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1화
아침의 믿을 수 없는 해프닝 이후, 백현은 월드 사가에 접속했다.
‘이거. 그 사람 맞겠지?’
스트리머 컵라면.
백현의 머릿속에는 그 사람이 떠올랐다.
라일락 꽃 퀘스트 하는 걸 말렸던 사람인데, 어제 온종일 잠깐이라도 말을 섞은 사람은 이 유저가 유일했다.
아마 그 후에 자신을 따라왔던 모양이다.
‘사냥이랑 퀘스트에 집중하느라 전혀 몰랐어.’
설마 시작의 도시에서 생초보인 자신을 누가 미행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기에 더욱 그러했다.
좋은 교훈이 되었다.
앞으로는 좀 더 주변을 살펴보면서 다녀야겠다.
‘그건 그렇고, 나중에 한 번 더 만나고 싶긴 하네.’
자신의 영상을 함부로 찍어서 미튜브에 올리긴 했지만, 덕분에 얼굴을 알릴 기회를 얻었다.
방송 스트리머 데뷔를 생각하고 있던 언럭키였기에, 이런 식으로 먼저 유명해지는 건 어마어마한 이점이었다.
만약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것과 관련해 좀 더 얘기를 나누고 싶다.
‘뭐. 그럴 일은 없겠지만.’
이 넓은 월드 사가의 세계에서 친구도 아닌 유저를 다시 만날 가능성은 극히 적었다.
약간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억지로 고개를 절어 생각을 털어냈다.
이제는 언럭키가 되어 행동할 때였다.
게임에 접속한 그가 앞을 바라봤다.
퀘스트 창이 떠 있었다.
[퀘스트 : 어둠 숲의 네잎클로버 구해오기.]
-퀘스트 설명 : 어둠 숲 어딘가에 희귀한 네잎클로버가 있다. 그걸 구해오자.
-단, 어둠 숲에는 강력한 몬스터가 살고 있으니 주의하자.
-퀘스트 성공 보상 : 랜덤 유니크 아이템.
어둠 숲에서 네잎클로버 구해오기.
어젯밤에는 일단 퀘스트를 받은 뒤, 사전 조사에 나섰다.
괜히 함부로 도전했다가 죽어서 접속 불가 조치를 당한다면 상당히 곤란해진다.
성강호 팀장에게 책 잡힐 일을 하지 않으려면, 한 번에 성공해야 했다.
‘다행히 할 만해.’
조사해본 결과, 가능성은 높았다.
언럭키가 움직였다.
목표는 어둠 숲이었다.
***
어둠 숲.
시작의 도시 대부분의 장소는 출몰하는 몬스터들이 만만하다.
도시 앞에는 산토끼, 들다람쥐 등의 비선공 몬스터들이 우글거렸다.
놈들을 사냥하며 게임에 익숙해지고 초반 경험치를 쌓으라는 게임사의 배려였다.
물론 실력에 자신 있는 자들은 고블린들이 등장하는 곳으로 가기도 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하드코어.
나는 이 게임에서 두각을 나타내겠다! 하는 유저들은 어둠 숲으로 가곤 했다.
“크왕!”
살기 섞인 외침에 나뭇잎들이 살짝 떨렸다.
그 앞에 있던 언럭키는 저도 모르게 자세를 살짝 낮췄다.
눈앞에는 덩치가 2m는 되는 곰 한 마리가 뒷다리로 선 채 포효하고 있었다.
언럭키는 살짝 떨어진 곳에서 조심스럽게 놈을 바라봤다.
일단 수비적으로 갈 생각이었다.
-띠링!
[검왕(레전더리) 직업의 특성 ‘정신력 보정’ 이 발동됩니다.]
[아울베어의 살기에 저항하셨습니다.]
아울베어.
시작의 도시에서 가장 강력한 몬스터이며, 게임 좀 한다고 발을 들인 유저들은 참혹하게 처치해온 놈이었다.
이곳 어둠 숲은 녀석들의 서식지였다.
‘다행히 디버프는 안 걸리는군.’
언럭키가 방금 떠오른 메시지를 힐끗 살폈다.
레벨이 낮을 경우, 놈들의 포효를 정면에서 듣는다면 모든 능력치 -10%라는 디버프에 걸린다.
다만 검왕 직업의 특성 덕에 저항이 가능했다.
-탓!
언럭키가 땅을 박차고 놈에게 달려들었다.
어느새 양손에는 검 한 자루를 빼어 든 상태였다.
‘보인다!’
어제 하루 해봤다고 몸을 움직이고 검을 어떻게 휘둘러야 할지 눈에 훨씬 잘 보였다.
직업 특성으로 자동적으로 몸놀림을 보정해 주고, 거기에 언럭키는 자신이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이해’ 되었다.
-서걱!
“크와앙!”
아울베어의 가슴팍이 쩍 갈라졌다.
놈은 두꺼운 앞발을 휘둘렀지만 이미 언럭키는 고개를 숙인 채 옆으로 빠져나오고 있었다.
-푹!
녀석의 벌어진 옆구리를 향해 한 방 더 검을 찔렀다.
“크르르….”
아울베어가 비틀거렸다.
‘쯧. 데미지가 약해.’
언럭키는 살짝 인상을 썼다.
고블린들은 한 방에 처치했건만, 아울베어는 방어력과 체력이 비교할 수 없었다.
“크아아아!”
분노한 아울베어가 달려들었고, 언럭키는 치고 빠지는 식으로 녀석의 주변을 움직였다.
-푹! 푹! 서걱!
-콰직!
총 8번.
언럭키가 놈의 주변을 돌아다니며 공격을 피하고 검을 적중시킨 횟수였다.
그만큼이나 여러 번 때리니, 그제서야 놈이 쓰러졌다.
[소량의 경험치를 획득하셨습니다.]
“후우.”
언럭키가 한숨을 내쉬었다.
머릿속으로 방금 전의 전투를 분석했다.
‘한 번에 상대할 수 있는 건 한 마리 정도. 무리하면 두 마리까지는 가능하겠어.’
다만, 무기가 너무 부실하다.
겨우 공격력 1짜리의 노멀 검.
아무리 검왕 직업 특성으로 무기 공격력과 스킬 효과들이 증폭되면 뭘 하겠는가.
공격력 200% 증폭되어봤자, 1이 2가 될 뿐이다.
더 좋은 무기가 필요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무기를 살 수도 없고….’
방법은 2가지였다.
몬스터를 잡고 떨어지는 골드를 모아, 상점에서 좀 더 좋은 무기를 사는 것.
아니면 현질을 해서 구입하는 것.
언럭키는 두 가지 다 불가능했다.
현금도 없었고 게임 속 골드도 없었으니까.
‘어쩔 수 없지. 몸으로 때우는 수밖에.’
그렇기에 그냥 좀 더 시간을 쓰고 몸을 써서 사냥에 집중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어둠 숲 안으로 조금씩 걸어 들어가는데…
‘어?’
아울베어 한 마리가 보였다.
그가 저도 모르게 눈을 크게 떴다.
놈은 보통의 아울베어와는 달랐다.
남이 볼 때는 똑같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언럭키에게는 명백하게 다른 모습.
‘머리 뒤에서…노란색 빛이 비치고 있잖아?’
행운의 무지개 효과로 보이는 빨주노초파남보의 3번째.
노란색으로 빛나는 아울베어가 보였다.
“크릉!”
놈은 언럭키를 보며 살기를 드러냈다.
투철한 공격성은 아울베어의 특성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언럭키가 오히려 더 공격적으로 나갔다.
“아이템 내놔!”
-푸확!
주황색 빛을 내는 아울베어라니.
빨리 나 잡아 줍쇼 하는 놈을 향해 수비적으로 싸울 만큼, 언럭키는 침착한 성격이 아니다.
***
스트리머 컵라면.
이한영은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
“이럴 수가….”
#급상승 인기 동영상 96위
새로고침을 여러 번 했지만, 오히려 그사이에 순위만 더욱 높아졌다.
자신이 올린 미튜브 영상 중 처음으로 순위권에 들어갔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된다.
이한영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어떻게 하지?”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이 순위는 자신의 능력으로 얻은 게 아니었다.
인생을 살다가 한 번쯤 찾아오는 행운이기에,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는
물론 아직 한 번 더 영상을 올릴 게 남긴 했다.
첫 번째 영상에서는 그 이름 모를 유저가 고블린을 학살하는 장면을 담았다.
그리고 곧 제작할 두 번째 영상에서는, 그가 레어급 포션을 보상으로 얻었다는 걸 보여줄 생각이었다.
시작의 도시에서 레어급 포션이라니.
그렇게 많은 사람이 헛짓거리를 해도 나오지 않았던 히든 피스가 바로 이것 아니겠는가!
‘아마 이건 반향이 더 엄청날 거야.’
허나 컨텐츠는 거기까지였다.
그다음이 없었다.
영상 한두 개 터져도 그 인기를 이어나가지 못하면 잠깐 반짝했다가 사라질 뿐이다.
이한영은 그런 미튜버들을 지금껏 많이 봐왔다.
그렇기에 그는 곧장 월드 사가에 접속했고, 빠르게 움직였다.
“빨리…. 빨리 그 사람을 찾아야 해.”
해결책은 딱 하나뿐이었다.
자신의 미튜브를 대박나게 해 준 사람.
그를 찾아서 새로운 컨텐츠를 얻어야 했다.
“허억. 허억.”
그러나 도시 내부를 쉴 새 없이 뛰어다녀도 그는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이 넓은 도시를 혼자서 다 뒤지겠다는 게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
이한성은 전략을 바꿨다.
‘생각해보자. 내가 그 사람이라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눈을 감고 상상했다.
내가 만약 레전더리 직업을 얻었고, 고블린 정도는 아무렇지 않게 사냥할만한 실력이라면.
거기에 레어급 능력치 포션까지 퀘스트 보상으로 얻었다면 이 시작의 도시에서 무엇을 할까?
답은 금방 나왔다.
‘지난번처럼 좋은 보상을 주는 퀘스트를 또 운 좋게 찾아서 하는 건 어렵고. 아마 사냥을 하겠지.’
일반 몬스터는 절대 아닐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고블린도 아닐 것이다.
그 정도 실력이라면 빠르게 다음 도시로 넘어가고 싶어할 텐데, 쉽게 잡을 수 있는 고블린보다 더 강력한 놈들을 노리겠지.
이 시작의 도시에서 거기에 들어맞는 장소는 딱 하나뿐이었다.
‘어둠 숲!’
이유는 조금 달랐지만, 어쨌거나 언럭키가 어둠 숲에 있을 거라는 걸 운 좋게 때려 맞췄다.
이한영. 스트리머 컵라면이 어둠 숲을 향해서 서둘러 움직였다.
***
[아울베어의 발톱 검]
-아이템 등급 : 레어.
-아이템 효과 : 공격력 + 7 상승.
-착용자의 힘 능력치 + 1 상승.
-아울베어의 강력한 힘이 깃든 검이다. 사용자에게 그 힘의 일부가 전달된다.
-아이템 착용 제한 : 레벨 1 이상.
레어 등급의 검.
노란색으로 빛나는 아울베어를 잡고서 얻었다.
공격력도 지금껏 쓰던 검보다 훨씬 높고, 능력치 상승 옵션까지 붙어 있었다.
‘나이스.’
이 좋았다.
딱 필요한 순간에 쓸만한 검이 나타나다니.
지금만큼은 닉네임을 언럭키가 아니라 럭키로 지었어야 했나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물론, 이까짓 행운은 5억 먹튀 사건 불행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긴 했지만.
어쨌거나 발톱검을 착용하자, 그 순간부터 언럭키는 날아다녔다.
-콰직!
“쿠헝!”
[소량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푹!
“크르륵….”
[소량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
.
.
[레벨업!]
검 계열의 무기 사용 시 공격력 200% 증폭.
검을 활용한 스킬들의 효과 150% 상승.
모두 다 검왕에 붙어 있는 특성들이다.
그리고 새롭게 레어 등급의 검을 착용하자, 이 효과들이 빛을 발했다.
이전보다 공격력이 몇 배는 뻥튀기 된 것!
초보자들에게는 지옥의 사자나 다름없는 아울베어들이, 그에게는 식후 낮잠보다도 더 쉬운 상대였다.
아울베어들을 학살하고 다니니 레벨업은 금방이었다.
‘이제 문제는 네잎클로버를 찾는 건데….’
퀘스트 목표는 아울베어를 처치하는 게 아니다.
네잎클로버를 찾아 돌아가는 것이다.
그렇기에 언럭키는 아울베어를 사냥하는 한편, 열심히 바닥을 훑고 다녔다.
사방에 풀들이 널려있는 이곳에서 작은 네잎클로버를 찾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눈이 빠져라 돌아다니길 얼마간.
‘응?’
언럭키가 본능적으로 숲속 한구석을 쳐다봤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감각을 자극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마치 저기 뭔가 있는 것 같은데?’
그가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그에게는 ‘검을 들고 있을 시 정신력 보정 작동’이라는 특성이 존재했다.
이것 역시 검왕 직업이 지닌 효능이다.
때문에 이렇게 느껴지는 위화감을 절대 무시해서는 안 된다.
이제는 필요 없어서 인벤토리에 넣어놓은 노말 검을 조심스럽게 꺼내고, 전력으로 집어던졌다.
붕붕 날아간 검이 위화감이 느껴지는 나무쪽에 박혔다.
-푹!
“으악!”
비명과 함께 누군가가 모습을 등장했다.
언럭키는 상대가 인간이라는 걸 알아채자마자 곧장 검을 쥐고 달렸다.
이런 사냥터에서 은신한 채 자신 주변을 배회하고 있는 놈이라니.
딱 봐도 수상하다.
그렇기에 빠르게 접근해서 처치할 요량으로 검을 휘둘렀다.
“자, 잠깐만요! 싸우러 온 게 아닙니다! 제발 죽이지 마세요!”
다급한 상대의 목소리에 언럭키의 검이 그의 목 앞에서 우뚝 멈췄다.
“어…?”
언럭키가 눈을 크게 떴다.
“사, 살려주세요. 미, 미튜브 관련으로 얘기하고 싶은 게 있어서 찾아왔어요!”
그는 언젠가 다시 보기를 바랬던, 스트리머 컵라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