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행운빨로 레벨업-21화 (21/218)

#021화

-콰직!

언럭키의 검이 머드 칵의 등짝을 뚫고 들어갔다.

-띠링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두꺼운 갑각을 뚫고 그대로 심장 부근을 꿰뚫었기에 치명타가 판정이 떴다.

이렇게 되면 데미지는 2배.

안 그래도 스펙이 높고 유니크 검까지 들었는데 거기서 데미지가 2배로 뻥튀기되면, 일반 몹은 원 킬이다.

‘왼쪽으로 세 보 물러나야겠군.’

쓰러지는 머드 칵의 동작을 계산해 움직였다.

철퍽 소리와 함께 오물이 튀었다. 정확히 언럭키의 발끝 앞쪽까지.

완벽한 계산이었다.

검왕 직업 덕분에 검술과 전투 동작 관련해서는 예지 수준의 예측이 가능해졌다.

머릿속에서 흘러가는 대로 움직이면 거의 그대로 이뤄지는 수준이었다.

-띠링

[적을 처치하셨습니다.]

[소량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48시간 동안 경험치 획득량 +150% 증가 버프가 적용됩니다.]

그 순간, 언럭키의 몸에서 옅은 빛이 번쩍였다.

[레벨업!]

경험치가 거의 다 차 있던 탓인지 레벨업 알림이 떴다.

뒤에서 열심히 영상을 찍던 컵라면이 다가왔다.

“레벨업 축하드려요, 언럭키님.”

“감사합니다.”

“볼 때마다 신기하네요. 그렇게 움직이시는 것도 그렇고, 머드 칵을 한 방에 처치하는 것도 그렇고….”

컵라면은 머드 칵이란 몬스터에 대해 알고 있었다.

징그럽지만 경험치 효율은 좋은 놈.

허나 그렇다고 해서 쉽게 처치할 수 있는 녀석은 아니었다.

파르르 움직이는 더듬이 때문에 반응속도가 빠르고, 몸을 뒤덮고 있는 흑갈색의 갑각은 갑옷 같은 방어력을 자랑했다.

그렇기에 여러 번 같은 부위를 때려 갑옷을 부수고 데미지를 넣어야 했다.

체력이 높지 않기에 갑옷만 부수면 쉽게 죽일 수 있었지만, 그게 어디 쉽겠는가.

‘그런데 그 단단한 갑각 갑옷을 한 방에 꿰뚫다니….’

못 본 새에 새로운 검을 들고 온 언럭키였는데, 저건 무언가.

유니크라도 되나?

그래. 무기야 뭐, 그럴 수 있다고 치자.

돈이 많거나 소속사에서 지원을 받을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언럭키의 움직임은 볼 때마다 이해가 안 갔다.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몬스터를 도살하는 저 움직임은 마치…

‘꼭 레전더리 직업 같잖아.’

이 월드 사가의 최상위권에 군림하는, 레전더리 직업을 가진 존재들.

그들은 시작의 도시에서부터 두각을 나타내 빠르게 치고 올라갔으며, 수많은 팬을 끌어모았다.

방대한 오픈 월드에 컨텐츠는 끝이 없는 이 세상에서, 그들은 제집 앞마당처럼 휘젓고 다녔으니까 말이다.

언럭키를 보면 마치 그들의 저레벨 시절 이야기와 비슷했다.

허나 컵라면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에이. 설마 그럴 리가.’

유니크 직업까지는 어떻게 종종 보이지만, 레전더리는 정말 극소수이다.

그런데 월드 사가에 몇 존재하지 않는 레전더리 직업 보유자가 눈앞에 있다?

그것도 자신과 영상을 찍으면서?

그렇게 생각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자신이 오해했다고 보는 게 더 알맞았다.

-쾅!

커다란 소음에 컵라면은 상념을 멈추고 앞을 바라봤다.

“캬악!”

어느새 다시 나타난 머드 칵들이 언럭키를 둘러쌌다.

아니, 둘러싸려고 했다.

허나 언럭키는 포위되기 직전에 어깨 차지로 한 놈을 밀쳐 틈을 만들고, 그 사이로 빠져나가 검을 휘둘렀다.

-서걱!

-콰직!

결국 사이좋게 등쪽 갑각이 깨지며 쓰러졌다.

언럭키는 다시 한번 경험치가 올랐다는 메시지를 보며 바닥에 떨어진 골드를 주웠다.

‘슬슬 패턴이 눈에 익어.’

처음부터 검왕 직업 덕에 움직임에 보정이 붙어서 상대하는 게 어렵지 않았다.

거기에 몇 시간 정도 상대하다 보니 놈들의 동작이 뻔히 보였다.

안 그래도 보정이 붙는 움직임인데, 녀석들의 행동이 예측까지 되니 사냥이 너무 쉬워졌다.

그러면서 경험치는 쭉쭉 오르기까지 한다.

‘재미있다.’

재미있었다.

눈이 트이는 느낌이다.

처음에는 빚을 갚고 인생을 바꾸기 위한 목적으로 파고들기 시작한 거였는데, 이제는 월드 사가에 본인이 빠져들고 있었다.

왜 사람들이 월드 사가, 월드 사가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콰가각!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적을 처치하셨습니다.]

[소량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48시간 동안 경험치 획득량 +150% 증가 버프가 적용됩니다.]

또다시 나타난 머드 칵 2마리를 몇 초 만에 처치한 뒤 언럭키가 성큼 앞으로 나아갔다.

“슬슬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죠.”

경험치와 골드 버프 48시간 제한은 지금도 계속 줄어들고 있다.

시간이 금이니, 한시라도 더 빠르게 이동해야 했다.

***

밤 10시.

-치익!

캡슐에서 일어난 백현이 기지개를 켰다.

“후우….”

몇 시간을 캡슐 안에 누워있던 몸인지라 여기저기가 뻐근했다.

인체공학적으로 만들어져 피로도가 적다고는 해도, 계속 누워있다 보니 몸이 좋을 수는 없었다.

“앞으로 운동도 꾸준히 해야겠네.”

어떤 일을 하건 체력이 중요하다.

하루 이틀 만에 성공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런 장기전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기초 체력이 탄탄해야 한다.

실제로 월드 사가를 직업으로 삼은 프로들은 각종 운동을 한다.

검도, 유도, 복싱, 펜싱, 수영, 클라이밍, 헬스 등.

체력을 키우는 것은 물론이고, 보정이 들어간다고 해도 직접 몸을 움직여야 하는 가상현실이기에 현실의 육체를 단련하는 것이다.

“헬스장 가고 싶다고 하면 보내주려나?”

원래라면 이 감옥 같은 고시원에 갇혀있어야 하지만, 성 팀장과 거래를 했다.

프로 스트리머가 되기 위해 운동을 하고 싶다고 하면 외출을 보내줄지도 모른다.

‘일단 이건 틈을 봐서 물어봐야겠군.’

백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오늘 하루 종일 던전에서 사냥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 결과 레벨은 3개나 올릴 수 있었다.

다만, 마지막에 컵라면과 조금 고민해봐야 하는 주제의 대화를 나눴다.

-언럭키님. 이번 영상은 진짜 잘 뽑혔어요. 던전을 우연찮게 발견하는 것부터 머드 칵들 학살하는 것까지. 관전 포인트가 한두 개가 아니에요.

-잘됐네요.

-다만 던전 발견할 때의 제 연기는 다시 생각해봐도 못 봐줄 정도이지만…뭐 이 정도는 편집으로 어떻게 할 수 있겠죠.

멋쩍게 웃는 컵라면.

곧 그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그래서 말인데, 이것 관련해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뭔데요?

-제가 지금까지 언럭키님의 영상을 3개 올렸거든요. 세 번째 거는 아직 확인 못 했지만 아마 반응이 좋았을 거예요. 잘 뽑혔으니까요.

-그렇죠.

-그래서…조금 부담이 되네요.

-부담이라면?

-제가 편집을 할 줄 안다지만 원래 본업은 종합 게임 스트리머입니다. 전문 편집자들만큼의 실력은 없어요. 근데…오늘 찍은 영상을 보니까 제가 과연 이걸 제대로 살릴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컵라면의 얼굴에는 고뇌의 흔적이 보였다.

그 누구보다 이 영상을 잘 만들고 싶은 것은 본인일 터.

허나 이전 영상들보다 잘 만들어야 된다는 압박감과 이 좋은 영상을 살리지 못하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부담이 너무 심해졌다.

-혹시나 망할 수도 있으니 영상의 주인공인 언럭키님에게도 말씀을 미리 드리려고요. 물론 저는 최선을 다할 겁니다.

-…그렇군요.

언럭키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 역시 영상 편집에 대해 뭘 잘 아는 것도 아니라서 직접 할 수도 없었으니까.

-컵라면님은 잘 하실 거예요. 지금까지도 잘 하셨으니까요.

이런 원론적인 위로의 말만 건넸을 뿐이다.

그 후로 컵라면은 편집을 해보겠다며 로그아웃했다.

백현 역시 시간이 많이 늦었기에 로그아웃했고 말이다.

‘일단 그 문제는 차차 고민해봐야겠어.’

복잡한 머리를 좀 식힐 필요가 있었다.

-끼익.

백현이 방문을 열고 나왔다.

저녁을 걸렀기에 위장이 계속 꼬르륵거리고 있었다.

간단하게 부엌에서 뭐 좀 먹고 잘 생각이었다.

슬쩍 CCTV를 쳐다봤지만, 성 팀장이 제재하는 건 없었다.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정해진 식사 시간 이외에는 캡슐에 처박혀 있었어야 했을 텐데.

약간의 자유가 주어졌다.

‘이런 거에서 소소한 기쁨을 느끼다니. 사람이 참 이 모양이란 말이야.’

백현이 피식 웃었다.

물론 여기서 만족할 생각은 없었다.

고아에 보육원 출신에다가 5억이라는 빚까지 생겼지만, 앞으로도 시궁창 인생을 살 필요는 없지 않은가.

‘나는 반드시 성공할 거다.’

남들이 우러러보는 커다란 집에 살며 떵떵거리고 싶었다.

다시 한번 다짐을 하며 백현이 부엌으로 갔다.

“어? 백현 씨도 왔네?”

거기에는 뜻밖에 선객이 있었다.

박세훈과 이용승.

박세훈은 손을 흔들며 인사했고 이용승은 앉은 채로 고개만 꾸벅 숙여 보였다.

“두 분 여기서 뭐 하세요?”

“아마 백현 씨랑 같은 이유 아닐까?”

“야식?”

“정답!”

박세훈이 킬킬거리며 웃더니 뒤편을 가리켰다.

가스레인지 위에 냄비가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라면 먹을 거야. 우리 것만 끓이려고 했는데 백현 씨도 같이 먹을래?”

“그래도 될까요?”

“당연하지. 이 엿 같은 곳에서 같은 빚쟁이들끼리 이런 정이라도 있어야 살 만하지. 어서 앉아.”

박세훈은 이용승의 옆자리를 가리켰다.

“기대해도 좋을 거야. 내가 증권사에서 트레이더 하면서 밤을 엄청 샜거든. 늘어난 건 라면 끓이는 실력밖에 없어. 하도 많이 먹어 가지고.”

잠시 후, 그가 커다란 냄비에 라면을 한가득 끓여 가져왔다.

아무리 봐도 3인분은 아니었다.

“너무 많은데요?”

“6개니까.”

“이걸 누가 다 먹어요?”

백현이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내일도 일찍 일어나야 한다.

할 일이 많은데 괜히 뱃속을 더부룩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기껏 라면을 끓여줬는데 남기기도 그렇고…

“걱정 마. 적당히 먹으면 나머지는 용승 씨가 다 해치울 거니까.”

박세훈이 옆을 가리켰다.

이용승은 아무런 대답 없이 젓가락을 치켜들었다.

한가득 면발을 집어 식히지도 않고 그대로 입에 넣었다.

-후루루룩

면발 들이키는 소리와 함께 엄청난 양의 라면의 그의 뱃속으로 사라졌다.

몇 번 씹지도 않더니 다시금 비슷한 양을 집어 드는 이용승.

분명 냄비 한가득이었던 라면이었는데 양이 쭉쭉 줄어들었다.

그 신기한 장면에 백현은 먹는 것도 잊고 쳐다봤다.

‘…먹방 하면 잘하겠는데?’

곰같이 생긴 사람인데 식성 역시 덩칫값을 했다.

“우리도 먹자.”

“아, 네. 잘 먹겠습니다.”

박세훈과 백현 역시 옆에 앉아 사이좋게 라면을 먹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이 시간에 나온 거 보면 성 팀장이랑 딜을 잘 봤나 봐?”

박세훈이 물었다.

보통 여기 갇혀있는 빚쟁이들은 하루 일정이 타이트하다.

아침 일찍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회사의 작업장에서 반복 노동을 해야 한다.

이렇게 야식을 먹으러 나와 있다는 것 자체가 성 팀장이 뒤를 봐준다는 뜻.

즉, 무언가 그의 인정을 받았다는 뜻이다.

백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부업 하고 싶다고 했고, 승인 났습니다. 전에 말씀해주셨던 성 팀장의 성격 얘기가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뭘. 그런 거 얘기해줘도 호락호락한 놈이 아닌데. 그놈이 인정할 만한 무언가 특별한 능력이 백현 씨에게 있었나 봐?”

“운이 좋았죠.”

“내가 그놈을 아는데, 운빨이라는 말로는 설명하기 힘들어. 무슨 부업을 하는데 그놈이 허락해줬어?”

박세훈이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그러면서 이용승을 가리켰다.

“여기 있는 용승 씨는 편집을 기깔나게 잘하고, 나는 그놈이랑 이 회사의 자본 투자에 대해 자문을 조금 해 주고 있거든.”

“투자 자문이요?”

“응. 내 자랑 같지만 내가 왕년에 꽤 잘나갔단 말이지. 그 녀석도 그걸 알아서 약간이나마 대우해주고 있고.”

물론 너무 싼값에 부려먹고 있지만.

박세훈은 그렇게 말하며 투덜거렸다.

“저는…”

백현이 입을 열려고 했다.

그 순간, 이용승이 끼어들며 말했다.

“어. 이 유저 영상 또 올라왔네?”

처음부터 대화에 끼지는 않고 라면만 먹으며 스마트폰을 보던 이용승이었는데, 신기하다는 듯 화면을 박세훈에게 보여주었다.

“형님. 이것 좀 보세요.”

“용승 씨. 나 여기 있는 백현 씨랑 얘기하고 있잖아.”

“아, 미안해요. 제가 뭐 하나 하면 주변 다른 얘기를 잘 못 들어서요.”

이용승이 미안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백현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뭔데 그러세요?”

“전에 형님이랑 저랑 부럽다고 생각하면서 봤던 초보자 유저가 있는데. 이번에 영상이 또 떴더라고요.”

“초보자? 아. 혹시 그때 그 유저?”

이용승 역시 기억났다는 듯 테이블을 두드렸다.

“백현 씨도 봤는지도 모르겠는데, 시작의 도시에서부터 무지하게 활약하던 유저가 한 명 있었거든. 초반부터 그렇게 두각을 드러내는 건 쉽지 않은데. 거의 앞으로 인생이 탄탄대로 같아 보여서 진짜 부러워했었지.”

박세훈이 다 같이 볼 수 있도록 스피커를 켜며 영상을 재생했다.

“어….”

백현은 움찔 굳었다.

그야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야. 시작의 도시에서 어둠 숲에 간 것도 놀라운데. 아울베어들을 아주 그냥 학살하고 있네.”

“심지어 레벨은 5랍니다.”

“이게 말이 되냐?”

영상 속 주인공은 자신이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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