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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빨로 레벨업-15화 (15/218)

#015화

다음 날 아침.

백현은 주린 배를 부여잡고 공용 부엌으로 갔다.

“어. 왔어, 백현 씨?”

어제 봤던 박세훈이 반가운 얼굴로 인사했다.

“어제 점심이랑 저녁에는 안 보이더만… 뭐야. 잠 못 잤어? 얼굴이 왜 그래?”

“…좋은 아침입니다.”

“얼레. 혹시 어디 아픈 거 아니지? 여기서 아프면 진짜 서러워. 나한테 상비약 있는데. 좀 줄까?”

“괜찮습니다.”

백현이 고개를 저으며 밥을 퍼서 자리에 앉았다.

상태가 메롱한 건 아프기 때문이 아니다.

“어제 잠을 좀 못 잤거든요.”

“그래? 걱정거리라도 있나?”

“뭐…비슷해요.”

걱정이라기보다는, 펄떡이는 심장을 진정시키기 어려웠다

미튜브 실시간 인기 급상승 등극.

영상이 업로드 된 지 고작 몇 시간 만의 일이다.

게다가 순위는 쭉쭉 치고 올라가고 있었다.

컵라면이 기대하라고 하긴 했지만, 설마 이런 결과가 나올 줄이야.

그렇기 때문에 백현은 어젯밤 잠을 제대로 못 잤다.

계속해서 조회수를 새로고침했다.

머릿속으로는 망상이 끊임없이 굴러갔다.

이대로 초대박이 나서 미튜브 스타가 되면 어떡하지?

바로 빚 갚고 여길 나갈 수 있는 건가?

일단 뭐부터 해야 하지? 등등.

온갖 생각들이 뒤죽박죽이었다.

게다가 배가 고파서 더더욱 잠이 안 오기도 했다.

“이런. 그럴 땐 뭐 맛있는 거라도 먹어야 돼. 이것 좀 나눠줄게. 먹어봐.”

박세훈이 자신의 반찬 통에 있던 계란 후라이 하나를 주었다.

“내가 아침에 한 건데, 하나 나눠줄게.”

“…감사합니다.”

백현이 진심을 담아 인사했다.

이 감옥 같은 고시원에서는 기본적으로 제공되는 게 밥과 김치 정도밖에 없다.

나머지는 직접 요리해 먹거나 해야 하는데, 진짜로 한 푼도 없는 그에게는 식료품비도 꽤 부담이었다.

그런데 선뜻 자신의 계란 후라이를 나눠주다니.

‘…생각보다 좋은 사람이구나.’

사람의 인성은 어려울 때 드러나는 법이랬다.

박세훈의 첫인상은 가볍고 촐싹거리는 이미지였는데, 설마 이렇게 챙겨줄 줄이야.

곧이어 몇몇 사람들이 더 들어왔다.

“여어. 다들 좋은 아침?”

박세훈이 반갑게 인사했지만, 그들은 데면데면했다.

일부러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삶에 대한 의욕이 별로 없어 보였다.

박세훈은 무안한 기색도 없이 씨익 웃어 보였다.

“거, 사람들 참. 밝고 기운차야 할 아침부터 저렇게 죽상이라니. 쯔쯧.”

물론 백현은 저들이 이해되었다.

아마 월드 사가나 미튜브로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이 없었다면, 백현 역시 저들과 똑같지 않았을까?

“좋은 아침입니다, 형님.”

마지막으로 들어온 사람이 박세훈의 인사를 받아주었다.

곰 같은 덩치의 사내. 이용승이었다.

“어어. 이용승 씨. 잘 잤어?”

“못 잤습니다.”

이용승은 백현에게도 가볍게 인사를 하더니 자신 몫의 밥을 퍼 자리에 앉았다.

다크서클이 짙게 내려앉은 걸 보니 그 역시 편하게 잠을 잔 것 같지는 않았다.

“뭐야. 어제 뭐 했는데?”

“아시잖습니까.”

“부업?”

“예.”

“크으. 참 열심이다. 대단해, 아주.”

박세훈이 엄지를 치켜들었다.

듣고 있던 백현이 궁금해져서 물었다.

“부업이요?”

“어. 백현 씨는 모르겠지만, 용승 씨가 생긴 것과 다르게 은근히 재주가 있거든. 월드 사가에서 작업장 알바 하는 것 말고도 추가로 돈을 벌어서 빚을 갚아나가고 있지.”

“그래요? 무슨 일을 하시는데요?”

“미튜브 편집자입니다.”

대답은 이용승이 했다.

그는 먹성 좋게 밥을 우걱우걱 퍼먹고 있었다.

박세훈이 낄낄거리며 웃었다.

“내가 전에 말한 적 있지? 용승 씨가 BJ한테 후원금 쏘다가 빚더미에 앉았다고? 근데 골 때리는 게 자기가 좋아하는 BJ 도와주겠다고 편집을 배워서 다 해줬다는 거 아니냐. 그것도 무보수로.”

“…웃지 마십시오.”

“에이. 놀리는 거 아니야. 그때 배운 기술로 지금 빚도 빠르게 갚고 있는 거 아냐?”

“그건 그렇죠.”

“거봐. 사람 일 어떻게 될지 모른다니까.”

백현이 살짝 놀랐다는 듯 대답했다.

“성 팀장이 부업을 허락해줘요?”

“응. 걔는 뭘 어떻게 하든 자기네들은 돈만 받으면 된다는 마인드야. 부업 해서 빠르게 빚 갚는 건 오히려 좋아하지.”

“그렇군요.”

고개를 끄덕인 백현이 이용승을 바라봤다.

“실력이 좋으신가 봐요.”

미튜브가 활성화되면서 그쪽 판도 점점 레드오션이 되고 있었다.

어설픈 실력으로 뛰어들었다가는 의뢰자를 찾지 못할 텐데. 밤새면서 편집할 정도면 일감이 있다는 뜻 아닌가.

“실력이야 최고지. 용승 씨 업계 1티어야. 생긴 거랑 완전 달라.”

“…그래요?”

“듣기로는 일감이 너무 많아서 가려 받고 있다고 하더라고. 우리야 작업장에서 시간을 많이 쓰니까 잠을 줄여야 하는데, 그러면서 편집까지 하는 건 너무 빡세잖아.”

그건 그렇다.

퀄리티 좋은 영상을 만들려면 시간을 많이 투자해야 하는데, 하루에 대부분을 작업실에서 보내는 그들에게는 힘든 일이었다.

“아아. 부럽다. 나도 회사 다니면서 그런 부업이나 해볼걸. 지금 와서는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네.”

“세훈 형님은 주식 잘하시지 않습니까.”

“그러면 뭐 해. 그것도 자본금이 있어야 하는 건데, 통장은 압류되고 수중에는 땡전 한 푼 없는걸.”

박세훈이 한숨을 푹 쉬었다.

“하여간 성 팀장 그놈은 철저하다니까. 다른 덩어리가 관리자였으면 슬쩍 뒷구멍으로 빼서 돈 좀 굴려보는 건데. 에휴.”

“왜요. 저는 성 팀장님 나쁘지 않은데.”

“그야 너한테는 잘 대해 주니까 그렇지. 추가 변제금을 따박따박 갚아 가는데 싫어할 사람이 어디 있냐.”

백현이 눈을 반짝였다.

“세훈 씨는 성 팀장에 대해서 잘 아시나 봐요?”

“뭐…조금? 성 팀장이랑 예전에 같이 일한 적이 있었거든. 증권사에 있을 때 그놈이 내 부하 직원이었어.”

그 말을 들은 백현은 살짝 놀랐다.

‘부하 직원과 상사 관계였다고?’

꽤나 흥미로운 얘기였다.

지금 상황은 완전히 역전된 것도 그렇고.

박세훈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 봤자 별로 친하지도 않았어. 난 얼마 안 있어서 코인으로 나락 갔고, 그 녀석은 여기로 이직했으니까.”

“…그래도 잘 아시긴 할 거 아니에요.”

“흐음. 그렇지. 왜. 뭐가 궁금한데?”

“혹시 저도 부업으로 빚을 갚아나갈 수 있을까 해서요.”

백현이 이용승을 바라보며 말했다.

박세훈이 씨익 웃었다.

“힘들걸? 백현 씨 무슨 기술 같은 거 있어? 그런 게 아니고서야 이 쥐콩만 한 방구석에서 특별하게 돈 벌 방법은 없다고.”

“…그거야 차차 찾아보려고 합니다.”

월드 사가 프로 플레이어가 되겠다거나 미튜브로 성장하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아직은 그런 자세한 사정까지 말하기에는 조금 일렀다.

“여기 용승 씨처럼 특별한 기술이 있으면 성 팀장 그놈이랑 거래를 할 수 있어. 어쨌거나 그놈이 원하는 건 빚을 갚는 거니까. 돈 가져다준다는데 싫어할 리가 없잖아.”

그러면서 박세훈은 성 팀장에 대해 조금 더 말해주었다.

철저하고 꼼꼼한 성격에다가, 계약만 잘 지킨다면 의외로 신뢰도가 꽤 높은 사람이라고 했다.

처음 봤을 때부터 냉철한 엘리트 이미지를 풍기더니.

성격 역시 비슷한 것 같다.

“물론 용승 씨만 한 능력자가 아니면 어림도 없어. 부업이 어디 쉽나? 능력 없으면 작업장에서 몸으로 때워야지, 뭐.”

박세훈이 낄낄거리며 웃었다.

“…크흠. 그나저나 백현 씨는 적응 좀 되셨습니까?”

이용승이 헛기침을 한 번 하더니 화제를 돌렸다.

그의 얼굴은 살짝 붉게 물들어 있었다.

아까부터 두 사람이 자꾸 띄워주니 부담되는 모양이었다.

박세훈이 그의 옆구리를 툭툭 치더니 웃었다.

“으하핫. 창피한가 봐? 뭘 부끄러워하고 그래. 그런 능력 있으면 좋은 건데.”

“…….”

“알겠어, 알겠어. 용승 씨가 불편하면 이 얘기는 그만할게.”

박세훈은 그렇게 말하더니 자기도 식사에 집중했다.

미튜브를 켜고는 영상을 보면서 먹기 시작했다.

그러다 뭘 발견했는지, 눈을 살짝 크게 떴다.

“어? 이 사람 오늘도 떴네?”

“뭔데 그래요?”

“아, 왜. 내가 저번에 말했잖아. 시작의 도시에서 포스 뿜어내던 녀석이라고.”

“아아. 네. 그랬죠.”

“근데 새로운 영상 떴어.”

박세훈이 이용승에게 살짝 화면을 돌려 보여주었다.

#실시간 급상승 91위!

“와. 이거…업로드 한 지 몇 시간 되지도 않았는데 엄청 치고 올라오네요.”

“제목이 흥미롭잖아.”

박세훈이 영상의 제목을 가리켰다.

[시작의 도시에서 레어 아이템을 보상으로 주는 퀘스트가 있다고?]

시작의 도시는 지금껏 수많은 유저들에 의해 파헤쳐진 장소다.

거기에 특별한 히든 피스는 없다는 게 증명되었는데, 레어급 보상이라니.

월드 사가를 플레이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클릭해보고 싶게 만드는 제목이었다.

영상 속 내용은 간단했다.

지난번에는 고블린을 학살했던 언럭키가, 라두락 꽃을 캐서 도시로 되돌아갔다.

스트리머 컵라면이 라이브 도중 언럭키의 허탈한 모습을 보겠다며 그 뒤를 쫓았다.

<흐흐. 여러분. 저 유저분 퀘스트 완료하는 것까지 보고 갈까요?>

라일락 꽃을 힘겹게 구해갔는데 쓰레기 보상을 받고 빡치는 초보자의 모습은 언제 봐도 재미있다.

그런 생각으로 따라갔는데…

<이, 이건 약으로 쓸 수 있는 뿌리입니다. 이럴 수가! 제 평생 살면서 이런 걸 보게 되다니!>

<이런 귀중한 걸 구해다 주시다니.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저도 그에 맞는 보답을 하고 싶습니다.>

퀘스트 NPC는 깜짝 놀라더니 능력치 상승 포션을 건네 주었다.

스트리머 컵라면과 그 당시 라이브 시청자들이 기겁하는 반응들이 이어지며 영상은 끝났다.

댓글 반응은 가관이었다.

-뭐냐? 내가 저거 했을때는 개쓰레기 잡템만 주더니, 왜 저 놈한테는 저딴 대우를 해주는거임?

-설마 NPC도 유저 얼굴보나? 잘생겨서 레어템 주는거 아님?

-지랄 마. 어차피 커스터마이징으로 바꾼 얼굴일텐데, 그러면 개나소나 다 외모빨 받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반응이 한가득이었다.

그리고 그건 현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와. 시작의 도시에서 레어급 아이템? 이전 영상 보니까 고블린도 쉽게 학살하더니만. 뭐냐, 이 자식? 처음부터 다 가지고 시작하네?”

“그러게요, 형님.”

“아. 질투나.”

박세훈과 이용승은 괜히 배가 아픈지 인상을 찡그렸다.

“이 자식. 캐릭터 외모가 잘생긴 걸 보니, 현실에서는 못생긴 돼지 새끼일 게 분명해. 내 오른손도 걸 수 있다.”

“어…그러려나요?”

“당연하지!”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백현이 쓴웃음을 지었다.

‘글쎄요. 못생긴 건 몰라도, 돼지는 아닙니다.’

이딴 식단을 먹으면서 돼지가 되는 것도 어려우리라.

***

“후웁.”

언럭키가 크게 숨을 들이켰다.

눈을 부릅뜬 다음, 앞을 바라봤다.

“그래. 가 보자.”

차원 게이트.

다음 도시로 넘어가려면 필수적으로 통과해야 하는 장소이다.

도시 정중앙에 위치해 있었고, 레벨 10이 되어야 통과할 수 있다.

-우웅!

언럭키가 발걸음을 내딛었다.

순식간에 풍경이 변했다.

[도시 ‘빌리프펜’ 으로 이동합니다.]

[당신의 모험에 축복이 깃들기를.]

언럭키는 눈앞에 나타난 메시지를 보더니 피식 웃었다.

“축복은 무슨.”

사람 놀리는 것도 아니고. 앞으로 할 일을 생각하면 절대 저런 말을 할 수 없다.

빌리프펜은 시작의 도시와는 분위기가 달랐다.

조금 더 고풍스러운 중세 유럽의 도시 형태.

왁자지껄한 건 비슷했지만, 유저들이 착용하고 있는 장비들이 달랐다.

시작의 도시는 대부분 기본 방어구 세트를 입고 있었지만, 여기는 꽤 고급스러운 아이템을 찬 사람도 가끔씩 보인 것이다.

“와아….”

새로운 공간은 다시금 그를 놀라게 만들었다.

이게 정말 가상현실이라는 말인가?

왜 사람들이 이 게임에 그렇게 열광하는지 알겠다.

여긴 가상이 아니라 진짜로 현실 같았다.

한동안 주변을 둘러보던 언럭키는 곧 정신을 차렸다.

지금은 이럴 때가 아니었다.

‘길이… 이쪽인가.’

사전에 들었던 약도대로 움직였다.

골목길을 구불구불 들어가더니, 조그마한 주택 앞에 도착했다.

-똑똑.

문을 두드리고 잠시 기다렸다.

그 시간이 정말 길게 느껴졌다.

잠시 후, 끼익 하더니 문이 열렸다.

안에서 나온 건 덩치 큰 남자였다.

그는 언럭키를 보더니 눈을 번뜩였다.

“백현?”

“…네.”

“잘 찾아왔네. 들어와.”

덩치는 고개를 까딱하더니 안으로 들어갔다.

언럭키는 다시금 심호흡을 하더니 그를 따라 움직였다.

이곳은 (주)머니앤캐시의 빌리프펜 지부 작업장이다.

관리인을 따라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언럭키가 눈을 번뜩였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그는 절대 얌전히 작업장의 광부가 될 생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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