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행운빨로 레벨업-12화 (12/218)

#012화

‘사, 살았다.’

스트리머 컵라면이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100만 원이나 들여 새로 캐릭터를 생성했고, 운 좋게 레어 직업을 얻었었다.

도적 계열의 레어 직업, ‘달빛 암살자’.

처음부터 은신 스킬을 보유한 데다가, 어두운 곳에서는 은신의 위력이 상승하는 효과가 있었다.

그렇기에 그 이름 모를 유저가 어둠 숲에 있어도 잘 따라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어둠 숲에서는 은신이 극대화되어, 아울베어들에게 들키지 않으니까!

헌데…

‘후, 후우…. 기껏 다 찾아놓고 뒤질 뻔했네.’

사실 한 번 죽는 거야 별 상관없다.

어차피 레벨 10도 안 된 캐릭터.

드랍할 아이템도 없고, 24시간 접속 불가 페널티 역시 그리 크지 않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 24시간 접속 불가 페널티였다.

컵라면에게 필요한 건 새로운 컨텐츠를 만들어줄 사람이라 이 고생을 하고 있는데. 기껏 만나놓고 죽는다면 어쩌란 말인가.

여기서 놓친다면 다시 만나지 못할 수도 있었다.

“…날 따라온 겁니까?”

언럭키가 여전히 컵라면의 목에 검날을 들이민 채 물었다.

“네, 네! 저는 스트리머 컵라면이라고 합니다! 어제 한 번 뵌 적 있긴 한데…”

“기억납니다.”

“기, 기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컵라면의 안색이 살짝 밝아졌다.

그의 시선이 시야 한쪽 구석에 있는 시스템창으로 흘끗 향했다.

[치명적인 일격!]

목에 들이밀린 검날에 살짝 베였는데, 치명적인 일격이 떴다.

‘아니 뭔 데미지가 이래?’

특별한 스킬을 쓴 것도 아니고 그냥 검을 갖다 댔는데 HP가 살벌하게 떨어졌다.

언럭키가 얻은 레어 검과 그가 가진 검왕 직업의 특성들 덕분이었다.

아울베어들도 픽픽 쓰러지는 와중이니, 암살자 유저인 컵라면은 더욱 얼마 못 버티는 게 당연했다.

‘이 사람은 진짜다!’

컵라면이 눈을 빛냈다.

데미지만 봐도 얼추 짐작이 됐다.

역시 여기까지 찾아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가 있다면 자신을 경계하는 저 눈빛인데…

컵라면은 침을 한 번 꿀꺽 삼키고는, 본론으로 들어갔다.

“저…하하. 사실 제가 오늘 온 건 미튜브 영상 때문입니다. 사실 그…아직 이름도 모르는군요. 어쨌거나 보셨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쪽의 영상을 올렸는데 대박이 났거든요.”

“봤습니다. 우연찮게 뜨더군요.”

“아! 보셨군요!”

컵라면의 안색이 밝아졌다.

이러면 얘기가 더 빨라진다.

“그래서 말인데, 유저님의 추가 영상을 만들고 싶어서 여기까지 찾아왔습니다!”

컵라면이 두다다다 말을 뱉었다.

괜히 어설프게 거짓말을 하거나 수작을 부렸다가는 낭패다.

그러다가 죽기라도 하면 어떡하겠나.

그래서 컵라면은 숨기는 것 하나 없이 자신의 진심을 전부 다 보여주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렇게 경계하는 자에게는 간절한 마음을 보여주는 것이 가장 잘 통하는 방법이다.

“제 영상이라….”

“물론 그냥 제작하는 건 아니고, 영상에서 나온 수익은 전부 그 쪽에게 드리겠습니다. 제가 원하는 건 제 미튜브 채널이 커지는 것이거든요. 혹시 출연료를 따로 원하신다면 추가금을 드릴 생각도 있습니다.”

일단 한번 채널이 커지면 기회가 생긴다.

그 기회가 없어서 아무것도 못 하고 빌빌거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던가.

그렇기에 이번 기회에 투자도 해 볼 생각이 있었다.

“흠. 그렇군요.”

언럭키가 고개를 끄덕였다.

미튜브를 통해 이름을 알리고, 나아가 스타성 있는 플레이어가 되는 것.

그가 바라마지 않던 것이다.

‘하지만 그냥 오케이 하기는 조금 그렇지.’

언럭키가 눈을 빛냈다.

일단 조금 더 대화를 나눠봐야겠다.

“솔직히 조금 혹하는 제안이기는 합니다.”

“그, 그렇다면…!?”

“그런데 저는 따로 소속된 곳이 있습니다.”

“아….”

컵라면이 안타까운 신음을 냈다.

소속이라면 아마 길드를 뜻하는 것일 텐데, 그렇다면 함부로 미튜브 촬영 같은 건 하지 못한다.

회사와 함께 상의해서 움직여야 하는데, 그걸 용납할 리가 없었던 것이다.

다만, 그것과는 별개로 언럭키가 더욱 대단해 보였다.

‘벌써부터 소속 길드가 있어?’

월드 사가의 프로 플레이어가 돈이 된다더라는 소문이 돌면서, 많은 사람이 게임을 직업으로 삼고 있었다.

당연히 그게 쉬울 리는 없고, 경쟁은 치열했다.

그렇기에 프로 지망생들의 꿈은 좋은 길드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헌데 레벨 10도 안 된 벌써부터 소속 길드가 있다니.

‘내 추측으로는 직업도 최소 유니크 이상일 건데. 그렇다면…설마 길드에서 작정하고 만든 특급 유망주인 건가?’

월드 사가는 캐릭터를 삭제하고 새로 만들 때마다 돈이 든다.

처음에는 100만 원, 두 번째는 200만 원. 이런 식으로 2배씩 증가한다.

10번만 넘어가도 수십억의 자금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유니크급 이상의 직업을 얻으려면 운이 미친 듯이 좋지 않은 이상, 그런 캐릭터 재생성 작업을 여러 번 해야 했다.

대형 길드에서 작정하고 키우는 유망주.

컵라면은 언럭키를 그렇게 생각했다.

물론 언럭키가 말한 소속은 1티어 길드 같은 게 아니었다.

‘빌어먹게도 (주)머니앤캐시 소속이지.’

그것도 프로 플레이어 같은 게 아니라, 레벨 10이 되면 작업장을 끌려갈 광부 운명이었다.

그걸 모르는 컵라면은 한층 더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어…그, 그러시군요. 저는 그것도 모르고…죄송합니다. 예전 영상은 내릴까요…?”

소속 길드가 있다면 함부로 영상을 만들 수 없다.

월드 사가가 돈이 되면서 게임 속 길드들은 큰돈을 만지게 되었다.

더는 가상의 길드가 아니라, 마치 현실의 기업체처럼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곳의 유망주 유저 영상을 멋대로 찍어 올렸다가는, 고소 당하기 딱 좋았다.

“뭐, 그럴 필요까지는 없어요.”

언럭키는 곰곰이 고민했다.

미튜브에 영상을 올려봤자, 아직 레벨 10도 안 된 그가 얼마나 파장이 크겠는가.

첫 영상이 잘 터졌다고는 해도, 기라성 같은 유저들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그가 일부러 소속사가 있다고 한 건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깔끔하게 영상만 찍고 싶으니까.’

원하는 건 나중에 정식으로 데뷔했을 때 도와줄 약간의 유명세였다.

맨땅에서 시작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으니까 말이다.

그렇기에 미리 선을 그은 것이다.

괜히 컵라면이 다른 생각을 품고 이상한 조건을 붙이거나 하면 곤란하니까!

“그래도 하나 정도 영상을 더 찍는 건 괜찮을 것 같네요.”

컵라면의 반응을 보니 이쯤에서 수락하면 될 것 같다.

언럭키는 고심하는 척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그럼!?”

“예. 잘 부탁드립니다.”

그가 손을 건넸다.

“하핫. 네. 저도요! 스트리머 컵라면입니다.”

“저는 언럭키라고 합니다.”

“언럭키요? 닉네임이 특이하시네요. 왜 그렇게 지으신 거죠?”

“그냥. 운이 없어서요.”

언럭키가 어깨를 으쓱였다.

더럽게 운이 없어서 닉네임도 이렇게 지었다.

물론 컵라면으로서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네?”

***

영상을 찍기로 했다지만, 그렇다고 특별하게 무언가를 할 필요는 없었다.

언럭키가 해야 할 일은, 이 숲에서 네잎클로버를 찾는 것.

‘다만, 그걸 알려줄 필요는 없지.’

시작의 도시에서 특별한 퀘스트를 수행하고 있다는 걸 광고할 필요는 없다.

그건 자신만의 특별함으로 남겨두자.

“저는 여기서 아울베어들을 사냥하고 있었습니다.”

“역시…. 짐작은 했습니다. 그 정도 스펙이시면 일반 몹이 있는 지역에 가실 필요가 없겠죠.”

컵라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언럭키의 말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유니크 급의 직업. 거기에 이미 대형 길드에서 후원을 받고 있는 인재라면 실력도 엄청나겠지. 당연히 일반 사냥터를 갈 필요는 없어.’

괜히 그런데 갔다가는 자리 싸움하느라 시간만 뺏긴다.

차라리 아무도 오지 못하는 어려운 곳으로 가는 게 낫다.

‘고블린이 나오는 지역도 쉽고. 빠르게 시작의 도시를 돌파할 거면 어둠 숲이 최고지.’

아울베어는 사냥만 잘할 수 있다면, 경험치를 엄청나게 많이 얻을 수가 있다.

컵라면은 녹화용 카메라가 잘 돌아가는지 확인했다.

“크아아아!”

곧이어 숲속에서 아울베어 한 마리가 튀어나왔다.

“나, 나왔다!”

컵라면이 저도 모르게 비명을 내질렀다.

아울베어.

새 캐릭을 만들기 전에는 쉽게 처치하던 놈이지만, 지금의 스펙으로 맞붙는다면 1초 만에 죽을 것이다.

그걸 알고 있고 사나운 기세를 직접 접하니, 저도 모르게 몸이 떨려왔다.

“뒤에 계세요.”

언럭키는 그런 컵라면을 지나쳐 훌쩍 걸어 나갔다.

[아울베어의 살기에 노출됩니다.]

-띠링

[검왕(레전더리) 직업의 특성 ‘정신력 보정’ 이 발동됩니다.]

[아울베어의 살기에 저항하셨습니다.]

컵라면을 굳게 만든 살기가 그에게는 전혀 소용없었다.

-푹!

레어급 검이 놈의 방어를 뚫고 틀어박힌다.

HP가 크게 줄어들자 아울베어는 비틀거렸다.

한 방에 너무 큰 데미지가 들어와 치명타 판정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 언럭키의 앞에서 그만한 빈틈을 보였다면 게임은 끝이었다.

-서걱!

깔끔하게 목을 베자 놈이 쓰러졌다.

[소량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경험치 획득 메시지를 옆으로 치우며 언럭키가 말했다.

“가시죠.”

“…….”

뒤에서 지켜보던 컵라면은 입을 쩍 벌렸다.

“대, 대박….”

그는 언럭키를 촬영하는 후속 영상이 대박 날 거라고 예상해서 여기까지 찾아왔다.

근데 아울베어를 사냥하는 모습을 보고, 그 예측을 수정했다.

‘이거 어쩌면 영상 한두 개 뜨는 게 아니라, 진짜로 스타 플레이어가 탄생하는 장면을 찍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는데?’

***

한동안 어둠 숲에서의 사냥이 이어졌다.

언럭키는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없다. 도대체 네잎클로버는 언제 나오는 거지?’

아울베어들을 사냥하며 폭발적으로 경험치를 쌓고 있었다.

그건 좋은데, 문제는 퀘스트 아이템이 나올 생각을 안 하고 있는 것이다.

‘행운의 무지개는 더 발동 안 하나?’

이럴 때 네잎클로버가 있는 위치가 팟 하고 나타나 주면 얼마나 좋겠는가.

허나 스킬은 잠잠했다.

언럭키가 한숨을 쉬었다.

‘그럼 그렇지.’

중요한 순간에 운이 없다.

아무래도 열심히 돌아다니며 노가다를 해야 할 것 같다.

살짝 컵라면의 눈치가 보였다.

다행히 지금은 얌전히 따라다니며 영상을 찍고 있었는데, 혹시나 지겹지는 않을까?

“컵라면님.”

언럭키가 부르자 컵라면은 즉각 대답했다.

“넵! 뭐 시키실 거라도 있으신가요?”

“아뇨 그런 건 아니고요. 아까부터 계속 똑같은 사냥 영상만 반복되고 있는데, 안 지루하세요?”

“지루할 리가 있나요. 이런 말도 안 되는 사냥 장면들을 담고 있는데. 전 이거 편집본들 모아서 어떤 매드 무비를 만들지 기대되느라 벌써부터 손이 떨릴 지경입니다. 하핫.”

컵라면은 그렇게 말하며 진짜로 흥분한 듯 콧김을 내뿜었다.

그런 의욕 넘치는 모습에 언럭키는 속으로 다행이라 생각했다.

‘영상 퀄리티가 이상하게 나올 걱정은 안 해도 되겠군.’

그리고 조금 더 여유롭게 네잎클로버를 찾아도 되겠다.

“알겠습니다. 그럼 오늘은 계속 아울베어 사냥만…”

그 순간이었다.

-크와앙!

나무들이 우수수 흔들릴 만큼 커다란 고함이 울려 퍼졌다.

컵라면은 물론이고 언럭키마저 멈칫거렸다.

지금껏 봐 왔던 아울베어들과는 차원이 다른 소리.

“설마….”

컵라면이 굳은 표정으로 중얼거릴 때, 나무들 사이로 커다란 곰 한 마리가 나타났다.

다른 아울베어들보다 머리 한 개는 더 큰 거대한 놈.

[흉폭한 아울베어]

“에, 엘리트 몬스터입니다…!”

컵라면이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보통 필드에 등장하는 몬스터보다 훨씬 강하기에,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죽을 수밖에 없는 게 엘리트 몬스터이다.

‘심지어 어둠 숲의 엘리트 몬스터라니. 이건 무조건 죽으라는 거잖아.’

다른 사냥터도 아니고 어둠 숲에서는 저런 놈을 만나면 끝장이다.

그가 저도 모르게 언럭키를 쳐다봤다.

‘운이 없어서 언럭키라고 지었다더니…그게 정말이었어?’

그의 닉네임 유래를 이해할 것 같았다.

“오, 오늘 사냥은 여기까지 해야겠네요. 여기서 도망치죠?”

물론 도망치는 게 가능할 때의 얘기였다.

아마 90% 이상의 확률로 놈에게 잡혀 죽겠지.

컵라면은 언럭키를 쳐다봤다.

그 역시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떨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실제로 언럭키의 손은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역시…흉폭한 아울베어를 만나면 떨 수밖에 없지.’

컵라면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언럭키의 떨던 손이 곧바로 진정되더니, 컵라면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뇨. 저건 잡아야 해요.”

“저걸 잡는다고요?! 지금 레벨에서는…!”

“영상이나 잘 찍어 주세요.”

언럭키는 그 말만 남기고서는 갑자기 아울베어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잠!… 아, 아니…!”

컵라면은 깜짝 놀란 와중에도 카메라를 언럭키에 포커싱했다.

그는 한 번 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언럭키는 이 상황에 미소를 짓고 있었으니까.

‘저놈 머리 위에 저거…!’

언럭키의 시선은 아울베어의 머리 위 정수리 쪽으로 향해 있었다.

그가 엘리트 몬스터에게 달려들 수밖에 없었던 이유.

‘찾았다!’

아울베어의 머리 위에는 노란색으로 반짝이는 네잎클로버 한 송이가 피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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