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0화
켈리그 도련님의 죽음.
“하하. 하하하.”
언럭키는 사체 앞에서 웃었다.
좋아서 웃는 건 절대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로.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웃지 않는다면 오히려 울 것 같았다.
‘그럼 그렇지. 어쩐지 내 주제에 너무 잘 풀린다고 생각했다.’
유니크 퀘스트니 뭐니. 기분이 너무 좋았다.
역시 마가 낀 자신의 인생은 쉽지 않았다.
보육원 출신에 가장 친한 친구가 배신하고 5억이라는 빚이 생긴 현 상황.
최근에는 성 팀장과 거래를 하고 이용승이라는 편집자를 만난 등, 너무 좋은 일만 생겼다.
그때부터 의심해야 했는데.
그가 죽은 켈리그 도련님을 내려다봤다.
“이 사체라도 들고 가면 퀘스트 성공이지 않을까?”
비록 살아있는 상태는 아니지만…어쨌거나 도련님을 모셔오지 않았는가!
곧 언럭키는 고개를 휘휘 저었다.
헛생각이 드는 걸 보니 정말로 멘탈이 흔들리긴 한가보다.
“그래. 내가 언제부터 쉽게 가려고 했다고. 이 정도 고난은 아무것도 아니지.”
한국 사회에서 고아가 잘 산다는 건 쉽지 않다.
고아랍시고 대놓고 무시하거나 뒤통수치는 일은 비일비재했다.
그런 일을 자주 겪었던 만큼 언럭키의 멘탈은 단단했다.
유니크 퀘스트 실패하면 뭐 어때.
어쨌거나 자신이 레전더리 직업을 가지고 있다는 건 변하지 않는다.
이대로 차근차근 성장해서 성공하면 그만이다.
그런 생각으로 언럭키가 발걸음을 옮겼다.
-취익 취익!
-취아악!
숲 속 여기저기에서는 여전히 오크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사냥터를 빌린 시간은 9시간.
퀘스트는 실패해도 뽕은 뽑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도 이건 일단 챙겨가야지.”
언럭키가 켈리그 도련님의 사체를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다행히 아이템 취급인지 들어가졌다.
‘혹시 알아? 진짜로 사체만 가져가도 성공으로 쳐줄지.’
미약한 희망을 가슴속에 품었다.
***
유저 컵라면. 이한영은 1차 편집본 영상을 극찬했다.
백현과 이한영 모두 아무런 컴플레인을 걸지 않았다.
“후. 다행이군.”
이용승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자신의 실력에 자신이 있었지만 혹시 모른다.
그쪽에서 괜히 딴지를 걸까 봐 마음을 졸였다.
그만큼 이 영상은 자신이 맡고 싶었다.
“최종본은 여기서 한 스푼 첨가만 하는 느낌으로 가야지.”
과하지 않게.
이미 퀄리티는 1차 편집본에서 다 완성해 놓았다.
효과만 약간 덧붙이다는 것으로 충분하다.
힘을 줘야 할 부분에서 이펙트만 조금씩 주는 것으로 영상 편집을 마무리했다.
“하아. 끝났다.”
이용승이 기지개를 폈다.
피곤해서 한숨 자고 싶었지만 그럴 시간도 없다.
시간을 보니 아침 6시 20분. 곧 작업장에 들어갈 시간이다.
오늘도 밤을 새웠다.
원래 맡은 편집 업무에 백현의 것까지 하다 보니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그나마 타고난 강골이어서 버티고 있는 것이지, 아니었으면 진작에 쓰러졌을 터.
“빚을 갚을 때까지는 빡세게 살아야지.”
다행인 점이라면 이 영상은 무조건 터질 것이고, 그에 따라 자신에게는 꽤 높은 비율의 정산이 될 거라는 점이다.
눈 돌아가서 무보수로 일하겠다고 말했는데, 백현은 자신에게 좋은 계약을 제안해 주었다.
당장 눈앞의 이익에 연연하지 않는 성격.
싫을래야 싫을 수가 없었다.
“거기에 성 팀장이랑 딜을 한 걸 보면 정말 대단하단 말이지.”
190이 넘어가는 거구가 이용승이었지만, 그런 그조차도 성 팀장은 쉽게 대하기 힘들었다.
그는 흘러나오는 분위기부터 남다른 사람이다.
그런 성 팀장에게 당당하게 말도 안 되는 거래를 성사시켜 버리다니.
“나도 그런 거래를 하면 얼마나 좋을까…”
작업장에서 날리는 게 아니라 좀 더 개인 시간을 확보할 수만 있다면.
그러면 영상 편집을 더 많이 해서 빚 갚는 속도가 빨라질 수도 있을 텐데.
그가 피식 웃고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긴 쉽지 않겠지.”
백현. 언럭키는 특별한 대우를 해줄 만한 재능이었지만 자신은 겨우 일개 편집자일 뿐이다.
대우를 받으려면 그만한 실력을 보여 줘야 하는 법.
성 팀장의 눈에 자신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나 보다.
결국 몸으로 때울 수밖에 없다.
“후. 그만 징징거리고, 가자.”
이용승이 피로를 애써 털어내며 일과를 보내기 위해 움직였다.
***
언럭키는 아직 제대로 자기만의 채널조차 시작하지 않은 초보 스트리머이다.
허나 시작의 도시 영상 3개로 꽤나 관심을 끌었다.
그 영상이 올라왔던 컵라면 채널에 알람 설정을 해 놓은 사람도 있었다.
컵라면처럼. 그리고 이용승처럼 언럭키의 플레이를 보고 한눈에 반한 사람들.
그들은 언럭키의 영상을 기다렸다.
“어?”
-띠링.
[NEW! ‘스트리머 컵라면’ 채널에 새로운 영상이 등록되었습니다.]
갑작스런 알림에 그들은 깜짝 놀랐다.
혹시 시스템 오류는 아니겠지?
후다닥 확인하니 진짜였다.
[도시 ‘빌리프펜’에서 이런 걸 발견한다고?]
영상의 제목과 썸네일은 호기심을 자극했다.
던전? 스킬? 아이템? 이런 글자들이 썸네일에 둥실거리며 떠다녔는데, 유치하긴 해도 클릭해 볼 수밖에 없는 마력이 있었다.
“뭘 발견했다고 이러는 거야? 스읍. 괜히 어그로끄는 거 아닌가?”
영상을 보던 남자, 김동엽은 불안한 듯 혀를 찼다.
요즘 워낙 미튜브가 핫하다보니 이런 식의 어그로가 넘쳐났다.
이래놓고 막상 재생하면 아무것도 아닌 경우가 많았다.
“제발 그러지는 않았으면 좋겠는데.”
이 영상 속 유저. 언럭키라는 닉네임의 그는 최근 자신이 가장 기대하는 유저였다.
미래의 스타를 자신이 먼저 발견해서 지켜보고 있다는 기분이었다.
작고 소중한 나의 언럭키.
‘근데 닉네임은 왜 언럭키인거야?’
직업이 뭔지는 몰라도 장난 아닌 것 같은데. 아주 럭키한 것 같구만.
기만하는 건가?
어쨌거나 김동엽은 영상을 재생했다.
동시에 링크를 따서 월벤에 올릴 준비를 했다.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는 걸 남도 좋아해 줬으면 한다.
김동엽 역시 마찬가지.
언럭키가 좀 더 유명해져서 자신의 안목이 이 정도였다! 하는 뿌듯함을 받고 싶었다.
<어? 컵라면 채널에 새로운 영상 올라왔다!>
‘제목은 이 정도면 되겠고, 본문은 적당히 클립만 따서 올리면 흥미롭겠지?’
지난번에 봤던 영상대로라면 이 영상에도 분명 대단한 플레이가 한 번쯤 있을 터.
그 순간만 퍼다 나르면 사람들이 호기심을 가지고 찾아올 것이다.
영상의 재생이 시작되었다.
초반부는 언럭키와 컵라면이 새로운 던전을 발견하는 상황이었다.
-두두둥.
<아닛!? 여기에 이런 게?>
컵라면의 과장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김동엽이 피식 웃었다.
‘연기 한 번 더럽게 못하네.’
이게 영화나 드라마였으면 어떻게 저런 실력으로 배우를 하는지 궁금했을 정도다.
허접한 연기 실력과 별개로 내용물은 훌륭했다.
빌리프펜 지하 수로 던전.
김동엽은 확신했다.
‘이건 그냥 던전 입구만 보여줘도 월벤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오겠는데?’
김동엽은 조금 더 영상을 시청했다.
처음과 같은 허접한 연기는 더 이상 없었다.
그 자리를 차지한 건 언럭키의 활약상이었다.
머드칵을 상대로 간결하게 휘둘러지는 검.
하수도에서 솟구쳐오는 기습에도 당황하지 않았다.
깔끔한 반격에 놈들이 픽픽 쓰러졌다.
‘와….’
김동엽의 머릿속에서 잡생각이 사라졌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어떤 짤을 퍼다 날라야 할까 고민했건만.
모든 신경을 영상에 집중했다.
그만큼 언럭키의 검은 간결하면서도 보는 이를 현혹시켰다.
결과는 더했다.
치명타가 쉴 새 없이 뜨더니 3마리의 머드칵이 쓰러진 것이다.
‘아니…무슨 사냥을 저렇게 쉽게 해?’
월드 사가는 단순한 컴퓨터 게임이 아니다.
직접 몸을 움직여 행하는 전투.
괜히 사람들이 파티 사냥을 하겠는가.
다수를 상대로 혼자서 싸우는 건 힘든 일이다.
한데 언럭키는 그걸 굉장히 쉽게 하고 있었다.
-푹!
-서걱! 콰직!
지하 수로의 머드칵들을 쓰러트리면서 언럭키는 전진했다.
김동엽은 그 과정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원래 던전 공략은 지루하다.
똑같은 몬스터를 주구장창 잡아대는데 흥미가 계속 유지되면 그게 이상하지.
그러나 언럭키의 플레이는 달랐다.
어떻게 저렇게 싸울 수 있을까 하는 감탄. 적절한 타이밍에 터져나오는 이펙트와 효과음.
던전을 나아가는 과정이 반복될수록 오히려 더 흥미진진했다.
편집의 힘이었다.
얼핏 봐서는 알기 힘들지만, 이용승이 적절하게 만진 대가로 영상미가 훨씬 살아난 것!
<이건…보스방 같군요.>
끝부분에서 언럭키와 컵라면은 보스룸 앞에 도착했다.
<이만 돌아갈까요?>
컵라면의 말이 들렸다.
그게 합리적이다.
‘그냥 공략은 몰라도 던전의 보스는 무리지.’
다른건 어떻게 한다 쳐도 보스몹 솔플은 성공 가능성이 적다.
괜히 실패했다가는 힘겹게 올린 경험치만 떨어트리는 등, 여러 가지 페널티만 먹을 터.
안정적이게 다른 파티원들을 데리고 진입하는 게 좋았다.
<아뇨.>
허나 언럭키는 고개를 저었다.
단호하게 말한 그가 앞을 쳐다봤다.
<이대로 계속 가겠습니다.>
카메라가 그런 언럭키의 표정을 줌했다.
자신감 넘치는 얼굴. 스스로를 강력하게 믿고 있는 사람은 이렇다! 라고 말하고 있었다.
보는 사람마저 절로 믿음이 가게 된다.
침을 한 번 꿀꺽 삼키고 앞으로의 행보를 기다리는데…그대로 영상이 끝났다.
“…응?”
김동엽은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니 여기서 끊는다고?”
보스몹이 어떤 놈인지. 무슨 생각으로 혼자서 잡겠다고 하는 건지.
그런 걸 알려 줘야지! 다음 편 어디 갔는데!
하지만 짜증낸다고 해서 없는 영상이 생기는 게 아니다.
한숨을 한 번 내쉰 그가 아까 하던 작업을 다시 시작했다.
영상에서 멋있는 장면만 따서 월벤에 올리려고 했는데…
“그런게 한두 개가 아니네.”
도대체 뭘 가져가야지?
그냥 영상을 통째로 퍼다 날라야 할 것 같은데?
김동엽의 고민이 깊어졌다.
***
자신의 영상이 미튜브에 업로드 된 그 순간.
언럭키는 오크들을 쥐어패고 있었다.
“내가!”
“취익!”
“진짜로 얼마나!”
“꿰, 꿰에엑…!”
“기대했는데!”
“취아악! 괴물! 괴물 인간이다!”
“그딴 식으로 사람을 엿먹어? 빌어먹을 게임! 아주 망해버려라!”
분노에 잠식된 채로 오크들을 썰어댔다.
오크는 투쟁심과 용기가 하늘을 찌르는 종족으로 설정이 되어있다.
죽기 직전의 상황에서도 결코 겁먹고 물러서지 않는다.
그러나 언럭키의 광기 어린 학살을 겪다보니 오크들도 질릴 수밖에 없었다.
“취익. 저 놈 저거 진짜 인간 맞나?”
“아닌 것 같다. 인간이 저렇게 지독할 리가 없다.”
언럭키에게 남은 건 이제 9시간의 사냥터 대여 시간밖에 없었다.
뽕을 뽑으려면 한 마리라도 더 많은 오크를 잡아야 했다.
그게 그를 괴물로 만들었다.
숨 한 번 쉴 시간에 어떻게든 한 마리 더 잡기!
최대한 효율적인 동선으로 움직이며 기계처럼 썰어대는 그 모습은 오크도 공포심이 들게 했다.
곧 죽어도 전진하던 오크들의 발걸음이 슬슬 느려졌다.
언럭키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가뜩이나 바빠 죽겠는데 왜 안 와. 드루와 빨리.”
그가 칼을 까딱거렸다.
오크들이 먼저 다가와 줘서 많이 움직이지 않고도 경험치를 쌓고 있었는데.
이것들이 안 와주니 바쁜 마음이 더 애탔다.
그런 언럭키를 보고 오크들이 질린 표정을 지었다.
“취이익! 미친놈은 피하라고 족장이 그랬다.”
“저 인간은 잡아먹어도 맛 없을 것 같다. 돌아가자.”
결국 먼저 발을 빼기 시작하는 오크들.
허나 올 땐 마음대로였어도 갈 땐 아니다.
“어디 가냐고 이 돼지 새끼들아!”
“꿰에에엑!”
형세가 바뀌었다.
오크들은 도망치고 언럭키가 그 뒤를 추격하며 한 마리씩 처치하는 형태로.
언럭키가 콧김을 내뱉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 아무리 그라도 사냥 속도가 느려진다.
“너희들 오크 맞냐? 왜 도망을 가?”
AI가 잘못됐나? 월드 사가에 버그 리포트라도 보내야겠다.
오크는 강력한 힘이 있는 대신 발이 빠르진 않다.
결국 시간이 조금 더 걸렸을 뿐 전부 언럭키의 칼날 아래 쓰러졌다.
“후우. 이상한 데까지 왔네.”
언럭키가 쓰러진 오크들에게서 골드와 잡템을 회수하고는 주위를 둘러봤다.
조금씩 주변으로 이동하려 했건만. 갑자기 훌쩍 멀리 와버렸다.
대충 걸음을 옮기다 보니 문득 시선이 가는 곳이 있었다.
나무 밑둥에 뚫려 있는 구멍.
원래라면 흙에 쌓여 있어야 정상이지만 오크들이 하도 난리를 치고 다닌 탓에 흙이 무너진 모양이었다.
마치 토끼굴 같이 생겼다.
그런데 어디서 본 느낌이 난다.
그래. 빌리프펜 지하 수로 던전으로 내려가는 장소의 느낌이 딱 이랬는데…
“어?”
그 순간 메시지가 나타났다.
-띠링
[던전을 발견하셨습니다.]
[최초로 발견한 던전입니다.]
[입장 시 경험치와 골드 획득에 보너스가 붙습니다.]
언럭키의 눈이 화들짝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