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후 메이저리거 315화
한국의 트레이드 시장은 심심하다.
제대로 된 선수들이 시장에 나오는 일은 거의 없다.
하지만 메이저리그는 다르다.
[워싱턴 내셔널스, 에이스 루카스를 시장에 내놓았다!]
팀을 대표하는 에이스를 시작으로.
[피츠버그 파이리츠, 25홈런을 기록 중인 에이블을 매물로 유망주 보강에 들어갔다!]
20홈런을 넘게 때린 슬러거들도 시장에 나왔다.
이렇게 선수들이 활발하게 팔리는 이유는 팀의 생존전략에 있었다.
성적이 좋으면 그만큼 연봉을 높게 줘야 한다.
하지만 스몰마켓의 팀들은 그러지 못한다.
그렇기에 선수를 팔아서 유망주를 사서 다시 구단에 투자하는 방식을 택했다.
서비스타임이 낮을 때는 자신들이 원하는 돈만 주면 되기에 충분히 선수들을 활용할 수 있었다.
반면 빅마켓과 우승권을 다투는 팀들은 달랐다.
“워싱턴에 연락해서 루카스를 얼마에 내놓은 건지 물어보도록 해!”
“알겠습니다!”
“에이블을 사 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피츠버그 쪽에 현금 트레이드 의사가 있는지 확인해 보도록!”
“예!”
빅마켓 팀들은 전력에 필요한 선수를 구매하기 위해 노력 중이었다.
그중에는 필리스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구단주께서 이번 트레이드 시장에서 얼마의 돈을 써도 좋으니. 내년에 우승할 수 있는 전력을 만들라고 하시더군.”
“맥스를 정해준 게 아닙니까?”
“전혀. 프리머니를 주었어.”
“하하……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
데이비드 단장의 얼굴에 황당함이 어렸다.
프리머니.
얼마의 돈을 써도 좋다는 승낙이 떨어졌다.
다년간 구단에서 프런트로 일하고 있었지만, 이런 경우는 생전 처음이었다.
아무리 억만장자라 하더라도 제한선을 두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제한을 두지 않고 알아서 영입하라니?
“오일머니, 오일머니. 말은 자주 들었지만, 설마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네요.”
“그게 우리 뒷배에 있다는 걸 즐겨야 하는 거지.”
“맞습니다. 그럼 일단 팀에서 가장 중요한 투수진부터 골라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필리스는 현재 라인업의 대부분을 수정해야 했다.
그나마 몇몇 선수를 건져서 다행이지만, 대부분의 선수는 다시 마이너리그로 보내야 할 실정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외부의 수혈이 없이는 팀을 정상적으로 만들 수 없는 상황.
그렇다고 리빌딩을 시도할 순 없었다.
“일단 우리의 새로운 주인은 단기간에 우승을 원하고 있어. 그러기 위해서 천문학적인 돈을 쓰는 것에도 주저함이 없지.”
“예. 그동안 많은 신생구단이나 주인이 바뀐 구단들이 그러했듯 그 역시 우승을 보기 위해서 구단을 영입했을 테니까요.”
구단의 주인이 바뀌면 초기에는 엄청난 투자를 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콜로라도 로키스가 그랬고 뉴욕 메츠 역시 마찬가지였다.
필리스의 새로운 주인이 된 알나흐안도 원하는 건 우승이었다.
그것을 손에 쥐기 위해서 그가 얼마나 부를 쏟아부을지 알 수 없었다.
“거기에 지금 순위도 그냥 포기하기에는 너무 이르지.”
“한수호 선수 덕분에 2위를 유지할 수 있었죠.”
필리스는 현재 지구 2위를 달리고 있었다.
이대로 시즌이 마감된다면 와일드카드로 가을야구를 할 수 있었다.
현재 팀 상황에서도 이런 호성적을 거둘 수 있었던 이유는 당연히 수호 덕분이었다.
“정말 역대급 성적이야. 설마 내 눈으로 이런 성적을 보게 될 줄이야.”
“저도 믿기지 않습니다. 매년마다 본인이 세웠던 기록을 경신해 나가고 있으니…….”
“커리어 중 한 번만 세워도 역사에 이름을 남길 정도인데. 그런 기록을 매년 경신하는 실력이라……. 설마 한수호의 정점은 아직 오지 않은 거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수호는 아직 전성기가 오지 않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 말이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찾아오는 의문이 있었다.
“만약 그게 맞다면, 한수호 선수의 전성기가 온다면 어떻게 될까요?”
“앞으로 100년 뒤에도 깰 수 없는 기록이 생기겠지.”
역사에 영원히 남게 될 불멸의 기록이 나올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니 침이 꼴깍 넘어갔다.
“일단 거기까지 생각하는 건 너무 이르고.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을 처리하자고.”
“알겠습니다.”
지금은 선수들을 영입하는 게 최우선의 일이었다.
* * *
트레이드 시장이 본격적으로 불붙기 시작했다.
[필리스가 루카스를 사들였다!]
그 도화선을 당긴 건 역시나 필리스였다.
[필라델피아 필리스는 라이벌 구단인 워싱턴 내셔널스의 에이스 딘 루카스를 현금 1억 달러와 함께 2029시즌의 드래프트 지명권을 주고 사 오는 트레이드를 단행했다고 밝혔다.]
첫 번째 영입은 에이스의 부재를 채워줄 선수를 영입한 것이다.
[올해 메이저리그 6년 차를 맞이한 딘 루카스는 올 시즌이 끝나면 FA를 맞이하게 된다.
워싱턴 내셔널스는 FA로 풀릴 루카스를 잡을 수 없을 것으로 판단, 이번 트레이드 시장에 매물로 내놓았다.]
워싱턴 내셔널스가 스몰마켓은 아니었다.
하지만 매년 20승을 거두는 루카스를 잡기에는 자본이 부족했다.
그런 상황에서 1억 달러라는 현금을 준다는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드래프트 지명권까지 손에 넣었으니 내셔널스 입장에서는 이득인 거래였다.
[딘 루카스는 2022시즌 내셔널스에서 데뷔하여 6년 동안 101승 78패를 기록하는 등, 빼어난 활약을 펼쳐준 선수로서 그동안 고민이었던 필리스의 에이스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딘 루카스의 합류는 단숨에 필리스의 에이스 고민을 해결하게 해주었다.
하지만 이 정도로 필리스의 돈지랄은 멈추지 않았다.
다음 날.
[필리스가 또 하나의 메가 트레이드를 성사시켰다! 피츠버그 파이리츠의 에이블 보가스를 사들이다!]
올해 트레이드 시장의 1, 2위 매물이라 불리던 에이블 보가스까지 영입하면서 그들은 오일머니 파워를 제대로 보여주었다.
[에이블 보가스의 영입으로 외롭게 타선을 지키고 있던 한수호 선수와 함께 타선의 무게를 강화해 줄 것으로 보인다.]
단숨에 20승 투수와 매년 30개 이상의 홈런을 때려내는 타자까지 손에 쥔 필리스.
주인이 바뀐 그들이 우승을 위해 트레이드 시장에서 선수들을 마구잡이로 사들였다.
그리고 이런 그들의 행동에 다급해진 건 타 구단들이었다.
“젠장! 에이블까지 뺏기다니! 다른 매물을 알아봐!”
“2순위라도 반드시 데려와야 해!”
“더 이상 선수를 뺏겨선 안 돼!”
각 구단의 사장과 단장들은 다급히 매물을 사들이기 위해 연락을 돌렸다.
하지만 필리스가 흔들어놓은 시장에서 매물을 바로 판매하는 이들은 없었다.
당연히 매물의 가격은 올라갔고 구매자 입장에서는 피눈물을 흘리고 선수 영입을 하거나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수호는 새삼스레 오일머니의 대단함을 깨달았다.
“돈 지랄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주네요.”
[그러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네.]
[와…… 선수 두 명 사 오는 데 거의 2억 달러를 써버리네.]
[이 정도는 돈도 아니다 이건가?]
[오일머니 대단하다.]
[너한테 10억 달러를 괜히 준 게 아닌 듯.]
[그래도 이걸로 페넌트레이스 우승을 다시 노려볼 수 있겠네.]
그 말대로였다.
사실 수호도 올스타전 출전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과연 자신들이 가을야구를 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하지만 올스타 브레이크 사이에 일어난 트레이드를 보면서 희망을 품을 수 있게 되었다.
“새로 올 선수들이 기대되네요.”
[그들이 제대로 된 활약만 해주면 가을야구 그 이상까지도 노려볼 수 있겠다.]
다시 정상을 노려볼 시간이었다.
* * *
트레이드 시장이 문을 닫았다.
이번 트레이드 시장에서 승리자들은 매물을 내놓은 구단들이었다.
[역대 트레이드 시장 중 가장 많은 돈이 오간 트레이드 시장으로 기록될 올해는 필리스가 불을 질렀다!]
필리스가 제대로 불을 지르면서 다른 구단들 역시 막대한 자본을 들이부어야 했다.
그리고 이런 시장의 분위기는 시즌 종료 이후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과연 올 시즌이 끝나고 열릴 스토브리그에서는 어떤 파격적인 계약들이 나올 것인가?]
필리스가 트레이드 시장에서 쓴 돈은 약 3억 달러였다.
스토브리그도 아닌 단지 트레이드 시장에서 쓴 돈으로는 역대 가장 많은 금액이었다.
이렇게 많은 돈을 쓸 수 있었던 건 역시나 새로운 주인 알나흐안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지원이 단발성으로 끝나지 않을 거라는 건 모든 사람이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시즌 종료 이후를 기대하는 이들이 많았다.
어쨌든 트레이드 시장은 닫혔고 멈춰있던 리그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새롭게 선수들을 보강한 필라델피아 필리스가 홈에서 LA에인절스를 맞이합니다!
-오늘 경기에서는 트레이드 시장에서 사 온 새로운 에이스, 딘 루카스를 등판시켰습니다.
-워싱턴 내셔널스에서 이미 12승을 거두고 넘어온 루카스 선수, 필리스의 유니폼을 입고 처음으로 공을 던지게 되었습니다.
후반기.
필리스의 첫 경기 선발투수는 새롭게 영입된 딘 루카스가 되었다.
-그리고 딘 루카스와 호흡을 맞출 포수로는 당연하게도 한수호 선수가 마스크를 썼습니다.
-루카스 입장에서도 최고의 포수와 호흡을 맞춘다는 점에서 마음의 안정감을 얻을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수호는 명실상부 메이저리그 최고의 포수다.
하지만 그게 꼭 투수에게 안정감을 주는 게 아니었다.
‘쳇, 한 번도 호흡을 맞춰보지 못한 녀석이랑 호흡을 맞춰야 하다니.’
딘 루카스는 소속팀 내셔널스에서도 전담포수가 따로 있었던 선수였다.
특별대우라고 할 수 있지만, 그의 성적을 보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루카스는 전담포수인 마이클과 호흡을 맞추면 2점 초반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했지만, 주전포수인 셰필드와는 3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하고 있었지.’
[투수 중에 민감한 녀석들이 포수와의 호흡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있지.]
[한마디로 자신의 말을 잘 따라줄 부하가 필요한 녀석들임.]
루카스가 어떤 유형의 투수인지는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를 어떻게 리드해야 하는지도 말이다.
‘어디 나와의 호흡이 어떤지 볼까?’
수호가 손을 내리고 사인을 보냈다.
루카스는 그의 사인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초구는 정석대로 공격적인 사인, 나쁘지 않지.’
수호의 사인을 받은 루카스가 1구를 던졌다.
뻐어억-!!
“스트라이크!!”
-초구, 96마일의 빠른 공이 미트에 박힙니다! 스트라이크!!
-루카스 선수의 포심의 구위가 상당히 좋습니다.
초구에 유리한 볼카운트를 잡아내자 루카스의 머릿속에 하나의 공이 떠올랐다.
‘여기에서는 커브가…….’
‘커브로 가자.’
‘……우연인가?’
자신이 원하는 공을 바로 요구하는 수호를 보며 우연인가 싶었다.
어쨌든 원하던 공이었던 만큼 루카스가 망설이지 않고 공을 뿌렸다.
쐐애액-!!
후웅!!
퍽!!
“스윙, 스트라이크 투!!”
2구는 타자의 헛스윙으로 투스트라이크가 올라갔다.
여기에서는 선택지가 여러 개로 나뉜다.
하지만 루카스의 머릿속에는 이미 하나의 공이 떠올랐다.
‘승부를 하는 게 좋아. 여기에서는 포심을…….’
‘포심. 인코스.’
‘이번에도……?’
코스까지 완벽하게 원하는 대로 나오는 사인에 루카스의 눈이 커졌다.
그는 수호가 요구하는 대로 공을 뿌렸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뻐어어억-!!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삼구삼진!! 루카스 선수가 데뷔전을 완벽하게 스타트합니다!!
첫 번째 아웃카운트를 잡은 루카스는 그런 생각을 했다.
‘녀석과 호흡이 괜찮은데?’
벌써부터 수호의 마력에 매료되기 시작한 루카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