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화
“하아.”
백현이 비좁은 침대에 몸을 기대며 한숨을 쉬었다.
“오늘 있었던 일들 다 실화인가….”
낡아빠진 천장을 보니 그제서야 현실감이 들었다.
자신이 이 닭장 같은 고시원 감옥에 갇힌 건 분명 사실이었다.
그리고 게임 속에 들어가 행운의 무지개라는 스킬을 얻은 것도.
레전더리 직업부터 시작해서 남들은 발견하지 못한 시작의 도시의 히든 피스를 얻은 것도 모두 사실이었다.
“하하.”
절로 헛웃음이 나왔다.
믿겨지지 않는 일이었다.
물론 믿을 수 없다고 해서, 이 기회를 놓칠 생각은 없었다.
‘지금 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걸 살려야 해.’
게임으로 돈을 벌어 빚에서 벗어나는 것.
그것이 현시점에서 백현의 최우선 목표였다.
그가 CCTV가 있는 곳을 슬쩍 바라봤다.
‘다행히 이번에는 아무런 말도 안 하는군.’
아까는 빨리 레벨업 안 하냐면서 시비를 걸더니.
20시간을 채우지 않고 접속을 종료하고 누웠는데, 성 팀장이 뭐라고 하지를 않는다.
한 번 갈궜으니 오늘은 봐준다는 뜻인가?
그렇다면 잘된 일이다.
백현은 다시 월드 사가에 대한 것으로 생각을 돌렸다.
그가 일찍 게임을 종료한 건 다른 게 아니고, 정보 조사 때문이었다.
그는 갑작스레 찾아온 NPC로부터 유니크 아이템을 보상으로 주는 퀘스트를 받았다.
솔직히 바로 수행하고 싶기는 했다.
하지만 참았다.
‘어둠 숲은 미리 정보 조사를 자세하게 해야 돼.’
시작의 도시 북쪽에 있는 어둠 숲.
퀘스트는 그 숲에서 어떤 재료를 찾아오는 것이다.
시작의 도시는 초보자 지역이기에 대부분의 장소는 그리 까다롭지 않다.
고블린들도 처음에 마주치면 강하다고 생각되지만, 차근차근 상대하며 익숙해지면, 충분히 할만하다.
그러나 어둠 숲은 달랐다.
시작의 도시에서 가장 위험한 사냥터.
실력에 자신 있는 유저들이 들어가는 장소였으며, 하드코어 플레이를 해야 하는 곳이었다.
일반적인 실력으로는 100% 죽는 곳이며, 아무리 레전더리 직업을 얻은 백현도 위험할 수 있다.
그렇기에 미리 사전 자료 조사는 필수였다.
‘어둠 숲에서 나타나는 몬스터들의 특징, 주의해야 할 점, 랭커들의 플레이 기록 같은 걸 좀 살펴봐야지.’
진지하게 이 길로 가기로 마음먹었다면, 철저한 준비는 필수였다.
때문에 백현은 자기 직전까지 월벤에 들어가 이것저것 정보들을 살펴봤다.
***
다음 날.
[훅. 훅.]
[기상. 기상하세요. 오늘 하루도 신나게 캡슐에 접속할 시간입니다.]
스피커에서 웬 남정네의 목소리가 나왔다.
듣기만 해도 짜증이 나는 목소리였다.
‘몇 시야, 지금….’
스마트폰을 켜자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불빛이 흘러나왔다.
5시 30분.
아직 제대로 해도 뜨지 않은 시간이건만, 스피커에서는 계속 일어나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시계 밑에, 새벽에 온 문자 한 통이 보였다.
-백현 씨. 어제는 첫날이어서 일찍 캡슐 밖으로 나와도 뭐라고 하지 않았는데. 오늘부터는 봐주지 않습니다. 무조건 20시간 채우세요.
성강호 팀장이다.
아침부터 가슴이 답답해지는 기분이었다.
‘하아. 앞으로는 자료 조사도 캡슐 안에서 해야겠네.’
백현은 쯧 하고 인상을 찌푸리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적당히 세안을 하고는 방을 나섰다.
이곳에서는 식사를 하려면 공용 부엌으로 가야 했다.
개인 방은 워낙 좁아서 가스렌지나 싱크대도 없었으니까.
부엌으로 가니 몇 사람이 이미 나와서 밥을 먹고 있었다.
그들은 백현이 들어오는데도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느릿하게 식사에 열중했다.
자세히 보면 눈동자가 반쯤 죽어있다는 게 보였다.
비슷한 처지였기에 그들의 마음이 어떤지는 백현이 잘 이해하고 있었다.
백현 역시 그들에게 별 신경조차 쓰지 않고 간단하게 밥을 펐다.
밥과 김치.
딱 그 정도만 공용 음식으로 제공되어 있었다.
조용히 먹고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 순간이었다.
“어라. 새로 온 친구인가 봐? 처음 보는 얼굴이네?”
자기 몫을 가지고 식탁에 앉자, 맞은편에 앉아있던 사람이 말을 걸었다.
떡진 머리와 오랫동안 자르지 않은 수염. 동그란 안경 너머로 보이는 퀭한 눈동자.
별로 상종하고 싶지 않게 생긴 사람이었다.
“예, 뭐.”
백현은 대충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별로 대화하기 싫다는 모습이 팍팍 보였다.
남자는 그걸 보고도 전혀 상관하지 않고 말했다.
“크핫. 자네도 참 불쌍해. 이 지옥에 끌려오다니. 나는 박세훈이라고 하네. 자네는 이름이 뭔가?”
“…백현입니다.”
“백현? 성이 뭔가? 아니면 백씨에 외자인 건가?”
“외자입니다.”
“오호. 부모님이 좋은 이름을 지어 주셨구만.”
글쎄.
그건 잘 모르겠다.
보육원 원장님께 들은 바로는 갓난아기 시절에 이름이 적힌 쪽지와 함께 보육원 앞에 버려져 있었다고 한다.
그걸 좋은 이름이라고 할 수 있을까?
“뭐 하다가 여기 들어왔어? 나는 밖에 있을 때는 여의도에서 잘 나가는 증권맨이었는데. 이런 말 하면 좀 그렇지만, 진짜 잘 나갔다고.”
“…아, 예. 저는 그냥 회사 다녔습니다.”
백현은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보육원이나 이곳이나, 사회 밑바닥 계층이라는 것은 똑같다.
거기서 지내면서 깨달은 게 있다면, 이런 사람들은 허세가 가득하다는 점이었다.
내가 밖에서는 어쩌구 저쩌구. 기회만 있었으면 당장이라도 박차고 나가서 어쩌구 저쩌구.
증명할 방법도 없으니 막 지르고 보는 것이다.
대처법은 간단하다.
그냥 대충 고개 몇 번 끄덕여주고 넘어가면 그만이다.
“안 믿네? 하긴 뭐. 백현 씨가 볼 때는 웬 폐인 아저씨가 하는 말 같겠지.”
박세훈은 백현의 그런 모습에 한숨을 한 번 쉬었다.
그리고는 옆을 툭 쳤다.
“이봐. 용승 씨. 그러니까 밥만 먹지 말고 한마디 좀 해줘. 백현 씨가 내 말을 안 믿잖아.”
“크훕. 큼. 밥 먹는 중입니다.”
박세훈의 옆에 앉아있던 그는 곰 같은 덩치의 남자였다.
키는 190은 될 법한데 보디빌더처럼 몸이 거대했다.
위협적인 생김새였는데 박세훈은 그런 거 전혀 모르겠다는 듯 다시 한번 그의 팔을 한 번 더 쳤다.
“김치랑 밥밖에 없는데 그게 그렇게 맛있나? 용승 씨는 참 먹성이 좋아.”
“어렸을 때부터 잘 먹었습니다.”
“칭찬 아니니까 그렇게 입꼬리 올리지 말어.”
박세훈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가 다시 백현을 쳐다봤다.
“이쪽은 이용승이야. 덩치랑은 다르게 방에서 혼자 미튜브 보고 덕질하는 거 좋아하는 오타쿠.”
“크흠. 안녕하세요.”
박세훈의 소개에 이용승이 고개를 살짝 숙였다.
백현 역시 마주 인사해주었다.
박세훈이 히죽 웃었다.
“이 친구가 여기에 들어온 이유 알려줄까? 아주 골 때리는데.”
“아…형님. 그건 좀….”
“왜. 재밌잖아. 얘기하지 말까?”
“…사실 딱히 상관없긴 합니다.”
“그럼 들어봐봐. 아까 내가 이 사람이 오타쿠라고 말했잖아. 근데 그냥 오타쿠가 아니야. 좋아하는 BJ한테 거액의 후원금도 뻥뻥 쏴대는 중증의 오타쿠라고.”
“중증의 오타쿠는 아닙니다. 저보다 더 심한 사람도 있어요.”
“용승 씨 그런 후원금으로 빚이 몇억씩 생기지 않았어?”
“한 달에 몇억씩 후원하는 사람도 있긴 해요.”
“그런 사람들은 그냥 돈 많은 사람들이잖아. 당신처럼 빚내고 그렇게 하는 사람들도 있어?”
“…없진 않죠.”
박세훈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에휴. 하긴 뭐. 사실 용승 씨한테 뭐라고 할 처지가 아니지. 내가 아까 잘 나가는 증권맨이었다고 했잖아. 근데 왜 여기에 있을 거 같아요?”
“글쎄요. 빚이 생겨서 여기 온 걸 테니까. 회삿돈 횡령이라도 했습니까?”
백현은 대충 대답했다.
“오? 백현 씨 눈치가 굉장히 빠르네?”
“……?”
그냥 찍은 건데 이게 맞다고?
“맞아. 내가 프랍트레이더로 일했는데, 그러다 보니까 좀 아깝더라고. 회삿돈만 늘려 주고 정작 내 자산은 그대로잖아. 그래서 살짝 횡령해서 코인에 넣었다가 그만…”
박세훈이 제 목을 툭툭 쳤다.
“나락으로 갔지, 뭐.”
“그렇군요.”
백현은 전혀 불쌍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자기가 자초한 일 아닌가? 왜 저렇게 아쉽다는 듯 이야기하는 걸까?
“근데 백현 씨는 왜 여기에 왔어?”
“…친구 보증 서줬습니다.”
“크. 예술이구만. 더 안 들어봐도 뻔하네. 친구가 튀었지?”
“…예.”
“그럴 줄 알았네. 엄청 오래되고 친한 친구였겠어?”
“…예.”
백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왜 아직도 성재가 자기를 배신하고 도망쳤는지 모르겠다.
별로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냥 그 정도인 놈이고, 우리 사이가 그것뿐이었다는 거겠지.’
솔직히 아직도 속이 쓰렸다.
같이 보육원에서부터 동고동락하던 사이였건만.
솔직히 5억이라는 돈보다는, 형제와도 같던 친구가 뒤통수를 쳤다는 게 더 마음이 아팠다.
백현의 표정이 어두워진 걸 본 박세훈은 슬쩍 입을 다물고는 식사에 집중했다.
밥에 김치.
“에이. 맛대가리 하나 없네. 용승 씨는 어떻게 그렇게 맛있게 먹는 거야?”
“맛있기만 한데요?”
“참나….”
박세훈은 인상을 찌푸리며 스마트폰으로 미튜브를 켰다.
식사가 맛이 없으니 이런 거라도 보며 꾸역꾸역 먹으려는 의도였다.
어쨌거나 오늘 하루도 지내려면 이런 식사라도 해야 하니까 말이다.
한동안 공용 부엌에는 식기를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밥 먹는 소리만 들렸다.
그러다 잠시 후.
“으아. 부러워 죽겠네, 이 자식.”
박세훈이 식탁을 탕하고 쳤다.
옆에 있던 백현과 이용승이 깜짝 놀라 쳐다봤다.
“이것 좀 봐봐!”
박세훈은 그들에게 자신이 보고 있던 영상을 보여주었다.
이용승은 한눈에 그게 뭔지 알아봤다.
“월드 사가 플레이 영상이네요?”
“어, 맞아.”
“위치는요?”
“시작의 도시.”
“시작의 도시면…별로 특별한 영상은 아니겠는데요?”
“아니야. 나도 그럴 거라 생각했는데, 이건 좀 다르더라.”
박세훈이 영상을 조금 앞으로 돌렸다.
-어, 어!? 원래 고블린들이 저렇게 빨리 죽는 건가요?
-공포…? 설마 저 사람. 튜토리얼에서 업적 얻어서 고블린 상대로 공포 스턴 걸고 있는 거예요?
-와…저 사람 무조건 유니크급 이상의 직업일 게 분명합니다. 그게 아니면 저딴 노멀 검으로 고블린들을 한 방에 픽픽 죽일 수 있을 리가 없어요.
“우와….”
이용승이 감탄했다.
박세훈이 어깨를 으쓱였다.
“어때? 그냥 영상이 아니지?”
“예, 그렇네요. 초보자 도시에서 저런 포스를 보여주는 영상은 꽤 귀하니까요.”
“아으. 부러워 죽겠네. 이 녀석은 앞으로 탄탄대로겠다. 스타 플레이어 돼서 월에 억대로 버는 사람이 되겠지? 요즘엔 운동선수보다 월드 사가 프로 플레이어가 더 돈을 많이 번다던데.”
박세훈이 주먹을 꽉 쥔 채 부러움으로 부들부들 떨었다.
이용승은 옆에서 ‘너무 그런 거 부러워하지 마세요, 형님.’ 하면서 그를 달래고 있었다.
허나 두 사람과 달리, 백현은 아무런 반응을 할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이 뭘 잘못 봤나 싶어 몇 번이고 눈을 비비며 영상을 다시 살펴봤다.
하지만 여전히 확실하게 보이고 있었다.
‘이거…나잖아?’
영상 속에서 고블린들을 학살하는 사람은.
바로 자신이었다.
***
그리고 같은 시각.
스트리머 컵라면이라는 이명을 쓰는 이한영은 늦게까지 편집을 하고 잤지만, 업로드된 영상을 확인하고 싶은 기대감에 아침 일찍 잠에서 깼다.
사실 억지로라도 기대를 안 하려고 했다.
괜히 기대했다가 조회수가 별로면 실망할 테니까 말이다.
분명 이 영상은 잘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어디 그런 예측이 항상 맞겠는가.
그래서 눈을 반만 뜬 채 미튜브를 확인했는데…
#실시간 인기 급상승 98위.
“이, 이게 뭐야…!?”
그가 환호성을 지르며 벌떡 일어났다.
“대, 대박! 초대박이다!”
인생에 몇 번 안 온다는 기회가 온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