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7화
“지금 뭐라고….”
성 팀장이 말끝을 흐렸다.
그가 다시금 영상을 바라봤다.
시작의 도시에서 눈에 확 띌 만큼의 퍼포먼스를 보여준 영상.
자신뿐만 아니라 월드 사가에서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눈여겨 봤을 것이다.
초반부터 저런 기세라면 언젠가 분명 상위권으로 치고 올라갈 수도 있을 테니까 말이다.
헌데…그 주인공이 눈앞의 이 빚쟁이라고?
“확실한가요?”
“네.”
“그렇다면 알겠습니다.”
성 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정말 당신이냐고 묻거나 증명하라거나 하지 않았다.
금방 들킬 게 뻔한 그런 거짓말을 뭐 하러 하겠는가.
자신을 여기로 부르는 대범한 짓까지 하면서 말이다.
그 대신 성 팀장은 백현의 행동들을 추측했다.
금방 결론을 도출해냈다.
“일부러 그 난리를 펼친 거군요. 능력이 있으니까 그걸 가지고 저와 협상하기 위해서요.”
“예.”
백현은 고개를 끄덕여 깔끔하게 인정했다.
애초에 상황이 상황인지라, 상대를 완전히 속이는 건 불가능하다.
성 팀장은 갑이고 자신은 을. 아니, 을도 아니고 병이나 정쯤 되리라.
그렇기에 이렇게 1대1로 대화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잡는 것조차, 이런 소란을 일으키지 않으면 불가능했다.
‘그래도 반은 성공이야. 박세훈 씨에게 들은 성 팀장의 성격에 의하면, 이걸 듣고 다시 작업장에 처넣을 리가 없어.’
그렇게 융통성 없는 사람이 아니다.
백현이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을 때, 성 팀장이 말했다.
“좋습니다. 단둘이서 좀 더 자세히 얘기해보죠.”
백현이 주먹을 꽉 쥐었다.
일단 여기까지 오는 데는 성공했다.
***
백현이 요구한 두 가지 조건이었다.
작업장에 갇혀있는 대신 자유롭게 게임 플레이를 하게 해줄 것.
그리고 이자는 여전히 반으로 줄인 걸 유지해줄 것.
“그럼 제 제안을 받아주시는 겁니까?”
“글쎄요.”
독대하기로 한 뒤 백현은 애써 기쁜 마음을 숨기며 물었다.
그러나 성 팀장은 예상외로 삐딱했다.
“당신이 스트리머로 성공한다면 회사 입장에서는 빚을 빨리 변제할 수 있어서 좋겠지만, 그걸 들어준다면 저한테 무슨 이득이 있습니까?”
맞는 말이었다.
이건 전적으로 백현에게 이득이 되는 거래였지, 성 팀장 입장에서는 무조건 들어줄 필요 없었다.
백현 역시 이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박세훈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성 팀장은 까다로운 사람이라고 했다.
-돈 귀신같은 놈이지. 철저하게 계약대로 움직이고. 그 대신에 계약 내용 역시 무조건 지키는 놈이라서, 그쪽 관련해서 사기 칠 염려는 없어.
밥 먹으면서 부업을 하고 싶다니 그가 조언해 준 말.
성 팀장은 철저하다.
일처리도 깐깐하고 빚쟁이들을 완벽하게 틀어쥐고 있었다.
그런 그의 눈을 벗어나서 무언가를 하기는 어렵다.
당장은 괜찮을 수 있어도, 나중에 걸렸다가는 큰 곤욕을 치를 것이다.
‘그러니까 차라리 이 기회에 같은 편이 되어버리는 게 더 좋겠지.’
손해를 조금 보더라도 그게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이득이다.
그렇게 판단한 뒤, 백현은 눈 딱 감고 제안했다.
“10%.”
“네?”
“앞으로 제가 얻을 수익의 10%를 드리죠.”
“…….”
성 팀장은 제정신인가 싶어 백현을 바라봤다.
그 누구보다 돈을 소중히 여겨야 할 빚쟁이가 자기 수익을 나눠주겠다고?
심지어 비율로?
“흐음.”
성 팀장이 백현의 눈을 바라봤다.
단호하면서도 깊은 곳 어딘가에 독기가 넘실거리는 눈빛.
첫날 봤던 그 눈빛이었다.
형제처럼 지내온 오래된 친구가 보증금을 가지고 튀어서 빚더미에 쌓였다는 걸 알았을 때도 딱 저런 모습이었지.
‘저놈….’
개인적으로 성 팀장은 저런 사람을 싫어하지 않았다.
“수익률을 떼어주겠다는 건 저보고 당신의 부업이 잘 굴러가도록 도와달라는 것도 있겠죠?”
“예. 그냥 상납금만 받고 땡 치면 조금 그렇죠.”
성 팀장이 피식 웃었다.
저런 얘기를 이렇게 대놓고 하다니.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그런 양아치 같은 짓은 별로 안 좋아합니다. 다만 10%는 너무 많은 것 같으니 5%로 만족하겠습니다.”
세상에 대가 없이 받는 돈은 없다.
받은 만큼 일을 해줘야 한다.
많이 받으면 그만큼 요구하는 것도 많아지겠지.
그렇기에 10%에서 5%로 줄였다.
고작 5%의 수익을 더 얻자고 무리해서 뭘 더 해주기는 싫었다.
그의 성향상 가치에 비해 과도한 돈을 받는 건 싫어하기도 했고.
“감사합니다.”
“아, 그리고 저도 위에다 이 거래의 타당성을 보고해야 하기 때문에, 실적을 꾸준히 보여주셔야 합니다.”
“실적이라면?”
“월에 1000만 원. 최소 매달 1000만 원 이상 빚을 갚지 못한다면 우리가 굳이 당신을 작업장에 처넣지 않을 메리트가 없죠. 그러니 1000만 원이 단 한 번이라도 모자라게 된다면 거래는 없던 걸로 하겠습니다.”
성 팀장이 속으로 슬쩍 웃었다.
개인적으로 백현이 마음에 들었지만, 공과 사는 구분해야 한다.
‘이놈이 정말로 영상 속 그 주인공이란 말이지.’
시작의 도시에서 활약하는 모습이 신기해서 꽤 인상적으로 본 영상이었다.
동시에 저놈은 앞으로 승승장구하겠다고 생각했는데, 설마 자신의 빚쟁이였을 줄이야.
‘나쁘지 않아.’
그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주)머니앤캐시’ 의 올해 사업 목표는 작업장을 키워 회사의 덩치를 불리는 것이다.
그 후 올해 말이나 내년쯤에 다른 분야로도 진출하려고 했다.
게임 속 아이템과 정보 매매, 길드 창설, MCN 쪽 등이 그것이다.
‘내년에나 생각했던 MCN 파트를 조금 빠르게 할 수도 있겠군.’
MCN 실적은 스타급 스트리머를 얼마나 데리고 있냐에 따라서 정해진다.
그렇기에 눈앞의 백현이 복덩이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잠깐 본 영상에서도 가능성을 느꼈는데, 앞으로 성장한다면 회사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될까!
‘단순히 작업장의 광부로 써먹는 것보다는 훨씬 낫겠지.’
그 자리를 대체할 빚쟁이는 얼마든지 충원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이놈은 성공할 수 있어. 내 감이 그렇게 소리치고 있다.’
도대체 무슨 직업을 얻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시작의 도시에서 활약하는 것도 그러고 운빨도 그렇고.
저 정도라면 못 해도 중박은 치겠지.
그래서 성 팀장은 앞으로도 백현을 잡아두고 싶었다.
그 수단이 바로 월 1000만 원의 빚 변제였다.
‘최소 처음 세 달 정도는 절대 빚을 못 갚을 거야.’
우연찮게 찍힌 미튜브 영상으로 떴다고 하지만 돈을 버는 건 다른 문제였다.
새로 미튜브 계정을 만든다고 해도 곧장 월에 1000만 원의 수익이 생기는 건 쉽지 않다.
게다가 그걸 입금받는 건 더 어려운 일이다.
미튜브의 본사는 미국에 있는데, 그걸 돈으로 받으려면 외환 통장도 개설해야 한다.
유료 계정 심사도 통과해야 하고 그 후에 정산도 최소 1달은 있어야 하고…
‘그렇게 한 달씩 빚 변제에 실패할 때마다 조건을 내거는 거지.’
당연히 진짜 다시 작업장에 처넣을 생각은 없었다.
변제를 한 번 못하면 빚을 다 갚고도 회사와 계약 1년 연장, 또 못하면 2년 연장…
이런 식으로 조금씩 옭아맬 생각이었다.
‘저런 놈은 무작정 다루면 안 되고, 서서히 힘이 빠지게 만들어야 하니까.’
천천히.
아주 서서히 늪지대처럼 빠트려야 한다.
그때 백현이 말했다.
“이건 너무 저에게 불리한 것 아닌가요? 솔직히 처음 몇 달 정도는 수익이 나기 어렵지 않습니까.”
“싫으면 그냥 작업장으로 다시 가도 됩니다.”
“마냥 싫다는 건 아닙니다. 어려운 조건이니 달성했을 경우 저에게도 뭔가 주어지는 게 있으면 좋겠다는 거죠.”
성 팀장이 안경을 한 번 고쳐 썼다.
“뭘 원합니까? 들어는 보겠습니다.”
“그건 크게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
성 팀장은 고민했다.
백지 수표를 바란다니.
허나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죠.”
어차피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면 거절하면 그만이다.
“첫 세 달 동안 빚을 잘 갚으면,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요구 조건을 들어드리겠습니다.”
협상이 끝났다.
***
성 팀장이 떠나고 난 뒤.
한바탕 폭풍이 몰아쳤던 방 내부가 조용해졌다.
침대에 앉은 백현이 마른세수를 했다.
“하아…역시 독사 같은 사람이네.”
그래도 얼추 잘 끝맺음 지었다.
수수료랍시고 수익의 10%를 떼어주겠다고 제안한 건 미래를 보고 한 투자였다.
그렇게 한다면 당장 압류된 계좌를 풀어주고 빼앗아간 자신의 휴대폰을 돌려주는 등, 이것저것 지원해 줄 테니까 말이다.
‘그 대가로 5%의 수수료는 나쁘지 않아.’
무슨 생각으로 10%가 아니라 5%만 받겠다고 한 건지 모르겠지만, 더 좋다.
나중에 단위가 달라지면 문제가 생기겠지만 지금 당장은 받아들일 만했다.
문제는 다른 부분이었다.
“무슨 당장 다음 달부터 1000만 원씩 갚으래?”
그 돈이 어디 뉘 집 개 이름도 아니고. 장난하나.
물론 그쪽도 무리한 조건이라고 생각했는지 성공한다면 이쪽의 요구를 들어주기로 했다.
“흐흐.”
백현이 슬쩍 손을 들어 절로 웃음이 나려는 입가를 가렸다.
성 팀장은 자신이 무조건 이길 거라고 생각한 것 같지만 천만의 말씀.
그에게는 방법이 있었다.
‘당장 <명예의 시작 롱소드> 만 팔아도 가능하니까.’
거래 가능한 유니크 아이템.
경매소에 올리면 최소 천만 원은 무조건 받을 만한 아이템이다.
어쩌면 2천만 원까지 받을 수도 있겠지.
최소 두 달 치는 걱정 없다.
물론 이건 최악의 경우에 해야 할 방법이다.
앞으로 잘 성장해나가려면, 직업이 좋다고 해도 아이템이 받쳐줘야 한다.
어지간해서는 자신이 써먹어야 하니, 판매하는 건 최악의 경우에서나 그래야 한다.
그 순간이었다.
-띠링
백현의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문자 메시지가 왔다는 알림이었다.
[안녕하세요 언럭키 님! 이번에 빵 터진 영상 2개 조회수에 대한 정산을 미리 해드리려고 하는데요. 계좌번호를 알려주시겠어요?
-스트리머 컵라면-]
‘그래. 이게 있었지.’
성 팀장은 미튜브 영상이 우연찮게 떴다고 생각했겠지만, 아니다.
스트리머 컵라면은 자신의 영상 수익을 보내주겠다고 했기에, 조금이나마 미튜브 정산을 받을 수 있었다.
‘이런 식으로 초반에는 컵라면 님한테 영상 수익을 받고, 나중에 내 계정이 만들어지면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활동하면 돼.’
완벽한 계획이었다.
다만 먼저 선정산을 해주겠다고 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영상의 조회수가 수익으로 전환되는 건 최소 한 달은 기다려야 하는데.
돈이 급한 자신의 상황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컵라면 님이 아주 괜찮은 분이셨네.’
백현이 빙긋 웃으며 문자를 보냈다.
[알겠습니다. 제 계좌번호는 9xxxx-xxx…입니다.]
몇 초도 되지 않아 컵라면으로부터 다시 답장이 왔다.
[원달러 환율을 고려해서 환전했고, 지금 바로 2,425,045원 바로 입금해드리겠습니다.]
‘어…?’
백현이 저도 모르게 입을 쩍 벌렸다.
다만,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하나 있다면.
‘얼마요…?’
금액이,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크다는 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