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후 메이저리거 306화
스위퍼.
홈플레이트를 쓸고 지나간다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이다.
횡슬라이더의 일종으로 2020년부터 본격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한 스위퍼는 2022년 들어 구사 개수가 1만 구를 돌파했다.
2020년에 1,000구에 불과했던 숫자가 무려 2년 만에 10배로 뛸 정도로 높은 구사 비율이었다.
그만큼 스위퍼는 제대로 구사한다면 상당한 위력을 자랑했다.
[스위퍼가 각광을 받기 시작한 건 메이저리그의 구속이 증가한 것도 큰 요인이지.]
[ㅇㅈ. 패스트볼의 구속이 빠른 만큼 타자는 더 빠르게 판단을 내려야 하고 그로 인해 나중에 변화하는 스위퍼에 헛스윙을 하는 빈도가 높아진 거지.]
[사실 스위퍼로 분류하고 있지만, 결국 슬라이더의 일종이다. 단지 구속이 빠르고 변화가 나중에 일어난다는 게 가장 큰 문제지.]
마리아노 리베라는 커터의 제왕으로 불리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던진 커터 중 일부를 스위퍼라고 발언했던 적이 있었다.
그만큼 횡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공들의 분류하는 건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중요한 건 그 공이 얼마큼의 위력을 가지냐였다.
‘그런 점에서 보았을 때 오타니의 공은 훌륭했습니다. 작년보다 변화는 더 늦게 일어나는데. 각이 더 커졌어요.’
초구부터 던졌던 스위퍼는 대단한 위력이었다.
하지만 이제 고작 하나의 공을 상대했을 뿐이다.
‘이번 타석에서 어떻게든 공략하겠습니다.’
수호는 타석에 다시 들어섰다.
상대만 진화한 게 아니다.
‘저 역시 준비를 많이 했으니까요.’
오타니가 준비한 만큼 자신 역시 많은 준비를 끝냈다.
그렇기에 자신감은 충분했다.
타석에 서서 집중력을 끌어올린 그가 공략하기 위해 생각에 들어간 건 투수가 아닌 포수였다.
정확히는 볼 배합에 대해 예상을 하기 시작했다.
‘초구부터 스위퍼로 유리한 볼카운트를 잡아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는 하나의 공을 뺄 가능성이 크다.’
오타니가 좋은 공을 던졌다.
다른 타자라면 그 사실에 더 집중할 것이다.
하지만 수호는 달랐다.
투수가 아닌 경기 전반적인 부분을 더 신경을 쓰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놀라웠다.
퍽!!
“볼.”
-2구는 높은 코스에 꽂히는 패스트볼! 하지만 한수호 선수의 배트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마치 유인구가 올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는 듯 미동도 하지 않네요.
-초구 스위퍼에 헛스윙을 했지만, 그는 여전히 침착합니다!
침착함을 유지하는 수호의 모습에 오타니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내 스위퍼 2.0을 보고도 이 정도로 침착을 유지할 수 있다고? 넌 놀랍지 않았다는 거야?’
스위퍼 2.0
간단히 말하면 이전의 스위퍼보다 더 늦게 그리고 더 크게 변화를 일으키는 공이었다.
타자가 이미 판단을 내린 뒤에 스위퍼의 본격적인 변화가 일어나기에 제대로 타격하는 건 쉽지 않았다.
실제 올해 자신이 상대한 수많은 타자들이 스위퍼의 제물이 되었다.
그 결과 오타니의 삼진 비율이 작년 대비 크게 상승했다.
그런 진화한 스위퍼를 보고도 놀라거나 하는 기색이 전혀 없는 수호의 모습에 인상을 구겼다.
‘어디 이번에도 그럴 수 있나 두고 보자.’
오타니는 스위퍼를 던지고 싶었다.
하지만 포수인 스미스의 손에서 나온 사인은 밑으로 떨어지는 스플리터였다.
지금까지 직선, 횡 변화를 일으키는 구종을 던졌으니 종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공으로 수호를 유인하자는 것이었다.
‘승부 하고 싶은데…….’
여기에서 오타니가 고개를 저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그의 말도 맞으니까.’
동양인들은 대체적으로 배려하는 마음이 서양인에 비해 더 컸다.
무엇보다 자신을 낮추는 겸손이 미덕이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보니 더욱 그랬다.
실제 미국의 기자들은 한국에서 활약하던 선수들이 미국에 와서 인터뷰하는 걸 보고 답답해하는 경향이 있었다.
분명 잘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드러내는 일이 잘 없었으니 말이다.
오타니 역시 그러한 경향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자신의 주장보다는 포수의 의견에 더 귀를 기울였다.
‘여기에서 오타니의 성격상 승부를 걸어오고 싶어 할 거다. 하지만 스미스나 다저스의 벤치에서는 나를 상대로 승부보다는 한 번쯤 더 유인구를 던지고 싶어 할 거야.’
그리고 수호는 그러한 부분까지 감안해서 오타니가 던질 공을 예측했다.
직후 오타니가 고개를 끄덕이고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고개를 젓지 않았다.’
자신의 생각이 틀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수호는 거기까지 생각하지 않았다.
틀렸으면 그 뒤에 다시 계획을 수정하면 된다.
틀릴 거라고 겁을 먹고 생각을 바꾸는 건 이전의 삶에서만 하면 그만일 뿐이었다.
‘기회는 또 있다.’
자신에게 유리한 볼카운트였다.
그렇기에 수호는 자신의 생각에 망설임을 가지지 않았다.
-오타니 쇼헤이가 3구를 던집니다!
와인드업에 들어간 오타니가 공을 뿌렸다.
“흡!!”
쐐애애애액-!!
그의 손을 떠난 공이 수호의 무릎 위치로 날아들었다.
타자가 때리기 좋은 위치는 아니지만, 충분히 노려볼 수 있는 위치였다.
하지만 수호는 그게 유혹이라는 걸 간파했다.
‘내려간다.’
휘릭!!
그리고 그 예상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공이 시야에서 사라지더니 보더라인 밖으로 뚝 떨어졌다.
그렇게 떨어진 공이 포수의 미트에 들어가며 구심의 콜이 나왔다.
“볼, 투.”
-3구 역시 볼입니다! 초구 스위퍼로 한수호 선수의 헛스윙을 유도해냈던 오타니 쇼헤이! 2구와 3구를 연달아 유인구를 던졌지만, 한수호 선수의 배트를 유인해 내진 못했습니다!
-사실 오타니 선수의 공은 모두 훌륭했습니다. 하지만 한수호 선수가 마치 그 공이 들어올 걸 알고 있었다는 듯 침착하게 기다리면서 공을 모두 골라냈어요.
아주 좋은 선구안이었다.
해설자는 그런 의도로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수호는 이 공을 예측했다.
자신의 경험과 오타니에 대한 정보들, 그리고 다저스 벤치의 성향과 수많은 레전드들의 경험이 섞여 나온 결과였다.
그러나 그 사실을 모르는 오타니 입장에서는 스스로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내가 유인구를 던질 거라는 걸 예상한 거지? 나한테 무슨 버릇이라도 있는 건가?’
스스로에 대해 의심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만약 버릇이 있었다면 코치님이 말씀해 주셨을 거다. 거기에 다른 타자들도 그걸 알고 공략했을 거야.’
그의 생각은 정확했다.
냉정하게 판단을 내리는 것만 보더라도 그가 일류 선수라는 걸 말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그라 하더라도 수호가 벤치의 생각을 예측하는걸 예상하지 못했다.
‘볼카운트가 불리해졌으니 여기에서는 카운트를 잡으러 들어올 거다.’
수호 정도 되는 레벨의 타자가 공이 스트라이크가 될 것인지 볼이 될 것인지에 대해 알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
열 개의 공들 중 8~9개 정도의 공은 정타로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수호 역시 그런 자신이 있었다.
‘여기에서 승부를 건다.’
풀카운트가 되어 스위퍼를 던질 기회를 줄 생각은 없었다.
‘아직 스위퍼를 정확히 보지 못했다. 만약 한 번 더 스위퍼를 던진다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수 있어.’
오타니의 스위퍼는 확실히 수준이 높았다.
작년보다 더 갈고 닦은 느낌이 확실히 들었다.
그런 공이 한 번 더 날아온다면 풀카운트에서 헛스윙이 나올 수 있었다.
그렇기에 여기에서는 반드시 승부 해야 했다.
‘와라.’
수호가 타격자세를 잡자 스미스가 사인을 보냈다.
‘인코스, 포심 패스트볼.’
스미스의 사인에 고개를 끄덕인 오타니가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후우…….”
팔을 들어 올려 크게 숨을 몰아쉰 그가 몸을 비튼 뒤 다리를 내디뎠다.
콰직!!
다리가 강하게 마운드 위를 밟자 오타니의 회전이 시작됐다.
휘릭!!
강한 회전과 함께 돌아간 몸을 따라 올라오는 힘을 손끝으로 전달해 그대로 공을 뿌렸다.
“흡!!”
쐐애애애액-!!
그의 손을 떠난 공이 매서운 속도로 날아 홈플레이트 위를 지나려는 순간.
타닥!!
수호가 발을 내디디며 그대로 배트를 돌렸다.
후웅!!
바람을 가르고 돌아간 배트가 홈플레이트 위를 지나쳐 그대로 존을 통과하는 공을 낚아챘다.
딱!!
-때렸습니다!! 강하게 날아가는 타구가 그대로 관중석에 떨어집니다!!
솔로홈런.
담장을 넘겨 버린 수호가 1루를 향해 유유히 떠나는 모습이 화면에 비쳤다.
-한수호 선수가 다저스의 슈퍼스타 오타니 쇼헤이 선수를 상대로 첫 타석부터 홈런을 만들어냅니다!!
그라운드를 도는 수호가 전광판을 바라봤다.
‘일단 1점.’
* * *
수호의 솔로홈런.
하지만 그것이 오타니의 정신을 무너뜨리진 못했다.
뻐어어억-!!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오늘 경기 5번째 탈삼진을 기록하는 오타니 쇼헤이! 한수호 선수에게 내준 홈런을 제외하면 완벽한 투구를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이거 오타니 선수의 투구가 정말 예술적이네요. 특히 스위퍼의 위력이 환상적입니다.
-오늘 잡아낸 5개의 탈삼진 중 무려 4개가 스위퍼를 결정구로 이용했습니다.
-그만큼 스위퍼가 메이저리그 레벨의 타자들을 상대로도 쉽게 때릴 수 없단 소리겠죠.
정확한 해설이었다.
수호를 제외하고는 필리스 타자들은 오타니의 스위퍼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그 결과는 참담했다.
필리스는 수호를 제외하곤 단 하나의 안타도 추가하지 못한 채 오타니에게 끌려다녔다.
반면 다저스의 타선은 달랐다.
딱!!
-때렸습니다! 스미스 선수가 초구부터 공략에 성공하면서 2루까지 내달립니다!
-스코어 3 대 1로 끌려가고 있는 필리스가 3회 말에도 다시 위기에 빠지고 있습니다!
수호는 승리했다.
그건 확실하다.
하지만 필리스는 오늘도 다저스를 상대로 끌려가는 경기를 보여주고 있었다.
‘안톤의 공이 나쁜 건 아닌데. 다저스 타선을 완전히 눌러 버리기에는 무리가 있어.’
[볼 끝이 날카롭지 못하네.]
[컨디션이 나쁜 건 아니지만, 공의 구위 자체가 다저스를 상대할 레벨이 아님.]
[확실히 너네는 올해 트레이드를 하긴 해야겠다.]
지구 상위권을 달리고 있는 필리스다.
지금 순위를 그대로 포기하는 건 너무 아까웠다.
분명 수뇌진이 무언가 묘수를 준비 중일 것이다.
[만약 준비하는 게 없다면 네가 끼어들어야지.]
[지분도 가지고 있으니 그 정도 목소리는 충분히 낼 수 있지.]
구단의 성적은 곧 수호의 수익으로 이어진다.
그렇기에 충분히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걸 고민하는 게 아니었다.
‘일단 지금 위기를 넘기고 두 번째 타석을 준비해야겠죠.’
수호의 시선이 타석으로 들어오는 타자에게 향했다.
-무사 2루의 찬스에서 타석에는 오타니 쇼헤이가 들어섭니다!
-첫 타석에서 2루타를 때려내면서 좋은 타격감을 보여준 그가 과연 두 번째 타석에서는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지 기대됩니다!
타석에 들어선 오타니를 바라보며 수호는 안톤을 향해 손을 움직였다.
‘녀석과는 괜히 머리를 써서 어렵게 승부를 걸 필요가 없어. 바로 정면승부다.’
사인을 받은 안톤이 고개를 끄덕이고 곧장 공을 뿌렸다.
“흡!!”
쐐애애액-!!
안톤의 손을 떠난 공을 바라보던 오타니가 그대로 배트를 돌렸다.
딱!
-때렸습니다!!
맞는 순간 수호는 아차 싶었다.
-쭉쭉 뻗어 날아간 타구가 그대로 펜스를 넘어갑니다!! 투런포를 작렬시키는 오타니 쇼헤이!! 스코어는 5 대 1까지 벌어집니다!!
필리스에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