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화
퀘스트.
RPG 게임에서 NPC가 주는 퀘스트를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월드 사가 역시 그러했다.
어떤 퀘스트를 해야 더 효율이 높고 좋은 보상을 얻을 수 있을지, 누구나 다 그걸 궁금해했다.
‘근데…퀘스트에도 내 능력이 적용된다고?’
빨주노초파남보.
행운 정도에 따라 무지개 색깔로 나뉘어 보이는 능력.
지금 NPC들의 머리 위에 떠 있는 물음표들이 그런 색으로 보였다.
대부분은 빨간색이었다.
가장 낮은 등급의 보상을 준다는 의미이겠지.
언럭키는 도시 내부를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대부분의 퀘스트 NPC들은 붉은색 물음표를 가지고 있었다.
극히 드물게 주황색이 보일 뿐이었다.
‘뭐야. 보라색은 없어? 아니면 남색은?’
직업 뽑기 때와 튜토리얼 때 보라색으로 꿀을 달달하게 빤 언럭키다.
이번에도 그런 걸 기대했는데, 막상 까보니 주황색보다 좋은 게 없다.
고작(?) 빨간색과 주황색뿐이라니.
이래서야 행운의 무지개 능력을 써도 별것 없지 않은가.
괜히 커다란 선물 상자를 받았는데, 막상 까보니 잡동사니만 들어있는 기분이었다.
사실 당연한 일이긴 하다.
이곳은 시작의 도시.
튜토리얼을 갓 통과한 1레벨 유저들이 모이는 장소였다.
이런 곳에 유니크나 레전더리 보상을 뻥뻥 주는 퀘스트가 있을 리가 없었다.
그래도 언럭키는 포기하지 않고 돌아다녔다.
어딘가에 더 좋은 퀘스트가 있을 거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은 채로.
그렇게 한참을 도시 내부를 빨빨거리며 돌아다닌 결과.
‘있다!’
처음으로 빨간색, 주황색이 아닌 걸 발견했다.
언럭키가 눈을 빛냈다.
식당 주인 복장을 한 NPC의 머리 위로, 노란색 물음표가 떠다니고 있었다.
***
“자. 이제 어떤 퀘스트를 해볼까요~.”
종합 게임 스트리머 ‘컵라면’은 밝은 목소리로 그렇게 소리쳤다.
그의 주변에는 아무도 없어서, 잘못하면 텐션 높은 미친 사람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그는 미치지도 않았고, 극히 정상이었다.
그는 사람과 대화 중이었다.
정확히는 스트리밍 방송 중이었다.
“여기서 선택을 잘해야 하는 거 아시죠? 저도 레전더리 아이템 보상으로 주는 퀘스트 한번 해보고 싶은데요.”
컵라면의 말에 채팅창에는 폭소가 쏟아졌다.
-ㅋㅋㅋㅋㅋㅋ. 시작의 도시에서 레전더리? 꿈도 크군.
-어차피 시작의 도시 퀘스트는 거기서 거기니까 아무거나 하세요.
-ㅇㅇ. 난이도도 다 거기서 거기일거임.
-허세킹 컵라면 ㅋㅋㅋㅋㅋ.
나쁘지 않은 반응에 그가 미소 지었다.
‘새로 캐릭터 만들어서 시작했는데, 괜찮네.’
그는 원래 월드 사가를 플레이하던 캐릭터가 있었다.
초창기 캐릭터였는데, 노멀 직업을 가졌기에 그리 높은 레벨까지 올라가지 못했다.
그래서 과감하게 삭제하고 100만 원을 들여 새로 만들었다.
어차피 그는 여러 가지 게임을 하는 종합 게임 스트리머.
한 게임을 파지도 않고, 새로 만든 캐릭터의 직업이 더 좋기를 원했다.
그리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무려 레어 직업을 얻어버린 것이다!
컵라면이 썩소를 흘리더니 코를 쓱 훔쳤다.
“훗. 안타깝네요. 제 레어 직업 앞에서는 그 어떤 퀘스트라도 한방 감일 텐데.”
-아…저 재수 없는 미소 뭐임.
-형. 제발 그런 표정 하지 말아줘. 정신 나갈 것 같아.
-이대로 구독 취소 버튼 누를까?
컵라면이 재빨리 표정을 원래대로 돌렸다.
“아이고오 시청자님들. 제가 잘못했습니다. 부디 구독 취소만은 말아주십시오.”
-알았으면 조심하라구!
-처신 잘하라고!!
반쯤은 농담 같은 개그를 시청자들과 주고받으며, 컵라면은 도시 내부를 돌아다녔다.
‘뭔가 재밌는 퀘스트를 해야 할 텐데.’
월드 사가는 최초의 가상현실 게임이다 보니 온갖 실험이 이뤄졌다.
특히나 시작의 도시는 무려 8억 명이나 되는 유저들이 거쳐 간 장소이다.
그렇기에 그동안 수많은 분석이 이뤄졌고, 미친 짓도 많이들 했다.
<히든피스! 도시 어딘가에 분명 히든피스가 있을 거야!>
<저기요. 조각사님. 혹시 조각 검술 하실 줄 아시나요? 네? 무슨 헛소리냐고요? 아….>
44번 연달아 죽어보기, 노숙자인 척 구걸해보기, 수련장에서 허수아비 상대로 10만 번 목검 휘두르기… 등.
그리고 게임이 오픈하고 1년 6개월이 지난 지금, 결론이 나왔다.
<히든피스는 개뿔. 여기는 아무것도 없어.>
<이름부터 시작의 도시였을 때 알아봤어야 했는데 ㅋㅋㅋㅋ.>
<정말 그냥 게임을 ‘시작’하라고 만들어놓은 도시였잖아….>
특별한 아이템도, 직업도 없었다.
초보 유저들이 게임에 적응할 수 있게 잡다하고 다양한 퀘스트가 존재하는 도시일 뿐이었다.
극히 드물게 꽤 좋은 퀘스트를 수행한 사람도 있었지만, 그런 자는 손에 꼽힐 정도였다.
그렇기에 컵라면은 고민이 되었다.
‘시청자 입장에서는 재미있으면서도, 내가 힘들지 않은 걸 잘 골라야 해.’
어차피 시작의 도시 퀘스트는 거기서 거기다.
그러니 별로 힘들지 않고 편하게 레벨업 할 수 있는 퀘스트를 고르는 게 중요했다.
그게 요즘의 메타였다.
그 순간이었다.
걸어가던 컵라면의 시선이, 우연히 어느 NPC와 대화하고 있는 유저에게로 향했다.
“혹시 제가 도와드릴 일이 있습니까?”
“음? 어떻게 알고 왔는지 모르겠군. 마침 라두락 꽃이라는 재료가 다 떨어졌는데. 구해다 줄 수 있겠나?”
“예. 알겠습니다.”
“고맙네. 라두락 꽃은 도시 밖 절벽 꼭대기에서 구할 수 있네.”
얼핏 들으면 평범하게 NPC에게 퀘스트를 받는 것 같다.
허나 컵라면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방금 저 사람, 설마 라두락 꽃 구해오기 수락한 거예요?”
NPC에게서 받은 퀘스트 내용이 문제였다.
-엌ㅋㅋㅋㅋㅋㅋ. 라두락 꽃 구해오기ㅋㅋㅋㅋ. 그거 초보자 도시에서 받는 퀘스트 중 가장 귀찮은 거 아님?
-ㅇㅇ 맞음.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하는 퀘스트잖아.
-보니까 퀘스트 주는 사람이 식당 NPC네. 보상으로 식빵 10개 이딴 거 주겠는데 ㅋㅋㅋㅋ.
초보자의 도시에서는 대표적인 악명 퀘스트들이 존재한다.
퀘스트 보상은 거기서 거기인데, 유독 난이도가 까다로운 것들.
라두락 꽃 구해오기 같은 경우가 그러했는데, 유독 저걸 구해오라는 NPC들이 많았다.
절벽에 핀 라두락 꽃은 엄청나게 고생을 해야 얻을 수 있는 아이템이었다.
초창기에는 어려우면 보상도 좋을 줄 알고 열심히 한 사람들이 많았다.
허나 그들이 모두 엄청난 손해를 봤고, 이제는 기피하는 퀘스트가 되어버렸다.
“아니…저분은 월벤도 안 보셨나?”
월벤(Warven) 에는 초보자 육성 정리글이 있다.
관리자 인증까지 받을 글로써, 보통 월드 사가 초보자들은 그걸 정독하고 시작한다.
거기 보면 라두락 꽃 퀘스트는 하지 말라고 분명히 적혀있건만…
“하긴 뭐. 모두가 게임 전에 사전 조사하고 시작하는 건 아니니까요.”
컵라면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 순간이었다.
[컵라면바보 님이 1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분 같은데, 이 퀘스트 포기하라고 조언 해주죠?
“컵라면 바보님. 10000원 후원 감사합니다. 제가 바보는 아니지만, 그렇게 할게요.”
컵라면이 고개를 끄덕였다.
후원이 들어오지 않았다면 그냥 지나갔을 것이다.
허나 10000원이라도 후원을 받은 이상, 초보에게 적절한 조언 정도는 해줄 만했다.
“저기요.”
컵라면이 이름 모를 유저에게 다가갔다.
유저는 컵라면을 살짝 경계했다.
“…저 부르신 겁니까?”
컵라면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야. 왜 이렇게 경계하는 거야? 꼭 무슨 사채업자한테 시달리는 사람 같네.’
컵라면이 조금 더 부드럽게 인상을 폈다.
“예. 다름이 아니고, 방금 전에 우연찮게 라두락 꽃 퀘스트 받는 걸 들어서요.”
“아…네.”
“일부러 엿들은 건 아니니 기분 나빠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컵라면은 상대의 안색을 흘끔 살폈다.
괜히 엿들었다고 하면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다행히 상대는 그렇게 부정적이지는 않은 것 같았다.
그가 말을 이었다.
“라두락 꽃 퀘스트는 포기하시는 게 어떠세요?”
“갑자기요?”
“네. 그거 개고생만 하고 보상은 별로예요. 월벤에서 초보자 꿀팁 글 같은 거 보면 하지 말라고 정리된 게 있는데, 그런 거 참고해보시면 게임 하는 데 도움이 될 겁니다.”
컵라면이 빙긋 미소지었다.
이 정도면 충분히 상냥했다고 생각을 하면서.
허나 상대의 반응은 예상과 조금 달랐다.
“아…그거 알려주시려고 오신 건가요?”
“네.”
“조언은 감사합니다만, 괜찮습니다.”
“…네?”
“이거 보상 좋을 거거든요.”
“……?”
컵라면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
퀘스트를 받았다.
라두락 꽃 구해오기.
퀘스트를 수행하러 떠나기 전, 언럭키는 자신의 상태창부터 확인했다.
[상태창]
닉네임 : 언럭키.
레벨 : 1.
힘 : 11(10+1)
체력 : 11(10+1)
민첩 : 11(10+1)
마력 : 11(10+1)
신성력 : 11(10+1)
-자유 분배 능력치 : 5.
시작의 도시에 도착한 모든 유저의 레벨은 1부터 시작하고, 모든 스탯은 10에서 시작한다.
허나 언럭키의 상태창은 약간 달랐다.
튜토리얼에서 얻은 레전더리 업적.
무려 모든 능력치를 10% 상승시켜주는 ‘튜토리얼의 패왕’ 덕분이었다.
‘지금은 고작 +1씩 올랐을 뿐이지만, 이 진가는 나중에 가야 제대로 발휘되는 거지.’
레벨이 올라갈수록 레전더리라는 이름에 걸맞은 가치를 보여줄 업적이었다.
‘그나저나, 스탯은 어떻게 찍어야 할지 모르겠군.’
레벨을 하나 올릴 때마다 자유 분배 능력치가 5씩 생긴다.
검사라면 힘과 체력, 마력. 궁수라면 민첩과 마력 등.
이런 식으로 주로 올려야 하는 스탯이 정해져 있다.
허나 언럭키가 얻은 직업은 올마스터.
한 달에 한 번씩 다른 종류의 직업으로 바꿀 수 있다.
그렇기에 함부로 어느 스탯을 주로 올리는 게 고민이 되었다.
‘일단…이건 좀 더 고민해보고 나중에 결정해야겠어.’
그렇게 생각을 마무리 지으며 언럭키가 상태창을 닫았다.
***
언럭키는 도시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그때부터, <튜토리얼의 패왕> 업적이 진가를 발휘했다.
『고블린을 상대로 위압감 상승. 어떤 종류의 고블린이건 일정 확률로 상태이상(공포)에 빠집니다.』
『어떤 무기를 사용하던 무기 숙련도 10% 상승.』
‘튜토리얼의 패왕’ 업적에 붙어있는 또 다른 효과들.
무기의 숙련도 증가는 무기를 다룰 때 몸놀림이 부드러워지고 공격력이 강해진다.
검왕(레전더리) 직업과 연계하면, 초보자인 언럭키도 숙련된 검사 이상으로 검을 다루게 되는 것이다.
그 결과.
“키…키릭…. 무, 무서운 인간이 나타났다.”
“누, 눈을 못 마주치겠다.”
도시 바깥으로 나온 언럭키는, 벌벌 떠는 고블린들을 만나게 되었다.
시작의 도시에서는 강력한 축에 드는 고블린.
토끼나 멧돼지 같은 몬스터에 비해 단체 생활을 하는 터라 까다롭다.
허나 언럭키 앞에서는 손쉬운 먹잇감에 불과했다.
-푹!
-서걱!
그가 걸어가며 검을 휘두를 때마다 고블린들이 픽픽 죽어 나갔다.
자신을 보며 공포를 느끼고 있다 보니, 저항도 없었다.
대충 휘둘러도 바로바로 쓰러진다.
거기에 검왕(레전더리) 직업 특성으로 강해진 검술 공격력, 스탯 덕분에 쉽게 원킬이 나왔다.
‘쉽네.’
라두락 꽃을 구해오는 게 어려운 건 그게 절벽 위에 피어있기 때문임도 있지만, 가는 길이 고블린 밭이어서였다.
시작의 도시 고블린은 튜토리얼 때와 다르다.
그때는 튜토리얼용으로 약화된 상태였다.
허나 지금의 놈들은 좀 더 지능적이고, 연계 플레이를 할 줄 안다.
그렇기에 튜토리얼에서 고블린들에게 자신감을 가졌다가, 시작의 도시에서 쓴맛을 보는 사람들도 많았다.
허나 언럭키에게는 허수아비를 상대하는 것과 별다른 바가 없었다.
[적을 처치하셨습니다.]
[소량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경험치도 쏠쏠하고.’
-푹! 푹!
절벽을 향해 나아가면서 마주치는 고블린들을 처리했다.
오히려 튜토리얼 때가 더 어려웠었다.
솔직히 지금은 눈 감고 싸워도 이길 것 같다.
그렇게 나아가다 보니 몸에서 빛이 번쩍였다.
[적을 처치하셨습니다.]
[소량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레벨업!]
1레벨에서는 잡기 어려운 고블린들을 여럿 처치해 레벨을 올린 것!
언럭키가 미소지었다.
‘아주 좋아.’
지금까지는 물 흐르듯 부드럽게 플레이가 진행되었다.
그리고…
“와…여러분. 도대체 저 사람 뭐죠? 아니, 시작의 도시에서 저런 게 말이 되나요?”
저 뒤편에서 스트리머 ‘컵라면’이 어이가 없다는 듯한 목소리로 언럭키를 촬영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