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4화
‘미친….’
검으로 총탄 튕겨내기.
영화나 만화 같은 창작물 속에서는 자주 보이는 기예이다.
당연히 현실에서는 말도 안 되는 일.
그러나 언럭키는 그 말도 안 되는 걸 해냈다.
-팅!
-티팅!
전진하면서 검을 휘저을 때마다 검날이 총탄들을 튕겨냈다.
컵라면이 허둥지둥 손을 움직였다.
‘이, 이걸 놓쳤다간 큰일이다!’
이렇게 보는 와중에도 입이 떡 벌어지는데, 카메라에 잘 담아 편집하면 과연 어떻게 될까?
그의 시야를 따라 가상의 카메라가 언럭키의 모습을 담아내기 시작했다.
한편, 보이는 것과 다르게 언럭키는 그리 여유롭지 않았다.
‘한 방이라도 제대로 맞았다가는 끝장이야.’
여유로운 듯 무표정한 표정이었지만, 실상은 고도로 집중하고 있어서 차마 표정조차 바꾸지 못하는 것이다.
-투투투투!
또다시 진흙 총탄 세례가 날아온다.
진짜 총알이 아니라 진흙을 작게 뭉쳐서 빠르게 쏘아내는 것이다 보니, 흐릿하게 눈에 보인다.
평범한 유저라도 얼핏 볼 수는 있다.
그리고 언럭키는 레전더리 직업 - 올마스터(검왕) 덕에 보이는 걸 넘어서 몸이 반응까지 할 수 있었다.
당연히 전부 쳐내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려면 지금보다 최소한 스펙이 2배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방패로 중요 부위는 가리고 있으니까 할 만해.’
몸통과 얼굴은 방패 덕에 걱정할 필요 없다.
바깥으로 노출된 다리와 어깨 일부, 팔 정도가 걱정인데, 최대한 피할 수 있는 건 피하고 도저히 피하지 못하는 것만 칼날로 쳐내면 아무 피해를 안 입는 게 가능하다.
이론상으로는 말이다.
-팅!
-티팅!
검이 다시 한차례 휘둘러지며 진흙 총탄을 튕겨냈다.
언럭키가 빠르게 전진했다.
그 와중에 미처 반응하지 못한 몇 발이 몸을 스치기도 했지만 적중당한 게 아니라 데미지는 그리 크지 않았다.
“키익!?”
빠르게 좁혀지는 거리에 머신건 머드 칵이 살짝 당황했다.
날개를 활짝 펼쳐 도망가려 했지만 한 박자 늦었다.
-촤악!
“어딜 가려고.”
가까이 도착한 언럭키의 검이 녀석을 베었다.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놈의 HP가 크게 떨어졌다.
보스룸에 들어오기 직전에 능력치를 분배하며 크게 스펙업한 상황.
근거리 맞짱은 얼마든지 이길 자신이 있었다.
치명타가 떠서 휘청거리는 놈의 옆으로 언럭키가 돌아갔다.
-푹!
-콰직!
목, 심장, 신경 다발이 모여있는 날개 관절 부위를 연속으로 베고 찔렀다.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치명타가…]
…
솔플로 놈을 잡는 공략법 2번째.
끊임없이 치명타를 넣어주기!
원래라면 몇 방 때린 후에 멀찍이 날아서 도망쳤을 머신건 머드 칵이다.
하지만 치명타가 뜨면 그런 동작들이 취소된다.
자동으로 휘청거리게 되는데, 연속적인 치명타로 놈을 정신 못 차리게 만드는 것이다.
당연히 쉬운 얘기는 아니었다.
약점 부위에 정확하게 데미지를 넣어야 뜨는 게 치명타 판정인데, 급박한 전투 상황에 그게 가능하긴 힘드니까.
하지만 검왕의 능력으로 80% 정도는 핀포인트 일격이 가능했다.
그리고 두 번째로.
‘그냥 데미지 자체가 너무 세니까 대충 때려도 치명타가 뜬다.’
평타 하나하나가 너무 강했다.
그냥 맞더라도 휘청거릴 정도로.
유니크 검과 뛰어난 스펙의 조합은 그만큼 대단했다.
-쐐액!
-촤아악!
언럭키는 바람개비처럼 놈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계속해서 검을 휘둘렀다.
놈의 HP가 쭉쭉 떨어졌다.
언럭키는 절대 놈을 놓칠 생각이 없었다.
속전속결!
단 한 번의 접근 후 물어뜯는 모습은 흡사 미친개를 연상시켰다.
머신건 머드 칵은 근접 거리에서는 머신건을 쏘지 못했다.
사출 부위에 방패를 갖다 대고 있어서 쏴봤자 무용지물이기도 했다.
결국, 팔다리를 휘둘러 싸워야 했는데, 근접 전투 능력은 일반 머드칵보다 그리 강하지 않았다.
언럭키 정도라면 눈 감고도 상대할 수 있다는 뜻!
“캬아아아….”
헛된 저항을 몇 번 반복하던 놈은, 얼마 지나지 않아 놈이 쓰러졌다.
-띠링
[‘빌리프펜 지하 수로’ 던전의 보스 몬스터를 처치하셨습니다.]
[던전을 처음부터 끝까지 솔로 플레이로 공략하셨습니다.]
[믿을 수 없는 성과!]
[업적이 주어집니다.]
언럭키의 몸에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레벨업!]
그리고 그 과정 하나하나가 컵라면의 카메라 속에 고스란히 담겼다.
***
이용승은 백현이 보낸 파일들을 확인하기 위해 컴퓨터를 켰다.
점심을 빨리 먹었기 때문에 40분 정도 시간이 있었다.
하루 일과 대부분은 작업장에서 보내고, 이런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부업을 하곤 했다.
그 이후엔 작업장에 돌아가야 한다.
“음. 이건가 보네.”
어젯밤에 야식을 먹으면서 백현과 구두 계약을 맺었다.
영상 편집 의뢰였는데, 자신은 백현에게 일단 포트폴리오를 보고 결정하자며 이야기를 했다.
백현은 알겠다고 말하고는 의뢰 맡길 영상을 우선 보내겠다고 했다.
‘지금까지 올라온 영상 3개는 나쁘지 않았는데. 이번에 보낸 건 어떨지 모르겠군.’
시작의 도시에서 활약하는 그 영상들은 성적으로 증명했다.
전부 인기 급상승에 올라가며 게임 관련 영상 중 돌풍을 일으킨 것이다.
편집 실력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내용이 훌륭했다.
사실 편집자의 역할은 딱 그 정도이다.
좋은 영상을 약간 더 돋보이게 하는 정도.
시청자가 편하게 볼 수 있게 만들어줄 뿐이지, 재미없는 걸 재밌게 만드는 마법은 없었다.
가끔 몇몇 스트리머들은 노잼 영상을 꿀잼으로 만들어주길 원하는데,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과연 그 친구는 어떠려나. 시작의 도시를 벗어나서 새 도시로 입성했다고 했지.’
비록 작업장이긴 하지만 그 역시 월드 사가를 플레이하고 있었다.
게다가 편집자로서 일하기까지 하니 월드 사가의 상황에 대해서는 빠삭했다.
초반부 도시들에서 벌어지는 유저 적체 형상.
사냥터 구하는 것부터가 힘든 일일 텐데, 과연 어떤 쓸 만한 영상을 보냈을까?
이용승이 기대감을 가지고 영상을 켰다.
시작은 도시 빌리프펜의 골목이었다.
영상 속에는 언럭키가 골목 골목을 걸어가고 있었다.
의도적으로 어디인지 알 수 없게 지형 노출을 최소화한 결과, 그들은 새로운 공간으로 이동했다.
지하 하수도 같은 장소에 유저는 아무도 없었다.
그 대신 바퀴벌레 형태의 몬스터, 머드 칵들이 수로 바닥에서 튀어나왔다.
“어!?”
이용승이 깜짝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이거 설마?”
-우, 우와! 너무 신기해요, 언럭키님! 이런 곳에 던전이 있다니! 이거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 던전 아닌가요!?
카메라맨으로 보이는 남자가 감탄하는 연기는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지만, 내용만큼은 굉장했다.
던전이라니!
도시 빌리프펜은 그도 알고 있는 장소인데, 저런 형태의 사냥터는 분명 없었다.
그 말은 알려지지 않은 던전이라는 뜻!
‘이건 되겠는데?’
느낌이 왔다.
썸네일 어그로만 잘 끌어도 최소 10만 이상의 조회수는 보장될 만한 영상이다.
그만큼 월드 사가의 새로운 던전이라는 건 시청자들을 확 끌어당길 만한 소재였다.
“…….”
그리고 영상이 이어질수록 이용승은 입을 쩍 벌렸다.
여기가 숨겨진 던전이라거나 어그로가 끌리겠다거나 하는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싹 사라졌다.
머드 칵들을 상대로 한 자루 검을 든 채 맞서 싸우는 언럭키.
검의 궤적이 지나갈 때마다 놈들이 픽픽 쓰러진다.
어찌나 그 과정이 아름다운지 언럭키에게는 체액 한 방울도 묻지 않았다.
“아름답다….”
절로 그런 말이 튀어나왔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런 감탄사가 튀어나올 만한 움직임이다.
자신이 느끼는 이 벅차는 감동을 뭐라 표현하기가 어려웠다.
다만 당장 드는 생각은 있었다.
‘이건…내가 다뤄야 된다.’
평소에도 하나에 빠지면 눈에 뵈는 게 없어지는 사람이 이용승이다.
이곳에 끌려온 것도 BJ 한 명에게 빠져서 빚까지 내어 후원을 꼬라박았기 때문 아닌가.
그런 이용승의 집착이 이번에는 언럭키에게 발동되기 시작했다.
편집자로서의 혼을 불태울 만한 가능성!
조금만 손보면 엄청난 관심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영상과 함께 첨부된 내용에는 건당 비용은 얼마로 생각하고 있다는 등의 계약서가 함께 있었지만, 이용승의 머릿속에는 그런 건 관심 대상이 아니었다.
만약 자신에게 의뢰하지 않는다면 제발 달라고 부탁이라도 하고 싶었으니까.
문득 백현에게 자신의 편집 포트폴리오를 보냈던 게 생각났다.
‘내 포트폴리오가 마음에 들었겠지? 그렇겠지?’
평소 계약에 관해서는 확실하게 하자는 생각에 포트폴리오를 보냈다만, 지금은 후회가 됐다.
‘그냥 처음에 계약하자고 했을 때 받아들일걸….’
만약 백현 쪽에서 별로 마음에 안 든다고 다른 편집자를 알아보겠다고 할까 봐 걱정이 되었다.
항상 자신의 실력에 자신이 있는 이용승이었건만. 지금만큼은 초조했다.
***
“우, 우와….”
컵라면이 얼떨떨한 얼굴로 걸어왔다.
“진짜로…혼자서 보스몹을 잡으셨네요?”
머신건 머드 칵.
놈이 쏘아내는 총탄을 버티며 상대하려면 반드시 3인 이상의 파티가 필요했다.
그것도 딜러 3명 같은 경우라면 무조건 전멸이다.
그만큼 상성도 어렵고 까다로운 놈인데, 언럭키는 혼자서 처치해버린 것이다.
“뭐, 그렇게 됐네요.”
“하…. 진짜 믿기지가 않네요.”
컵라면이 혀를 내둘렀다.
분명 두 눈으로 지켜봤고 영상에 담기까지 했지만, 실화인가 싶었다.
“진흙 총탄을 칼날로 튕겨내며 접근해서 상대하다니. 입으로 떠드는 슈퍼 플레이로만 가능한 일을 실제로 볼 줄은 몰랐습니다.”
현재 한창 활약하고 있는 상위권 유저들은 이런 걸 보여줄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그만큼 언럭키가 한 건 말도 안 됐다.
“운이 좋았습니다.”
“겸손하시긴요. 누가 봐도 운으로 한 건 아니었는데요. 영상은 잘 담긴 것 같습니다.”
컵라면이 가상 카메라 속 내용물을 확인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새로운 편집자를 구하셨다고 하셨으니, 영상이 어떻게 뽑힐지 기대되는군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우연히 알게 된 분인데 실력이 좋다더군요. 그분 포트폴리오는 컵라면님도 나중에 꼭 한번 확인해보세요.”
“하하. 언럭키님이 보증하시는 분인데 당연히 좋겠죠. 그래도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컵라면이 껄껄 웃었다.
대형 길드에서 밀어주는 신인(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인데, 당연히 굉장한 편집자를 알아왔겠지.
컵라면은 그런 쪽에서는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식으로 세세하게 자신에게 상황을 공유해주는 것에 감사한 마음만 들 뿐이었다.
언럭키가 시선을 돌렸다.
머신건 머드칵이 죽고 가루로 변한 뒤, 그 자리에 몇몇 아이템이 떨어져 있었다.
“오. 레어급 소환 토템이네요?”
컵라면이 볏짚으로 된 아이템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머드칵 소환 토템.]
-아이템 등급 : 레어.
-아이템 효과 : 명령을 충실히 따르는 머드 칵을 소환한다. 동시에 소환할 수 있는 최대 개체수는 3마리까지 가능하다.
-아이템 제한 : 레벨 15 이상. 네크로맨서 직업 한정.
-거래 가능.
소환 토템이라는 네크로맨서 전용 아이템이었는데, 팔면 꽤 비싸게 받을 만한 물건이었다.
보스몹을 힘겹게 잡아도 노멀만 뜨는 꽝일 때도 있는데, 레어라니.
게다가 거래 가능 옵션까지 붙어있었다.
팔면 꽤 쏠쏠한 가격을 받을 수 있을 터.
‘아무리 봐도 닉네임이 언럭키가 아니라 럭키였어야 하는 것 같은데.’
허나 컵라면은 언럭키를 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안 기쁘세요?”
언럭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던 것이다.
레어 아이템인데 좋지 않은가?
“음….”
언럭키의 표정이 굳어있던 이유는 간단했다.
‘뭐야. 왜 레어 아이템이야?’
이 던전에 들어올 때도 그렇고 보스룸 입장 직전에 봤던 것도 그렇고.
분명 초록색 빛이 뿜어져 나왔었다.
빨주노초파남보의 네 번째, 초록색.
시작의 도시에서 확인한 결과, 초록색은 유니크 급이어야 된다.
헌데 고작(?) 레어 아이템이 나왔으니 기분이 나쁜 것이다.
‘내 유니크 어디 갔어!’
언럭키는 인상을 팍팍 찡그리면서 다른 잡템들을 확인했다.
재료 아이템 같은 쓰레기뿐이었다.
‘그럼 그렇지. 역시 재수가 없어.’
언럭키라는 닉네임이 너무나 잘 맞는다.
아니. 슈퍼 언럭키라고 지었어야 될지도 모른다.
그게 더 적절하겠지.
그렇게 꽝들을 확인하고 어느덧 마지막 아이템을 확인하던 순간이었다.
‘응?’
언럭키가 눈을 부릅떴다.
‘이건…뭐야?’
[켈리그의 찢어진 장갑]
-아이템 등급 : 유니크.
-아이템 설명 : 켈리그의 한이 서려 있는 물건이다. 적절한 사람에게 가져다주면 보상을 받을 수 있다.
-해당 아이템은 <유니크 퀘스트> 로 연계되는 아이템입니다.
‘유니크 퀘스트 아이템?’
생각지도 못한 걸 얻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