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행운빨로 레벨업-6화 (6/218)

#006화

-여보세요. 백현씨? 대답이 없으시군요?

스마트폰에서 흘러나오는 성강호 팀장의 목소리.

백현의 표정이 굳어졌다.

“…왜 전화하셨습니까?”

-이제서야 대답하는군요. 우리가 전화도 못 하는 사이인가요?

“…….”

-농담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신가 보군요. 뭐, 좋습니다. 제공된 숙소는 마음에 드십니까?

마음에 드냐고?

그럴 리가 있겠는가.

다 낡아빠져서 무너지기 직전의 고시원 방.

이전에 살던 집과 더 비교되었다.

지금껏 아등바등 살면서 모은 돈으로 간신히 구한 투룸 전세.

제대로 된 첫 보금자리였기에 백현은 그 집에 대한 애착이 강했다.

헌데 아무것도 못 하고 갑자기 쫓겨났으니, 울분이 치솟았다.

물론 이걸 속마음 그대로 말할 수는 없었다.

“…나쁘지는 않습니다.”

-후후. 다행이군요. 본론으로 들어가자면, 튜토리얼은 끝내셨습니까?

“…예.”

-그럼 이제부터 10레벨까지 열심히 노력하셔야 할 텐데, 왜 다시 캡슐 밖으로 나오셨죠?

“?”

백현은 깜짝 놀랐다.

‘어떻게 알았지?’

캡슐에서 나오자마자 전화를 걸다니.

자신을 지켜보고 있지 않은 이상, 이렇게 바로 알아챌 수 있을 리가 없다.

백현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설마…게임 속 제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겁니까?”

그러면 큰일이다.

자신이 레전더리 직업을 얻은 것도.

튜토리얼에서 레전더리 업적을 얻은 것도.

모두 다 들켰다는 것 아닌가.

이제 막 성공의 가능성이 생긴 백현의 입장에서, 이 사실을 놈들에게 들킬 수는 없었다.

어떻게 이용당할지 알고!

-뭐, 마음 같아서는 정말로 게임 속 플레이 기록을 지켜보고 싶긴 하죠. 그럼 딴짓하는지 안 하는지 감시도 확실하게 할 수 있고요.

“그럼…?”

-백현 씨는 아직 모르시나 보군요. 월드 사가의 접속 캡슐은 보안이 상당합니다. 타인이 염탐하거나 할 수는 없죠.

천만다행이다.

백현이 소리 내지 않고 한숨을 쉬었다.

“그러면 제가 나와 있는 건 어떻게 안 겁니까?”

-게임 속은 관찰하지 못해도, 현실은 다르죠. 천장을 보세요.

천장?

백현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고개를 들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없는 줄 알았다.

그러나 자세히 쳐다보니, 스프링클러 옆에 조그마한 물체가 달려있었다.

CCTV였다.

그 사실을 깨닫자, 절로 입술을 깨물었다.

“설마…지금 저걸로 절 지켜보고 있는 겁니까?”

-예.

“하. 당당하시네요. 요즘 몰카 사건이 사회적 이슈인 거 모르세요?”

-그러면 신고하시던가요.

“…….”

-다만 이건 알아두셔야 할 겁니다. 신고하면 작업장은 이용하지 못 할거고, 그러면 백현 씨는 사비로 캡슐과 이용권을 구매해 작업장에 오셔야겠죠. 그 비용이 얼마나 들까요?

성강호 팀장은 예의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비수로 찌르는 듯한 말이었다.

당연히 신고할 수는 없다.

여기서 쫓겨난다면 백현은 당장 오늘 밤 잘 곳도 없다.

게임 속에서 희망이 생겼으면 뭐 하겠는가.

접속하지 못한다면 말짱 도루묵인데.

-후후. 현실을 좀 직시하신 모양이군요. 그러니 농땡이 피울 생각 하지 마시고 게임에 집중하세요. 하루에 최소 20시간 이상 플레이하지 않는다면 제제가 들어갈 겁니다.

“…….”

백현은 어금니를 악문 채 고개만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뚝.

전화가 끊어졌다.

그는 침대 위로 스마트폰을 내던졌다.

속에서 열불이 치솟아 올랐지만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다만 절대 잊지 않기 위해 이 감정을 마음속에 꾹꾹 눌러 담았다.

‘내가 언젠가는…꼭 이 기분을 너한테 되돌려주마.’

한때 한사랑 보육원의 개독종이라고 불렸던 몸이다.

은혜는 10배로, 원한은 100배로!

백현이 두 주먹을 꽉 쥐었다.

***

언럭키는 다시 월드 사가로 접속했다.

튜토리얼이 끝나자마자 종료했기에, 아직 하얀 공간에 둥실 떠 있었다.

가상 세계였지만, 여기서는 감시 따위 당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안했다.

“하…내가 진짜 열심히 한다. 빚 다 갚고 그 새끼한테 꼭 한 방 먹여준다.”

그렇게 다짐하다 보니 문득, 자신에게 이 빚을 지운 원흉.

성재 생각이 났다.

‘…언젠가 너도 꼭 찾아내서 물어보마, 나한테 왜 그랬는지.’

성재는 가장 친한 친구였고, 가족이었으며, 유일하게 이 사회에서 믿는 사람이었다.

걔가 나를 배신할 줄 꿈에도 짐작하지 못했다.

솔직히 말하면, 뭔가 사정이 있었을거라고 믿고 싶었다.

그게 아니라면 정말 멘탈이 버티지 못할 것 같으니까.

‘후우. 인생 수업료를 참 비싸게 내고 있는 느낌이네.’

그것도 보통 비싼 값이 아니다.

5억.

아니. 지금도 실시간으로 이자가 눈더미처럼 늘어나고 있으니 저거보다 조금 클 것이다.

평범하게 직장을 다니면서 저런 거대한 빚을 갚으려면 몇 년이 걸릴까?

심지어 사채답게 월 이자만 833만 원이다.

국내에서 손꼽히는 대기업에 다녀도 이자 내는 것조차 빡빡하겠지.

고졸 출신인 백현에게는 답 없는 금액이었다.

코인 대박, 주식 대박 같은 걸 노릴 수도 있겠지만…

‘그딴 게 됐으면 진작에 떵떵거리며 살고 있었겠지.’

언제 한 번은 초록색 하늘을 본 날에 주식을 해봤었다.

허나 오늘의 운세가 주식과는 별 관련이 없었던 모양이다.

열심히 잃었다.

그렇기에 백현이 할 수 있는 건, 이 월드 사가에 온 힘을 다해 매달리는 것뿐이었다.

-띠링!

[튜토리얼이 종료되었습니다.]

[시작의 도시로 이동합니다.]

환한 빛이 눈 앞을 가렸다.

잠시 눈을 감았다가 뜨자, 언럭키의 눈앞에 새로운 풍경이 모습을 드러냈다.

중세 시대 광장의 풍경.

거기에 많은 수의 유저들이 저마다 목청껏 소리치고 있었다.

“고블린 둥지 갈 레벨 3 이상 유저분 모집합니다!”

“지하 창고 쥐잡기 퀘스트 같이 할 사람들 모이세요! 두 자리 남았습니다!”

언럭키는 멍하니 입을 벌리며 주변을 쳐다봤다.

다시 접속하기 전에 월벤(Warven)에서 정보를 조금 조사했다.

허나 그렇게 조사한 것과 눈으로 보는 것은 완전히 달랐다.

‘이게…가상현실?’

튜토리얼에서 고블린 부락을 겪어봤지만,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

광장에서 소리치는 유저들은 이 세계를 한층 더 현실감 있게 만들어줬다.

“크으. 뉴비 또 왔구나. 표정 예술이다, 예술.”

“흐흐흐. 언제 봐도 저 놀라서 뒤집어지는 표정은 귀엽다니까.”

지나가던 유저들이 언럭키를 보고 키득거렸다.

그제서야 언럭키는 표정을 원래대로 복구했다.

창피해서 얼굴이 살짝 화끈거리기는 했지만.

언럭키는 차분히 광장을 걸어 다녔다.

시작의 도시는 유저들이 처음 시작하는 장소였기에 굉장히 넓었다.

‘도대체 끝이 어디야?’

매달 신규 유저의 숫자가 어마어마하게 증가하는 게 월드 사가이다.

그렇기에 도시는 엄청나게 방대했다.

유저들이 모이는 광장만 해도 수십 개였으며, NPC들이 거주하는 지역부터 상점 거리, 시장 거리 등. 볼거리가 무궁무진했다.

한참을 걸어 다니던 그가 광장 한편에 털썩 앉았다.

멍하니 유저들을 바라보며 생각에 빠져들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돈을 벌 수 있을까.’

돈.

당장 언럭키의 눈앞에 당면한 과제였다.

성강호 팀장이 요구한 것은 10레벨이 되어 빨리 작업장에 오는 것.

일단 작업장에 들어오면 그때부터는 이자를 반으로 깎아주고, 월급도 준다고 했다.

‘미친 소리지.’

그 제안을 받아들이는 순간, 그에게 앞으로 영원히 자유는 없다.

사채이기 때문에 이자가 매달 833만 원이다.

그걸 반으로 깎아준다고 해도 416만 5천 원.

월급 500만 원을 받아봤자 이자를 빼면 83만 5천 원밖에 남지 않는다.

심지어 거기서 70만 원은 월세로 빼야 하니, 남은 건 13만 5천 원.

매달 13만 5천 원씩 갚는다 치면 5억을 다 갚는 데 얼마나 걸릴까?

금방 계산이 가능했다.

“308년 하고도…7개월 더.”

언럭키가 피식 웃었다.

빚을 다 갚으려면 최소한 308살까지는 살아야겠다.

누굴 거북이인 줄 아나.

당장은 별다른 방법이 없기에 놈들의 제안을 수락했지만, 당연히 이렇게 살 수는 없었다.

반드시 이 지옥에서 탈출해야 했다.

‘내 능력으로 좋은 아이템을 구한 다음에 팔아볼까?’

행운의 무지개.

우연찮게 얻은 이 스킬이라면 미감정된 아이템 중 좋은 것들을 선점할 수 있을 것이다.

허나 곧 고개를 저었다.

‘그게 그렇게 쉬울 리가 없어.’

레전더리급 아이템을 얻으려면 그만한 무언가를 해야 한다.

강력한 보스 몬스터를 잡거나 어려운 연계 퀘스트를 깨는 등.

이제 겨우 1레벨인 언럭키가 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튜토리얼이 특이했던 것일 뿐. 남색이나 보라색 빛이 나는 물건 자체를 구하는 게 빡셀 거야.’

남들보다 조금은 쉽게 구할 수 있을지 몰라도, 난이도 자체가 쉬울 리가 없다.

언럭키는 어떻게 하면 큰돈을 벌 수 있을까 고뇌하며 멍하니 앞을 바라봤다.

수많은 유저들이 저마다 바쁘게 지나다니는 게 보였다.

그러다 보니 그들이 하는 말이 들렸다.

“이번에 지존칼 방송 봤냐?”

“아, 당연히 봤지. 나 거기 알람 설정해놨잖아. 그라고스 레이드 알림 뜨자마자 들어갔다.”

“진짜 장난 아니더라. 다른 유저들이랑 움직임 자체가 달라.”

“그러면서 자기 방송 사람들이랑 소통까지 하던데. 도대체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할 수 있는 건지, 참.”

얼핏 들어본 단어에 언럭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존칼?’

유저 지존칼.

월벤(Warven)에서 정보를 얻기 위해 뒤적거리다가 몇 번 본 이름이었다.

‘분명…검왕 직업을 가진 유저랬지.’

검왕(레전더리) 직업을 가지고 있는 최상위권 유저 중 한 명.

심지어 실력도 엄청나서, 공성전이나 보스 레이드 때마다 굉장한 활약을 한다고 했다.

언럭키 역시 지금은 검왕 직업으로 한 달 동안 플레이해야 하기에 눈여겨봤었다.

“부럽다. 나도 지존칼처럼 됐으면…. 지존칼은 얼마 벌까?”

“장난 아닐걸? 이번에 3시간 동안 벌어지는 레이드에서 후원만 대충 몇백만 원 쏟아지던데.”

“몇백?”

“응. 게다가 레이드 끝난 후에 아이템 정산까지 받았을 거고, 로고 광고 같은 것도 있을 거고…하여간에 돈을 갈퀴로 쓸어 담고 있을 거야.”

우연찮게 그들의 말을 듣고 있던 언럭키의 귀가 번쩍였다.

‘고작 3시간 방송에서 몇백만 원?’

심지어 그게 전부가 아니라 이런저런 수입이 더 있다고 한다.

‘이거다!’

감을 잡았다.

월드 사가 스트리머가 되는 것!

‘나도 그렇게 될 수 있어.’

언럭키는 무려 올마스터(레전더리) 직업을 가졌다.

아직은 검사밖에 플레이해보지 못했지만, 검사부터 검왕 직업이지 않나.

미래의 포텐셜은 최고 수준으로 보장되어 있었다!

“좋아. 가자!”

언럭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스트리머가 되어서 떼돈을 버는 것.

그걸로 결정했다.

일단 방향성은 잡았으니, 지금은 움직일 때였다.

‘우선 레벨업부터 해야지.’

스트리머가 되고 싶다고 다짜고짜 방송부터 켤 수는 없다.

지금 언럭키에게는 컨텐츠가 없었으니까 말이다.

‘첫 데뷔가 중요한 법이지. 시작의 도시는 그런 면에서 별로 좋지 않을 거야.’

첫 방송을 시작의 도시에서 자기소개를 한다?

물론 직업이 좋기에 이것만 공개해도 분명 어느 정도 어그로는 끌리겠지만, 그 이후가 문제다.

컨텐츠를 제대로 만들어놓지 않는다면 초반의 인기는 가파르게 식어버릴 테고, 그건 폭망을 뜻했다.

인생이 걸린 만큼 계획을 차근차근 세워야 했다.

이왕 할 거면 최고가 되자!

그렇기에 일단 지금은 레벨을 올려서 최적의 데뷔 타이밍을 찾을 생각이었다.

게다가 자신의 데뷔를 머니앤캐시에서 두고 볼 리도 없으니, 그 문제도 해결해야 했다.

그건 당장 할 수 없으니, 일단 레벨업부터 할 생각이었다.

월드 사가에서 레벨을 올리는 법은 간단했다.

퀘스트를 수행하고 보상으로 경험치를 받던가, 아니면 그냥 몬스터를 사냥하던가.

둘 다 병행하기는 하지만, 몬스터를 사냥하는 퀘스트를 깨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경험치를 더블로 먹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뭐 좋은 퀘스트가 있는지 좀 살펴봐야겠네.’

다만 월드 사가는 높은 AI 때문에 퀘스트 얻기가 까다로웠다.

좋은 퀘스트와 안 좋은 퀘스트가 있지만, 퀘스트 자체가 매번 바뀌기 때문이다.

-고블린 발톱을 구해왔다고? 그건 더는 필요 없네. 이미 다 구했거든.

-창고의 쥐를 처치해주겠다고요? 괜찮아요. 당분간 창고에 쥐가 나올 것 같지는 않네요. 그보다 목장에서 우유 좀 받아와 주시겠어요?

NPC들이 생활하며 필요한 게 생길 때마다 새로운 퀘스트를 준다.

또한 퀘스트 보상도 매번 달라졌다.

말도 안 되는 자유도였다.

‘그렇기에 사람들이 이 게임에 그토록 열광하는 거겠지.’

언럭키는 일단 발품을 좀 팔아볼 생각이었다.

어떤 NPC가 좋은 퀘스트를 줄지는 모른다.

월벤에서 봤던 어떤 글이 떠올랐다.

<아…이번에 대장간에 흙 배달하기 퀘스트 완료했는데, 보상으로 쓰레기 같은 거 줬다…. 노가다 하고 일당 제대로 못 받은 기분 ㅠㅠ.>

└ㅋㅋㅋㅋㅋㅋ. 왜 그딴 퀘스트를 함?

└작성자 : 이전에는 꽤 좋은 검을 보상으로 줬다고 해서, 퀘스트는 바뀌었지만 혹시나 했지….

└이번에는 보상 뭐였는데?

└작성자 : 대장장이 전용 망치. 근데 내 직업 궁수임.

└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

퀘스트 보상이 좋은 NPC였어도, 시간이 흘러 퀘스트가 바뀌면 보상이 안 좋아지곤 했다.

그렇기에 반쯤 찍어야 했다. 과연 어떤 NPC가 좋은 퀘스트를 줄 것인가!

그런 생각으로 언럭키는 NPC들을 한 명씩 바라봤다.

헌데…

‘응?’

그가 자신의 눈을 비볐다.

‘어…?’

허나 여전히 똑같은 게 눈에 보였다.

퀘스트를 보유하고 있다는 의미로, 머리 위에 물음표 마크를 단 NPC들.

‘말도 안 돼!’

그들의 물음표 마크가 각각 빨주노초파남보의 무지개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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