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8화
다시 게임 속에 접속한 뒤, 언럭키가 눈을 뜬 장소는 그가 몇 시간 동안 일하던 (주)머니앤캐시의 작업장이었다.
보기만 해도 기분 더러워지는 가루들이 널려있는 곳.
허나 언럭키는 웃음부터 나왔다.
“어어. 수고하시네요?”
“…….”
앞에는 아까 만났던 그 덩어리 직원이 눈을 부리부리하게 뜨고 있었다.
그를 보며 언럭키가 어깨를 으쓱였다.
“다시 봐도 커스터마이징을 심하게 하셨네. 원본 얼굴이 보이지도 않을 정도야. 누가 당신이랑 덩어리랑 연관 지을 수 있을까요?”
“닥치고 당장 꺼져.”
직원은 입술을 깨물더니 바깥으로 나가는 문을 가리켰다.
성 팀장과 딜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기에 그는 언럭키에게 아무런 해코지도 할 수 없었다.
아니. 오히려 그걸 넘어서 대우해줘야 했다.
-앞으로는 그놈을 최대한 챙겨줘.
-어…어떻게 챙겨주라는 말씀이십니까?
-자잘하게 귀찮은 것들 없도록 관리해 주라고. 말귀 못 알아듣나?
-아닙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 무시무시한 팀장님을 어떻게 구워삶은 건지. 챙겨주라는 말이 나오다니!
그렇기에 언럭키가 놀리듯이 툭툭 말하는데도 어금니만 꽉 깨물 뿐이었다.
“두고 보자. 니 빚 갚는 데 실패하면 내가 직접 밭에다가 파묻어주마.”
“예, 예. 두고 보자고 하는 사람 하나도 안 무섭네요.”
언럭키는 어깨를 으쓱이며 걸음을 옮겼다.
그 역시 여기 더 있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저벅, 저벅.
지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걸었다.
그리 높지 않은 계단이지만, 한 발 한 발 갈 때마다 묘한 기분이 들었다.
-끼익.
마침내, 작업장의 문을 열고 언럭키가 밖으로 나왔다.
찬란한 햇살이 비추었다.
이곳에 직접 발을 디딜 때만 해도 내심 굉장히 많이 떨렸는데, 이제는 당당하게 이렇게 나갈 수 있다니.
“스읍.”
그가 코로 힘껏 공기를 빨아들였다.
“하아. 이게 자유의 향기구나.”
노력하는 자에게 복이 온다.
이것저것 제약은 많았지만, 제한적인 자유를 얻었다.
물론 아직은 바람 앞의 등불처럼 불안하고 자칫하면 다시 시궁창에 처박힐 수 있다.
허나 언럭키는 내심 또 한 번 다짐했다.
절대 이 자유를 다시 잃어버리지 않겠다고.
오히려 더욱 날갯짓해 저 높이 날아오르겠다고!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다.”
언럭키가 눈을 번뜩였다.
이제 본격적으로 월드 사가에 뛰어들 시간이었다.
***
“얼떨떨하네.”
스트리머 컵라면은 자신의 미튜브 계정 페이지에 적혀있는 금액을 다시 한번 쳐다봤다.
[이번 달 정산 예정금 : US$ 2211.57]
이번 달 미튜브 정산금이다.
월 평균 100~150만 원 정도의 수익을 얻는 채널인데, 벌써 200만 원도 훌쩍 돌파했다.
심지어 아직 채 한 달이 되지도 않았다.
‘이게 다 언럭키 님 덕분이야.’
언럭키의 영상이 두 개나 빵 뜨면서 수익이 훌쩍 높아졌다.
심지어 그 두 개의 영상을 보고 자신의 다른 영상을 보기 위해 유입된 시청자들도 있었다.
덕분에 지금도 실시간으로 돈이 들어오고 있었다.
“우하하핫! 숨만 쉬는데 돈이 들어오다니!”
컵라면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짜릿한 흥분감이 등골을 스치고 지나갔다.
게다가 이건 끝이 아니었다.
“신에게는 아직 영상 하나가 더 남아 있사옵니다!”
그가 시작의 도시에서 찍고 편집한 언럭키의 영상은 총 3개.
그중 2개만 올렸고, 마지막 하나가 남아 있었다.
게다가 그냥 영상이 아니다.
어둠 숲의 보스 몹인 흉폭한 아울베어를 잡는 장면이 담겨 있는 것!
하이라이트인 셈이다.
‘이번 건 이미 올린 두 개의 영상을 합친 것보다 더 크게 터질 거야.’
느낌이 온다.
편집하는 내내 이건 무조건 잘될 거라고 본능이 소리쳤었다.
이것까지 시리즈로 업로드를 하면 화룡점정을 찍을 수 있을 터!
이 몇 개의 영상이 잘 되면서 채널이 빠르게 커지고 있었다.
이 모든 게 언럭키 덕분이었다.
감사한 마음에 아직 정산도 되지 않았지만 먼저 돈부터 송금했다.
조금이라도 그분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였다.
‘이제 문제는…이 다음이지.’
영상 2개로 슬슬 입소문이 흘러나오고 있다.
여기서 추가 컨텐츠를 공급해줘야 급물살을 탄 것처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법.
언럭키님이 레벨 10이 되어 다음 도시인 빌리프펜으로 넘어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실력이라면 거기에서도 두각을 드러내는 건 어렵지 않겠지만,
미튜브로 대박 칠 수 있을 만한 영상을 또 만들 수 있을까?
‘쉽지 않겠지.’
아니. 엄청 어려울 것이다.
그렇기에 컵라면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졌다.
‘내가 뭐라도 해야 해.’
자신은 현재 언럭키의 영상을 만들기로 계약을 했다.
그렇다면 어떤 흥미로운 컨텐츠를 만들지 고민하는 건 자신의 역할이었다.
이런저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지만 그리 마음에 드는 건 없었다.
고민하던 그는 게임 속에 접속했다.
일단 그 역시 레벨 10을 찍고 언럭키를 따라 빌리프펜에 따라가야 했다.
만나서 또 이야기를 나누고 고민하다 보면 좋은 해결책이 나올 수도 있었다.
***
도시 빌리프펜은 레벨 10~30 사이의 유저들이 활동하는 곳이다.
사냥터 역시 그렇게 세분화되어 있었다.
‘내 스펙이라면 빌리프펜의 중간급 사냥터부터 가도 될 거야.’
레전더리 직업에 유니크급 아이템. 거기에 업적까지 좋은 것들을 여러 개 얻었다.
동레벨에서는 최고 수준일 터.
때문에 언럭키는 한 20레벨 선의 사냥터부터 가서, 빠르게 레벨을 올릴 생각이었다.
다만 걱정되는 점이 있었다.
‘월벤에서 보기로는 빌리프펜의 자리 경쟁이 치열하다는데. 걱정이군.’
저레벨 유저들이 이용하는 도시는 사냥터보다 유저들의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다.
그렇기에 자리싸움이 치열했는데, 특히나 효율 좋은 사냥터는 더욱 그러했다.
‘제발 운 좋게 좋은 사냥터 가서 좋은 자리 얻었으면 좋겠다.’
물론 그럴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을 것이다.
그랬으면 닉네임을 언럭키가 아니라 럭키로 지었겠지!
그리고 역시나…
“여기는 저희 파티가 기다리고 있는 자리입니다.”
“그렇군요. 그럼 제가 그다음으로 줄을 서도 될까요?”
“글쎄요. 그건 뒤에 계신 분들께 여쭤봐야 될 것 같은데요.”
남자는 어깨를 으쓱이며 뒤편을 가리켰다.
언럭키가 그쪽을 바라봤다.
“나오세요. 우리는 벌써 5시간째 기다렸어요!”
“줄 서세요, 줄!”
저 뒤쪽까지 이어진 줄.
무려 7팀이나 기다리고 있었다.
숲에서 나오는 레벨 10~15 가량의 몬스터 ‘주먹코 원숭이’를 사냥하기 위해서이다.
경험치도 짭짤하고 골드도 괜찮게 주는 놈이지만, 자리가 그리 넓지 않았다.
지금도 실시간으로 도시에 입성하는 수많은 초보 유저들.
그들은 사냥터를 이용하기 위해 오랫동안 줄을 서야 했다.
당연히 사건 사고가 끊이질 않았다.
“이 새끼. 어디서 새치기야?”
“새치기는 무슨. 여기 원래 내 자리였어. 잠깐 화장실 다녀오려고 로그아웃 한 건데?”
“웃기지 마. 내가 여기에 몇 시간째 있었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
“변비가 심했었어. 내 화장실 사정이 그렇게 궁금해? 꼬우면 한 판 붙을까?”
“…뒤져라!”
어차피 가상현실이다 보니 시비가 걸려 서로 싸우는 일은 너무나 흔했다.
PK를 하게 되면 카르마 수치가 올라간다지만 초보자 때는 그리 큰 불이익이 없다.
빡치게 하면 그냥 냅다 들이받는 것이다!
‘여기는…있으면 안 되겠군.’
난장판이 되어가는 사냥터를 보며, 언럭키는 결국 그 자리를 벗어났다.
월벤에서 초보자 추천 사냥터라는 글을 보고 왔건만.
남들도 다 그걸 본 모양인지 몬스터보다 유저 숫자가 훨씬 많았다.
“어떻게 해야 하나….”
도시 광장으로 돌아온 언럭키는 생각에 잠겼다.
지금 그에겐 1분 1초가 중요했다.
컵라면 덕에 미튜브 영상 수익이 즉각적으로 들어오고 있다지만, 그건 단발성이다.
아직 그는 대형 스트리머도 아니고 이름 있는 스타 플레이어도 아니었다.
고작해야 레벨 10.
이제 막 시작하는 유저 치고 두각을 내고 있는 거지, 관심받기 어려운 레벨이다.
어쩌다가 운 좋게 떠서 수익을 내고 있지만, 그러다가 잊힌 사람들이 한 둘이던가.
이러고 잊히면 다시 뜨는 건 더 어렵다.
월에 천만 원 이상씩 빚을 갚아야 하는 입장에서, 그런 미래는 상상도 하기 싫다.
“하아.”
다시 한번 한숨이 나왔다.
원하는 건 명확했다.
첫 번째는 다른 유저들에게 치이지 않고 마음껏 쓸 수 있는 사냥터.
난이도는 조금 높아도 상관없다.
레전더리 직업에다가 이제 레벨 10이 되어 <명예의 시작 롱소드>까지 착용할 수 있으니 어지간한 몬스터는 원킬감이다.
‘그러면서 미튜브에 영상으로 쓸 만큼 참신했으면 좋겠고.’
그냥 평범한 사냥터에서 사냥하는 영상이 뜨기는 어렵다.
잘 잡는다고 해도 다들 거쳐 간 사냥터 아니던가.
흔해 빠진 컨텐츠로는 언럭키가 원하는 것처럼 크게 터질 수는 없었다.
물론 원하는 것은 이렇지만…
“그런 곳을 어떻게 구하냐고.”
그가 다시금 한숨을 쉬었다.
역시 인생 쉽지 않다.
그렇게 생각하며 멍하니 지나가는 사람들을 쳐다봤다.
유저들과 걸어 다니는 NPC들이 보였는데, 퀘스트를 지닌 NPC들에게는 빛이 흘러나왔다.
단 한 명도 빼놓지 않고 전부 붉은 빛!
노멀 퀘스트를 뜻하는 빛이다.
‘오늘은 운이 없네.’
시작의 도시 때처럼 노란색 빛 좀 팡팡 터져주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 순간이었다.
“어!?”
언럭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방금…”
…순간적으로 초록색 빛을 본 것 같은데?
눈을 크게 뜨고 방금 전 쳐다봤던 장소를 살펴봤다.
지나가는 NPC들이 뿜어내는 붉은빛들은 전부 무시했다.
그렇게 사람들 틈으로, 잠깐이지만 초록색 빛이 다시금 보였다.
언럭키는 후다닥 이동했다.
광장에는 NPC나 유저들이 바글거렸기에 그들 사이를 억지로 뚫고 들어가야 했다.
“잠시만요!”
“아 씨, 뭐야. 치지 마세요.”
“음…예의 없는 무뢰한은 아닌 것 같은데. 어서 지나가시오.”
유저와 NPC의 반응이 확 갈렸다.
유저들은 언럭키를 욕하는 반면, NPC들은 불쾌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그를 이해해 주었다.
지난번에 퀘스트 성과로 얻은 명예 +10 상승했었는데.
그때 올랐던 명예 수치가 이런 식으로 적용이 되는 듯싶다.
인파를 뚫고 언럭키는 도시 골목으로 들어갔다.
초록색 빛은 예상외로 사람에게서 흘러나오지 않았다.
‘땅?’
바닥.
그것도 물 빠져나가는 배수로 철창 안쪽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 안에…뭐가 있다는 건가?’
언럭키가 주변을 슬쩍 둘러봤다.
광장은 사람이 드글거렸는데 여기는 인적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특히 이 골목은 뭐 다른 것도 없기에 사람이 더 없는 편이었다.
-덜컹
언럭키가 배수로 쇠창살을 잡고 거세게 잡아당겼다.
넘치는 현실감과 무한한 자유도를 가진 월드 사가는 이런 것도 가능했다.
낡은 쇠창살은 정비가 잘 안 되어있는지 쉽게 빠졌다.
‘안에 뭐가 있는 건가?’
어떻게 몸을 구겨 넣으면 들어갈 만해 보인다.
사실 배수로 속으로 들어간다는 미친 짓은 일반인이 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 안에서 초록색 빛이 흘러나온다면?
‘그럼 가야지.’
들어갔다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가보긴 해야지.
빨주노초파남보.
언럭키가 볼 수 있는 무지개 행운의 등급이다.
그중에서 초록색은 4번째로, 초록색 퀘스트를 해결했을 때는 유니크 아이템을 보상을 받았다.
즉.
‘저기 있는 초록색 빛이 뭔지는 몰라도, 유니크급의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니까!’
유니크라니.
당장 얼마 전에 얻은 ‘명예의 시작 롱소드’가 천만 원을 훌쩍 넘어갈 텐데.
저 빛을 따라가다 보면 비슷한 보상을 하나 더 얻을 수 있다는 것 아닌가!
앞으로 매달 천만 원 이상의 빚을 꼬박꼬박 갚아야 하는 언럭키의 입장에서는 절대 놓칠 수 없었다.
그런 생각으로 언럭키가 배수로 안으로 몸을 구겨 넣어 휙 안으로 떨어졌다.
턱 소리와 함께 꽤 넓은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동시에 눈앞에 메시지가 나타났다.
-띠링!
[빌리프펜 지하 수로 던전을 발견하셨습니다.]
[최초로 발견한 던전입니다.]
[48시간 동안 던전 내에서의 경험치 획득량과 골드 획득량이 +150% 상승합니다.]
-띠링!
[업적이 주어집니다.]
[‘최초의 입장(레어) 업적을 획득합니다.’]
‘최초 발견 던전…!?’
언럭키의 눈이 크게 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