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후 메이저리거 276화
4차전은 수호의 독무대였다.
타닥-!!
“또 뛰었어!!”
1루에 출루한 수호는 단 한 번도 멈추지 않았다.
투수의 발이 홈플레이트로 향하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2루 베이스를 노렸다.
“흡!!”
쐐애애액-!!
포수가 그런 수호를 잡기 위해 전력으로 공을 뿌렸다.
하지만 공은 언제나 수호의 발보다 느렸다.
촤아아앗-!!
퍽!!
“세이프!!”
-이번에도 도루를 성공시키는 한수호 선수! 오늘 경기에서만 벌써 4번째 도루를 성공시킵니다!
2루 베이스에 도착한 수호가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그 모습에 경기장을 찾은 사람들은 일제히 함성을 내질렀다.
“한! 한! 한! 한!!”
“네가 최고다!!”
응원전에서 밀리던 필리스 팬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반면 애스트로스 팬들의 목소리는 작아졌다.
“도대체 저 작전을 얼마나 쓰려는 거야?”
“이제 수호와 승부 해야 하는 거 아냐?”
“이대로 내보내기만 하면 수호가 결국 베이스를 훔치잖아.”
“이 패턴으로 가면 결국 또 진다고!”
고의사구로 수호를 봉쇄하는 작전.
처음에는 이 작전이 잘 통했다.
하지만 수호의 빠른 발이 그 작전을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그런데도 숀 감독은 계속해서 그 작전을 고집하고 있었다.
팬들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건 코치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슬슬 작전을 바꿔야 하지 않겠습니까?”
수석코치의 질문에 숀 감독은 경기장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대답했다.
“한수호와 승부 하면 이것보다 더 큰 점수를 뺏길 거야.”
“그렇다 하더라도 흐름이 자꾸 넘어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선발투수들이 한수호를 신경 쓰느라 자신의 투구를 하지 못합니다.”
“투수들에게 전달해. 한수호는 내버려 두라고.”
“예? 그 말씀은 무관심 도루를 내주겠다는 말씀입니까?”
“그래. 얼마든지 베이스를 훔치라고 해. 단, 홈스틸만은 뺏기면 안 돼.”
숀 감독도 대응을 생각하지 않은 게 아니다.
어느 정도 그림을 그려두었고 그 카드를 꺼내도 될지에 대해 고민을 하던 중이었다.
양날의 검이라 할 수 있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으로서는 이보다 좋은 방법은 없었다.
“확실히 이대로 두면 투수들이 더 신경을 쓰겠죠. 하지만 계속 베이스를 뺏기면 고의사구로 나갈 때마다 점수를 내줄 겁니다.”
“알고 있어. 그렇기에 베이스를 내주더라도 어느 정도 체력을 빼둬야 해.”
“체력을 빼두라고요?”
“도루를 줘도 돼. 하지만 견제구는 던지게 해. 그리고 포수에게도 공을 던져서 전력으로 뛰게 만들고.”
숀의 말에 수석코치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한 경기만이 아니라 최종전까지 생각하시는 거군요.”
“그래. 도루는 생각보다 체력소모가 심하니까. 저렇게 매 경기 달린다면 체력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아.”
시즌 초중반이라면 가능성은 제로였다.
하지만 지금은 페넌트레이스가 끝나고 열리는 포스트시즌이었다.
그것도 월드시리즈라는 큰 무대였기에 선수들의 체력소모는 상상 이상으로 컸다.
그런 상황에서 수호는 매 경기 4번 이상의 도루를 시도한다.
도루는 전력질주를 해야 했고 그때마다 막대한 에너지를 소모한다.
“최종전까지 가게 되면 분명 문제가 생길 거야.”
예언과 같은 게 아니었다.
굳이 말하자면 바람에 가까웠다.
‘인간인 이상 한수호도 체력적으로 지칠 거다. 그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어.’
막다른 길에 몰린 한 사람으로서 수호도 같은 인간이길 바라는 바람 말이다.
* * *
월드시리즈에 반전이 일어나고 있었다.
[월드시리즈 4차전까지 승리한 필라델피아 필리스! 시리즈 스코어 2승 2패로 동률을 만들다!]
[한때 2연패로 2년 연속 월드시리즈 우승에 적신호가 켜졌던 필리스! 하지만 이제는 시리즈를 원점으로 돌렸다!]
[한수호가 살아나니 필리스도 살아났다!]
[3차전과 4차전에서만 도루 11개를 달성한 한수호! 멈추지 않는 그의 발을 휴스턴은 어떻게 잡을 것인가?]
수호의 부활과 함께 필리스가 2승을 거두었다.
월드시리즈는 원점으로 돌아갔다.
아니, 이제는 필리스가 더 유리한 상황이 되었다.
-2승 2패까지 따라잡았네.
-역시 디펜딩챔피언은 다르긴 하네.
-2년 연속 챔피언도 가능할 듯.
-수호가 살아나니까, 팀이 살아나네.
-필리스는 수호 없으면 시체임.
-휴스턴은 어쩌려나?
-작전을 딱히 바꾸지 않던데.
-이대로 수호를 내버려 두면 결국 질 텐데.
-그런데 딱히 대안도 없음.
-그렇긴 하지.
수호는 모든 타격 능력이 뛰어난 타자였다.
약점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 그를 공략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걸 알기에 휴스턴의 숀 감독은 선수들 앞에 나섰다.
“한수호가 뛰어나다는 건 다들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한수호를 보유한 필리스를 상대로 2승 2패까지 만들었다.”
선수들의 얼굴에는 의아함이 나타났다.
2승 2패를 만든 게 아니라 당한 거기 때문이다.
하지만 숀 감독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
“이제 다시 시리즈를 시작한다고 생각하자. 이전에 있었던 경기는 머리에서 지우자. 2승을 올리고 트로피를 우리 휴스턴으로 가져오자.”
“예!”
선수들의 대답이 들려왔지만, 숀의 말은 계속됐다.
“언론에서는 연일 한수호를 막을 방법이 없냐고 물어본다. 아마 오늘도 그들이 물어볼 테지. 그리고 나는 거기에 답할 거다.”
선수들의 시선이 숀 감독에게 집중됐다.
선수들 역시 궁금했기 때문이다.
“나는 한수호를 막을 방법이 없다고.”
선수들의 얼굴에 당황한 모습이 역력하게 나타났다.
설마 저런 말을 감독이 직접 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기는 우리가 이길 거라고 대답할 거다.”
수호를 막을 수 없는데, 경기에서 이긴다?
그 말을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한수호는 분명 위대한 선수입니다. 하지만 위대한 선수를 보유한 팀이 꼭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했던 건 아니다.”
분명 맞는 말이다.
만약 위대한 선수가 항상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한다면 베이브 루스는 매년 우승했어야 했다.
최초의 5인을 비롯해 랜디 존슨과 페드로 마르티네즈 등.
역사에 이름을 남긴 선수들도 손가락이 모자랄 정도로 우승반지를 손에 넣었어야 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우승은 결국 팀원이 얼마나 조화를 잘 이루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너희들은 하나다. 그걸 명심하면 반지는 우리의 것이 될 거다.”
“예!”
숀 감독의 연설에 선수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런 모습은 휴스턴만이 아니라 필리스에서도 똑같이 연출되고 있었다.
한 가지 다른 점은 감독인 매디슨이 아닌 브라이스 하퍼가 선수들 앞에 섰다는 점이다.
“수호만 날뛰게 둘 순 없지. 우리 역시 월드시리즈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물론이죠!”
“애스트로스를 박살 내겠습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바로 접니다!”
수호를 경쟁상대로 두고 있는 필리스 선수들의 기세 역시 하늘을 찔렀다.
원점으로 돌아온 월드시리즈.
이제 새로운 흐름을 가져갈 팀을 정할 시간이 되었다.
“5차전은 우리의 승리다!”
하퍼의 외침과 함께 필리스 선수단이 그라운드로 향했다.
* * *
휴스턴에서의 마지막 홈경기가 될 5차전.
필리스는 역시나 고의사구로 출루하게 된 수호가 공격의 포문을 열었다.
-오늘 경기에서도 첫 타석부터 고의사구로 1루 베이스를 밟게 된 한수호 선수입니다.
-애스트로스는 이 이상의 전략은 없는 거 같습니다.
-아마도 한수호 선수를 상대하는 것보다 이 방법이 실점을 덜 하게 될 것이라 판단한 거 같습니다.
맞는 말이었다.
수호를 상대하게 된다면 앞에 주자가 몇 명 쌓였냐에 따라 더 많은 점수를 줄 수 있었다.
주자가 없더라도 솔로홈런을 때리면 확정적으로 1점을 내준다.
반면 그와 상대하지 않는다면 베이스에 묶어둘 가능성도 있었다.
-하지만 한수호 선수의 출루는 선발투수들의 머리를 아프게 할 텐데요.
-그 부분을 어떻게 처리할지 가장 궁금하긴 합니다.
수호의 출루는 단순히 베이스에 주자 한 명이 나간 게 아니었다.
퍽!
“세이프!”
-견제구를 던집니다! 하지만 한수호 선수가 일찌감치 베이스로 돌아갑니다!
-한수호 선수를 신경 쓰느라 투수들이 타자에게 집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투수가 타자에게 집중하지 못하는 효과를 낳았다.
하지만 오늘은 조금 달랐다.
‘견제구만 던지고 도루를 하게 냅 두라고 했었지. 그래, 어차피 내가 뭔 짓을 해도 잡지 못하는 녀석인데.’
경기 전.
숀 감독이 투수들을 불러 신신당부했다.
수호가 베이스에서 뭔 짓을 해도 그냥 타자에게만 신경 쓰라고 말이다.
최근 주자 한수호와 상대하면서 그가 얼마나 뛰어난 주자인지 너무나 잘 느끼고 있었다.
‘녀석은 치타나 다를 바 없어. 내 공으로 치타를 잡을 순 없다. 그렇다면 그냥 내버려 둘 수밖에 없지. 아무리 치타가 빨라도 혼자의 힘으로 집으로 돌아올 수 없으니까.’
주자에게는 한계가 있었다.
그는 혼자서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홈스틸이란 변수가 있긴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타자와의 승부에 집중하는 게 정답이었다.
“흡!!”
뻐어억-!!
“스트라이크!!”
-초구 스트라이크!! 그리고 공은 곧장 2루로!!
촤아아앗-!!
퍽!!
“세이프!!”
-한수호 선수가 2루를 훔칩니다!
수호가 2루를 훔쳤다.
‘신경 끄자, 신경 꺼.’
투수는 애써 그를 머리에서 지우며 타자에게 집중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수호 역시 감지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저를 내버려 두고 타자에게만 집중하려는 거 같네요.’
[사실 그게 정답이긴 하지.]
[널 신경 쓴다고 잡을 수 있는 레벨도 아니고.]
[감독 선에서 지시가 내려왔을 듯.]
[이 전략을 계속 가져가는 이유를 알겠네.]
레전드들의 채팅을 보며 수호가 베이스에서 리드폭을 늘렸다.
‘확실히 숀 감독의 전략은 적절한 수준이네요.’
[ㅇㅇ 나라도 이렇게 했을 듯.]
[아무리 주자가 빨라도 홈으로 들어오는 건 다른 이야기니까.]
루 브록의 채팅에 수호가 물었다.
‘선배님들도 홈스틸이 무리라고 생각하십니까?’
[응? 아니지.]
[상대가 무리라고 생각할 때 멋들어지게 해내야지.]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제 머릿속에 있는 선배님들의 기억 속에 이런 말이 있더군요.’
리드폭을 늘린 수호가 자세를 낮추었다.
‘홈스틸은 발이 아닌 센스로 해내는 거라고요.’
[정답.]
[그게 진리지.]
발이 아무리 빠르더라도 홈스틸을 해내지 못한다.
하지만 센스 있는 주자라면 발이 느리더라도 해낼 수 있었다.
레전드들의 기억 속에서 그걸 찾아낸 수호의 시선이 투수를 주시했다.
그리고 그의 무게중심이 홈플레이트로 향하는 순간.
타닥!!
“뛰었어!!”
-한수호 선수 쉬지 않고 베이스를 훔칩니다!
연속도루를 시도했다.
투수가 던진 공이 포수의 미트에 꽂히고 포수는 곧장 3루로 공을 뿌렸다.
“흡!!”
쐐애애액-!!
공이 날아오는 걸 확인한 수호가 몸을 날려 3루 베이스로 슬라이딩했다.
촤아아앗-!!
흙먼지가 피어오르고 3루수가 순간적으로 날아오는 공을 놓쳤다.
‘빠졌다.’
슬라이딩하는 와중에도 그걸 확인한 수호는 베이스를 손으로 잡고 튕기듯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빠진 공의 위치를 확인하고 곧장 홈으로 내달렸다.
“빽홈!!”
등 뒤에서 3루수의 외침이 들려왔다.
-3루수가 공을 놓쳤습니다! 한수호 선수는 홈을 노립니다!!
-백업에 들어온 좌익수가 홈으로 송구!!
아슬아슬한 타이밍이었지만, 수호는 우측으로 몸을 날리며 스치듯 베이스를 터치하며 포수를 지나쳤다.
퍽!!
“세이프!!”
-세이프입니다!! 순식간에 점수를 올리는 한수호 선수!!
-환상적인 주루 플레이로 홈을 뺏습니다!!
-발로 만든 1점을 올리는 한수호!! 대단한 플레이가 나왔습니다!!
홈스틸에 버금가는 플레이로 1점을 획득하는 수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