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6화
다음 날.
“으으. 죽겠네 진짜.”
백현은 피로감을 연신 호소하며 일어났다.
이틀 연속으로 잠을 설쳤다.
그저께는 이용승의 포트폴리오를 보느라.
어제는 그가 1차 편집본이랍시고 만들어 준 자신의 영상을 몇 번이고 돌려보느라.
하나 백현은 잠이 부족했지만 기상 시간은 칼같이 6시에 맞춰서 일어났다.
게으름은 허용될 수 없다.
피로는 짬짬이 틈날 때마다 낮잠을 자는 걸로 해결하면 괜찮겠지.
백현이 밥을 먹기 위해 공용 부엌으로 나갔다.
“오늘은 혼자 드시고 계시네요?”
“왔냐?”
박세훈이 손을 흔들었다.
오늘은 옆에 이용승이 없었다.
“용승씨는요?”
“잔대. 어제 뭔 짓을 했길래 그러는지. 나는 걔가 밥을 굶는 걸 처음 봤다.”
백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피곤할 만하다.
작업장에서 일하느라 그 외의 시간에 편집을 해야 하니 잠을 줄일 수밖에 없다.
특히나 백현의 영상을 보고 꽂혔던 그였던지라 아예 안 잤다고 했으니, 피곤한 건 당연했다.
백현이 밥과 반찬을 대충 퍼다가 박세훈의 맞은편에 앉으며 말했다.
“제 영상을 편집한다고 못 주무셨대요.”
“그래? 벌써 제작에 들어갔구나. 퀄리티는 어떤데?”
백현이 한 입 크게 밥을 먹고는 대답했다.
“엄청나요.”
구태여 수식어를 더 붙일 필요는 없었다.
정말로 엄청났으니까 말이다.
“나중에 세훈씨도 보시면 감탄하실 걸요?”
분명 그렇게 확신했다.
***
아침 식사가 끝나자 다시 월드 사가로 접속했다.
‘오늘은 꼭 그 NPC를 찾았으면 좋겠는데.’
언럭키가 굳은 표정으로 다짐했다.
어제도 하루 종일 도시 내부를 돌아다녔지만 허탕쳤다.
하지만 그게 최선이었을까?
더 빨리, 더 많이 다닐 수는 없었던 것일까?
시간은 어제 하루 날린 것으로 충분하다.
여기서 더 지지부진하게 되면 손해가 막심하다.
프로가 되기로 결정한 이상, 그의 경쟁 상대는 같은 도시에 있는 초보 유저들이 아니다.
이미 1년 6개월 먼저 게임을 시작한 최상위권들.
그 뒤를 바짝 추적하는 수많은 랭커와 재능충들.
그들을 따라잡아야 하는 것이다.
올마스터니 뭐니 해도 그에게 있어서 시간은 그 무엇보다 중요했다.
가장 효율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언럭키님.”
“오셨습니까 컵라면님.”
“네. 오늘도 부지런하시네요.”
컵라면이 졸린 눈을 비비며 다가왔다.
매일 언럭키가 이 시간에 접속하기에 그 역시 함께 따라온 것이다.
“조금 더 주무시다 오셔도 됩니다. 오늘도 어제처럼 따로 할 일이 있어서 영상 찍을 일이 없거든요.”
“그러면 저도 따로 사냥을 나가겠습니다. 언럭키님 따라가려면 뒤쳐진 레벨을 복구해야죠.”
언럭키는 그가 부럽다고 생각했다.
이 시간에 차라리 던전 한 바퀴 더 돌면 레벨업 한 번은 할 텐데.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문제이다.
“아 맞다. 어제 1차 편집본 받았어요. 잘 만들어졌더라고요. 컵라면님한테도 메일로 보내드릴게요.”
“오 벌써요?”
“네. 편집자 분이 열정적으로 일해 주시더라고요.”
사람 참 잘 구했다 싶었다.
꿈도 희망도 없는 빚쟁이 소굴이라고 생각했는데.
박세훈, 이용승. 이 두 사람을 만난 것만으로도 나쁘지 않게 생각되었다.
“안 그래도 저도 말씀드릴게 하나 있습니다.”
“뭐죠?”
“사실 언럭키님은 그리 안 놀라실 것 같기는 합니다만…”
컵라면은 괜히 자기가 더 흥분한 어조로 말했다.
“제가 어젯밤에 이번에 던전에서 얻은 토템을 매매소에 올려놓고 잤습니다. 그랬더니 새벽 사이에 연락이 와 있더라고요.”
언럭키가 팔아달라고 부탁했던 네크로맨서 전용의 토템 아이템.
이렇게 바로 팔릴 줄은 몰랐다.
저 뜻이 무엇인가.
돈이 들어온다는 것이다.
당장 월에 최소 천만 원 이상의 빚을 갚아야 하는 언럭키이다.
곧 들어올 현금이라는 말에 그의 눈이 번뜩였다.
“얼마를 제시했습니까?”
“120 부르더군요.”
“백이십!”
언럭키가 저도 모르게 외쳤다.
컵라면이 다급하게 뒷말을 이었다.
“물론 언럭키님에게는 얼토당토 안할 금액이라는거 압니다. 하지만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가격입니다. 네크로맨서 전용 아이템치고 꽤 높게 받은 거예요.”
네크로맨서는 아무래도 비주류 직업이다.
도검 계열이나 지팡이 계열이었다면 비슷한 등급이어도 150 이상 받았겠지만, 토템은 한계가 있었다.
그나마 머드칵이 이 레벨대의 소환수 중에서도 쓸모 있는 편이라서 이 정도 가격이나마 쳐주는 것.
“알겠습니다. 그렇게 해 주세요.”
물론 언럭키는 실망하지 않았다.
‘120? 그렇게나 받는다고?’
고작 아이템 하나 팔았는데 120만 원이라니.
심지어 그는 그 아이템을 얻기 위해 별다른 노력을 한 것도 아니었다.
지하 수로 던전을 공략한 건 레벨업을 위함이었고, 보스몹을 잡았을 때는 솔로 클리어 업적을 기대했다.
레어급 아이템을 얻을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보너스 아이템 느낌이었는데 그걸로 120만 원이나 벌 수 있다니.
‘며칠 전에 선정산 받은 영상 수익과 합치면, 벌써 수익이 300만 원을 훌쩍 넘었다.’
월 300이라니.
직장을 다녔을 때도 세금이니 건보료니 하면서 떼 내면 300도 안 되었었다.
한데 월드 사가를 시작한지 며칠이나 되었다고 이런 거금을 턱턱 벌게 될 줄이야.
‘게다가 앞으로 영상 수익은 더 커질 테지.’
이용승이 만들어 준 1차 편집본만 보더라도 무조건 중박은 칠 것이다.
“그러고 보니 언럭키님. 짚고 넘어갈 게 하나 있습니다.”
“뭐죠?”
“앞으로도 영상을 제 채널에 올리실 건가요?”
시작의 도시에서 올린 3개의 영상은 컵라면의 미튜브 채널에 올라갔다.
수익은 전부 언럭키에게 보내 줬지만, 채널 자체가 확 성장했다.
당장 구독자가 꽤 늘어났으니 말이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내 채널에서 올릴 수는 없겠지.’
마음 같아서는 영원히 그러고 싶다.
허나 언럭키는 소속이 따로 있고, 그게 아니더라도 본인의 채널을 키우는 게 좋다.
그게 그를 더 위하는 길이다.
컵라면은 욕심을 접었다.
일회성으로 언럭키를 이용해 먹을 게 아니라 길게 보고 함께 가고 싶었다.
‘그게 나를 위해서도, 언럭키님을 위해서도 더 나아.’
그래서 이런 제안을 한 것이다.
“채널이라…. 그렇죠. 이제 슬슬 제 채널을 만들어야죠.”
언럭키도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까지고 컵라면의 채널에서 나오는 수익을 정산받을 수는 없다.
시작의 도시 영상들은 전부 인기 급상승 순위에 들었다.
자신의 채널을 만들어도 맨땅에서 시작하지는 않을 터.
“그러면 다음 영상부터는 제 채널에서 올리는 걸로 하죠.”
“잘 생각하셨습니다. 채널명은 생각해 두신 게 있나요?”
“음…그건 고민 좀 해 봐야겠군요.”
“바꿀 수도 있긴 하지만 보통 한 번 정한 채널명은 쭉 가져가더군요. 신중하게 결정하는 게 좋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용건이 끝났다.
언럭키는 이제 움직이려 했다.
이제 내 채널도 만들어야 하니, 컨텐츠를 위해서라도 유니크 퀘스트를 하루라도 빨리 찾아야 한다.
“아, 참.”
그때 컵라면이 생각났다는 듯 입을 열었다.
“가기 전에 재밌는 얘기해 드릴까요? 어제 특이한 NPC를 만났거든요.”
“특이한 NPC요?”
“네. 제 인벤토리를 보고 다짜고짜 말을 걸더니 켈리그 도련님이라는 사람을 아냐고 하지 뭐에요.”
“…!?”
언럭키는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켈리그 도련님?
그가 재빠르게 인벤토리에 들어있는 아이템을 확인했다.
[켈리그의 찢어진 장갑]
-아이템 등급 : 유니크.
-아이템 설명 : 켈리그의 한이 서려 있는 물건이다. 적절한 사람에게 가져다주면 보상을 받을 수 있다.
-해당 아이템은 <유니크 퀘스트> 로 연계되는 아이템입니다.
확실했다.
켈리그 도련님. 이 장갑의 주인이다.
‘내가 찾는 NPC잖아!’
언럭키의 두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그것도 모르고 컵라면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저는 무슨 퀘스트라도 주는줄 알고 기대했는데 누군지 모른다고 하니까 그냥 가버리더라고요. 월드 사가도 AI 오류가 있나 봐요. 이상한 NPC가 있는 걸 보면.”
“그 사람은 이상한 NPC가 아닙니다!”
“네?”
“설명은 나중에 해 드릴게요. 일단 그 NPC를 어디서 만났는지 기억 나세요?”
“어…네. 지금도 그 자리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기억은 납니다.”
“알려 주세요. 빨리!”
“그러니까…”
언럭키의 다급한 말에 컵라면은 정신없이 그 위치를 불었다.
***
언럭키는 빠르게 뛰었다.
컵라면이 알려 준 위치는 광장의 상인 구역 한복판을 지나가야 했다.
“잠시만요. 지나갈게요!”
“죄송합니다! 실례합니다!”
원래도 많았지만 오늘따라 사람이 더 많은 것 같다.
언럭키는 그 사람들 틈을 스치듯 빠르게 돌파했다.
어찌나 전투적으로 움직였는지 ‘검왕’의 능력까지 발동되었을 정도이다.
사람들의 발걸음, 행동을 예측해서 피하고 지나가기까지 했다.
‘어디냐. 어디 있는 거냐.’
컵라면은 우연히 돌아다니다가 그 NPC를 만났다고 했다.
한 군데 고정되어 있는 NPC가 아니니 간다고 해도 만날 수 있을지 미지수이다.
그렇기에 언럭키는 속으로 빌었다.
간신히 얻은 이 단서를 제발 살릴 수 있기를.
“…….”
컵라면이 말해 준 장소에 도착한 뒤 쉴 새 없이 고개를 돌렸다.
생김새도 들었기에 비슷한 사람을 찾으려 애썼다.
허연 수염을 기른 늙은 노인.
그러다 문득 비슷한 사람이 보였다.
긴가민가하면서도 언럭키는 그에게 다가갔다.
“저, 혹시 저보고 하실 말씀 없으십니까?”
“…? 아무 말도 없네만?”
“켈리그 도련님이라는 분을 아세요?”
“모르네.”
“실례했습니다.”
허나 이와 같은 일들이 몇 번 반복되었다.
아무래도 중세 시대 배경의 도시 특성상, 흰 수염을 길게 기른 늙은 NPC는 널리고 널렸다.
몇 번이고 그렇게 퇴짜를 맞으며 언럭키는 서서히 희망을 버려갔다.
다른 데로 이동했구나 싶었다.
또 다시 이 도시 전체를 뒤질 생각을 하니 머릿속이 캄캄해져 갔다.
애써 희망회로를 돌렸다.
‘그래도 어제 일이라고 했으니 그리 멀리 가지는 않았을 거야. 여기를 거점으로 주변을 살피면 가능성이 있겠지.’
제발 있어야 한다.
그렇게 속으로 빌 때였다.
“거기. 실력 있어 보이는 자여. 어째서 켈리그 도련님을 찾고 있는가?”
“!”
언럭키가 깜짝 놀라 홱 하고 고개를 돌렸다.
어느 노인 NPC가 경계심 어린 표정으로 여기를 보고 있었다.
“차, 찾았다!”
“…대답을 제대로 하게. 아니라면 내 검이 자네를 용서치 않을 것이야.”
과도하게 반가워하는 언럭키를 NPC는 더욱 수상하게 생각했다.
아예 한 손을 허리춤의 검 손잡이로 가져가기까지 했다.
언럭키가 급하게 인벤토리에서 아이템을 꺼냈다.
“전 수상한 사람이 아닙니다. 동료에게 이야기를 듣고 찾아왔습니다. 혹시 이것 알고 있으십니까?”
“이건…!”
켈리그의 찢어진 장갑을 보자 NPC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 순간이었다.
[아이템의 적절한 주인을 찾았습니다.]
“아아…이걸 이렇게 찾게 되다니….”
노인은 복잡한 표정으로 장갑을 보더니, 곧이어 언럭키를 보고 말했다.
“내 이름은 호르헤른이라고 하네. 내 자네에게 긴히 하고 싶은 얘기가 있는데, 잠시 시간 되는가?”
되고말고. 없던 시간이라도 내야 할 판이다.
“그럼요!”
“그럼 내 집으로 가지.”
그가 등을 돌리며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파앗!
[유니크 퀘스트의 단서를 찾았습니다.]
[해당 NPC와의 대화를 통해 퀘스트 결정됩니다.]
언럭키가 눈을 번뜩였다.
‘좋아. 제대로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