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8화
유저 ‘컵라면’은 종합 게임 스트리머이다.
그것도 여러 가지의 게임을 즐겁게 하는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모든 게임을 목숨 걸고 하는 것보다는, 시청자들과 함께 한 번이라도 웃을 수 있는 상황을 만드는 걸 좋아했다.
‘이거 잘 걸렸다.’
때문에 언럭키를 봤을 때 눈을 빛냈다.
좋은 의도로 조언을 해줬는데 무시하는 초보 유저.
스트리머 입장에서 어떻게 이걸 그냥 지나갈 수 있겠는가?
언럭키는 컵라면의 조언을 듣지 않고 제 갈 길을 떠났다.
그런 그의 뒷모습을 보며 컵라면이 말했다.
“여러분. 혹시 저분이 퀘스트 어떻게 깰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ㅋㅋㅋㅋㅋㅋ. 아 너무 궁금하다고.
-나 저런 타입 알아. 뭐든지 자기가 직접 해봐야 하는 사람.
└보나 마나 온갖 개고생하면서 쌍욕이란 쌍욕은 다 하겠지.
└내 생각엔 라두락 꽃 구하러 가는 길에 몇 번 죽을 듯.
└고블린들한테 죽어봐야 아~ 아까 그 착한 유저 말 들을걸~ 할 듯 ㅋㅋㅋ.
채탕창의 반응은 굉장히 좋았다.
컵라면이 눈을 반짝였다.
스트리머라면 이런 기회를 놓칠 수 없는 법!
‘이거 잘하면 미튜브(Metube)에 올릴 컨텐츠로 써먹을 수도 있겠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재밌는 영상이 만들어질 수도 있겠다.
“좋습니다. 그러면 지금부터 잠깐 정도 저 유저분 미행해보는 거로 하죠.”
그때부터, 컵라면은 언럭키의 뒤를 조심스럽게 따라가기 시작했다.
***
그렇게 미행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
-아니… 저게 대체 뭐지?
-고블린들이 걍 픽픽 죽어??
채팅창에 물음표가 넘쳐났다.
그건 컵라면 역시 마찬가지였다.
“저게… 뭐죠?”
그가 자신의 두 눈을 비볐다.
혹시 내가 뭘 잘못 봤나?
허나 여전히 보이는 광경은 똑같았다.
이름 모를 유저가 도시를 벗어났다.
거기서부터는 몬스터가 등장하는 구간이라 조심해야 한다.
심지어 라두락 꽃이 있는 절벽은 고블린들의 영역을 통과해야 한다.
튜토리얼 고블린들과는 명백히 다른 놈들.
상황이 불리하면 도망칠 줄도 알고, 서로 연계 플레이까지 하는 녀석들이다.
“저 녀석들 초보자들에게 악마라고 불리는 놈 아니에요?
-ㅇㅇ. 맞음.
-자고로 평범한 초보자라면 고블린에게 죽어본 경험이 최소 5번은 되어야지.
“그렇죠. 그 말이 맞죠. 근데…왜 제 눈에는 토끼보다 더 쉽게 잡히는 것 같죠?”
컵라면이 중얼거렸다.
이름 모를 유저는 걸어가면서 슬쩍슬쩍 검을 휘둘렀는데, 그때마다 고블린들이 픽픽 죽어 나갔다.
심지어 검을 피할 생각도 안 하고 있었다!
“아니…원래 저러면 안 되는데.”
고블린은 절대 저렇게 쉽게 죽어주지 않는다.
직접 경험해봤던 컵라면이기에 잘 알고 있었다.
설사 현실에서 아무리 대단한 검도 고수였다고 해도, 이 가상 세계에서는 공격력이 정해져 있다.
무조건 사투를 벌이며 처치해야 하는데,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대답은 후원금과 함께 나타났다.
[와 이걸? 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나 저거 뭔지 짐작 가는 게 있음. 튜토리얼 때 고블린 족장 잡으면 얻는 업적 아님? 거기에 보면 고블린들에게 공포심 느끼게 하는 효과가 붙어있는데.
공포심?
컵라면이 시선을 돌려 이름 모를 유저가 상대하는 고블린들을 쳐다봤다.
자세히 보니 확실히, 공포에 떠는 것 같기도 하다.
“와 이걸님 1000원 후원 감사합니다. 확실히 그 말씀이 맞는 것 같네요. 그런데…그러면 저분이 특급 유망주라는 뜻인가요?”
특급 유망주.
대형 길드들이 유저들에게 붙이는 별명인데, 튜토리얼 때 족장을 잡은 자는 특급으로 분류되었다.
‘설마…?’
컵라면의 눈이 화들짝 커졌다.
월벤(Warven)에서나 봤던 그런 특급 유망주가 여기에 있다고?
-근데 좀 이상한 게, 아무리 특급 유망주라고 해도 어떻게 고블린을 한 방에 잡음?
└맞아. 나도 아까부터 그게 궁금했음. 아무리 공포에 떤다고 해도 데미지 한계 때문에 최소 여러 번은 베어야 죽을 텐데?
└복장 보면 많아 봐야 5레벨도 안 되는 것 같고. 혹시 저 검이 좋은 아이템인가?
“아닙니다. 저건 그냥 검사 처음 시작할 때 주는 노말 검이에요.”
컵라면이 확신을 담아 말했다.
“제가 저 밋밋하고 단조로운 문양을 못 알아볼 리가 없거든요.”
지금은 아니지만, 이전 캐릭터는 노멀 등급의 검사였다.
그렇기에 당연히 노멀 검의 디자인은 잘 알고 있었다.
-ㅋㅋㅋㅋ. 하긴 그건 그렇지. 나도 잘 알고 있음.
-그럼 도대체 어떻게 고블린들을 원킬 내는 거임?
그 순간, 문득 컵라면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게 있었다.
‘아, 혹시….’
레어급 이상의 직업은 여러 가지 보너스가 생긴다.
특수 스탯이 생기거나 몸놀림 보정이 생긴다. 혹은 공격력이 늘어날 수도 있었다.
그런 효과는 등급이 커질수록 높아졌다.
컵라면 역시 그러한 레어 직업을 얻었기에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유니크 이상의 직업쯤 되면 공격력도 엄청나게 뻥튀기가 된다고 하지.’
그렇다면 이론상 저렇게 고블린을 한 방에 잡을 수도 있긴 하다.
‘…에이 설마.’
그러나 컵라면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유니크 급의 직업을 가진 초보자?
그런 운 넘치는 희귀종을 자신이 볼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일단 조심스럽게 계속 따라가 보겠습니다. 다행히 주변을 별로 신경 쓰지 않는 사람 같아서 어렵지는 않군요.”
그래도 컵라면은 이 컨텐츠가 생각 외로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눈을 반짝였다.
그가 언럭키의 뒤를 계속해서 미행했다.
***
언럭키는 한참을 나아간 끝에 목적지인 절벽에 도착했다.
여기까지 오는 길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고블린을 처치하는 건 누워서 껌 씹기였고, 오히려 광활한 대지의 풍경을 보며 감탄을 여러 번 했다.
어쨌거나, 언럭키가 자신을 가로막은 절벽을 바라봤다.
목을 한참 꺾어야 저 위쪽이 보인다.
저 높은 곳 어딘가에 피어있는 라두락 꽃을 구해서 가져가야 했다.
‘어디. 한번 가보자고.’
콱.
한쪽 발을 절벽 사이에 끼워 넣은 언럭키가 서서히 오르기 시작했다.
“후욱… 후욱….”
월드 사가는 가상 현실 게임이다 보니 이런 것 모두 다 직접 몸을 움직여 줘야 했다.
가상의 육체라도 절벽 타기는 힘들었다.
처음 해보는 거라 손발이 삐끗할 때도 있었는데, 그럴 때면 다리가 후들거렸다.
진짜 현실감이 넘쳐났다.
다행이라면, 레전더리 직업이 이럴 때도 도움을 준다는 점이었다.
[검왕(레전더리) 직업 특성으로 고난이도 행동에 보정이 붙습니다.]
검왕은 검을 쓰는 모든 행동에 보정이 붙는다.
지금은 검은 안 쓰지만, 그래도 검을 등에 차고 움직이고 있었다.
아마 그래서 보정이 붙는 것 아닐까?
물론, 그렇다고 해도 힘든 건 어쩔 수 없었다.
절로 불평이 나왔다.
“…역시 닉네임을 언럭키(Unlucky)로 지은 건 정말 잘한 선택이었어.”
첫 퀘스트부터 이딴 퀘스트를 받다니.
아무리 노란색 퀘스트라고 해도, 이런 귀찮은 일을 해야 한다는 점에 있어서 역시나 운이 없다고 생각했다.
좀 쉬운 거면 얼마나 좋을까!
“후욱. 후욱.”
언럭키가 숨을 몰아쉬며 열심히 절벽을 올랐다.
후두둑 돌 떨어지는 소리가 살벌하게 들렸다.
월드 사가는 죽으면 24시간 동안 로그인이 불가능하다.
그가 그냥 게이머였으면 큰 문제는 아니다.
그냥 하루 다른 일 좀 하고 다시 접속하면 그만이지.
‘하지만 내가 24시간 동안 접속을 안 하면, 성 팀장이 가만히 안 있을 거야.’
사채업자답지 않게 젠틀하게 생긴 성강호 팀장이다.
허나 백현은 몇 년간의 사회생활로 알고 있었다.
평소에 화도 잘 안 내고 겉으로 냉정한 저런 사람이, 실제로는 훨씬 더 악독해질 수 있단 것을 말이다.
처음 자신을 찾아왔던 날, 성 팀장과 함께 온 덩치들은 그를 두려워하는 기색을 보였다.
아마 성 팀장에게는 무서운 면모가 숨겨져 있을 것이다.
그런 그에게 빈틈을 보일 수는 없다.
그렇기에 언럭키는 온 정신을 집중해서 절벽을 올랐다.
“후우….”
그리고, 무사히 절벽 위에 도착했다.
위에는 분홍색 꽃잎을 지닌 라일락 꽃들이 이리저리 피어있었다.
“절벽 타기가 제일 빡세네.”
그가 한숨 쉬듯 말했다.
고블린들은 생각보다 쉬웠는데, 절벽이 꽤 힘들었다.
물론 그것도 어렵다 수준이었지, 집중해서 하니까 할만하긴 했다.
절벽 위에서 꽃을 찾는 건 간단했다.
한가운데에 라일락 꽃이 무더기로 피어있었으니까 말이다.
그가 라일락 꽃 가까이로 다가갔다.
바로 앞까지 가자, 꽃망울 위로 넘실거리는 붉은 아지랑이가 보였다.
붉은색.
가장 행운이 낮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뿌리 쪽이 진짜였군.’
수많은 라일락 꽃 중, 어느 한 송이 뿌리 부분이 노란색으로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퀘스트는 그냥 라일락 꽃을 구해오라는 것이었지만, 저 뿌리를 가져가면 뭔가 더 좋지 않을까?
그렇기에 언럭키는 조심스럽게 주변 땅을 살살 긁어 꽃을 파냈다.
살짝만 건드려도 뿌리는 끊어질 수 있기에, 특히나 조심했다.
완전히 꽃 전체를 뽑아낸 다음,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라일락 꽃(퀘스트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
‘오케이. 끝.’
꽤 수월하게 꽃을 얻었다.
‘그나저나 왜 이걸 하지 말라는 거지?’
그도 월벤에서 라일락 꽃 구하기 퀘스트는 하지 말라는 걸 보긴 했다.
그러나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대로 돌아가서 꽃을 가져다주기만 하면 끝이다.
이렇게 쉬운데 절대 하지 말라고 분류해놓다니.
물론 남들은 고블린을 어렵게 잡아야 하긴 하겠지만…그래도 할만한데?
언럭키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다시 내려가기 위해 절벽에 섰다.
휘잉 하고 부는 바람이 머리카락을 스치고 지나간다.
땅이 저 멀리 있고, 고블린들이 콩알만 하게 보였다.
‘…이거 내려가는 건 굉장히 어려워 보이네’.
올라올 때는 위만 보고 올라왔지만, 내려가는 건 다르다.
밑을 보니 아찔했다.
‘왜 이 퀘스트를 말렸는지 알겠어.’
그제서야 언럭키가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어려운 퀘스트가 맞았다.
***
“와. 진짜 저 사람. 뭐 하는 사람이래요? 절벽을 왜 저렇게 잘 타?”
유저 컵라면은 절벽을 타고 올라가는 언럭키를 보며 감탄했다.
감탄은 그 혼자서만 한 건 아니었다.
-초보자라면 저기서 무조건 한 번은 떨어져서 죽는 게 국룰인데, 왜 저렇게 잘해;;
-현실에서 클라이밍 장인인가ㅋㅋㅋㅋ.
-아니면 사실 초보자 아닌 거 아님? 컵라면님 처럼 겜생 2회차 아닌가?
“아. 그럴 수도 있겠네요. 저분도 좋은 직업 얻으려고 반복해서 캐릭터 만든 거면 그럴 수 있죠.”
컵라면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게임을 처음 하는 유저라면 어지간해서는 저렇게 절벽을 잘 타지 못한다.
스탯이 낮아 육체 능력은 현실과 비슷하고, 몸놀림을 보정해 주는 스킬도 없기 때문이다.
허나 저 유저가 새로 캐릭터를 만든 거라면, 저 움직임이 이해가 됐다.
이 세계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을 테니, 그 경험이라면 어찌어찌 절벽 타기 정도는 가능할 테니 말이다.
‘아니 근데 그러면 라일락 꽃 구하기 퀘스트를 할 리가 없는데?’
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순간, 다시 절벽가에 언럭키가 모습을 드러냈다.
“엇. 내려옵니다. 라일락 꽃을 찾았나 본데, 일단 숨겠습니다.”
컵라면이 재빨리 움직였다.
절벽을 오를 때는 뒤를 보지 않는지라 들키지 않았지만, 내려올 때는 수시로 바닥을 확인할 것이다.
커다란 바위 뒤에 숨은 컵라면은, 언럭키가 완전히 내려와 도시 방향으로 움직일 때까지 숨죽였다.
그가 저 멀리 가는 언럭키를 보며 히죽 웃었다.
‘뭐, 어쨌거나 잘됐어.’
이제부터가 하이라이트다.
기껏 힘겹게 퀘스트 아이템을 구해왔건만, 보상이 별로인 걸 보고 허탈해하는 모습을 보일 테니까 말이다.
“흐흐. 여러분. 저 유저분 퀘스트 완료하는 것까지 보고 갈까요?”
대답은 후원과 함께 나타났다.
[묻고 더블로 가! 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ㅋㅋㅋㅋ아. 당연하지. 라일락 꽃 힘들게 구해왔는데 보상 쓰레기 받고 울 것 같은 뉴비 표정은 무조건 구경해 줘야지~!
“크. 그렇죠. 그게 또 뉴비들 보는 맛 아니겠습니까! 후원 감사합니다. 묻고 더블로 가시죠!”
컵라면이 언럭키가 지나간 방향으로 조심스럽게 뒤따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