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0화
#인기 급상승!
[레벨 5짜리가 어둠 숲의 보스 몬스터를 솔로 레이드 한다고?]
미튜브 인기 급상승 순위에 새로운 영상이 올라왔다.
뭉크의 절규를 담은 썸네일은 꼭 한번 클릭하고 싶게 생겼다.
영상을 재생하자, 언럭키의 활약상이 터져 나왔다.
어둠 숲에서 아울베어들을 처치하는 모습.
간결하게 딱딱 처치하는 그 동작에는 사람을 잡아끄는 매력이 있었다.
어둠 숲에서 누가 이런 사냥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이게 레벨 5짜리라고? 구라 아냐?”
우연찮게 영상을 보던 남자는 도저히 믿지 못했다.
시작의 도시는 월드 사가를 플레이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거쳐왔던 곳이다.
그렇기에 저레벨에서 어둠 숲이 얼마나 위험한지, 아울베어가 얼마나 무서운지 잘 알고 있었다.
“최소 레어 직업. 아니, 5레벨에 저런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거라면 유니크 직업일 것 같은데?”
그리고 영상이 진행되면서 남자의 생각은 바뀌었다.
어둠 숲에서 혼자 돌아다니며 아울베어들을 학살하는 것도 놀라운데, 그 마지막이 압권이었기 때문이다.
-크와아앙!
흉폭한 아울베어.
겨우 수식어 하나 붙었다고 하기에는, 초보자들에게 너무 가혹한 보스 몬스터.
최소 4인 이상의 실력자들이 파티를 맺어야 붙어볼 만한 놈이다.
그것도 전멸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놈이 내뿜는 포효는 초보자들이 저항하는 게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몸이 굳고 그대로 녀석에게 죽어서 로그아웃 당하는 게 기본인 괴물.
그렇기에 언럭키가 놈을 마주쳤을 때, 이 영상의 끝마무리가 어떻게 될지 의아했다.
‘이대로 죽는 걸로 끝인가? 아니면 도망쳐? 뭐가 됐든 좋은 마무리가 되기는 힘들 텐데??’
일단 흉포한 아울베어의 살기에 저항하는 것부터가 어렵다.
살기에 저항을 하려면 본인이 저항력을 가진 직업이거나 사제의 도움이 필요한데, 초보자 중에 사제는 보기 힘들다.
저항력을 가진 직업은 더더욱 어렵고.
-으, 으아아. 언럭키님! 저 다리가 안 움직여요!
실제로 카메라를 찍고 있던 사람은 당황해서 소리쳤다.
그럼에도 프로의식이 있는지 영상에 언럭키의 모습은 잘 담기고 있는 게 웃겼다.
다만, 영상 속 언럭키는 카메라맨과 다르게 전혀 겁먹지 않았다.
오히려 흉포한 아울베어를 보며 씨익 미소지었다.
‘웃어?’
-귀 아파. 이 자식아.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
그렇게 한 마디 남겨준 뒤, 언럭키는 녀석을 향해 정면으로 돌진했다.
어떻게 녀석의 포효에 저항했는지 몸놀림은 번개 같았다.
그 후, 커다란 녀석의 덩치에 달라붙어 미친 듯이 칼질을 시작했다.
-푸확!
-촤악!
집채만 한 발바닥이 날아오는데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하고 반격.
무장 상태를 보아하니 스치기만 해도 한 방인데 그 한 방을 맞아주질 않았다.
전부 피하고 조그마한 틈에 칼날을 쑤셔 넣는 모습은 예술 그 자체였다.
‘뭐, 뭐야?’
깜짝 놀란 남자가 채팅창을 쳐다봤다.
자신과 비슷한 반응들이 대다수였다.
<와 미친. 저 움직임 뭐냐?>
<칼질이 어떻게 저렇게 핀포인트로 꽂히지 ㄷㄷㄷ.>
<저게…레벨 5짜리?>
<누가 저걸 보고 초보자라고 하겠냨ㅋㅋㅋㅋㅋ.>
미튜브 최초 스트리밍 영상은 시청자들이 실시간으로 채팅을 쓸 수가 있는데, 경악과 감탄하는 반응들이 마구 올라왔다.
“와….”
남자는 육성으로 감탄사를 터트렸다.
월드 사가를 플레이하는 유저라면 누구나 이 슈퍼플레이를 보고 똑같은 반응을 보일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언럭키는 혼자서 흉포한 아울베어를 처치하는 데 성공했다.
약간의 HP만 남겨두고 놈을 쓰러트리는 그 모습은 보는 입장인데도 전율이 흘렀다.
“아, 안 되겠다. 이건 더 많은 사람이 봐야 해!”
스트리머 컵라면.
영상을 올린 계정 주인은 처음 들어보는 사람인데, 그리 유명하지 않은 종합 게임 스트리머인 것 같다.
영상 시청자가 적은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많지도 않았다.
지금도 인기 급상승 순위에 들어가면서 사람들이 모이고 있었지만, 남자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이 엄청난 모습을 남들이 더 봐줬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에 남자는 월벤에 직접 클립을 따고 링크를 써 붙였다.
[제목 : 개쩌는 초보자가 등장했다. 솔직히 동레벨이었으면 랭커들도 떡바를듯!?]
-(스크린샷)
-(영상)
-(스크린샷)
-(링크)
-일단 어그로 끈거 미안하고. 하이라이트 부분만 따왔다. 보고 댓글 달아주라.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한 건 이 남자 혼자만이 아니다.
이와 같은 게시글들이 월벤을 포함한 여러 커뮤니티에 확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
컵라면은 언럭키를 따라갔다.
이 도시 ‘빌리프펜’에서는 편하게 영상 찍고 활동할 수 있는 사냥터를 찾는 게 일이다.
유저 숫자가 너무 많아서 그렇다.
그래서 원래는 자신이 사비를 써서라도 언럭키를 위해(정확히는 미튜브 영상을 위해) 사냥터를 구매해주려 했는데, 그가 먼저 구했다고 한다.
그렇기에 상당히 궁금했다.
‘도대체 소속이 어디이길래 레벨 10짜리한테 사냥터 지원까지 해주는 걸까?’
내심 컵라면은 언럭키가 대형 길드 소속이라고 추측하긴 했다.
그가 먼저 밝히지 않기에 묻지는 않았지만, 유니크 이상의 직업을 가졌을 거라고 추측되는 상황.
당연히 캐릭터를 쉴 새 없이 갈아서 만들었을 테고, 그렇다면 재벌 아니면 대형 길드나 회사의 지원을 받는 유저겠지.
그리고 사냥터까지 지원받는 걸 보니 더욱 그의 정체에 대해 궁금증이 생겼다.
‘아니.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자. 난 그냥 영상만 찍으면 그만이야.’
억지로 비밀을 캐내다가 비호감이 되긴 싫다.
자신의 할 일은 간단하다.
좋은 영상을 만들어서 자신의 미튜브 채널을 키우는 것!
그렇게 생각했지만, 얼마 후 컵라면은 저도 모르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언럭키 님. 도대체…정체가 뭔가요?”
그들이 도착한 곳은 빌리프펜의 어느 구석 담벼락 밑.
하수도로 연결되는 지하였다.
장비가 두꺼우면 들어가기도 힘들 만큼 좁은 구멍을 통과하니 지하수로 사냥터가 나왔다.
컵라면은 입을 쩍 벌렸다.
“여, 여기는 알려지지 않은 던전 아닙니까!”
월벤에 공개되어 유저들로 드글거리는 사냥터를 구매한 게 아니다.
극소수의 유저나 길드가 독식하는, 자신들만의 비밀 던전!
특별한 유저들이나 이용한다는 그곳에 자신들이 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습니다.”
언럭키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렇게밖에 말할 수가 없었다.
제가 무지개색을 보는 능력을 가졌는데요, 초록색 빛이 흘러나와서 따라와 보니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라고 얘기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런 언럭키의 반응에 컵라면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묻지 말아 달라는 거군요. 알겠습니다.”
비밀 사냥터를 가지고 있다는 건 대형 길드나 대기업 소속이라는 뜻일 것이다.
방대한 정보력으로 확보한 사냥터 중 하나일 테고, 그걸 제공받은 것이겠지.
‘내 생각보다 더 대단한 분이었나 보군.’
일반 유저에게 이런 걸 제공해줄 리가 없다.
그들이 키우는 결전 비밀병기가 아닐까?
허나 컵라면은 곧 고개를 저었다.
굳이 여기서 더 생각을 이어나가지는 말자.
내 할 일에 집중하자.
“이런 곳이라면 방해받을 일도 없겠군요. 제가 언럭키 님의 사냥 영상 제대로 찍어 보겠습니다!”
컵라면이 더욱 의욕 넘치게 말했다.
언럭키 역시 어서 던전으로 들어가려 했다.
최초 발견 48시간 버프 지속 시간은 지금도 줄어들고 있었다.
뽕을 뽑기 위해서는 빨리 움직일 필요가 있었다.
‘…근데 잠깐만.’
허나 문득 그의 발걸음이 멈춰졌다.
‘그냥 이렇게 단순하게 사냥을 하는 것만으로 괜찮을까?’
그는 단순히 기록용 브이로그 영상을 찍으려는 게 아니다.
반드시 영상이 터져줘야 한다.
월에 최소 천만 원씩 빚을 갚지 않으면 성 팀장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
그게 아니더라도 빚을 제대로 갚아 성 팀장에게 요구하고 싶은 조건이 있었다.
그걸 생각하면, 영상이 밋밋해서는 안 된다.
‘물론 지금 내 스펙에 알려지지 않은 히든 던전에 들어왔다는 것만으로도 조회수는 보장되겠지만…여기서 더 펌핑시킬 수도 있겠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크리에이터라면 항상 더 큰 판을 짤 줄 알아야 하는 법!
고민하던 언럭키의 머릿속에 문득 어떤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가 컵라면을 바라봤다.
“컵라면 님. 혹시 연기 좀 할 줄 아세요?”
“네?”
“이번 영상은 조금 색다르게 출발해보죠.”
“??”
***
언럭키의 제안은 간단했다.
이 던전을 우연히 발견하는 것처럼 영상을 찍자고.
두 사람이 빌리프펜을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던전을 발견해서 사냥을 하게 되었다는 식으로 촬영하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하면 장점이 두 개지.’
하나는 영상 조회수가 보장된다는 점이다.
월드 사가의 알려지지 않은 던전이라고 하면, 거의 무조건적으로 어그로가 끌릴 터.
조회수는 보장되는 걸 넘어서 역대 최고를 기록할 것이다.
‘그리고 홍보도 돼.’
언럭키는 언제까지 이 도시에 있을 생각이 없었다.
최대한 빠르게 레벨을 올려서 또 다른 도시로 넘어갈 것이다.
그때 가면 자신만이 알고 있는 이 도시의 던전은 필요가 없게 된다.
아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쓰지 못할 바엔 파는 게 낫다.
그때 가서 직접 발품 팔며 살 사람을 구하는 것보다는, 영상에 소개해서 구매자를 만드는 게 훨씬 좋을 터.
그렇기에 두 사람은 다시 던전의 입구 부근으로 가서 촬영을 시작했다.
“우, 우와! 너무 신기해요, 언럭키 님! 이런 곳에 던전이 있다니! 이거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 던전 아닌가요!?”
“…컵라면 님.”
“네?”
“연기 너무 못 하시는 거 아닙니까?”
“…….”
언럭키의 말에 컵라면의 어깨가 움찔거렸다.
컵라면의 목소리는 유치원생도 연기라는 걸 알아챌 것처럼 어색했다.
“크흠…. 티 났나요?”
“네.”
언럭키가 짜게 식은 눈으로 쳐다보자 컵라면은 민망한지 시선을 피했다.
“하, 하하…사실 제가 종합 게임 스트리머인데 먹방도 하거든요. 아주 가끔 광고 들어오면 맛있게 먹는 척하는데 시청자들이 연기 너무 못한다고 뭐라고 하더라고요.”
멋쩍은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이는 컵라면.
그래. 사람이 어떻게 뭐든지 다 잘하겠나.
언럭키가 가볍게 한숨을 쉰 뒤 말했다.
“다시 해보죠.”
“네! 이번에는 정말 잘 해볼게요!”
결국 두 사람은 비슷한 영상을 6번 더 찍고서야 던전에 입장할 수 있었다.
***
던전 안에서 출몰하는 놈은 ‘머드 칵’이라는 몬스터였다.
이족보행 바퀴벌레 형태로서, 외관은 조금 징그럽지만 경험치 효율이 상당히 좋다.
이게 두 번째 캐릭터인 컵라면은 이미 여러 경험으로 단련되어 있어서 머드 칵을 보고도 눈 하나 깜짝 안 했다.
언럭키는 그가 학을 데고 도망갈까 걱정했는데, 정반대였다.
-이럴 수가! 이런 좋은 던전은 도대체 어떻게 제공받으신 거예요?
머드 칵은 생김새는 조금 그렇지만 레벨업 효율은 굉장히 좋은 몬스터이다.
때문에 그는 이렇게 좋은 몬스터가 서식하는 던전이라는 것에 좋아했을 정도였다.
‘다행이야. 사냥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겠어.’
카메라맨이 도망(?)칠 수도 있다는 걱정에서 해방된 언럭키는 마음껏 움직였다.
그는 이미 컵라면이 도착하기 전에 이 던전에서 몇 시간이고 사냥을 진행했었다.
그러면서 얻은 교훈도 존재했다. 이 더러운 놈들과는 절대 엮이고 싶지 않다는 것!
-푹!
-촤악!
검으로 베고 찌를 때마다 진흙이 튀고 체액이 분출됐다.
언럭키는 그 경로를 다 계산하며 더러운 것들이 옷깃에도 스치지 않도록 주의했다.
마치 춤을 추는 것처럼 머드 칵들 사이를 배회하고 다니는 언럭키.
그가 지나간 주변은 오물로 난장판이 되었지만, 정작 그는 멀쩡했다.
“와아….”
그 모습을 보며 컵라면이 입을 쩍 벌렸다.
던전에 들어오기 전에 촬영한 영상은 연기라는 티가 너무 많이 났다.
언럭키도 컵라면도 알고 있었다.
이런 허접한 연기를 계속했다가는 오히려 시청자들에게 욕만 더 처먹으리란 것을.
허나 던전에 입장한 후부터는 못 하는 연기를 더 이상 할 필요 없었다.
“사람이…저렇게도 움직일 수 있구나….”
몽롱한 눈으로 앞을 바라보는 컵라면.
그가 중얼거리는 목소리에는, 지금 느끼는 진실된 감정들이 듬뿍 배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