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화
월드 사가(World Saga)는 판타지 세계이지만, 현실의 육체가 영향을 끼친다.
예를 들어 검도 유단자가 있다고 하자.
그가 캐릭터를 만들고 검을 휘두르는 순간, 월드 사가의 AI는 그 능력을 인식한다.
그 결과 ‘기초 검술 (노멀)’을 얻을 수도 있다.
만약 양궁 선수였다면 ‘기초 궁술’, 격투기 선수였다면 ‘기초 박투술’을 획득하기도 한다.
아주 드문 실력자들의 경우, 레어 스킬을 얻기도 했다.
이런 스킬들은 게임 극 초반부에 굉장한 위력을 발휘한다.
가상 현실답게 몸을 직접 움직여야 하는 게임인데, 스킬 보정이 있다면 조금이나마 앞서나갈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그 차이는 조금만 지나도 사라지긴 하지만, 어쨌거나 이런 식으로 스킬을 얻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아니…행운의 무지개라는 건 한 번도 못 들어봤는데?”
언럭키는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는 월드 사가의 광부로 일하게 될 예정이었지만, 그래도 미리 공부는 했다.
원래도 출퇴근하면서 가끔 월드 사가에 대한 내용을 찾아보기도 했고, 이번에 직접 플레이하기 전에 정보 사이트를 뒤적거려봤다.
허나 기초적인 무술 스킬 이외에, 이런 식의 특이한 스킬을 얻었다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심지어 행운의 무지개라니.
그가 시선을 돌렸다.
[첫 번째 직업 카드를 선택해 주십시오.]
여전히 100개의 카드가 눈앞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언럭키의 눈에는 그 카드들의 색깔이 보였다.
대부분은 불길하게 빛나는 시뻘건 색깔이었다.
몇 개는 주황색, 드물게 노란색이나 초록색도 있었다.
찬찬히 카드를 확인하던 언럭키의 시선이 한쪽으로 향했다.
‘그러면…이게 제일 좋은 건가?’
파란색.
‘행운의 무지개’ 스킬 설명에 의하면, 무지개 색으로 운이 다르게 표시된다고 한다.
빨간색이 가장 안 좋고, 보라색에 가까울수록 운이 좋다.
파란색이라면 빨주노초파남보의 무지개 색 중, 끝에서 세 번째.
언럭키가 파란색 카드를 향해 손을 뻗었다.
사실 이 중요한 직업 카드 선택에서 이렇게 행동하는 건 미친 짓이었다.
누군가는 카드 뽑기 전에 7번 캡슐을 나갔다가 오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자신이 아는 모든 신에게 30분 넘게 기도를 하기도 했다.
미신이었지만, 거기에 어떻게든 기대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인 법.
그만큼 중요한 순간이었는데, 이런 알 수 없는 스킬만 믿고 대충 뽑을 생각을 하다니.
남들이 들으면 미쳤다고 할 것이다.
‘뭐 어때. 어차피 광산행이 될 텐데 뭐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지.’
그가 이 게임을 하는 이유는 즐기거나 경쟁을 하기 위함이 아니다.
사채업자들의 작업장에 끌려가 개같이 일해야 할 운명.
그렇기에 좀 더 편하게 행동할 수 있었다.
-파앗!
언럭키가 파란색 카드를 고르자 빛이 터져 나왔다.
빠밤! 하고 축복하는 듯한 효과음은 덤이었다.
[첫 번째 카드를 선택하셨습니다.]
[검(유니크)을 획득합니다.]
‘어?’
언럭키의 눈이 크게 떠졌다.
유니크?
***
노멀, 레어, 유니크, 레전더리.
처음 직업 카드를 뽑을 때 뜨는 등급들이다.
이 중 대다수는 노멀이고, 레어나 유니크는 거의 나오지 않았다.
<미쳤다! 첫 직업 뽑기에서 활(유니크) 떴다!!>
└(사진)
└혹시 안 믿을까 봐 스샷 첨부함.
만약 유니크라도 뜨면 대대적으로 자랑하는 날이었다.
-미쳤다 ㄷㄷ. 유니크라니.
-와…진짜 너무 좋겠다…. 인생 피겠네.
-나머지가 전부 노멀 쓰레기 떠도 그 정도면 2티어급 궁수 직업은 얻겠네.
해당 게시글에는 부러워하는 댓글이 수두룩하게 달렸다.
<작성자 : 아 그런데 나는 검사 하고 싶긴 했었는데 활이 떠버렸네….>
└ㅋㅋㅋㅋㅋ 그럼 포기하고 검사 하실?
└작성자 : 그건 좀…. 생각해보니까 내 어렸을 때 꿈이 로빈훗 같은 궁수가 되는 거였음.
└ㅋㅋㅋㅋㅋㅋ. 아 개웃기네.
유니크가 떴다면 자신이 선호하는 직업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무조건 이 방향으로 가야 했다.
그만큼 직업 선택에서 유니크 카드가 뜰 가능성은 엄청나게 낮았으니까 말이다.
‘그런데…내가 유니크가 떴단 말이지.’
언럭키는 얼떨떨했다.
게임을 시작했을 때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아직 감정을 추스르지도 않았는데 뽑기는 다음으로 넘어갔다.
-파파파팟!
그의 눈앞에 기존 카드들이 사라지더니, 새롭게 다시 100장의 카드들이 등장한 것이다.
[두 번째 직업 카드를 선택해 주십시오.]
또다시 시작된 선택의 순간.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알록달록한 빛의 향연들이 카드의 뒷면에 보였다.
아마 언럭키에게만 보일 게 분명한 색깔들.
“…….”
그의 시선이 찬찬히 움직였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다양한 색깔들이 존재했다.
대부분은 빨간색이나 주황색. 드물게 노란색과 초록색도 있었다.
그리고…
‘…있다. 이번에도 파란색!’
언럭키의 시선이 100장 중에 유일하게 존재하는 파란색 카드에 시선이 갔다.
손을 뻗어 그걸 집었다.
-파앗!
[두 번째 카드를 선택하셨습니다.]
[지팡이(유니크)를 획득합니다.]
또다시 나타난 유니크 카드.
언럭키의 입이 쩍 벌어졌다.
연이어 나타난 결과에 절로 확신이 들었다.
‘이건…진짜다!’
행운을 점칠 수 있는 자신의 능력이, 게임 속으로 함께 들어왔다는 것을!
***
유니크가 뜬 순간부터, 언럭키에게도 욕심이 생겼다.
아무리 광부 캐릭터가 예정되어 있어도, 상황이 이렇게 되니 괜히 더 좋은 걸 바라게 되었다.
머릿속에서는 희망적인 글들이 떠올랐다.
‘분명 유니크 급 직업을 가진 사람이 1티어 길드에 들어갔다고 했지.’
월드 사가는 유저 숫자가 8억이 넘는 게임이다.
심지어 그 숫자는 지금도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어서, 몇 달 내에 10억을 돌파할 것으로 확실시되고 있었다.
이쯤 되면 단순한 게임이 아니다.
사람이 몰리는 곳에는 돈이 함께 모이고, 스타가 탄생하는 법!
게임을 잘하는 것만으로도 어지간한 스타 운동선수급 이상이 되기도 했다.
당장 월드 사가를 스트리밍 하는 미튜브 스트리머들만 봐도, 좋은 직업에 좋은 길드에 들어간 사람들은 떼돈을 벌어들였다.
‘나도 그렇게 될 수 있지 않을까?’
5억의 빚쯤은 아무렇지 않게 갚을 수 있는 스타들.
자신과는 전혀 연관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상황이 변했다.
나도 그들처럼 떼돈을 벌고 빚더미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에 절로 흥분감이 올라왔다.
‘이거 닉네임을 언럭키가 아니라 럭키로 지었어야 했겠는데?’
지금, 이 순간만큼은 온 우주의 행운이 자신에게 깃들고 있었다!
심장이 두근거리는 기분으로 언럭키가 다시금 카드를 뽑았다.
첫 번째 카드부터 네 번째 카드 뽑기까지의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파앗!
-파앗!
경쾌한 소리와 함께 카드들이 오픈되었다.
행운은 연속으로 언럭키의 손을 들어주었다.
‘파란색, 파란색…그리고 이번에는 남색!’
계속해서 보이던 파란색 카드들.
그리고 네 번째 뽑기에서는 무려 남색 카드가 나타났다.
빨주노초파남보 중 끝에서 두 번째!
당연히 그걸 골랐고, 나타난 결과는 대박이었다.
[네 번째 카드를 선택하셨습니다.]
[활(레전더리)을 획득합니다.]
무려 레전더리 직업 카드였던 것!
‘와….’
언럭키의 손이 절로 떨렸다.
연속으로 유니크가 뜬 것도 믿기지 않았는데, 레전더리까지 뜨다니.
지금까지의 나타난 카드의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검(유니크)]
[지팡이(유니크)]
[단검(유니크)]
[활(레전더리)]
보는 것만으로도 화려한 카드들의 향연.
허나 이렇게 모아 보니 언럭키는 마냥 좋아할 수가 없었다.
‘음….’
그의 표정이 살짝 찌푸려졌다.
각각의 카드는 유니크, 레전더리 등급이었기에 훌륭했지만, 그 조합이 별로였기 때문이다.
‘이러면 이거…완전 망캐 아닌가?’
등급이 높으면 분명 좋기는 하다.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 균일해야지.
검, 지팡이, 단검, 활. 이런 식으로 완전히 다른 분야로만 뽑아버려서야 어쩌겠는가.
보통 특정 직업이 두 번 이상 뜨게 되면 해당 직업으로 선택된다.
아니면 특출나게 등급이 높은 직업 카드와 연관된 직업이 골라지기도 한다.
헌데 지금 언럭키는 모두 다 다른 분야에다가, 전부 유니크 이상이었다.
‘완전히 잡탕이 되어버렸잖아.’
이대로면 뭐가 나타날지 모른다.
딱 봐도 잡캐가 될 게 눈에 훤하다.
이왕 운이 좋을 거면, 전부 다 ‘검(레전더리)’ 가 떴으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그러면 검사 계열 최고의 직업인 ‘검왕(레전더리)’를 얻고, 앞으로가 탄탄대로였을 텐데 말이다.
“하아….”
한숨을 한번 쉰 언럭키가 손을 움직였다.
어쨌거나 뽑기는 계속해야 했다.
그가 마지막 100개의 카드들을 바라봤다.
“어?”
그런 언럭키의 시선이 저도 모르게 한 곳에 멈췄다.
지금껏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색깔.
“보, 보라색?”
강렬한 빛으로 시선을 끌어당기는 보라색이 있었다.
“하, 하하….”
절로 손이 떨려왔다.
행운의 무지개 능력으로 볼 수 있게 된 색깔 중 가장 좋은 것 아니던가!
다른 카드 중에는 파란색도 언뜻 보였지만, 언럭키의 시선은 움직일 생각을 안 했다.
그만큼 사람을 빨아들이는 듯한 마성의 보랏빛이었다.
덥석.
언럭키가 보라색 카드를 집었다.
동시에 빛이 터져 나왔다.
-파앗!
[다섯 번째 카드를 선택하셨습니다.]
[소용돌이(레전더리)를 획득합니다.]
앞면을 열자 보인 건 커다란 소용돌이의 모습이었다.
‘…응?’
언럭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기 모양이 아니라 이런 그림이 나오다니.
‘뭐지? 버근가?’
직업 선택에서 나오는 카드는 무조건 무기 형태이다.
검사, 마법사, 도적 등.
심지어 사제 계열이라도 신관을 뜻하는 목걸이 같은 게 나왔다.
소용돌이는 명백히 처음 보는 카드였다.
미리 찾아봤던 정보를 떠올려봐도, 이런 건 어디서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 순간이었다.
[다섯 개의 직업 카드들을 조합합니다.]
[직업 카드 종류 : 검(유니크), 지팡이(유니크), 단검(유니크), 활(레전더리), 소용돌이(레전더리)]
소용돌이 카드가 반짝이더니, 지금껏 뽑았던 4장의 카드들이 모두 빨려 들어갔다.
[소용돌이(레전더리) 영향으로 최선의 직업 조합이 부여됩니다.]
[계산 중…]
.
.
“어, 어!?”
카드에서 뿜어지는 빛이 마구 변하기 시작했다.
빨간색, 주황색, 초록색…나중에는 보라색까지.
여러 가지 색을 뽑아내던 카드는, 마침내 한가지로 귀결되었다.
-파앗!
보라색.
그것도 아까보다 훨씬 더 진한 보랏빛의 카드 한 장이 튀어나왔다.
얼핏 보면 보라색이 아니라 검은색에 가까울 정도로 농도가 짙었다.
[직업 선택이 완료되었습니다.]
[올마스터(레전더리) 직업을 획득합니다.]
이어서 눈앞에 나타난 메시지에 언럭키가 눈을 크게 떴다.
“이, 이럴 수가….”
올마스터(All Master).
모든 무기와 스킬을 다룰 수 있고, 어떤 분야든 정점에 올라설 가능성을 지닌 존재.
월드 사가(World Saga)의 유일한 마스터가 탄생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