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후 메이저리거 280화
월드시리즈 6차전.
궁지에 몰린 애스트로스는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젠장…… 어떻게든 출루해야 해.’
선수들은 경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대충하는 건 더더욱 아니었다.
의지도 풀로 충전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그들의 허를 찌르는 공이 스트라이크존을 통과했다.
휘릭!!
부앙!!
뻐어억!!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삼진입니다! 배트를 풀스윙으로 돌렸지만, 공은 그 아래를 지나 미트에 꽂힙니다!
-바뀐 투수, 앤서니 선수의 체인지업이 타자들을 농락하고 있습니다!
필리스는 선수교체의 타이밍 역시 완벽했다.
마치 페인터의 체력이 떨어진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 절묘한 타이밍에 투수를 바꾸었다.
그 결과는 매우 좋았다.
‘앤서니 역시 2년 차에 불과한 선수다. 그런데 어떻게 월드시리즈에서 저리 안정적으로 공을 던지는 거지?’
숀 감독은 필리스 투수들의 안정감에 혀를 내둘렀다.
‘갑자기 올라오면 제구력이 흔들리게 마련인데. 그런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아.’
그건 앤서니를 지나 세 번째, 네 번째 투수로 이어져도 마찬가지였다.
필리스 투수들은 하나 같이 마운드에서 안정적인 피칭을 이어나가며 애스트로스 타자들을 돌려세웠다.
그 결과 7회까지 단 1실점으로 애스트로스 타선을 틀어막고 있었다.
‘마치 에이스 투수가 연달아 마운드에 오르는 거 같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걸 숀 감독 본인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보여주는 모습은 그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한참 동안 고민하던 숀 감독은 캐처박스에 앉아 있는 수호에게 시선이 향했다.
‘투수는 바뀌어도 포수는 바뀌지 않는다. 설마 그 이유 때문에 필리스 투수들이 저렇게 안정적인 건가?’
포수의 중요함은 숀 감독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메이저리그의 최신 트렌드를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감독이었다.
포수라는 포지션이 과거보다 중요함이 떨어지고 있다는 점 역시 인지하고 있었다.
‘만약 정말 그렇다면…… 한수호는 시대를 역행하고 있는 선수다.’
포수가 중요했던 시절은 이미 지나갔다.
팀이 운영하는 분석팀이 과거 포수가 했던 일을 대신하고 있었다.
그래서 수비형 포수보다는 공격형 포수를 더 원했다.
그런데 수호는 두 가지 모두가 가능했다.
아니, 지금까지는 타격 능력에 더욱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런데 이번 월드시리즈에서 그를 경험한 숀 감독의 생각은 완전히 달랐다.
‘그는 단순히 공격형 포수가 아니야. 어쩌면…….’
캐처박스에 앉아 공을 받는 그의 모습을 보며 등에 소름이 돋는 게 느껴졌다.
‘가장 이상적인 완성형 포수일 수도 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포수.
어쩌면 그 수식어가 붙을 선수를 눈으로 보고 있는 게 아닐까?
숀 감독은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 * *
스코어 6 대 1.
애스트로스는 완벽하게 경기에서 밀리고 있었다.
하지만 완전히 경기를 포기한 건 아니었다.
딱!
-때렸습니다!
8회 초.
상위타순으로 이어지는 애스트로스가 공격의 물꼬를 텄다.
-선두타자 출루에 성공하는 애스트로스!
첫 번째 타자의 출루에 이어 두 번째 타자가 진루타를 때려냈다.
딱!!
-3루 라인을 타고 흐르는 타구! 3루수가 대시해서 공을 잡아 그대로 1루로!
퍽!!
“아웃!!”
-아웃입니다! 첫 번째 아웃카운트를 올리는 필리스! 하지만, 선행주자는 2루에 안착했습니다!
-애스트로스가 득점권에 주자를 내보냈네요.
-어쩌면 애스트로스의 마지막 기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흔히 야구에서 세 번의 흐름이 찾아온다고 말한다.
애스트로스는 그 세 번째 기회를 맞이했다.
그리고 타석에는 에단 호크가 들어섰다.
-라이징 스타 에단 호크의 등장에 애스트로스의 원정 팬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팬들 역시 흐름을 느끼고 있었다.
여기에서 점수를 내면 애스트로스는 아직 동아줄을 잡을 수 있다는 걸 말이다.
“호크!! 한 방 날려라!!”
“일단 1점이라도 따라잡자!”
“아직 할 수 있어!!”
팬들의 열렬한 성원을 받으며 에단 호크가 타석에 섰다.
수호는 그런 호크의 모습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다.
‘어설픈 공이 들어오면 넘어가겠어.’
그걸 알고 있기에 집중력을 높였다.
그리고 최고의 코스를 요구했다.
하지만 아무리 수호가 최고의 선택지를 제안하더라도 투수가 거기에 던질 수 있어야 한다.
하나 투수의 제구력은 그렇게 정교하지 못했다.
“흡!!”
쐐애애액-!!
-하워드가 던진 1구가 날아듭니다!!
몸쪽을 요구했다.
그런데 공이 다소 스트라이크존의 중심으로 치우쳐져 있었다.
명백한 실투였다.
그리고 호크는 그걸 놓치지 않고 매의 발톱처럼 날카롭게 배트를 돌렸다.
후웅!!
따악-!!
-때렸습니다!!
경쾌한 소리와 함께 타구가 날아갔다.
맞는 순간 수호는 직감할 수 있었다.
‘넘어갔다.’
휘릭!!
뒤이어 호크도 배트를 던졌다.
그리고 외야까지 날아간 타구는 그대로 펜스를 넘어갔다.
-넘어갔습니다!! 오늘 경기 첫 홈런을 작렬시키는 에단 호크!! 매의 발톱은 여전히 날카롭습니다!!
-이걸로 3점 차이로 좁혀졌습니다! 애스트로스가 아직 경기를 포기하지 않았어요!!
스코어 6 대 3.
필리스가 다시 사정권에 들어섰다.
* * *
매디슨 감독이 빠르게 투수를 교체했다.
과감한 투수교체 덕분에 추가 실점은 없었다.
하지만 스코어가 3점 차이로 좁혀진 건 바뀌지 않은 사실이었다.
[여기에서 점수를 내지 못하면 분위기가 넘어갈 수 있다.]
레전드 요기 베라의 채팅에 수호도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렇게 느끼고 있습니다.’
[아직 앞서고는 있지만, 언제 뒤집혀도 이상할 점수가 아니지.]
[한 방이면 바로 역전이야.]
[무엇보다 애스트로스의 기세가 오르기 시작한 게 문제지.]
8회가 시작되기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패잔병의 얼굴을 하고 있던 애스트로스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딱!!
-때렸습니다!! 유격수 몸을 날려 잡아냅니다!!
“흡!!”
쐐애애액-!!
뻐억!!
“아웃!!”
-환상적인 수비로 안타성 타구를 지워 버리는 애스트로스!! 완벽한 수비가 나왔습니다!!
“나이스 플레이!!”
“환상적이었어!!”
애스트로스 선수들은 플레이 하나하나에 목소리를 높였다.
패배를 직감한 선수들에게서는 나올 수 없는 모습이었다.
‘에단 호크의 홈런 한 방이 팀의 분위기를 반전시켰어. 그리고 이런 반전된 분위기는 곧 경기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낸다.’
라이징스타.
슈퍼루키.
다양한 수식어가 붙은 에단 호크지만, 엄연히 그는 1년 차 루키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벌써부터 팀의 흐름을 바꾸는 선수가 된 것이다.
[너도 작년에 그랬잖아.]
[남 일처럼 이야기하네.]
[그냥 지켜만 볼 생각은 아니지?]
레전드들의 채팅이 빠르게 올라갔다.
물론 아니었다.
딱!!
-때렸습니다! 중견수 앞에 떨어지는 안타! 메이튼 선수가 출루에 성공합니다!
메이튼이 출루하면서 대기타석에 있던 수호가 가볍게 배트를 돌렸다.
‘물론 아닙니다.’
흐름을 바꾸는 선수.
수호는 그걸 가장 잘 해낼 수 있는 선수였다.
-그리고 타석에는 한수호 선수가 들어섭니다!!
수호의 등장에 숀 감독은 고민에 들어갔다.
‘고의사구로 내보내야 하나?’
그 역시 흐름이 서서히 바뀌고 있는 걸 감지했다.
그런 상황에서 수호와의 정면승부를 펼친다는 건 매우 위험성이 높았다.
‘하지만 지금 그를 고의사구로 내보낸다면 선수들의 사기가 꺾일 수 있다.’
경기의 흐름은 선수들이 만들어낸다.
그런데 선수들의 사기가 꺾인다면 어떻게 될까?
바뀌기 시작한 흐름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때 그라운드에서 에단 호크가 외쳤다.
“파이팅!!”
“그래! 하나만 잡자!!”
“아웃카운트 하나만 잡아내!!”
선수들이 기세를 올렸다.
그 모습에 숀 감독은 주먹을 꽉 쥐었다.
‘승부 한다.’
선수들이 기세를 올리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수호와의 승부를 피하는 선택을 내릴 순 없었다.
‘승부 하겠군.’
수호 역시 그러한 분위기를 느꼈다.
숀은 뛰어난 감독이다.
그렇기에 여기에서 자신과 승부 할 거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확신은 현실이 되었다.
뻐어억-!!
“스트라이크!!”
-바깥쪽 낮은 코스를 정확히 찌르는 패스트볼! 구속은 100마일이 찍혔습니다!!
-애스트로스가 한수호 선수와의 승부를 피하지 않기로 결정했네요!
초구가 스트라이크존을 지났다.
이건 승부 하겠다는 의사표명이나 다를 바 없었다.
수호는 무게중심을 낮추고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바뀌기 시작한 흐름에 말뚝을 박아 쐐기를 박아야 한다.’
더 이상 불확정요소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집중력을 끌어올린 그의 시야에 닿는 모든 것이 어둠으로 물들었다.
야수들의 모습이 어둠에 잠겨 사라졌고 이내 마운드에 있는 투수의 모습조차 사라졌다.
보이는 건 오직 밝게 빛나는 공 하나뿐이었다.
쐐애애액-!!
그 공이 빠른 속도로 날아들었다.
그러자 수호의 눈에 공의 궤적이 보였다.
크게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오는 공은 정확히 스트라이크존을 통과해 무릎 높이를 지나고 있었다.
유인구였다.
하지만 수호는 이걸 그냥 보낼 생각은 없었다.
‘평소보다 낮게…….’
타닥!
무게중심을 더욱 낮추고 하체를 회전시켰다.
휘릭!!
뒤이어 허리를 돌렸다.
하지만 여전히 배트는 뒤에 남아서 힘을 축적시키고 있었다.
골반이 정면으로 향하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 배트가 회전을 시작했다.
후웅!!
묵직한 소리와 함께 바람을 가른 배트는 가상의 궤적을 따라 날아드는 공을 그대로 낚아챘다.
따악-!!
경쾌한 소리와 함께 영역이 깨지며 공이 강한 반발력에 의해 날아갔다.
‘넘어갔다.’
배트를 쥔 손의 감촉에 확신을 가진 수호가 손을 놓았다.
휘릭!!
-한수호 선수가 배트를 던졌습니다!! 그리고 타구는……!
동아줄을 쥐고 희망에 차서 우물을 올라오던 애스트로스의 끈을 잘라 버릴 정도로 날카로운 타구가 펜스를 넘어갔다.
-넘어갔습니다!! 투런포를 작렬시키는 한수호 선수!!
애스트로스의 선수들이 고개를 떨어트렸다.
* * *
스코어 8 대 3.
절망적인 스코어에 애스트로스 선수들의 사기는 꺾였다.
뻐어억-!!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반면 한수호가 이끄는 필리스 투수들은 여전히 안정적인 피칭을 이어나갔다.
-두 번째 아웃카운트가 올라가면서 필리스가 월드시리즈 우승까지 단 하나의 아웃카운트만을 남겨두게 되었습니다!
9회 투아웃.
남은 아웃카운트는 단 하나.
우승이 눈앞에 다가왔으니 마음을 놓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수호는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 이유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이 명언의 주인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덕분일까?
딱!!
-때렸습니다! 하지만 파울이 되는……!
낮게 떠올라 파울라인으로 날아가는 타구를 쫓아갈 수 있었다.
그리고 망설이지 않고 떨어지는 타구를 향해 몸을 날렸다.
퍽!!
촤아앗-!!
-아아-! 이 파울타구를 잡아내는 한수호 선수!! 세 번째 아웃카운트가 올라갑니다!!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자신의 손으로 만들어낸 수호가 자리에서 일어나 양손을 번쩍 치켜들었다.
-필라델피아 필리스가 2년 연속 월드시리즈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립니다!!
그런 수호를 향해 동료들이 달려왔고 2년 연속 우승을 자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