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2화
“와…씨.”
“…장난 아니네요.”
박세훈과 이용승이 동시에 감탄했다.
그들 역시 비록 작업장에서 노가다를 뛰고 있지만, 월드 사가를 하고 있었다.
시작의 도시에서 어둠 숲이 어떤 의미인지도 당연히 알았다.
그렇기에 저런 활약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지 공감했다.
아울베어를 혼자서 학살하다니.
게다가 더 놀라운 건 마지막이었다.
-크워어어어!
흉포한 아울베어.
시작의 도시 최강의 몬스터이자, 어둠 숲의 보스 몬스터.
어지간한 유저는 감히 도전할 생각조차 못 하고, 길드의 유망주쯤 되는 사람만이 덤벼드는 놈이다.
물론 그들 중에도 감히 솔플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미친 것도 아니고.
최소 3인 이상의 파티로 공략을 해야 성공 가능성이 있는 놈이었다.
허나…
“…이걸 혼자 잡아?”
“말도 안 되는군요….”
언럭키는 보스의 CC기를 씹고 정면에서 쓰러트렸다.
그 기겁할 만한 활약에 둘 다 탄성을 내질렀다.
그다음에는 화룡점정으로, 영상의 마지막에 레어 아이템을 얻는 모습까지 보여주었다.
“하하. 운도 더럽게 좋군. 저 녀석은 뭐냐. 시작부터 탄탄대로를 걷네, 아주.”
박세훈이 질투 난다는 듯 중얼거렸다.
“아. 진짜 부럽다. 뭐 하는 놈일까? 직업 엄청 좋아 보이던데. 현실에서 재벌쯤 돼 가지고 수십억 질러서 직업 갈아서 레전더리라도 뽑은 거 아닐까?”
“각국 부자들이 그렇게 해서 레전더리 직업을 얻곤 한다던데. 이 사람도 그중 하나일 수도 있겠네요.”
“이 사람은 돈 걱정 같은 건 전혀 없겠지?”
“그렇지 않을까요.”
“나도 그렇게 살고 싶네. 젠장.”
듣고 있던 백현은 어이가 없었다.
‘부자라뇨. 빚더미에 쌓인 거지인데요.’
물론 그들에게는 들리지 않는 말이었다.
문득 박세훈이 생각났다는 듯이 물었다.
“아, 참. 우리 아까 얘기가 끊겼지. 그래서 백현 씨 부업이 뭐라고?”
“그거요.”
“그거? 뭐?”
박세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백현은 스마트폰을 가리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스트리머요.”
“…진짜?”
“네. 표정이 왜 그러세요?”
“어….”
박세훈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굳어지는 얼굴을 억지로 피려 하니 나오는 괴상한 모습.
다양한 경험을 겪으며 표정 관리 하나는 잘 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만큼은 그게 쉽지 않았다.
백현의 답변이 그만큼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다.
‘스트리머를 부업으로 한다고? 성 팀장 그 자식이 미쳤나? 이걸 받아들였어?’
다른 부업이면 그러려니 하겠다.
생각보다 자투리 시간을 내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은가.
여기 있는 이용승처럼 편집을 해도 되고,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혹은 번역 알바 같은 걸 할 수도 있었다.
헌데 스트리머라니.
그 시장이 얼마나 치열하고 어려운지는 박세훈도 잘 알고 있었다.
극소수의 재능충이 행운을 거머쥐었을 때 초대박 스타가 탄생하는 시장.
성공만 하면 대박이다.
월드 사가의 위상는 나날이 높아져 가고 있으며, 플레이하는 유저 숫자는 10억을 돌파했다.
심지어 증가율은 더욱 가파르게 올라가니 어디까지 성장할지 그 끝이 안 보인다.
최근에는 월드 사가의 랭커가 스포츠 스타들 이상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도 했다.
한 명 한 명이 움직이는 기업에다가 인기 또한 세계적으로 얻게 되는 것.
‘당연히 그렇게 인기를 얻는 건 극소수의 사람뿐이지만.’
그걸 꿈꾸며 들어온 많은 사람이 근처도 도달하지 못하고 좌절하는 곳이 이 동네다.
성 팀장도 그 누구보다 이 사실을 잘 알 것이다.
(주)머니앤캐시가 월드 사가 작업장 분야로 사업을 시작했을 때, 당연히 업계에 관한 시장 조사도 이루어졌을 테니 말이다.
‘성 팀장 그 녀석은 절대 스트리머에게 투자할 놈이 아니야.’
보통 스트리머가 성공할 확률은 통계적으로 0.01% 미만.
나머지는 전부 어정쩡하게 겉돌다가 사라질 뿐이다.
재능 있고 실력 있어 보여 초반에 두각을 드러낸 유저가 얼마나 많았던가.
허나 그들은 대부분 폭망했다.
대신에 성공하면 그 끝이 어딘지 가늠하지 못할 정도가 되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굉장히 낮다.
성 팀장은 절대 이런 위험천만한 투자를 할 사람이 아니다.
헌데 왜 허가를 해줬지?
“크흠. 어…일단 축하해. 백현 씨가 스트리머로서 재능이 있나 봐? 부업 허가를 받은 걸 보면.”
“재능은 잘 모르겠지만, 일단 시작은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아 벌써 시작했어? 채널명이 뭔데? 한번 봐볼게.”
박세훈이 눈을 반짝였다.
아직은 별거 없겠지만 떡잎 정도는 볼 수 있을 것이다.
박세훈은 자신이 직접 백현의 가능성을 두 눈으로 봐볼 생각이었다.
“이거예요.”
“응? 이거 뭐?”
“지금 보고 계신 그거요.”
“……?”
박세훈의 동작이 뚝 굳어졌다.
지금 내 스마트폰에서 재생되는 이 영상?
흉포한 아울베어를 혼자서 두들겨 패 사냥하는 이 괴물?
“…지금 이 유저라고? 스트리머 컵라면 채널에서 나오는 유저?”
“예.”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건데, 농담하는 거 아니지? 그러면 정말 재미없는 농담인데.”
“이 상황에 무슨 농담이에요. 100% 진실입니다.”
“허어….”
박세훈이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부러워만 했던 이 유저가 설마 눈앞에 있는 사람이라니.
“나는 이 사람이 과연 어떤 부자일까 생각했었는데…”
“부자가 아니라 거지죠. 빚이 몇 억씩 존재하는.”
“그러게.”
박세훈은 몇 번 뭐라 말하려는 듯 입을 열다가 다물었다.
그리고는 곧, 피식 웃었다.
“그래도 축하해. 성 팀장 그 녀석이 갑자기 미친 줄 알았는데 대어를 물었네. 이 정도면 금방 성공하겠다.”
“감사합니다. 세훈 씨가 잘 알려주신 덕분에 협상이 잘 됐어요.”
“그게 아니었어도 분명 잘 됐을 거야. 그리고 노파심에 말하는데 성 팀장 그 녀석 너무 믿지 마. 아마 백현 씨를 어떻게든 옭아매려고 수작 부릴 게 뻔하거든.”
그는 성 팀장의 독사 같은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기계로 이루어진 것처럼 차가운 심장을 가진 남자.
백현의 가능성을 자신이 알아봤듯이 그가 놓쳤을 리가 없다.
“안 그래도 월에 천만 원씩 빚을 갚으라고 하더라고요. 수익의 5%를 커미션으로 떼줘야 하는 것도 있고요.”
“하. 역시 그 자식 그럴 줄 알았어. 이제 시작한 초짜 스트리머한테 무슨 그딴 조건을 걸어?”
박세훈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아무리 유망한 스트리머라도 처음부터 그만한 돈을 버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최소 몇 달의 유예기간은 줘야 할 것 아닌가?
이건 백현에게 너무나 불리한 조건이었다.
“괜찮아요. 그 대신 제가 제대로 돈을 갚으면 그쪽이 제 부탁 하나를 들어주기로 했거든요.”
아직 부탁이 뭔지 정하지는 않았지만, 백현은 자신 있었다.
그리고 박세훈 역시 그런 백현의 패기를 알아봤다.
‘…성 팀장 그 녀석. 오랜만에 적수를 제대로 만났는데.’
이렇게 보기에는 곱상하게 생겨서 유약해 보이건만.
속은 완전히 단단한 놈인가보다.
박세훈이 눈에 힘을 풀고 히죽 웃었다.
“으하핫. 그래. 내가 괜히 걱정했구만. 나도 백현 씨가 그놈한테 한 방 먹여주기를 기대하고 있을게.”
“예. 그래서 말인데 부탁이 하나 있어요.”
“부탁? 뭔데?”
“세훈 씨가 아니라 여기 있는 용승 씨요.”
“?”
백현이 이용승을 쳐다봤다.
두 사람이 열심히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 어느새 그는 자신 몫의 라면을 다 먹었다.
텅 빈 그릇을 앞에 두고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던 이용승은, 백현이 자신을 가리키자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요?”
“네. 용승 씨 편집 실력이 좋다고 세훈 씨가 여러 번 칭찬하셨잖아요.”
비단 박세훈뿐만이 아니다.
그의 실력은 (주)머니앤캐시에서 보증하고 성 팀장이 인정한 것 아니던가.
이 빚더미 감옥 소굴에서 편집자 부업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것이다.
그 깐깐한 성 팀장의 기준을 통과한 것이니 백현 역시 믿고 맡길 수 있을 터.
“뭐. 저야 부업 들어오면 좋죠.”
“네. 금액은 적절히 지불하겠습니다.”
“그러면 제가 메일로 제 작업물들 한번 보내볼게요. 그래도 포트폴리오는 보시는 게 좋을 테니까요.”
“알겠습니다.”
백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믿고 맡기려고 했는데 포트폴리오까지 보내준다니.
한층 더 신뢰도가 올라간다.
그만큼 자신 있다는 뜻일 테니까 말이다.
‘편집자 문제는 대충 해결되겠네.’
컵라면님한테도 어서 이 소식을 전해줘야겠다.
***
다음날.
아침에 일어난 백현이 피곤한 눈을 비볐다.
‘한…4시간밖에 못 잤네.’
프로가 되기 위해서는 잘 자는 것도 중요한데, 어제는 실패했다.
어쩔 수 없었다.
‘그런 걸 봤으니 잠이 안 올 수밖에.’
어제 야식을 먹고 방으로 돌아간 뒤, 이용승은 곧장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보냈다.
꽤 많은 영상이었는데 종류도 다양했다.
먹방, 게임 방송, 룩북, 브이로그 등등.
작업물이 굉장히 많은 걸 보니 그가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지 알 것 같았다.
가볍게만 훑어보고 자려고 했는데, 백현은 저도 모르게 거의 모든 영상을 다 봤다.
힘을 줄 데 주고 뺄 데 빼는 편집 스킬.
무작정 화려하지 않고 적절하게 집어넣는 이펙트 효과.
보기 편한 자막과 효과음은 한층 더 영상에 몰입감을 줬다.
그 결과 특별하지 않은 영상조차 특별하게 만들었다.
‘이게 진짜 제대로 된 영상 편집이구나 하는 느낌이었지.’
전문가가 아닌 백현조차 그 편집을 보고 대단함을 느꼈는데, 컵라면에게 보여주면 과연 어떨까?
‘그리고 용승 씨가 내 영상을 편집해주면 얼마나 영상이 잘 뽑힐까?’
그렇게 생각하니 절로 마음이 두근거렸다.
보낸 영상들을 빼곡히 확인하느라 새벽까지 잠을 설쳤다.
그래도 6시에 칼같이 맞춰 일어났다.
프로가 되려면 게으름을 피울 수는 없는 법.
성 팀장이 늦잠 정도는 봐줄 수도 있었지만, 백현은 스스로를 그렇게 나태하게 되도록 놔두지 않았다.
게임에 접속한 언럭키는 곧장 컵라면과 만났다.
이용승에 대한 이야기를 대충 해 주니 그 역시 뛸 듯이 기뻐했다.
“오! 실력 있는 편집자님을 알고 계시다니. 잘 됐군요!”
편집 부담감 때문에 걱정을 하던 그였기에 이 소식이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제가 받은 포트폴리오는 컵라면님에게 공유해 드릴게요. 나중에 한 번 봐보세요.”
“알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오늘의 일과를 시작하죠.”
“예. 오늘도 잘 부탁드립니다.”
“제가 더 잘 부탁드리죠. 저야 뭐 따라다니면서 영상만 찍는 것뿐인데요.”
언럭키와 컵라면은 사이좋게 지하 수로 던전으로 들어갔다.
-콰직!
-푹!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적을 처치하셨습니다.]
[소량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48시간 동안 경험치 획득량 +150% 증가 버프가 적용됩니다.]
머드 칵은 이제 눈 감고도 처치할 수 있게 된 언럭키이다.
징그러운 것도 면역이 되어서 던전 내부를 쭉쭉 돌파해 나갈 수 있었다.
RPG 게임의 특성상, 아무리 좋은 아이템과 스킬을 가지고 있어도 시간을 많이 투자해야 한다.
그 과정이 많이 지겨울 수도 있지만 언럭키는 아무렇지 않았다.
당연했다.
원래라면 작업장에서 반복 노동으로 썩히고 있었을 텐데, 이런 사냥은 감지덕지이지.
[레벨업!]
6시간 가까이 그렇게 반복된 사냥을 한 결과 레벨도 하나 올랐다.
두 사람은 한 번의 레벨업 후에도 멈추지 않고 계속 던전 깊숙이 나아갔다.
“음?”
“어?”
기계처럼 몬스터 사냥만 해가던 두 사람은 처음으로 멈춰섰다.
영원히 뻗어있을 것만 같던 지하 수로를 커다란 문이 가로막은 것이다.
심상찮은 문양이 음각된 웅장한 문.
“이건…보스방 같군요.”
컵라면이 굳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만 돌아갈까요?”
그가 물었다.
당연한 물음이었다.
던전 내부의 머드 칵들을 쉽게 처치했다고 하지만, 보스는 전혀 다른 문제다.
괜히 까불다가 전멸하기 십상인 것.
심지어 언럭키는 솔플을 하고 있어서 도와줄 파티원도 없다.
안전하게 가기 위해서는 도시로 돌아갔다가 정비라도 하는 게 옳았다.
“아뇨. 그냥 이대로 직진 하겠습니다.”
“네? 하지만…”
컵라면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쳐다봤지만 언럭키는 단호했다.
“계속 가겠습니다.”
‘저걸 봤는데 그냥 돌아갈 수는 없지.’
언럭키의 눈에만 보이는 것.
-파앗!
던전에 들어오기 전에 봤던 초록색 빛이 보스방 문틈 사이로 넘실거리며 흘러나오고 있었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