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후 메이저리거 285화
수호는 자신에게 들어온 일들을 확인했다.
“대기업들이 주를 이루네요.”
수호의 말에 김명훈이 대답했다.
“일부러 대기업만 추렸습니다. 사실상 한수호 선수의 몸값을 감당할 수 있는 곳은 대기업밖에 없으니까요.”
정확한 판단이었다.
수호는 국내를 넘어서 글로벌적인 인지도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도 그저 그런 수준이 아니라 톱클래스 수준의 인지도였다.
당연히 몸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일개 중소기업에서 감당할 몸값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한수호 선수가 많은 일을 맡게 된다면 내년 시즌에 영향이 갈 수도 있을 거 같아서 일을 최대한 추렸습니다.”
“배려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건 정부 쪽 일인가요?”
수호가 한 장의 제안서를 빼 들었다.
“예. 관광공사에서 정식으로 한수호 선수를 모델로 써서 글로벌 홍보를 하고 싶다는 제안을 해왔습니다.”
정부에서도 수호를 원하고 있었다.
[정부 쪽 일이면 인연을 터놓는 것도 좋지.]
[아무래도 정부 쪽과 얼굴을 터두면 네가 앞으로 할 일들에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다.]
[이건 시대나 지역을 막론하고 진리와도 같음.]
레전드들의 조언이 이어졌다.
그들 중에는 은퇴 이후 사업을 했던 이들도 있었다.
그랬기에 정부와 인연을 만들어두는 게 얼마나 좋은지 잘 알고 있었다.
[특히 너는 재단도 운영하고 있으니 편의를 볼 수 있을 거다.]
[관광공사의 목적도 썩 나쁘지 않고 말이야.]
분명 제안서에 적힌 내용은 상당히 괜찮았다.
외국인들에게 국내 관광에 대해 더 알려주는 홍보모델과 같았다.
촬영도 간단했다.
반대로 얻는 건 많았다.
“알겠습니다. 그럼 이건 긍정적으로 진행하도록 하죠.”
“예. 관광공사 쪽과 그렇게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그 뒤로도 몇 가지 안을 더 의논한 뒤 김명훈과의 만남을 마무리했다.
* * *
어느덧 11월이 끝나고 12월에 접어들었다.
수호는 친구들을 배웅하고 한국에서의 일정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오늘 정부 쪽 촬영을 마무리하면 당분간은 스케줄이 없습니다.”
“의외로 빨리 끝났네요.”
“수호 씨도 쉬어야 하니까요.”
김명훈의 대답에 수호가 미소를 지었다.
이 남자가 자신을 위해 스케줄을 조율해 준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안내 드렸지만, 이번 촬영에는 아이돌그룹이 같이 촬영합니다.”
“최근에 인기 있는 그룹이라죠?”
“예. 에이핌이라는 그룹인데. 데뷔 이전부터 관심을 크게 끌더니 데뷔하고 나서는 이미 글로벌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더군요.”
익히 들어서 알고 있는 이름이다.
이번 삶에선 이제 막 데뷔한 그룹이지만, 이전 삶에서는 말 그대로 월드클래스였다.
데뷔 이후부터 압도적인 인기를 구사했고 큰 트러블 없이 10년 동안 활동했다.
개별활동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였던 그녀들에 대한 기억은 잘 남아 있었다.
‘군대에서 큰 힘이 되었지.’
군대에서 여자 아이돌은 신과 같았다.
에이핌은 힘든 군대 생활에서 단비와도 같은 팀이었다.
그런 팀과 함께 촬영한다는 게 신기했다.
‘한수호 많이 컸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메이저리거인 게 익숙해지고 있었지만, 가끔 이렇게 이전의 삶에서 슈퍼스타였던 이들을 만나면 새삼 깨닫게 된다.
[많이 큰 정도가 아니지.]
[이제 같은 종목에선 비교할 수 있는 선수가 없지.]
[연예인들이 널 따라오는 건 힘들 정도임.]
[웬만한 스포츠 스타들도 너와 같은 선상에 두기 어렵다.]
[기껏해야 GOAT라고 불리는 놈들이나 비슷한 수준이지.]
레전드들도 이제는 수호를 인정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들에게 있어서도 수호의 성적은 압도적이었으니 말이다.
“도착할 때까지 시간이 있으니 좀 쉬고 계시죠.”
“알겠습니다.”
수호는 이동하는 차 안에서 휴식을 취했다.
* * *
수호가 휴식을 취하는 사이.
메이저리그 롭 만프레드 커미셔너는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다른 구단들에게 이번 안건에 대해 전달했나?”
“예. 공문은 모두 보냈습니다. 하지만 반응은 썩 좋지 않습니다.”
“그렇겠지.”
“신생구단의 창단이라고는 하지만, 이 정도의 지원까지 해줄 필요가 있겠습니까?”
부하직원의 말에 커미셔너 롭은 인상을 구겼다.
“이번 신생구단이 끝이 아니니까. 앞으로 메이저리그 창단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 정확히 어떤 메리트가 있을 것인지에 대해 전달해야 해.”
신생구단의 창단은 확정되었다.
하지만 롭 만프레드는 여기에서 끝낼 생각이 없었다.
“6년 단위로 새로운 구단을 창단한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미국의 모든 주에 구단을 만드는 거지.”
6년 단위로 새로운 팀을 만든다.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다.
로키스와 레이스 이후 새로운 구단의 창단에 오랜 세월이 걸렸을 뿐 이전에도 10년 이내에 새로운 구단이 생겼었다.
무엇보다 미국에서 메이저리그의 인기는 매우 높았다.
새로운 구단이 생기면 선수들 입장에서도 좋았다.
일자리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수협회에서도 메이저리그 사무국에 무척이나 협조적이었다.
“하지만 구단들의 반대가 심합니다. 그들로서는 유망한 선수들의 몸값이 올라가는 게 부작용으로 보일 테니까요.”
“그만큼 자신들의 주머니에 들어가는 돈이 줄어들 테니까. 하지만 결국 그들도 시장이 커지는 걸 보면서 환영할 수밖에 없어.”
메이저리그의 가장 큰 시장은 단연 미국이다.
하지만 미국은 지역사회였다.
지역에 팀이 있다면 메이저리그에 대한 관심이 높았지만, 팀이 없다면 관심이 떨어졌다.
그런 점에서 보았을 때 메이저리그는 아직 성장 가능성이 충분했다.
그런 부분을 잘 어필한다면 결국 기존 구단들도 받아들일 거다.
그때 비서가 노크와 함께 사무실로 들어왔다.
“알나흐안 왕자께서 연락이 오셨습니다.”
“알았네. 회의는 이쯤에서 마무리하도록 하지.”
“예.”
부하직원들이 모두 사무실을 나가자 롭은 전화를 들고 목을 가다듬었다.
“흠흠…….”
이번 신생구단의 창단에 있어 가장 중요한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롭 만프레드 역시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여보세요.”
-오랜만에 연락드립니다.
간단한 인사가 끝나고 곧 본론으로 들어갔다.
-다름이 아니라 한수호 선수와 미팅을 가지고 싶은데. 혹시 자리를 마련해주실 수 있습니까?
“예? 하지만 한수호 선수는 아직 필리스 소속이라…….”
알나흐안 왕자가 한수호한테 관심이 높은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커미셔너로서 타 팀에 소속되어 있는 선수를 신생구단의 주인에게 소개시켜 줄 순 없었다.
-그렇군요. 그런데 한수호 선수가 FA로 풀리는 게 언제까지였죠?
“2032시즌이 끝난 뒤에 FA로 풀립니다.”
-흠, 우리 팀이 2030년부터이니. 상당히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되는군요.
아쉬움이 담겨있는 목소리에 롭이 다급히 대답했다.
“그렇지 않아도 신생구단의 혜택에 대해 논의를 계속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아마 곧 좋은 소식을 전달해 드릴 수 있을 거 같습니다.”
-그럼 기대하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롭 만프레드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과 대화를 하려니 진땀이 나는군.’
수많은 재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롭 만프레드다.
하지만 알나흐안은 아예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이었다.
세계 유명한 재벌들조차 그에게는 명함도 내밀지 못한다.
유수한 기업의 총수들도 그의 말 한마디면 모여야 했다.
그만큼 그가 내밀 수 있는 카드는 달콤한 꿀과 같았으니 말이다.
그런 남자가 메이저리그에 관심을 가진 건 오직 한 선수 때문이었다.
‘한수호, 그의 플레이가 아랍의 왕자를 움직이게 만들었지.’
중동은 역사적으로 메이저리그에 큰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알나흐안이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 계기가 된 건 당연하게도 수호의 활약이었다.
‘그런 수호를 손에 넣지 못한다면 그는 메이저리그 구단을 창단하고 별다른 투자를 하지 않고 방치하다가 넘겨 버릴 수도 있어.’
창단에만 수십억 달러의 비용이 들어간다.
천문학적인 금액을 투자해 창단했는데, 방치한다?
상식적으로는 말이 되지 않는 소리였다.
하지만 그 상식이란 게 통하지 않는 곳이 바로 중동이었다.
‘그 남자는 분명 그럴 수 있는 남자다.’
그렇기에 롭 만프레드는 어떻게든 할 생각이었다.
‘최소한 경쟁이라도 할 수 있게 해줘야 해.’
수호를 그냥 알나흐안에게 던져줄 생각은 없었다.
그건 공정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가 도전할 수 있는 기회 정도는 줄 생각이었다.
그때 그의 전화가 울렸다.
“여보세요.”
전화를 받은 그의 얼굴이 굳어졌다.
“뭐? 그게 정말이야? 당장 보고서 가져와.”
예상치 못한 연락에 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길 버드…… 이 미친 인간이 무슨 짓을 하는 거야?”
필리스의 구단주의 이름이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 * *
에이핌과의 광고 촬영은 수호에게 있어 행복한 시간이었다.
“자, 이제 한수호 선수가 중심에 서시고 에이핌 멤버들이 주위를 둘러싸는 포지션으로 갈게요.”
국내 최고의 여자 아이돌그룹에 둘러싸여 촬영하는 건 기쁨 그 자체였다.
[아주 미소가 사라지지 않네.]
[ㅋㅋ 솔직히 남자들 사이에서 땀내만 맡다가 이렇게 예쁜 애들이랑 일하면 일할 맛 나겠지.]
[수호야 너무 좋아하는 티 난다.]
“크흠…….”
레전드들의 채팅에 헛기침이 나오는 수호였다.
하지만 기쁨을 감출 생각은 별로 없었다.
그렇게 기분 좋은 촬영을 마무리하고 며칠이 지났다.
“오빠다!”
집에서 TV를 보며 쉬고 있을 때.
수빈의 외침에 스마트폰을 보던 수호의 시선이 TV로 향했다.
얼마 전에 찍었던 관광공사의 광고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우와! 오빠 에이핌 언니들이랑 광고 촬영했어?!”
“응.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
“대박! 나도 얼마 전에 에이핌 언니들 신곡으로 챌린지 했는데!”
“챌린지라면 그 안무 영상 찍어서 올리는 거 말이지?”
“응! 요즘 숏츠로 유행이잖아!”
동생 수빈도 인플루언서가 다 됐다.
저런 유행을 다 알고 있고 말이다.
그녀는 TV에 나오는 수호가 신기한 듯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런 동생을 보던 수호는 한 통의 전화가 오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예, 김 지부장님.”
-쉬고 계시는데 죄송합니다. 혹시 필리스 소식 들으셨습니까?
“필리스 소식이요? 아뇨. 별다른 소식은 듣지 못했는데. 무슨 일이 있었나요?”
-아직 못 들으셨군요. 다름이 아니라 필리스에서 대대적으로 선수들을 팔고 있다 합니다.
“선수를…… 팔아요?”
* * *
메이저리그에서 선수는 하나의 상품이다.
그렇기에 언제든지 팔고 살 수 있었다.
계약에만 위반되지 않는다면 말이다.
하지만 2년 연속 월드시리즈 우승팀이 주축선수를 판매하는 건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렇기에 수호는 곧장 한국지부에 방문해 소식을 전달받았다.
“필리스에서 판매를 진행하고 있는 건 앤드류 페인터, 조니 로버트 그리고 브라이언 릴과 브룩스까지 판매명단에 올렸습니다.”
“그 정도면 지금 메인로스터에 들어가는 선수들 절반 아닙니까?”
“맞습니다.”
“도대체 그 선수들을 왜 판다는 겁니까?”
“이건 아직 오피셜은 아닙니다만……. 길 버드 구단주의 재정 상황이 매우 안 좋은 거 같습니다.”
수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