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6화
작업장.
며칠간 성 팀장에게 얘기만 들었던 그곳을 직접 경험해 보았다.
백현은 가끔씩 궁금했었다.
매일 아침에 공용 부엌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얼굴은 왜 저렇게 초췌할까?
아무리 단순 반복 고난이도 노동을 한다고 하지만, 그래 봐야 가상 현실 게임 아닌가.
현실의 몸은 캡슐 안에서 잘 쉬고 있을 텐데 뭘 저렇게 힘들어하는 걸까.
실제로 하루 종일 사냥에 매진했었을 때는 별로 힘들지 않았다.
오히려 성취감을 느껴서 피로도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죽을 것 같다.’
언럭키는 그렇게 생각했다.
정신이 핑 도는 와중에 뒤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어이. 손 움직이는 속도 느려진다. 빨리빨리 해!”
그를 처음 이 안으로 안내해줬던 (주)머니앤캐시의 직원 중 한 명.
아마도 말단 직원일 게 분명한 놈은 하품을 쩍쩍하면서 지시만 내리고 있었다.
아니꼬워도 어쩔 수 없었다. 따를 수밖에.
-스슥. 슥.
풀잎을 으깨어 짓무른 다음 가루로 만들었다.
그걸 옆으로 보내면 옆 사람은 용량을 재서 봉투에 하나씩 포장했다.
어디서 많이 본 광경이다.
언럭키는 영화에서 이런 걸 자주 접했다.
‘그래. 범죄 조직들이 마약을 만들 때 딱 이런 식으로 작업하지.’
어두컴컴한 지하 내부.
좁은 곳에 사람 여러 명을 집어넣어 놓고 반복 노동.
그를 통해 만들어지는 건 수상해 보이는 가루였다.
만드는 과정에서 공기 중으로 조금씩 퍼져 나갔는데, 그 효과가 골 때렸다.
-띠링
[마약류 독성에 노출되었습니다.]
[검왕(레전더리) 직업의 특성 ‘정신력 보정’ 이 발동됩니다.]
마약류 독성.
무려 시스템 메시지에서 보장하는 물건이었다.
게다가 메시지는 거기에서 끊기지 않았다.
[과도한 독성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었습니다.]
[‘정신력 보정’이 약해집니다.]
[독성 저항에 일정 부분 실패합니다.]
[경고! 빠른 시일 내에 자리를 벗어나지 않는다면 약물 중독으로 사망하실 수도 있습니다.]
지속된 노출로 결국 저항에 실패했다.
‘진짜 말도 안 되는 게임이네. 이딴 것도 있고.’
이건 스탯을 버프 시켜주는 마약류 아이템이었다.
짧은 시간 능력치를 올려주지만, 과도하게 들이키면 중독되어 페널티가 생긴다.
허나 유저들은 많이 찾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싸니까.
많이 쓰면 중독된다지만 어차피 현실의 몸도 아니다.
적당한 도핑은 가난한 유저들의 사냥에 큰 도움이 되었다.
그가 다시금 메시지를 쳐다봤다.
이대로 있다가는 죽을 수도 있었다.
앞으로는 시간이 너무나 소중한 언럭키이다.
한 번 한 번의 죽음은 굉장히 치명적이었다.
게다가 아무것도 없던 초보자 꼬꼬마 때와는 다르다.
유저가 죽을 경우, 인벤토리에서 랜덤하게 아이템을 떨어트린다.
최소 1개에서 많으면 5개까지.
현재 언럭키가 보유한 아이템들은 거의 대부분이 레어급 이상. 심지어 유니크도 있다.
이걸 떨어트려서 저 거지 같은 직원 놈이 주우면 돌려줄까?
얼씨구나 웬 떡이냐 하고 경매장에 팔겠지.
최소 천만 원짜리 물건이니 줄 리가 없다.
언럭키는 판단을 내렸다.
‘이대로 있을 수는 없다.’
그가 슬쩍 입을 열었다.
“저기요.”
“닥치고 작업에 집중해.”
“궁금한 게 있어서요. 회사에서 운영하는 작업장은 다 이런 방식인가요?”
직원은 황당해 했다.
자신이 윽박질러도 아무렇지 않게 물어오다니.
개념을 상실했나?
그러다 문득 떠오른 게 있었다.
“너…그놈이구나.”
직원은 그제서야 이해됐는지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긴. 처음 봤던 그때부터 팀장님한테 바락바락 대들던 게 꼴통 같긴 했지.”
“…그때 같이 온 덩어리들 중 한 명이신가 봐요?”
언럭키 역시 그를 알아보았다.
첫날 집에 성 팀장과 함께 찾아온 덩치가 이 사람이었나 보다.
“덩어리라고 하지 마, 새끼야.”
그는 뚱뚱한 게 컴플렉스인지 게임 속 캐릭터는 적당히 건장한 모습으로 커스터마이징 해놨다.
“꼴통 새끼 같으니까 한 번만 대답해준다. 그게 왜 궁금한 건지는 모르겠는데, 약 만드는 데 말고 진짜 광산이나 밭이나 과수원도 있어. 거기서 농작물 캐 가지고 팔면 쏠쏠하거든. 대답 들었으면 이제 다시 집중해서 일해.”
모든 작업장이 이렇지는 않구나.
언럭키가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요.”
적을 알면 더 좋은 대처 방안을 찾을 수 있다.
그렇기에 작업장을 경험해 보기 위해 일부러 찾아왔다.
헌데 이 정도면 될 것 같다.
굳이 다른 작업장 형태까지 더 경험해 보는 건 시간 낭비다.
“나중에 또 볼 수 있으면 보자고요.”
“뭐?”
언럭키가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는 접속을 끊었다.
가루가 되어 서서히 사라지는 자신을, 직원이 멍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
‘과연 찾아오는 데 얼마나 걸릴까?’
백현이 천장에 달린 CCTV를 보며 생각했다.
작업실에 들어간 다음, 무단으로 접속을 종료했다.
선을 넘었다.
성 팀장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예상대로였다.
채 10분이 되지 않아서 그들이 왔다.
-쾅!
문짝이 부서지며 앞으로 기울었다.
돼지 같은 양아치 한 명이 어깨를 들이밀며 들어왔다.
그는 백현과 눈이 마주치더니 씩씩거렸다.
“너 이 자식!”
“…아까 거기 있던 직원이 당신이에요?”
백현은 다급한 상황에서도 놀라움에 눈을 크게 떴다.
게임 속 훤칠한 직원이 이 돼지라니!
“커스터마이징을 너무 심하게 하셨네. 전혀 못 알아보겠어.”
“…미친놈. 너 머리가 돌아버린 거냐? 그딴 식으로 로그아웃하면 좃 될 거라는 생각은 안 해봤어?”
덩치가 버럭 하고 화를 내는 와중에 구둣발 소리가 들려왔다.
“그만.”
나직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덩치는 흠칫 놀라더니 순식간에 진정했다.
그는 고개를 꾸벅 숙이더니 뒤로 물러났다.
빈 문으로 들어온 건 정장을 깔끔하게 차려입은 냉철한 인상의 남자. 성강호 팀장이었다.
그가 서늘한 눈으로 백현을 바라봤다.
“백현 씨.”
“네.”
“왜 그러셨습니까?”
“얘기를 좀 하고 싶어서요.”
“얘기?”
성 팀장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백현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나저나 문은 왜 부쉈어요. 저 문도 안 잠그고 가만히 있었는데.”
“농담할 기분 아닙니다.”
성 팀장이 백현의 한쪽 어깨를 쥐었다.
보기와 다르게 손아귀 힘이 엄청났다.
잡힌 어깨가 부스러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크윽.”
“당신처럼 말 안 듣는 작업자들을 우리가 안 만나봤을 것 같습니까? 여기 온 사람 중에는 양아치나 건달 출신도 많아요. 자기 화를 주체 못 하고 날뛰던 놈들도 있었죠. 그들이 모두 어떻게 되었을 것 같나요?”
“…….”
백현이 고통에 인상을 찡그리자 성 팀장이 그의 어깨를 놓아주었다.
“복도에 있는 창문을 통해 보면 이 앞에 텃밭이 보입니다. 상추나 길러볼까 만든 텃밭이긴 한데…다들 저 텃밭 아래에 묻혀 있어요.”
백현의 얼굴이 살짝 하얗게 질렸다.
‘미친놈들.’
아무리 말은 안 듣는다고 해도 그렇지.
사람을 죽여?
“아아. 오해는 하지 마세요. 죽이지 않았습니다. 사나흘 정도 텃밭 아래에 숨구멍만 뚫어놓고 묻어놓은 다음에 빼주면, 그다음부터는 고분고분해지거든요. 백현 씨도 그러고 싶나요?”
“…그건 아닙니다.”
-털썩.
성 팀장이 침대 모서리 쪽에 앉더니 다리를 꼬았다.
담배까지 한 대 입에 물었다.
아까 물러났던 덩어리가 잽싸게 다가와 불을 붙여 주었다.
“후우. 그럼 이제 들어보죠. 나랑 하고 싶단 얘기가 뭐였습니까? ”
잔뜩 협박은 했지만, 말을 들어볼 생각은 있는 모양이다.
백현이 침을 꿀꺽 삼켰다.
‘어느 정도…먹힌 것 같지?’
고아원 출신에 독종처럼 사회를 살아오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눈치가 없지는 않다.
오히려 출신이 출신인지라 눈치만큼은 남들보다 뛰어나다고 자부했다.
그런 그가 이렇게 깽판을 친 이유는 간단했다.
적당히 하면 묻힐 수도 있으니까!
백현은 빅 딜을 제안할 생각이다.
그걸 듣게 하려면 일단 자신에게 온전히 집중시킬 필요가 있었다.
‘이 정도 미친 짓을 했으면 최소한 헛소리 취급은 안 하겠지.’
같은 신세인 이용승은 부업으로 편집자를 하면서 빚을 갚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백현은 이번에 작업장을 해보면서 느꼈다.
‘나한테는 그 시간도 너무 아까워.’
이용승은 작업장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잠을 줄여가며 부업을 하는 모양이지만, 자신은 그럴 수 없었다.
월드 사가에서 스트리머로 성공하려면 하루 종일 사냥이나 퀘스트 같은 메인 컨텐츠를 붙잡고 있어도 부족한 것이다.
“부업을 하고 싶습니다.”
“부업? 하세요. 능력 있으면 얼마든지요. 저희야 빚을 빨리 갚으면 좋으니까요.”
“그 대신 작업장에서 지내는 시간은 빼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까먹었나 본데 작업장은 우리가 강제한 게 아닙니다. 당신이 선택한 거예요. 이자를 반으로 줄여주는 대가로 작업장에 들어오겠다고 한 건 백현 씨 본인이었습니다.”
그렇다.
작업장 문제로 빅 딜을 해야 하는 이유는, 이자 때문이 컸다.
이자를 반으로 깎아준다는 저 조건은 포기할 수 없었다.
“…제 일을 하면서 이자도 지금처럼 내고 싶습니다.”
“허 참.”
성 팀장의 눈빛이 싸늘하게 변했다.
“본인이 말하면서도 어이없지 않으세요?”
“애초에 20%라는 이자율도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그 주제는 우리가 처음 만난 날 다 끝난 걸로 아는데요. 다시 해야 합니까?”
성 팀장이 그렇게 말하며 복도를 가리켰다.
밭에 파묻히고 싶냐는 의미였다.
“…아뇨.”
“그럼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죠. 무슨 부업을 할 생각인지 궁금은 하군요.”
“제가 며칠 해보니까 저는 월드 사가에 재능이 있습니다. 조금만 도와주시면 금방 빚을 갚을 수 있어요.”
“뭘 하겠다고요?”
“스트리머를 해 볼 생각입니다.”
성 팀장은 잠시 침묵했다.
곧이어.
“크큭.”
“푸하하핫!”
“으하하하핫!”
기분 나쁘게 비웃는 성 팀장과 바깥에 있던 덩어리들이 시끄럽게 웃는 소리가 하모니가 되어 울려 퍼졌다.
잠시 웃던 성 팀장이 조용히 말했다.
“덕현아.”
“헛! 죄송합니다, 형님. 조용히 있겠습니다.”
간단하게 그들을 조용히 만든 뒤, 성 팀장이 백현을 쳐다봤다.
“내가 작업장을 운영하면서 백현 씨 같은 사람을 몇 번 본 적 있습니다. 나는 재능이 있다. 스타가 될 조짐이 보인다. 등. 헌데 그런 놈들은 하나같이 다 망했습니다.”
“저는 다릅니다.”
“제가 뭘 보고 그 말을 믿어줘야 합니까?”
성 팀장의 말에 밖에서 대기하던 덩어리들이 다시 쿡쿡거렸다.
어떻게든 웃음을 참으려 안간힘을 썼지만 다 들린다.
“말로는 재벌 회장도 될 수 있습니다.”
성 팀장의 말에 백현은 입을 다물었다.
지금 여기서 뭐라고 더 말해봤자 별로 통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증거를 보여주는 게 낫다.
백현은 스마트폰을 꺼내서 미튜브에 들어갔다.
그리고는 영상을 재생했다.
“지금 뭐 하는 거죠?”
성 팀장의 눈빛이 살짝 차가워졌다.
여기서 더 선을 넘었다가는 가만두지 않겠다는 의미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백현은 그에게 자신이 켠 영상을 보여주었다.
“혹시 이 영상 보신 적 있으세요?”
“…어제 본 거군요.”
성 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작업장을 운영하다 보니, 월드 사가와 관련된 영상은 많이 찾아보는 편이다.
실시간 급상승에 올라갔던 저 영상은 당연히 본 적 있었다.
영상이 서서히 재생되었다.
백현이 킨 건 스트리머 컵라면이 자신을 촬영한 영상이었다.
고블린들을 학살하고 시작의 도시에서 레어급 아이템을 보상으로 받는 모습.
“알만 하군요. 이걸 보고 당신도 스트리머가 되겠다고 꿈꾼 겁니까?”
한동안 그걸 보던 성 팀장이 눈치챘다는 듯 피식 웃었다.
왜 갑자기 이런 미친 짓을 벌이나 싶었는데. 영상을 보고 많이 혹했던 모양이다.
덩어리들은 결국 못 참고 다시 폭소를 터트렸다.
“푸하하핫. 꿈도 야무지군.”
“그놈은 딱 봐도 어디 대형 길드에서 작정하고 키우는 놈 같은데, 그런 거 보고 자기도 스트리머 하겠다고 설치다가는 골로 가는 거야, 멍청아.”
이번에는 성 팀장도 말리지 않았다.
그 역시 웃기기는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때 백현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이거 저예요.”
“예?”
“이 영상 속 캐릭터. 저라구요.”
“……!?”
방금 내가 무슨 소리를 들은 거지?
성 팀장의 눈이 살짝 커졌다.
방이 떠나가라 웃던 덩어리들 역시 어느새 침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