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후 메이저리거 300화
정식 스트리머의 특전은 간단했다.
[저승사자 : 방송을 언제든지 껐다 켤 수 있습니다.]
그동안 수호의 일상은 24시간 동안 레전드들에게 송출되었다.
그로 인한 스트레스는 크게 없었다.
3년 동안 달리기만 했으니 말이다.
오히려 레전드들의 조언이 없으면 불안할 때도 있었다.
그들은 자신에게 안정감을 주는 멘토였다.
그런 이들의 조언이 사라진다면?
나침반이 사라지는 것이니 혼란스러울 수 있었다.
그런 것이 아니더라도 레전드들과는 정이 들었다.
그렇기에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방송을 이어나가고 싶었다.
‘뭐, 노잣돈을 저승에서도 쓸 수 있다고 했으니. 죽은 뒤에도 풍족하게 살아갈 수 있겠지.’
여러모로 나쁠 건 없었다.
무엇보다 레전드들의 부탁을 끝까지 들어주고 싶었고 말이다.
그렇게 새로운 목표가 생긴 수호는 더욱 경기에 집중했다.
* * *
필리스가 홈구장을 떠나 원정길에 나섰다.
이번 원정은 LA에인절스와의 대결이었다.
LA는 대대로 한국인 교민들이 많이 거주하는 곳이었다.
지금도 미국에서 가장 많은 한국인이 거주했기에 수호의 방문을 반기기 위한 준비를 끝낸 상태였다.
“수호가 온다니까, 목이 터져라 응원하자고!”
“물론이지. 수호 덕분에 우리 가게에 손님이 얼마나 늘었는데!”
“하하, 자네 가게도 그래? 우리 가게에도 손님들이 쏟아진다니까.”
수호가 활약할수록 외국인들은 한국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게 되었다.
물론 소수라고 할 수 있지만, 그 숫자가 무시할 정도가 아니었다.
그들은 한국 문화에 대한 호기심을 풀기 위해 인근의 한국 식당을 찾았다.
자연스레 한국 식당들의 매출이 올라갔다.
식당만이 아니었다.
한국과 관련된 가게들의 매출이 모두 오르는 현상이 일어났다.
이를 두고 한수호 효과라고 부르는 이들까지 나타나기 시작했다.
타국에서 장사를 하는 이들에게는 수호가 고마울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경기장으로 나서는 이유기도 했다.
이런 팬들의 큰 기대를 안고 LA에 도착한 수호는 곧장 하퍼와 저녁 시간을 가졌다.
“오랜만이에요.”
“하하! 그러게. 매번 같은 구장을 쓰다가 이렇게 떨어지게 되니 너무 오랜만에 보는 거 같다.”
“하퍼가 다른 팀으로 가게 돼서 아쉬웠어요.”
“어쩔 수 없지. 선수란 결국 구단의 입장에 따라 여기저기 움직이게 되어 있으니까. 물론 나도 아쉬운 건 마찬가지야. 이왕이면 필리스에서 은퇴하고 싶었는데.”
브라이스 하퍼는 워싱턴 내셔널스에서 명성을 얻었다.
하지만 그가 선수 생활을 더 오래 한 팀은 필라델피아 필리스였다.
필리스는 그에게 부와 명성을 함께 주었다.
그렇기에 선수 본인도 구단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내년이 또 있으니까. 일단 올해 건강하게 시즌을 치르도록 하죠.”
“하하! 그렇지. 그러고 보니 이제 동료가 아니라 구단주님인가?”
“그래봐야 지분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닌데요.”
“그래도 선수 영입에 입김 좀 넣을 수 있지 않아?”
두 사람이 자리에 앉으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어느 정도 제 의견을 받아들여 주긴 해요. 새로 온 제이크나 데이비드도 말이 통하는 사람들이고요.”
“그거 다행이네. 프런트가 말이 통하지 않으면 골치 아프지. 어쨌든 나도 필리스 유니폼을 다시 입으면 좋겠다.”
하퍼는 진심으로 필리스에서 은퇴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연봉을 깎는 것도 생각하고 있었다.
연봉은 선수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하지만 때로는 연봉보다 더 중요한 게 있었다.
특히 하퍼처럼 커리어상 이룰 수 있는 건 모두 이루어낸 베테랑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나도 언젠가 하퍼처럼 생각하는 날이 오겠지.’
은퇴하는 날.
자신은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무대에서 퇴장할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고개를 저어 생각을 떨쳐냈다.
이제 고작 3년.
아직 은퇴를 생각할 때가 아니었으니까.
“자, 그럼 이틀 뒤에 있을 파티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
“예.”
본격적으로 그와 만난 이유에 대한 대화가 이어졌다.
* * *
LA에인절스와의 1차전.
필리스는 2선발 후보로서 훌륭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선발투수 리오 에르난데스를 선발로 내세웠다.
-리오 에르난데스 선수는 올 시즌 4승 2패 평균자책점 2.14라는 훌륭한 성적을 거두고 있습니다.
-필리스 마운드에 오른 투수들이 전반적으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서 안정적인 운영이 가능하게 해주고 있습니다.
현재 필리스는 공수의 균형이 잘 이루어진 팀이었다.
딱!!
-때렸습니다! 3루 라인을 타고 흐르는 타구! 3루수 데니스 워럭이 달려가면서 공을 잡아 그대로 점프하면서 1루로 송구!!
쐐애애액-!
뻐억!!
“아웃!!”
-아웃입니다! 그림 같은 호수비를 보여주는 데니스 3루수!
-방금 점프 스로우는 아주 멋졌습니다! 역동작이 걸려 있었는데도 1루까지 노바운드로 공을 던져주네요!
수비에서는 투수와 야수들의 조화가 잘 이루어졌다.
특히 야수들의 활약을 돋보였다.
그리고 이런 야수들의 좋은 수비는 투수들의 어깨를 가볍게 해주었다.
거기에 마스크를 쓰고 앉아 있는 것이 한수호라는 점도 그들의 어깨를 가볍게 해주는 요소였다.
‘아웃코스, 슬라이더.’
‘오케이.’
고개를 끄덕인 에르난데스가 와인드업에 이어 공을 뿌렸다.
“흡!!”
쐐애애액-!!
손을 떠난 공이 보더라인을 살짝 빗겨나가는 궤적을 그렸다.
타자가 배트를 멈추고 공이 존을 지나가는 걸 지켜봤다.
그 순간, 수호의 마법이 시작됐다.
스윽-
구심의 눈을 가리고 존 밖으로 흘러나가는 공을 손목 컨트롤로 존 안으로 밀어 넣었다.
촤아앗-!!
그 결과.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삼진입니다!! 에르난데스가 삼진을 잡아내며 이닝을 마감합니다!!
아웃카운트가 올라갔다.
투수는 자신의 공이 존을 벗어났는지 아닌지 정확히 알고 있다.
그런데도 수호의 마법이 펼쳐지면 놀랍게도 볼이 될 공도 스트라이크가 되었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에 투수들은 수호에게 더욱 신뢰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투수에게 멘탈이 중요한 건 이미 증명된 사실입니다. 아무리 뛰어난 구위를 가진 투수라 하더라도 멘탈이 약하면 이도 저도 아닌 투수가 되는 셈이죠.
-그런 점에서 보았을 때 한수호 선수가 마스크를 쓰는 건 투수들에게 안정감을 주고 있죠?
-맞습니다. 일각에서는 필리스 투수들의 호투가 한수호 선수 덕분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습니다.
수비에서도 수호의 존재는 컸다.
하지만 그의 존재감이 더욱 도드라지게 나타나는 곳은 역시 공격이었다.
수비에서 수호는 조력자로서 전면에 나서지 않는다면 공격에서는 달랐다.
-이번 이닝, 선두타자로 한수호 선수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이번 시즌 벌써 23개의 홈런을 때려내면서 개막 단 2개월 만에 30홈런 고지를 향해 달리고 있는 한수호 선수입니다.
-메이저리그 전체 1위라는 건 당연하고 2위인 게레로 주니어 선수보다 무려 5개나 앞서고 있습니다.
현재 수호의 홈런은 리그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수준이었다.
2위권을 형성하고 있는 선수들과도 격차가 벌어진 상황이었기에 3년 연속 최다홈런도 가시권에 두고 있었다.
-과연 오늘 경기에서 24번째 홈런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투수가 초구를 던집니다!
수호가 타석에 들어서면 팬들의 기대감은 높아졌다.
언제 홈런이 터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호는 이런 팬들의 기대감을 충족시켜 주는 선수였다.
“흡!!”
쐐애애액-!!
-1구 던졌습니다!
투수의 손을 떠난 공이 몸쪽을 파고들자 수호는 망설임 없이 배트를 돌렸다.
후웅!!
딱!!
-때렸습니다!! 그리고 한수호 선수는 배트를 던졌고! 타구는 그대로 펜스를 넘어 관중석에 떨어집니다! 시즌 24번째 홈런을 작렬시키는 한수호 선수!!
수호의 홈런이 터지면서 관중석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 * *
LA에인절스와의 1차전도 수호의 활약 끝에 승리로 끝났다.
경기 종료와 함께 클럽하우스로 돌아온 수호를 수많은 취재진이 둘러쌌다.
“한수호 선수, 오늘 경기에서 수많은 교민분들이 방문했는데. 팬들의 응원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까?”
“예. 아주 큰 힘이 되었습니다.”
“이번 시즌에도 놀라운 페이스로 기록들을 수집 중인데. 어떤 목표를 가지고 계십니까?”
“동료들의 도움 덕분에 타점을 빠르게 올리고 있습니다. 덕분에 좋은 기회가 왔으니 핵 윌슨 선배님의 기록에 도전을 해보고 싶습니다.”
“핵 윌슨 선수라면 단일시즌 최다타점 보유자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맞습니다. 100년의 세월 동안 깨지지 않은 그 기록에 도전하겠습니다.”
기자들의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오랜만에 빅마우스 수호의 입에서 괜찮은 기삿거리가 나왔기 때문이다.
기자들은 수호에게 질문을 쏟아냈고 그 장면은 베어스포츠의 카메라에 그대로 담겼다.
‘엄청난 인기네.’
기자들에 둘러싸인 그를 보면서 헬렌은 새삼스레 수호의 대단함을 깨닫고 있었다.
‘더 놀라운 건 핵 윌슨 같은 엄청난 선수의 대기록에 도전하겠다고 망설이지 않고 말하는 저 대담함이야.’
그동안 많은 선수를 지켜봐 온 헬렌이었다.
그 선수들 중에는 다양한 선수들이 있었다.
소심한 선수들부터 자기과시가 심한 선수들까지.
그러나 대체적으로 동양인 선수들은 소심한 타입들이 많았다.
‘일종의 문화라고 할 수 있지만, 자기 어필이 좀 적은 선수들이 많았지. 그런 점에서 보았을 때 한수호 선수는 무척이나 이질적인 선수야.’
그는 동양인이면서도 자기 어필을 해야 할 때는 강하게 하는 선수였다.
특히 기록에 대한 도전에 대해서는 욕심을 숨기지 않았다.
이런 모습이 팬들에게는 큰 호감으로 다가왔다.
무엇보다 그는 자신이 뱉은 말을 지켜내는 선수였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핵 윌슨 선수가 누구지?’
핵 윌슨은 라이브볼 시대 초기에 활약했던 레전드다.
헬렌 같이 젊은 여성이 몰라도 이상할 건 없었다.
그리고 그건 헬렌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한수호, 핵 윌슨이 세운 단일시즌 최다타점 기록에 도전할 것! 이라고 공언!!]
[MVP 인터뷰에서 레전드 핵 윌슨을 소환한 한수호!]
[명예의 전당 헌액자 핵 윌슨은 누구인가?!]
수호의 언급에 언론에서도 핵 윌슨에 대한 기사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그런 기사들이 쏟아지자 팬들 역시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핵 윌슨이 누구야?
-이름에 핵이 들어가다니. 실화냐?
-이름이 아니라 별명임. 그만큼 파괴력 넘치는 모습을 보여줬거든.
-베이브 루스 이후로 최고의 타자로 군림했었지.
-전성기가 짧아서 잘 안 알려져 있을 뿐임.
-만약 전성기가 길었다면 웬만한 기록은 이 아저씨가 다 갈아치웠을걸?
골수팬들은 핵 윌슨에 대한 이야기를 쏟아내며 질문에 대해 답변을 해주고 있었다.
자연스레 커뮤니티에서는 핵 윌슨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주를 이루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런 반응을 저승에서 바라보면서 흐뭇해하는 윌슨이었다.
[흐흐, 수호 녀석 덕분에 내 이름이 알려지는구나.]
[아저씨, 그렇게 웃다가 입 찢어지겠음.]
[ㅋㅋㅋ 그런데 나도 저런 상황이면 입 찢어질 듯]
[수호야~우리 기록도 깨주라~]
덕분에 레전드들의 채팅도 끊임없이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