

스킬을 얻는 방법은 다양하다.

퀘스트를 수행해서 NPC에게 전수받거나 네임드 몬스터를 잡고 스킬북을 획득하거나.

아니면.

‘돈 주고 사야지. 뭐.’

가장 편한 방식이다.

그 날 저녁.

백현은 게임을 종료하고는 스마트폰으로 월벤 거래소에 접속했다.

스킬 탭. 그중에서도 검사 전용 스킬란으로 들어갔다.

가장 위에 있는 스킬북이 눈에 띄었다.

[붐 어택]

-스킬 등급 : 레어.

-스킬 효과 : 검을 휘둘러 폭발하는 불꽃을 발사한다. 소모하는 마나량에 따라 최대 데미지가 기본 공격력 + 142%까지 상승한다.

-쿨 타임 : 15분.

-레벨 제한 : 레벨 20 이상 사용 가능.

마치 마법사처럼 검으로 불꽃을 내뿜을 수 있는 스킬.

나쁘지 않은 효과다.

하지만 스크롤을 내리자 생각이 달라졌다.

가격 : 9,200,000원.

“…….”

가격이 너무나 나빴다.

“미친 거 아냐?”

뭐가 저렇게 비싸?

허나 다른 붐 어택 스킬들의 시세를 살펴보니 이해가 갔다.

스킬북은 같은 스킬이라도 조금씩 그 능력치가 달랐다.

똑같은 이름의 붐 어택은 많이 등록되어 있었지만, 대부분은 데미지 증가량이 +130~140% 사이였다.

그것들은 가격이 저 정도는 아니었다.

142%짜리는 붐 어택 스킬북 중에서도 최상위권.

돈 많은 부자들은 저런 상위권 스킬에 돈을 쏟아붓곤 한다.

실제로 그 몇 퍼센트의 차이가 몬스터를 한 방에 죽이냐 두 방에 죽이냐로 갈리기도 하고.

어쨌거나 백현은 돈 주고 스킬북을 사야겠다는 생각을 접었다.

미튜브 덕에 최근에는 돈이 좀 들어온다고 해도, 여전히 빚더미에 쌓인 인생이다.

저런 거금을 턱턱 투자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오크의 숲에 들어가는 것도 돈이고, 던전을 공략하는 것도 돈이고…’

레전더리 퀘스트다 보니 파티원을 구하기도 애매하다.

결국 혼자서 다 해야 하는데 앞 길이 쉽지 않아 보였다.

“후우. 일단 자고 나서 내일 생각해야겠군.”

***

-스트리머 컵라면 : 언럭키님! 보셨어요? 저희 이번 영상 완전 대박 났어요!

-스트리머 컵라면 : (사진)

-스트리머 컵라면 : 몇 시간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조회 수가 10만 돌파했습니다! 월벤에서도 꽤 화제가 되고 있고요!

-스트리머 컵라면 : (돈다발을 뿌리는 곰돌이 이모티콘)

자고 일어나니 컵라면으로부터 연락이 와있었다.

“아 맞다. 영상 올라갔었지.”

레전더리 퀘스트를 받고 거래소 시세에 충격먹는 등.

어제는 너무 정신없어서 그만 깜빡 해버렸다.

미튜브에 접속해서 확인했다.

그새 컵라면이 캡쳐해서 보낸 사진보다 조회 수와 댓글 수가 더 많아졌다.

“그래 그래. 이렇게 쭉쭉 올라가라.”

백현이 히죽히죽 웃었다.

저 조회 수가 다 돈이다.

과연 이용승의 편집 실력 덕분인지, 댓글에는 영상이 왜 이렇게 고퀄이 되었냐고 놀라 하는 사람도 있었다.

“내가 편집자 하나는 잘 골랐지.”

이용승의 실력은 이렇게 재야에 있을 만한 사람이 아니다.

낮시간을 전부 작업장에서 보내서 편집 작업량이 적어서 그렇지.

제대로 했으면 일감이 터져나갔을 터.

-스트리머 컵라면 : 아 그리고 언럭키님.

-스트리머 컵라면 : 제 채널로 몇몇 길드에서 던전을 구매하고 싶다고 보내왔습니다.

-스트리머 컵라면 : 언럭키님에게 직접 연락할 방법이 없어서 저한테 연락이 온 건데, 어떻게 할까요?

추가로 날라온 컵라면의 톡에 백현이 눈을 반짝였다.

던전 구입?

내가 판매할 만한 던전은 하나밖에 없다.

악에 물든 지하는 아직 공개도 않했으니, 빌리프펜 지하 수로겠지.

이제는 레벨대가 안 맞아서 필요가 없어진 곳이기도 했다.

원래는 빌리프펜을 벗어날 때나 팔려고 했는데.

-언럭키 : 혹시 금액을 어느 정도로 제시해줬나요?

두근거리는 마음을 숨기며 물었다.

괜히 기대하지 말자.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가 실망하기라도 하면 탈력감이 장난 아닐 테니까.

시간 초가 너무 느리게 간다는 생각이 들 때쯤, 컵라면으로부터 답장이 왔다.

-스트리머 컵라면 : 2천만 원을 제시하더군요.

백현이 침대를 박차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2천…!!”

눈에서 별이 번쩍이는 것 같았다.

절로 흥얼거리며 어깨춤을 추게 되었다.

좁은 고시원 방구석에서 혼자 소리없는 비명을 내지르며 춤을 추길 얼마간.

“그래! 바로 이거지!”

백현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역시 사람이 죽으란 법은 없나 보다.

-언럭키 : 팔겠습니다.

답장을 날린 뒤 그가 좀 전에 보던 사이트에 재접속했다.

“다 죽었어 이 자식들.”

9백만 원짜리 스킬?

나는 2개도 더 살 수 있다 이거야!

갑자기 자신감이 치솟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무서웠던 월벤 거래소 사이트가 이제는 해 볼 만하게 느껴졌다.

***

던전의 판매는 빠르게 이루어졌다.

사실 이런 초반부 도시의 던전은 비싸게 팔기가 어렵다.

유저들은 금방 성장해서 다른 도시로 넘어갈 테니, 유망주 육성 목적의 길드 정도가 아니라면 크게 필요 없는 것이다.

차라리 레벨에 맞는 사냥터에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는 게 낫지.

“차라리 던전 탐색꾼이나 해볼까?”

고레벨 도시에서 던전 하나 찾아가지고 길드에 팔면 어마어마한 돈을 남길 수 있지 않겠는가.

물론, 절대 쉽지 않은 일이다.

일단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던전을 처음으로 발견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어렵겠는가.

그걸 팔겠다고 하면 내부 몬스터 증명부터 해서 해야 할 일이 복잡했다.

이번 건은 전적으로 운이 좋았다.

“컵라면님에게 보너스라도 줘야 하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컵라면이 길드와 대신 접촉해서 거래의 끈을 이어 주었다.

이런 일을 해 본 적도 없고 계약서 같은 것도 작성해 본 적 없는 백현이다.

헤맬 수밖에 없는데 컵라면이 옆에서 차근차근 설명해주며 많이 도와주었다.

보고 들은 게 많은 컵라면은 길드와의 거래에도 능숙했다.

선배 게이머이자 스트리머인지라 배울 점이 많았다.

게임에 접속한 언럭키가 인벤토리를 열었다.

익숙한 내부에 새로운 것 하나가 있었다.

[스킬북 : 대가의 검술.]

-스킬 등급 : 레어.

-스킬 효과 : 연속적으로 타격에 성공할 때마다 스택이 쌓인다. 7번의 스택이 쌓일 때마다 기본 공격력의 203%에 해당하는 일격이 추가로 터진다. 중간에 연속 공격이 실패하면 처음부터 다시 스택을 쌓아야 한다.

던전 판매 수익금이 들어오자마자 바로 질렀다.

7번째 공격마다 추가로 기본 공격력의 203%짜리 일격이 더 터지는 스킬.

양날의 검이라고 볼 수 있는 스킬이다.

어지간히 검술 실력에 자신이 있는 게 아니라면 스택이 계속 중간에서 끊어질 테고.

그러면 다시 처음부터 스택을 쌓아야 하는데, 그러다가는 스킬을 몇 번이나 쓸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한테는 최고지.”

일단 스킬에 쿨타임이 없다.

실력만 있다면 스킬을 계속 터트릴 수도 있는 것!

그리고 ‘검왕’ 직업을 가지고 있는 언럭키는 그 분야에서 누구보다 자신 있었다.

다만 가격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쓰렸다.

‘대가의 검술’ 스킬 중에서도 200% 짜리가 넘어가는 건 굉장히 희귀했다.

처음 사는 스킬인데 이왕이면 좋은 걸로 사고 싶어서 비싼 값을 지불했다.

“에휴. 생각하지 말자. 돈이야 또 벌리겠지.”

언럭키가 오크의 숲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번에는 회사의 도움 없이, 자신이 직접 사냥터를 빌려 던전에 들어갈 생각이었다.

레전더리 등급의 퀘스트.

과연 그걸 깨면 그다음에는 뭐가 또 나타날지, 생각만 해도 흥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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