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후 메이저리거 288화
수호와 아이들이 훈련에 전념하고 있는 사이.
메이저리그의 상황은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필리스가 선수를 판매하는 걸 중단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선수를 파느라 정신없었잖아.”
“예. 그래서 저희 쪽에서 유망주의 구매를 요청했는데. 그쪽에서 무슨 이유에서인지 선수를 판매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혀왔습니다.”
필리스의 바겐세일이 끝났다.
이건 다른 구단들이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길 버드의 자금 상황이 나아졌나?”
“거기까진 정확히 모르겠습니다만, 아직 이렇다 할 이야기는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필리스의 바겐세일이 구단주 길 버드의 일탈 때문인 건 이미 메이저리그에 소문이 파다하게 난 상황이었다.
그리고 길 버드가 그 상황을 해결하지 못할 거란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구단까지 판매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소문까지 돌았는데. 그걸 이렇게 단시간에…….’
양키스의 사장, 하워드의 얼굴이 굳어졌다.
“필리스 구단의 매각 소식이 있는지 알아봐.”
“매각이요? 설마 구단이 판매되었다고 보시는 겁니까?”
“가능성은 충분해. 만약 그게 아니라면 갑자기 바겐세일을 멈출 이유가 없어.”
“아…… 알겠습니다.”
필리스 구단의 바겐세일이 멈춘 것도 문제였지만, 하워드는 그 이상을 걱정하고 있었다.
‘만약 필리스 구단이 정말 팔렸다면 막대한 자금을 가지고 있는 큰손이 리그에 합류했다는 소리다.’
메이저리그 구단을 매입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현금을 가지고 있어야 했다.
그런 자금을 갑자기 동원할 수 있는 사람이 주인이 된다면 필리스는 이번 FA시장에서 엄청난 돌풍을 일으킬 수 있었다.
‘실제 메츠의 주인이 바뀌었을 때도 선수들의 몸값이 기하급수적으로 올랐지.’
가장 최근 구단의 주인이 바뀌었던 구단은 뉴욕 메츠였다.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뉴욕을 연고지로 같이 쓰는 양키스에 비해 약팀으로 분류되던 메츠였다.
하지만 주인이 바뀌자마자 엄청난 돈을 쓰기 시작하면서 FA시장을 뒤흔들었다.
종내에는 메이저리그 최고 페이롤을 지불하는 구단이 되었을 정도였다.
그런 선례가 있었기에 하워드 사장의 마음이 급해졌다.
‘그런 일이 또 벌어지기 전에 선수들과의 계약을 끝내야 한다.’
프리에이전트 시장에 관련 소식이 전해지기 전에 선수들을 잡아야 한다.
이런 생각을 하는 건 하워드 사장만이 아니었다.
눈치 빠른 구단의 사장들은 관련 소식을 접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였다.
그리고 곧 하나의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알나흐안 왕자가 필리스에 눈독을 들인다고?”
“말도 안 돼! 그는 신생구단을 창단하기로 했잖아?”
“설마 보증금을 포기하기로 한 건가?”
“하지만 그 금액만 하더라도 5억 달러야!”
5억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돈을 포기하고 필리스 구단을 사들인다?
일반적으로는 불가능할 거라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오일머니의 정점에 있는 알나흐안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였다.
“젠장……! 선수들과의 계약을 빨리 마무리하도록 해!”
“프리에이전트 시장에서 필요한 선수와 계약을 한시라도 빨리 끝내!”
필리스 구단의 판매.
이 사실이 알려지기 전에 선수들을 손에 쥐어야 했다.
* * *
메이저리그가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사이.
수호의 훈련은 중반부를 지나가고 있었다.
“오늘부터 훈련 스케쥴을 바꾸도록 하겠습니다. 각자의 스마트폰이 스케쥴을 전송했으니 확인하시면 됩니다.”
라이언 베켓 박사는 선수 개개인에게 필요한 훈련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수호에게는 스테미너적인 부분을 중점으로 프로그램을 짰다.
스케쥴을 확인한 수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라이언 박사의 실력이 좋아. 내가 필요한 게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어.’
[그러게.]
[만약 스테미너적인 부분으로 프로그램이 짜여 있지 않았으면 한 소리 하려 했더니.]
[우리가 생각하고 있던 것들하고 대동소이하네.]
레전드들도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라이언이 만들어온 프로그램은 완벽했다.
그리고 그건 수호만이 아니라 다른 선수들에게 짜준 프로그램 역시 마찬가지였다.
“우와…… 이런 프로그램으로 훈련하면 진짜 잠은 잘 오겠다.”
“벌써부터 토 나오는데?”
“하아…… 이제 좀 익숙해졌는데.”
“라이언 당신은 악마야.”
선수들이 비명을 지를수록 훈련은 제대로 되고 있는 것이다.
라이언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그들의 비명을 즐기고 있었다.
그들의 훈련이 한창 잘 되고 있을 때, 김명훈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예, 여보세요. 아, 예. 예? 알겠습니다.”
전화를 받는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기에 수호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무슨 일이 있습니까?”
“손님이 찾아온다고 합니다.”
“손님이요?”
“예. 알나흐안 왕자께서 직접 이곳을 방문하시겠다고 하시네요.”
왕자의 방문이란 말에 수호의 눈이 커졌다.
그때 타이 콥의 채팅이 올라왔다.
[아무래도 녀석이 널 정말 원하나 보다.]
그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 * *
왕자를 만나는데, 땀 흘리는 모습으로 만날 순 없었다.
그래서 수호는 오전 훈련을 제외하고 그를 마중했다.
두두두두-!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헬리콥터의 프로펠러 소리에 수호가 혀를 내둘렀다.
‘등장부터 화려하네요.’
[저 정도면 그래도 수수하게 등장하는 거지.]
[쟤 재산 생각하면 헬리콥터 등장 정도야 뭐.]
알나흐안의 재산은 수십조를 넘어선다.
헬리콥터를 타고 등장하는 거야 이해하고 넘어가야 했다.
곧 헬리콥터에서 비서와 보디가드로 보이는 이들이 내리고 알나흐안이 모습을 드러냈다.
잘생긴 중동계 남자의 등장에 수호가 가볍게 예를 갖추었다.
“이렇게 만나서 반갑습니다.”
알나흐안의 인사에 수호도 화답했다.
“직접 여기까지 오시다니, 영광입니다.”
“하하! 들어가서 이야기할까요?”
알나흐안의 제안에 두 사람이 안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미리 마련해 둔 집무실에 수호를 비롯해 여러 사람이 앉아 있었다.
알나흐안이 가장 상석에 앉았고 수호와 스캇 보라스 그리고 김명훈도 자리했다.
먼저 이야기를 끌어간 건 스캇 보라스였다.
“왕자님께서 직접 여기까지 찾아오시다니. 범상치 않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정확히 어떤 문제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스캇 보라스의 질문에 알나흐안이 입을 열었다.
“소문은 들었을 거라 생각합니다만, 이번에 필라델피아 필리스를 인수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수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보라스 쪽을 통해 관련된 이야기를 전해 들은 상황이었다.
“그 부분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정식인수는 끝나지 않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대부분의 내용은 확정되었고 실무진들이 소소한 내용들에 대한 조율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수호의 질문에 알나흐안이 답했다.
이야기를 듣던 보라스가 물었다.
“그럼 신생구단 창단은……?”
“아마 3순위였던 다른 컨소시엄에서 가져가겠죠. 뭐, 그 부분은 제가 이제 관여할 문제가 아닙니다. 제가 앞으로 신경 써야 하는 건, 한수호 선수를 필리스의 영구결번으로 만드는 거겠죠.”
영구결번.
한 마디로 팀의 영원한 레전드로 만들겠다는 의미였다.
이제 3년 차에 접어드는 수호를 잡아두기 위해서는 장기계약밖에 방법이 없었다.
스캇 보라스가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
“왕자님께서도 아시겠지만, 한수호 선수는 메이저리그 최고의 선수입니다.”
악마의 에이전트.
유명한 별명을 얻은 그가 알나흐안 왕자를 상대로 흥정을 하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알나흐안 왕자는 만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그가 손을 들어 보라스의 말을 제지했다.
“한수호 선수가 얼마나 위대한 선수인지 설명할 필요는 없습니다. 나는 그가 활약하는 모습을 보고 베이스볼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그가 역사에 도전하는 모습을 보고 메이저리그 구단을 가지고 싶어졌습니다.”
구단이 마치 장난감과 같다는 식으로 말하는 알나흐안을 보며 어처구니가 없었다.
하지만 그는 충분히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재력을 가진 인물이었다.
그렇기에 조용히 그의 말을 경청했다.
“신생구단 창단이 아닌 필리스를 인수한 이유도 오직 한수호 선수 때문이죠.”
그가 눈짓을 보내자 뒤에 있던 비서가 한 장의 종이를 꺼냈다.
종이에는 알나흐안의 이름과 서명만이 적혀 있었다.
그 외에는 아무런 내용도 기재되어 있지 않았다.
“한수호 선수, 당신이 원하는 내용을 서류에 적으십시오.”
흔히 백지수표라는 말이 있다.
사실 백지수표라는 건 큰 의미가 없었다.
상대방이 지불할 능력이 없다면 그저 종이에 불과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수표를 내민 이가 세상에서 제일 돈이 많은 사람 중 한 명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특히 그가 내민 것이 수표가 아닌 계약서라면 더더욱 말이다.
그걸 알기에 보라스가 놀란 얼굴로 물었다.
“저희 쪽에서 원하는 조건을 모두 수용하시겠다는 말입니까?”
“단, 하나. 계약조건은 필리스에서 은퇴하는 조건으로 잡아주시면 됩니다.”
한 마디로 영구계약을 맺겠다는 소리였다.
자신이 원한다면 어떤 조건이든 수용하겠다는 알나흐안의 의지를 알았기에 수호는 그에게 물었다.
“왕자님께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말씀하시죠.”
“왕자님은 어떤 팀을 꿈꾸십니까?”
수호의 질문에 잠깐 고민하던 그가 싱긋 웃더니 대답했다.
“당신과 함께 역사상 최고의 팀이 되기를 꿈꾸고 있습니다.”
백 점짜리 정답이었다.
* * *
수호는 자신의 눈앞에 놓인 백지계약서를 바라봤다.
[왕자가 설마 이렇게 강수를 둘지는 몰랐네.]
[그러게 말이야.]
[하여간 돈 많은 애들에게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니까.]
[그냥 돈이 많은 것도 아니고 어마어마하게 많으니까, 통하지 않는 거지.]
알나흐안의 상식은 일반인의 수준을 아예 넘어섰다.
설마 백지계약서를 가져올 줄이야.
수호는 꿈도 꾸지 못했었다.
‘보라스는 일단 제가 심사숙고해서 초안을 작성하길 원하더군요.’
[사실상 이건 에이전트의 능력 밖의 일이니까.]
[에이전트는 협상을 통해 더 좋은 계약을 가져오는 역할이지, 백지계약서에 조건을 넣는 역할이 아니지.]
[사실상 역사에서 유일할 거다. 이런 계약서를 받은 선수는.]
그만큼 알나흐안이 자신을 원한다.
‘이번 계약을 통해 필리스에서 떠날 수 없게 되겠네요.’
[그건 모르지.]
[사실 이번과 같은 일이 또 벌어질 수도 있으니까.]
[그때가 되면 사실 선수로서 네가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음.]
이번 필리스 사태는 수호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그리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는 것에 무력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 생각까지 미치지 수호의 머리에 섬광처럼 스치는 한 가지 생각이 있었다.
‘선수로서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겠지만, 주주로서는 이야기가 다르겠죠?’
[주주로서?]
[알나흐안 왕자는 자신이 모든 돈을 투자하는 거 아님?]
[다른 주주가 또…… 아!]
[너 설마 지분을 요구하려고?]
‘연봉의 일부를 지분 형태로 미리 받는다면 충분히 가능하겠는데요.’
[불가능은 아니지.]
[계약이란 건 어찌 됐든 쌍방의 합의를 통해서 나오는 거니까.]
[문제는 왕자가 그걸 받아들이냐겠네.]
받아들일 것이다.
거절할 생각이었다면 애초에 백지수표를 주지 않았을 테니까.
‘되든 안 되든…… 일단 해봐야죠.’
수호가 펜을 들어 종이에 내용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