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화
올마스터(All Master).
직업의 이름부터가 심상치 않다.
언럭키가 침을 꿀꺽 삼켰다.
‘나…진짜 대박난 건가?’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날 하루의 행운을 점칠 수 있는 자신만의 능력.
사실 그리 쓸모 있지는 않았다.
정확히 어떤 불운이 오는지도, 무슨 행운이 오는지도 알 수 없었으니까 말이다.
그저 붉은 하늘을 본 날에는 조금 더 몸을 사리게 되고, 초록색 하늘을 본 날에는 기분이 좋을 뿐이었다.
헌데 이 월드 사가(World Saga)에서는 이 능력이 이렇게 바뀔 줄이야.
‘이것만 있으면…인생이 변할 수 있을지도 몰라.’
보육원 출신에 대학도 못 갔다.
부모 없는 고졸이라는 꼬리표는 사회에 나간 뒤에도 끊임없이 그를 따라다녔다.
-쟤야? 그…이번에 입사한 애가?
-맞아.
-어쩐지. 좀 어리바리한 거 같더만.
-일은 잘하려나 모르겠어.
-에휴. 사장님은 왜 저런 직원을 뽑은 거래?
-양심 있는 기업인 표창장 받고 정부 지원 노리려는 것 같더라.
-허 참….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뒷소문이 굉장히 빠르게 돌았다.
잘하면 부모 없는 고졸 주제에 잘한다고.
못하면 부모 없는 고졸이라 역시 못한다고.
뭘 하든 그런 수식어가 백현을 따라다녔다.
그러다가 빚더미에 쌓여 퇴직까지 하게 되었는데.
설마 이런 기회가 찾아오다니.
“후우…하아….”
언럭키는 심호흡을 하며 흥분으로 날뛰는 심장을 애써 진정시켰다.
지금은 진정하고 현 상황에 집중할 때였다.
‘일단 확인부터 하자.’
척 봐도 좋아 보였지만, 직업의 정확한 성능을 보기 전까지는 안심할 수 없다.
언럭키의 그런 생각을 읽은 건지, 눈앞에 메시지 창이 나타났다.
[직업 : 올마스터]
-신의 축복으로 재능을 타고났습니다.
-검사, 마법사, 궁수, 암살자, 사제. 총 다섯 가지 직업을 자유롭게 다룰 수 있습니다.
-다섯 가지 능력 중 하나를 선택하여 한 달 동안 해당 직업의 능력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한 달의 시간이 지나면 새롭게 원하는 직업을 선택하게 됩니다.
-다섯 가지 직업의 스킬 숙련도는 서로 공유됩니다.
언럭키는 스킬 설명을 찬찬히 읽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직업을 한 달에 한 번씩 바꿀 수가 있다는 건가?’
검사, 마법사, 궁수, 암살자, 사제.
남들은 하나를 선택하면 쭉 밀고 가야 하지만, 자신은 다른 것 같다.
한 달에 한 번씩 직업을 바꿀 수 있는 기회를 준다고 한다.
‘이거 좋은 건가?’
언럭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현시점에서는 이게 그리 좋은 건지 잘 모르겠다.
[첫 번째 올마스터의 직업을 선택해 주십시오.]
메시지가 나타났고 언럭키는 고민에 들어갔다.
과연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
허나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선택지는 반쯤 정해져 있었다.
‘검사. 검사로 가자.’
원래부터 검사를 바라기도 했었고, 언럭키가 생각했을 때 가장 밸런스가 좋고 균형 잡힌 직군이다.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면 일단 검사로 해보는 게 가장 괜찮을 터.
[검사를 선택하셨습니다.]
[한 달 동안 ‘검왕(레전더리)’ 직업이 적용됩니다.]
그가 눈을 크게 떴다.
“거, 검왕?”
육성으로 소리를 내며 깜짝 놀랐다.
현재까지 나온 검사 계열 최고의 직업이 검왕이었다.
헌데 그게 적용되다니.
허나 마냥 놀라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직업 선택이 완료되었습니다.]
[튜토리얼이 시작됩니다.]
새하얀 빛이 쏟아지더니, 그의 신형이 다른 곳으로 이동되었다.
***
튜토리얼.
일반적인 게임은 튜토리얼이 굉장히 라이트하다.
조작법을 알려주거나 게임의 배경 설정을 설명해주는 등, 그리 어렵지 않다.
하지만 월드 사가의 튜토리얼은 조금 달랐다.
일단 설명 같은 건 없다.
유저는 고블린 부락 앞에 소환되고, 놈들을 사냥해야 했다.
“누가 일반 고블린 잡기 쉽다고 했냐? 엄청 어려운데?”
“나는 고블린 전사까지 잡고 죽었어.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려고 했는데, 무리더라.”
보상은 확실했다.
얼마나 활약했느냐에 따라 ‘업적’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대다수의 유저들은 평범한 고블린 정도만 사냥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몇몇 특출난 유저는 그 이상의 활약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게 튜토리얼인가.’
고블린 부락 앞에 소환된 언럭키가 주변을 둘러봤다.
산 한가운데에 어설픈 울타리와 움막으로 지어진 부락이 있었다.
-띠링!
[튜토리얼이 시작되었습니다.]
[튜토리얼 고블린들을 처치하십시오.]
[높은 등급의 개체를 처치할수록 보상이 좋아집니다.]
메시지 창은 잠시 후 사라졌다.
곧이어 언럭키는 부락 밖으로 어슬렁거리며 걸어 나오는 고블린을 볼 수 있었다.
<튜토리얼 일반 고블린>
놈의 머리 위에 떠 있는 이름이었다.
‘튜토리얼이라 약화된 고블린이라고 했지.’
물론, 그래도 게임을 처음 하는 유저는 처치하기가 쉽지 않다.
키보드로 조작하는 게임과 몸을 직접 움직이는 가상현실은 하늘과 땅 차이.
꽤 많은 사람들이 튜토리얼 일반 고블린 한 마리를 감당하지 못하고 죽어 나갔다.
그로 인한 민원도 많았다.
-튜토리얼부터 난이도 실화냐? KP 코퍼는 생각이 있으면 좀 낮춰라, 진짜.
-어린애들부터 어르신들까지 다 하는 게임인데 처음부터 이런 난이도라니. 금방 망하겠네요. 수고하세요.
허나 KP 코퍼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실전 같은 연습을 통해 월드 사가에 적응하게 해주는 것.
KP 코퍼의 튜토리얼 방침이었다.
“키릭. 키릭.”
고블린이 이상한 콧소리를 흥얼거리며 걸어왔다.
언럭키가 있는 곳은 수풀에 가려져 있어 반쯤 은신이 되었다.
그는 고블린을 쉽게 볼 수 있었지만 고블린은 자세히 보지 못한다면 발견하기 어려웠다.
그가 인벤토리를 열었다.
거기에는 검 한 자루가 들어있었다.
[평범한 검]
-아이템 등급 : 노멀.
-아이템 효과 : 공격력 + 1 상승.
-무난한 검이다.
-아이템 착용 제한 : 레벨 1 이상.
직업을 선택하면 최초로 주어지는 무기였다.
‘내가 올마스터이기는 해도, 처음을 검사로 선택해서 검이 주어졌나 보군.’
그가 검을 꺼내어 붙잡았다.
그 순간이었다.
[직업 특수 효과가 존재합니다.]
[검왕(레전더리) 보너스가 발동됩니다.]
[검 계열의 무기 사용 시 공격력 200% 상승.]
[검을 활용한 스킬들의 효과 150% 상승.]
[검을 사용할 때 신체 보정 작동.]
[검을 들고 있을 시 정신력 보정 작동.]
[기본 스킬로 ‘검술 마스터리’ 가 주어집니다.]
[검을 활용한 공격에 ‘물리력 + 마법력’이 적용됩니다.]
.
.
.
수두룩한 효과들이 언럭키의 시선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가 멍하니 입을 벌렸다.
‘이거 완전….’
대박이잖아?
“끼익. 끼릭.”
언럭키가 메시지를 쳐다보며 감탄하고 있을 때, 고블린은 어느덧 그리 멀지 않은 곳까지 다가왔다.
정신을 차린 언럭키는 검을 붙잡더니 한걸음에 뛰쳐나갔다.
-팍!
“키릭!?”
놈은 갑작스레 튀어나온 언럭키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손에 들고 있던 조잡한 나무 몽둥이를 들어 올렸다.
허나 그보다 언럭키가 훨씬 빨랐다.
검을 들고 이동하는 발걸음이나 휘두르는 동작들이 너무나 자연스럽다.
최적의 경로로 이용해 자연스럽게 휘둘러지는 검.
-촤악!
들고 있던 검이 고블린의 목을 베고 지나갔다.
금가루가 휘날리는 이펙트와 함께 놈이 쓰러졌다.
‘이게…검왕 직업 보정인가?’
마치 자신의 몸이 아닌 것처럼 자연스럽게 움직여졌다.
허나 어색한 건 전혀 없었고, 오히려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웠다.
[튜토리얼 일반 고블린을 처치하셨습니다.]
[튜토리얼이 다 끝난 후에 보상이 주어집니다.]
쓰러진 놈을 보며 언럭키는 확신했다.
‘이거라면 끝까지 가볼 만하다!’
이 튜토리얼을 다 해 처먹을 수 있겠다고.
***
검왕 직업 보너스.
레전더리 직업은 확실히 달랐다.
언럭키는 고블린 부락 주변을 빙빙 돌 듯이 움직였다.
그러다가 한 마리씩 걸어 나오는 고블린들을 마주쳤는데, 그러면 곧장 달려들었다.
“키리릭!?”
놈들은 130cm 정도밖에 안 되는 신장에 조잡한 나무 몽둥이를 들고 있었다.
단순히 신체 스펙만 비교해 보자면, 성인 남성에 비해 한참을 못 미쳤다.
허나 일반인은 전투에 익숙하지 못하기에 당황해서 죽는 경우가 많았다.
언럭키는 나름 이런 싸움에 자신 있었다.
고아 출신이라는 것은 온실 속 화초처럼 자라기 어려운 법.
게다가 ‘검왕(레전더리)’ 직업으로 온갖 보너스를 얻었다.
스펙과 능력 모두 명백히 압도하는 중이니, 두려울 게 없는 것이다.
-서걱!
“끄륵!”
-촤악!
“끼엑!”
고블린들은 언럭키의 칼질 한 번을 견뎌내지 못했다.
그렇게 주변을 돌아다니며 총 7마리의 고블린을 처치했다.
그가 부락 쪽을 바라봤다.
‘역시 저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군.’
첫 번째 이후로는 일반 고블린들을 죽여도 아무런 보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더 높은 상위 고블린들을 잡아야 했다.
월드 사가 커뮤니티, 월벤(Warven)에서 봤던 내용이다.
『튜토리얼에서 얻는 업적들』
-거기 보면 고블린들 나오죠? 어떤 놈을 잡았느냐에 따라 얻을 수 있는 업적이 달라집니다.
-일반 고블린 잡으면 노멀 업적, 고블린 전사 잡으면 레어 업적, 주술사 잡으면 유니크 업적이고, 족장까지 잡으면 특수 유니크 업적 얻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최선을 다하셔야 해요. 초반에는 차이가 그리 크지 않아도, 나중에는 격차가 많이 벌어질 겁니다.
-특히나 유니크 업적 얻은 사람이라면 어느 길드든 프리패스로 들어갈 수 있을 거예요.
-물론 그래 봤자 상위 0.1% 유저도 유니크 업적 얻기는 힘들지만….
이 글에는 수많은 추천과 댓글이 달렸다.
월드 사가를 시작하는 초보가 꼭 봐야 하는 인증 글 중 하나였다.
여기서 언럭키가 노리는 건 당연히 유니크 업적이었다.
그것도 족장이 주는 특수 유니크 업적!
지금껏 손에 꼽히는 유저들만이 얻어갔다고 하는데, 그 유저들은 하나같이 최상위권 스타 플레이어가 되어 떵떵거리며 살고 있었다.
그들이 했다면, 나도 할 수 있다!
그런 생각이었다.
‘좋아. 해보자.’
언럭키가 조심스럽게 고블린 부락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튜토리얼 전용 소규모 부락이다.
몇 마리 존재하지도 않는데, 그것마저 한 마리씩 처치했다.
때문에 부락 내부에는 일반 고블린들이 거의 없었다.
“크르륵. 인간?”
대신에 도끼를 든 고블린 한 마리가 언럭키를 보며 눈을 치켜떴다.
다른 고블린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커다랗고, 몸은 근육으로 뒤덮여 있었다.
<튜토리얼 고블린 전사>
일반 고블린보다 한층 더 강하다는 고블린 전사였다.
‘튜토리얼에서 고블린 전사를 잡을 정도면, 확실히 재능이 있다는 거랬지.’
월벤에서 그랬다.
단순히 즐겜 유저가 아니라, 좋은 길드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증 같은 거라고.
“크륵! 감히 인간 따위가 겁도 없이 부락 안으로 들어오다니. 반으로 갈라 죽여주마!”
고블린 전사는 언럭키를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커다란 도끼를 위협적으로 치켜든 채 달려오는데, 성난 근육이 꿈틀거렸다.
일반 고블린과는 다르게 놈은 살기를 풍기고 있었다.
피부의 솜털이 곤두섰다.
어지간한 사람은 겁먹고 몸이 얼어붙을 정도였다.
왜 튜토리얼에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아무것도 못 해보고 죽는지 알겠다.
언럭키는 눈을 부릅떴다.
이까짓 살기에 겁먹을 리가 있겠나.
그 역시 독하게 살아왔다.
이 사회에서 고아가 살아남으려면, 독종이 될 수밖에 없었으니까 말이다.
[검왕(레전더리) 직업 효과로 정신력 보정이 발동됩니다.]
[튜토리얼 고블린 전사의 살기에 저항했습니다.]
놈의 도끼가 가깝게 다가온 순간, 언럭키 역시 발을 움직였다.
-촤악!
서로 마주 보며 스쳐 지나간 고블린 전사와 언럭키.
놈은 도끼를 내려친 자세였고, 언럭키는 검을 내뻗은 동작이었다.
곧이어.
“케르륵….”
고블린 전사가 금빛 가루를 뿜어내면서 털썩하고 땅에 쓰러졌다.
언럭키가 검을 한 번 털어내며 중얼거렸다.
“내가 노리는 건 너 따위가 아니야.”
어딜 주황색 따위가 센 척하면서 나오는지.
[튜토리얼 고블린 전사를 처치하셨습니다.]
[튜토리얼이 다 끝난 후에 보상이 주어집니다.]
-저벅, 저벅.
쓰러진 놈의 시체를 넘어, 언럭키가 고블린 부락 깊숙한 곳으로 걸어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