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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빨로 레벨업-27화 (27/218)

#027화

언럭키는 NPC 호르헤른을 따라갔다.

그는 도시의 가운데 섹터로 향했다.

1구역 이라고도 불리는 이 곳은 일반 유저는 출입이 불가능하다.

내성문을 가로막는 경비들이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호르헤른이 지나갈 때는 경비들이 부동자세로 경례했다.

호르헤른은 그들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었다.

“오늘도 수고가 많아.”

“감사합니다 공!”

월벤에서 봤다.

유저나 평범한 NPC들은 근처만 지나가도 눈을 부릅뜨는 놈들이 저 경비들이다.

한데 이렇게 예의 바르게 대하다니.

1구역 안쪽은 고풍스러운 저택들이 늘어진 거리였다.

호르헤른은 그 중 어느 집 안으로 안내했다.

사용인들이 외투를 받아들고 다과를 준비하는 등 분주히 움직였다.

그들은 고풍스러운 응접실로 갔다.

“앉으시게.”

“실례하겠습니다.”

호르헤른이 탁자 앞에 앉으며 맞은편을 가리켰다.

언럭키가 조심스럽게 건너편에 앉았다.

여기까지 오면서 깨달은 게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내가 제대로 잡았구나!’

호르헤른은 절대 일반 NPC가 아니다.

평범한 퀘스트를 주는 그들과 달리, 이 월드 사가의 정세에 강력한 힘을 미칠 수 있는 제후들.

귀족 NPC.

호르헤른은 귀족임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평민과 달리 귀족은 그 칭호만큼의 값어치를 했다.

‘최상위 랭커 중 한 명이 귀족의 퀘스트를 수행해서 <나이트> 칭호를 받았다고 했지.’

명예 수치가 엄청나게 올라가고 여러가지 혜택을 갖게 되는 칭호이다.

심지어 그 귀족과 친한 NPC들의 퀘스트를 수행하면, 퀘스트 보상이 업그레이드 되기까지 한다.

연관만 되면 굉장한 이득을 볼 수 있는게 귀족 NPC였다.

그렇기에 언럭키의 자세는 자연히 공손해졌다.

“자네의 이름은 무엇인가?”

“언럭키라고 합니다.”

“그래. 모험가 언럭키. 내 집에 모험가를 초대한 건 자네가 처음일세.”

호르헤른은 그렇게 말하며 슬쩍 웃었다.

모험가는 NPC가 유저들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저도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 그래서 말인데, 아까 그 장갑을 어디서 얻게 되었는지 자세히 설명해 줄 수 있겠나?”

“물론이죠.”

언럭키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격한 표현을 썼다.

지하 수로 던전이 얼마나 위험한지.

자신이 그 괴물들을 상대로 어떻게 분투하고 싸워 이기며 앞으로 나아갔는지.

마침내 그 끝에 존재하던 머신건 머드칵이 얼마나 무시무시했는지까지.

“놈이 쏘아내는 진흙 총탄은 끔찍했습니다. 빗발치듯 쏘아지는 총탄을 뚫고 저는…”

“으음. 그렇군. 머신건 머드칵은 나도 아는 놈일세. 그만 설명해도 되네.”

“여기가 하이라이트 부분이었는데, 아쉽군요.”

호르헤른이 손을 젓자 언럭키가 쩝 하고 입맛을 다셨다.

그래도 이만하면 자기 어필은 충분히 됐다고 생각했다.

“놈을 잡고 켈리그 도련님의 장갑을 얻었다는 말이지…. 심지어 찢어져 있었고.”

“그렇습니다.”

호르헤른의 표정이 심각하게 변해졌다.

잠시 고민하던 그가 언럭키를 쳐다봤다.

“내가 자네에게 어려운 부탁을 하나 하고 싶네.”

“얼마든지 말씀하셔도 됩니다.”

“혹시 켈리그 도련님의 흔적을 찾아 줄 수 있겠는가?”

“그럼요!”

언럭키는 고민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그 퀘스트를 받기 위해 여기 온 것 아니던가.

다만 머릿속에 드는 의문은 있었다.

“한데 왜 직접 찾으시지 않으시고…?”

아직 얼마 안 됐지만 월드 사가를 플레이해보니 알겠다.

여기는 대충 만든 컴퓨터 게임 RPG와는 차원이 달랐다.

NPC들은 현실과 구분이 힘들 정도의 인공지능을 가지고 있었으며, 각자 판단력을 가지고 행동했다.

도련님을 찾고 싶었다면 호르헤른이 직접 움직여도 되는 것이다.

심지어 귀족 아닌가. 밑에 부릴 수 있는 사병들이 꽤 있을 텐데?

“사정이 있어서 나는 여기서 움직일 수 없네. 내가 데리고 있는 사병들도 마찬가지지. 쉽게 말하면 내 손발이 묶여 있다는 뜻이야.”

호르헤른은 자조적인 목소리였다.

“외부인인 자네한테 더 자세히 설명해 주기는 어렵네만, 귀족들끼리의 사정이란 게 있네.”

“그렇군요.”

“내가 도련님의 흔적을 찾기 위해 도시 광장을 떠돌아다닌 것도, 직접 움직이는 것 말고는 별다른 방법이 없어서였어. 솔직히 자포자기한 심정이었네만, 자네가 날 찾아와줘서 다행이다 싶었지.”

뭔지는 몰라도 귀족끼리의 정치적인 견제 때문에 움직이지 못하는 모양이다.

그런 상황에서 언럭키가 가려운 곳을 긁어주었으니 얼마나 좋았을까.

그렇기 때문인지 처음부터 호르헤른의 눈가에는 호감의 빛이 깃들어 있었다.

이게 명예 수치 때문인가 싶었는데,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알겠습니다. 제가 켈리그 도련님을 한 번 찾아보겠습니다.”

“고맙네.”

언럭키가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메시지가 나타났다.

-띠링!

[유니크 퀘스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게 되었습니다.]

[귀족의 퀘스트를 받아들임으로써 명예 수치가 + 1 상승합니다.]

언럭키의 눈이 번뜩였다.

아직 아무것도 안 하고 퀘스트를 받기만 했는데도 명예 수치가 오르다니.

그렇다면 퀘스트를 성공하면 도대체 어떤 보상을 준단 말인가?

호르헤른이 입을 열었다.

“내가 듣기로 모험가들은 보상을 위해 임무를 수행한다던데. 맞나?”

“하하….”

“그렇게 겸연쩍어할 필요 없네. 정당한 노동에는 당연히 대가가 따라야 하는 것이니까.”

“그렇다면 단도직입적으로…예. 맞습니다. 저희 모험가들은 보통 보수에 따라 움직이죠.”

“그렇군. 알겠네. 자네가 도련님을 찾아낸다면 이걸 주지.”

호르헤른은 자신의 손가락에 끼어있는 금반지를 톡톡 건드렸다.

화려한 보석들로 장식된 반지였다.

시선을 갖다 대자 자동으로 정보 창이 나타났다.

[호르헤른 가문의 반지.]

-아이템 등급 : 유니크.

-아이템 정보 : 미공개.

-퀘스트를 완료한 이후 아이템 정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언럭키가 저도 모르게 눈을 부릅떴다.

‘보상이…유니크 등급의 반지라고?’

월드 사가의 아이템들은 그 가치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사람들은 보통 무기류가 가장 비싸다고 생각한다.

허나 그건 반만 맞는 말이다.

좋은 무기를 맞췄다면 그 다음부터는 스펙을 증가시켜야 하는 법.

스펙 상승의 가장 대표적인 건 장신구 종류의 아이템이다.

반지, 목걸이, 팔찌 등.

이것들은 스펙을 뻥튀기시켜 주면서 여러 개를 착용할 수도 있었다.

자연스레 장신구류의 시세는 천장을 뚫고 하늘 높이 올라갔다.

‘귀족의 반지. 게다가 이미 등급은 유니크 등급으로 확정이 났다. 이건 볼 것도 없이 초대박이야.’

아직 퀘스트를 수행하지 않아 아이템 정보가 미공개였지만 볼 필요도 없었다.

무조건 좋을 수밖에 없다.

언럭키의 허리가 낮아지며 손을 싹싹 비볐다.

“제 모든 걸 다 바쳐서 반드시 켈리그 도련님을 모셔오겠습니다!”

공손함 그 자체인 자세!

“부탁하지. 도련님은 머드칵과 오크를 직접 사냥해 보겠다며 나섰네. 머드칵이 있는 곳은 이미 들렀으니, 그 다음번엔 오크가 있는 곳을 가보면 흔적이 있을 게야.”

-띠링

[유니크 퀘스트 : 켈리그 도련님을 데려오기.]

-퀘스트 설명 : 켈리그 도련님은 오크들의 터전에 있을 확률이 높다. 도련님을 데려오자.

-퀘스트 성공 보상 : 호르헤른의 가문의 반지(유니크)

-퀘스트 성공 시 연계 퀘스트로 이어집니다.

정식으로 퀘스트 창이 떴다.

유니크 퀘스트. 명시된 보상은 이미 확인했던 유니크 등급의 반지이다.

여기까지는 이미 본 것이니 놀랄 게 없었다.

‘…뭐야 이거.’

그러나 언럭키는 자신의 두 눈을 비볐다.

도무지 지금 보고 있는걸 믿기가 힘들었다.

‘요즘 잠을 좀 못 자긴 했는데. 그래서 그런 건가? 왜 이딴 색깔이 보이는 거지?’

퀘스트 창의 가장 마지막 줄.

-퀘스트 성공 시 연계 퀘스트로 이어집니다.

이 문장에서, 무려 파란색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

빨주노초파남보.

파란색은 그중에서 다섯 번째이다.

네번째인 초록색 빛에서는 유니크 등급이 나왔다.

그리고 아직 많은 시험을 해본 건 아니었지만, 언럭키가 판단하기로 파란색은 유니크 중에서도 스펙이 특히 뛰어난 것들.

혹은 레전더리 등급이 나오는 걸로 추측이 되었다.

연계 퀘스트로 이어진다는 문장에서 흘러나온 파란 빛이 뜻하는 건 간단했다.

이후에는 더 굉장한 무언가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

‘그러니 이 퀘스트는 무조건 성공해야 한다는 뜻이지.’

물론 원래부터도 실패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보상이 유니크 등급의 반지인데 실패는 무슨 실패란 말인가.

하지만 지금은 임하는 각오가 달라졌다.

죽어도 성공해 낸다!

언럭키가 위풍당당하게 걸음을 옮겼다.

도시 빌리프펜에서 오크들이 나타나는 장소는 하나밖에 없었다.

북쪽 성문 밖으로 나가면 등장하는 필드.

<오크의 숲>.

거기로 갔다.

아니. 가려했다.

“줄 서세요 줄.”

“새치기하는 날은 바로 PK입니다. 아니. 현피까지 뜨러 갈 겁니다.”

“대신 줄 서드립니다! 시간당 500골드 받습니다~.”

오크의 숲 앞은 난장판이었다.

빌리프펜의 악명. 사냥터 부족 문제가 명백히 드러나 있었다.

오크는 레벨 10후반에서 20초반 정도까지 사냥하기 좋은 몬스터이다.

단순한 행동 패턴에 쏠쏠한 경험치와 드랍률까지.

파티만 잘 맺는다면 사냥하기에 좋다.

당연히 인기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일단 파티에 들어가야겠지.’

지하 수로 던전처럼 혼자서 활동하고 싶지만 여기는 그게 불가능하다.

남들처럼 파티를 구해 오크의 숲으로 들어가고, 눈치 봐서 수색해 봐야겠다.

다행히 파티를 구하는 유저들은 많았다.

언럭키는 그들 중 한 팀에게 찾아갔다.

“안녕하세요. 파티 들어가려고 하는데요.”

“네. 어서 오세요. 레벨이 어떻게 되시죠?”

“15입니다.”

“어….”

유저는 언럭키를 보며 곤란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죄송해요. 저희가 레벨 18 이상부터 파티에 받고 있어서요.”

“레벨은 제가 낮을지라도 스펙이 빵빵해서요. 1인분 이상은 할 수 있다고 자부합니다.”

“그래도 죄송해요. 이전에 받았던 분이 비슷한 말씀을 하셨었는데, 막상 사냥에 들어가니까 레벨 차이 극복을 못하고 방해만 되었거든요. 그래서 최소 레벨을 정해 놨어요.”

“…….”

미안한 표정으로 거절하는 유저에게 언럭키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자기들이 받기 싫다는데 어쩌겠는가.

다른 파티 몇 군데를 더 찾아가 봤지만, 저레벨을 선호하는 사람은 없었다.

유저들이 널리고 널려서 상대적 고레벨도 많았는데, 굳이 15짜리를 받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결국 언럭키는 쓸쓸히 도시로 복귀했다.

익숙한 길을 따라 지하 수로 던전으로 향했다.

‘일단 레벨업부터 해야겠네.’

우선 레벨 18을 찍는 게 먼저였다.

그래야 퀘스트를 하든 말든 할 수 있다.

던전 안에 입장해 머드칵들의 징그러운 외관을 보며 그가 중얼거렸다.

“이 지긋지긋한 놈들. 어디 한 번 끝장을 봐보자.”

-촤악!

검을 꺼내든 언럭키가 지하 수로 내부에서 날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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