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행운빨로 레벨업-1화 (1/218)

#001화

백현은 어렸을 때부터 특이한 능력이 있었다.

“와…이렇게 붉은색은 처음 보네.”

출근길에 하늘을 쳐다본 그가 중얼거렸다.

약 10초간 하늘이 붉게 물들었다.

금방 원상복구 되었지만, 백현의 표정은 펴지지 않았다.

빨간색, 주황색, 노란색, 초록색.

가끔 세상이 그렇게 물들어 보일 때가 있었다.

아주 어렸을 때는 보육원 선생님한테 이게 뭔지 물어본 적도 있었다.

-선생님. 하늘이 노란색이에요. 왜 그런 거예요?

-응? 아니야 현아. 하늘은 파란색이야.

-아니에요! 노란색이에요 분명히!

-…….

그러다가 보육원 선생님들이 자신을 병원에 데려가야 하는지 고민하는 걸 듣게 되었다.

그때부터 백현은 자신이 볼 수 있는걸 숨겼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달았다.

이게 특별한 의미가 있다는 것을.

초록색이 보였다면 그날은 무언가 운이 좋았다.

갑자기 보육원 후원자가 오셔서 장난감과 맛있는 것을 선물해 주는 날이었다.

혹은 친구들과 행복한 일이 있기도 했다.

노란색은 평범한 하루였다.

나쁘지 않게 보내는 나날. 사실 대부분은 노란색 하늘이었다.

그리고 드물게 나타나는 붉은색이나 주황색은, 뭐가 됐든 안 좋은 일이 일어난다는 의미였다.

좋아하던 장난감이 부서지거나, 친한 친구와 크게 다투거나, 다치거나…

그렇기에 백현은 눈에 보이는 하늘의 색깔로 오늘의 운세를 점치곤 했다.

그리고 오늘은 붉은색이었다.

그것도 지금껏 본 적 없는, 피처럼 붉은색.

“하아…. 오늘은 하루 종일 몸 좀 사려야겠다.”

한숨을 쉰 백현이 출근을 위해 다시 걸음을 옮겼다.

***

그날 저녁.

백현은 파김치가 된 몸을 이끌고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아. 퇴사하고 싶다.’

퇴근할 때면 늘상 느끼는 이 기분.

녹초가 된 몸을 한시라도 빨리 침대에 눕히고 싶었다.

힐끗 시선을 돌리자 커다란 지하철 디스플레이 광고판이 보였다.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세계.]

[무한한 모험을 즐길 수 있는 ‘월드 사가(World Saga)’에 빠져보세요!]

‘또 저 광고네.’

월드 사가(World Saga).

최초의 가상 현실 게임이자 또 다른 세상을 창조했다는 평을 받으며, 전 세계적으로 초대박을 친 게임이었다.

실제로 백현의 직장 동료들도 대부분 저 게임을 즐겼다.

-팀장님. 이번 프로젝트 성공하신 것 축하드립니다.

-뭘. 김 대리도 고생했어. 오늘 저녁에 시간 되나?

-회식합니까?

-회식은 무슨. 얼른 퇴근하고 월드 사가에서 모이자고 하려고 했지.

-하하. 좋습니다.

직장인들의 회식 문화가 사라졌다.

다들 시간이 나면 빨리 월드 사가에 접속하고 싶어 했다.

한번 빠져들면 절대 벗어날 수 없는 세계인 것이다.

[기네스 신기록 달성! 월드 사가의 가입자 숫자 10억 명 돌파!]

[개발사인 KP코퍼의 주가는 연일 상승세!]

[외계인을 몇 명이나 납치했기에 이런 게임을 개발할 수 있었나? KP코퍼의 개발팀장을 만나서 묻다.]

벌써 출시한 지 1년 6개월이 지났음에도 관련 뉴스가 끊임없이 나왔다.

백현 역시 해보고 싶긴 했다.

과연 저게 어떻길래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는 걸까?

물론 마음속으로만 바랄 뿐이었다.

‘에휴. 내 신세에 무슨 게임이냐. 그럴 시간 있으면 차라리 알바를 하나 더 뛰어야지.’

다만 그럴 여유가 없었다.

그는 보육원을 나온 뒤로 간신히 친구와 함께 투룸을 구해 살고 있었다.

월세 내고 미래를 준비하기도 빠듯한 상황인데, 수천만 원이나 하는 캡슐을 살 돈이 어디 있겠는가.

PC방처럼 월드 사가를 즐길 수 있는 캡슐방이 있긴 했지만, 거기에서도 게임을 플레이하려면 캡슐방 요금을 내야 하고, 거기에 게임비로 월 30만 원씩 정액제까지 지불해야 했다.

그럴 여유가 없는 백현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플레이해보지 못했다.

단지 마음속으로, 언젠가 저걸 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랄 뿐이었다.

***

퇴근 후, 집에 도착한 백현은 분위기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성재야? 나 왔다.”

보육원에서 나온 뒤로 같이 살고 있는 친구, 성재를 불렀지만, 대답이 없었다.

“어디 간 거야, 얘는 또.”

보통 이 시간에는 항상 집에 있는데, 이상하게 불이 다 꺼져 있었다.

거실에 불을 켜고 방으로 가려는데, 탁자 위에 놓여 있는 쪽지가 하나 보였다.

[친구야. 미안하다. 금방 돌아와서 갚을게.]

백현은 집에 달랑 놓인 편지를 집어 들었다.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지 원.

허나 문득 백현의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스쳤다.

‘서, 설마…!?’

처음에는 믿지 않았다.

“성재야! 아니지? 너 여기 있는 거지?”

백현은 급하게 성재의 방문을 열었다.

당연히 비어 있었다.

혹시 몰라 다른 곳도 살펴봤다.

투룸인지라 숨을만한 데는 없었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 이게 도대체….”

손이 덜덜 떨렸다.

“지, 진짜로…도망친 거야?”

성재와는 보육원 시절부터 베스트 프렌드였다.

부모가 없는 그들이 누구보다 서로 신뢰하는 사이.

친형제보다 더욱 형제 같은 사이였다.

그렇기에 성재가 보증 좀 서달라고 할 때 기꺼이 서줬다.

-현아. 내가 진짜 이 돈만 있으면 성공할 수 있거든. 지금 내가 개발 중인 걸 대기업에서 사준대! 너도 알 거야. 무려 가상현실을 서비스 하는…

-아 됐어. 내가 그쪽 분야에 대해 뭐 아냐? 그래서. 뭐가 필요한 건데?

-대출을 받을 건데 보증을 서줄 수 있을까? 은행권 대출은 이미 다 해서 제 2금융 이상으로 넘어가야 하거든.

-보증? 그런 건 부모님도 해주는 거 아니라던데?

-야. 우리가 어떤 사이인데. 내가 설마 네 뒤통수를 치겠냐?

그런데 그 설마 했던 일이 일어났다.

“하….”

백현이 허망한 표정으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세상에 믿을 사람 한 명 없다고.

설마 성재가 이렇게 자신의 뒤통수를 칠 줄은 몰랐다.

***

백현에게는 마냥 좌절하고만 있을 시간도 없었다.

대부업체에서 집으로 쳐들어온 것이다.

성재가 도망쳤다는 걸 안 그들은 백현을 압박했다.

“백현 씨.”

“…….”

“백현 씨. 대답 안 하실 겁니까? 뭐, 상관없습니다. 저희도 대화보다는 돈이 필요하니까요.”

백현의 투룸으로 온 것은 검은 양복을 입은 떡대들이었다.

그들은 병풍처럼 둘러서서, 안 그래도 좁은 집을 더 좁아 보이게 만들었다.

그 가운데에서 백현과 대화를 하는 건 각진 안경을 쓴 남자였다.

30대의 젊은 남자였는데, 올백으로 넘긴 머리나 싸늘한 얼굴을 보면 어디 증권가의 엘리트처럼 보였다.

‘아니. 대부업체도 증권가처럼 돈 다루는 곳이니까 비슷한 건가?’

백현은 문득 든 생각에 피식 웃었다.

이런 상황에서 웃음이라니.

자신이 생각해도 어이가 없었다.

그만큼 믿기지 않기 때문이었다.

“웃깁니까?”

그리고 엘리트 남자. 성강호 팀장이 안경을 한 번 고쳐 썼다.

안경알 너머 그의 눈빛이 차갑게 빛났다.

백현이 어금니를 거세게 깨물었다.

“이 상황이 어이없어서 웃은 겁니다. 그리고 그 돈을 제가 왜 갚아야 하죠? 제가 빌린 것도 아닌데?”

“친구분이 빌렸죠. 한데, 보증인으로 서명하신 건 본인이 직접 한 것 아닙니까?”

“…….”

맞다.

그렇기에 백현은 할 말이 없었다.

다시 한번 도망친 친구를 원망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는 한숨을 푹 쉬었다.

“하아…. 알겠어요. 갚을게요. 갚으면 되잖아요. 매달 조금씩 나눠서 갚는 걸로…”

“좋습니다. 원금 5억에 이자는 법으로 정해진 이자율 20%로 받겠습니다. 연이자 1억에 한 달로 나누면 833만 3333원. 뒤에 붙는 자투리는 떼고 월 이자만 833만 원씩 내야 원금이 늘어나지 않겠군요.”

“……?”

백현이 입을 떡 벌렸다.

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그게 무슨 소리인데요! 당신 사기꾼 아냐? 고소할 거야! 경찰 부를 거라고!”

“부르십시오.”

성강호 팀장이 어깨를 으쓱였다.

“지금 저희가 한 것 중에 불법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이거 주거 침입죄 적용될 텐데요?”

“아. 그게 있군요. 그럼 나갔다가 다음에 다시 올까요?”

“…….”

백현이 입술을 깨물었다.

이대로 이들을 돌려보내봤자 얼마 안 있어 다시 올 거라는 건 뻔했다.

아니. 오히려 더 악독한 짓을 할지도 몰랐다.

결국 백현은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제가 어떻게 하길 바라는 겁니까.”

“돈 갚으십시오. 저희가 일부러 백현 씨를 괴롭히는 건 줄 아십니까? 저희도 바쁜 사람입니다. 돈만 받으면 물러가겠습니다.”

“저한테 그만한 돈은 없습니다.”

성강호 팀장의 안경알 너머 눈빛이 무심하게 빛났다.

“그렇다면 다른 방법도 있습니다. 저희 (주)머니앤캐시 사에서는 고액의 체납자를 위한 프로그램을 운용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몸으로 갚으라는 것이죠.”

“…예?”

“백현 씨 외관 정도면 특정 고객의 수요가 있을 겁니다. 백현 씨처럼 여리여리하게 생긴 남자를 좋아하는 남자도 있거든요. 아마 한 번에…”

“이런 X친!!”

말을 다 듣기도 전에 백현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개소리는 하지 마시죠!”

“그게 싫으면 장기 하나씩 꺼내셔도 됩니다. 의외로 사람은 하나 정도 떼어도 죽지 않는 장기들이 여럿 있습니다. 안구나 신장은 약간 불편할 뿐 사는 데는 문제 없고, 간도 50% 정도 떼도 멀쩡하고, 심장은…가장 비싼데 한 개밖에 없어서 조금 아쉽죠.”

“…….”

백현은 할 말을 잃었다.

사는 데 약간 불편? 멀쩡?

그게 그렇게 괜찮으면 본인 것부터 먼저 떼어내 보라고 하고 싶었다.

“물론 저희도 추천해 드리는 방법은 아닙니다. 백현 씨 몸을 탈탈 턴다고 해도 5억을 전부 변제하기는 어려우니까요.”

“…그럼 어쩌라고요?”

“원양 어선을 타도 됩니다. 몸이 조금 고생스럽지만 1년에 1억씩은 갚아나갈 수 있을 겁니다. 이자까지 같이 계산하면 한…7~8년이면 다 갚을 수 있지 않을까요?”

대부분의 시간을 바다 한가운데에서 보내야 하는 원양어선을 그렇게 오래 타라니.

자신이 없었다.

백현이 고개를 저었다.

“그것도 좀….”

“흠. 이것도 안 된다. 저것도 안 된다. 그럼 무슨 수로 저희 돈을 갚겠다는 건가요?”

“…….”

“아니면 한 가지 방법이 더 있긴 합니다. 사실 고객님들께 가장 추천드리는 방법이기도 하죠.”

성강호 팀장이 안경을 한 번 추켜올렸다.

백현이 물었다.

“뭔데요?”

“월드 사가 아시죠?”

“요즘 세상에 그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저희 회사에서는 월드 사가의 작업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광산에서 돌 캐고 밭에서 농사짓고 하는 건데, 하루에 20시간씩 주 7일 일하시면 월에 500만 원씩 갚는 거로 해드리겠습니다.”

“…아까 월 이자가 얼마라고 했죠?”

“833만 원입니다. 다만 작업장에서 일할 때는 이자율을 절반으로 낮춰드리겠습니다. 그러면 월 이자만 얼추 416만 원이군요. 백현 씨는 매달 이자를 연체하지 않고도 원금을 84만 원씩 제할 수 있는 거죠.”

“…….”

나보고는 숨만 쉬고 살라는 거냐?

그런 생각이 절로 들었다.

성강호 팀장이 안경을 한 번 치켜올리며 물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혹시나 해서 말씀드립니다만, 백현 씨 스펙으로 이 정도 금액을 버는 일은 쉽게 할 수 없을 겁니다. 저희가 회사 차원에서 작업장을 키우려고 해서 이렇게 좋은 조건을 내거는 거지, 그게 아니라면 꿈도 못 꿀 일이에요. 아, 물론 저희는 첫 번째 방법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백현은 입을 다물었다.

부당 거래도 이런 부당 거래가 없다.

그러나 선택지는 없었다.

“…알겠습니다.”

결국 백현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

그로부터 며칠의 시간이 흘렀다.

백현은 새로운 보금자리로 이사했다.

그가 집 안 내부를 둘러봤다.

“완전 닭장이네. 닭장.”

고시원 크기의 방이었는데, 커다란 캡슐과 침대를 놓으니 밥 먹을 자리도 없었다.

창문도 없었으며, 세게 발을 구르면 부서질 것처럼 낡아빠졌다.

“윽.”

자그마한 냉장고를 들추니 바퀴벌레도 몇 마리 기어 다니고 있었다.

-보증금은 저희가 환수하겠습니다.

성강호 팀장은 살고 있던 투룸에서 그를 쫓아냈다.

보증금을 환수하고, 가전 중에서 값나가는 것들은 팔겠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어차피 작업장에서 일하실 거면 저희가 제공하는 숙소를 쓰는 게 더 좋을 겁니다.

(주)머니앤캐시 에서는 월드 사가에 작업장을 운영했다.

거기서 일할 광부들을 위한 숙소도 준비되어 있었다.

고시원 같은 오피스텔 여러 대를 임대하고, 거기에 침대와 캡슐만 넣어놓은 것이다.

이제부터 백현은 여기에서 지내며, 하루 종일 캡슐 속 광산에서 일해야 했다.

“중국에서 이렇게 사람 때려 부어 작업장 운영한다는 소리는 들어봤는데….”

최초의 가상 현실. 월드 사가가 큰돈이 되고 있었다.

그 가능성에 이런 작업장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쏠쏠한 자금원이 되기 때문이다.

뉴스에서 본 기억이 있었는데, 설마 이게 나에게 닥칠 줄은 몰랐다.

“하아. 어쩔 수 없지.”

백현은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 장기 팔리지 않은 게 어디냐.

그래도 열심히 갚아나가다 보면 언젠가 원금을 다 깔 수도 있겠지.

그가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아. 참고로 월 숙박비와 캡슐 이용료, 식사 제공료는 내셔야 합니다.

-…얼만데요?

-월에 70만 원입니다.

-…….

어이가 없었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래도 그렇지. 벼룩의 간을 떼어먹어라.”

백현은 사채업자들의 악랄함에 치를 떨었다.

그가 시선을 돌렸다.

이렇게 불평해봤자 뭐하겠는가.

백현은 반쯤 자포자기한 기색으로 캡슐에 몸을 뉘였다.

조그마한 쪽창 너머로 푸른 하늘이 보였다.

‘지난번에 봤던 운세가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네.’

며칠 전에 하늘이 핏빛으로 물들었을 때 미리 각오는 하고 있었다.

하지만 설마 이런 일이 생길 줄이야.

“하아….”

회사에는 오늘 아침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그가 담당하는 업무가 그리 전문적인 게 아니라서, 인수인계할 필요도 없이 바로 그만둘 수 있었다.

그래도 나름 열심히 해오던 사회생활이었는데, 이렇게 끝나버리다니.

한숨을 한 번 쉰 백현이 눈을 감았다.

씁쓸한 미소와 함께 캡슐이 닫혔다.

그렇기에 그는 보지 못했다.

-번쩍!

잠깐이지만, 하늘이 진한 초록빛으로 물들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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