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후 메이저리거 260화
디비전시리즈 1차전.
마운드에 오른 라파엘이 카메라에 잡혔다.
-필리스의 새로운 에이스 라파엘 알바레즈가 마운드에 올랐습니다.
-FA로 새롭게 필리스에 합류한 라파엘은 구단이 원하는 대로 팀의 에이스로서 자리를 잡았습니다.
-올 시즌 17승 7패 평균자책점 2.74라는 훌륭한 기록을 남기면서 마감했죠.
-무엇보다 풀시즌을 치러준 것이 가장 큰 강점입니다. 이전에는 체력적인 이슈와 잔 부상이 많았던 선수였는데 말이죠.
라파엘에 대한 평가는 후했다.
실제 성적도 잘 나왔기에 초기 그의 영입에 부정적이었던 사람들도 만족해했다.
그리고 그 모습은 오늘 경기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뻐어억-!!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삼진입니다! 두 번째 타자를 상대로 오늘 경기 첫 번째 삼진을 적립하는 라파엘 알바레즈!!
-알파레즈의 주특기 중 하나인 체인지업이 아주 잘 들어갔습니다! 오늘 컨디션이 상당히 좋아 보이네요!
라파엘의 장점은 강속구다.
하지만 그 강속구를 살리는 것이 바로 체인지업이었다.
그의 체인지업은 포심 패스트볼과 약 20㎞의 구속 차이를 보였다.
무엇보다 좌타자의 몸쪽을 파고드는 궤적 덕분에 타자들의 헛스윙을 유도해 내기도 좋았다.
우타자를 상대로는 슬라이더를 던지면서 요리하니 로케이션을 짜기도 좋았다.
‘연습 투구에서도 느꼈지만, 오늘 라파엘의 상태가 매우 좋다.’
[ㅇㅈ]
[공이 살아서 들어오네.]
[디셉션이 상당히 좋은 유형이야.]
[강속구이면서 디셉션이 좋은 건 강력한 무기 중 하나지.]
디셉션이란 공을 던질 때 손을 숨겨지는 동작을 의미한다.
이것이 잘 이루어진다면 타자 입장에서는 공이 갑자기 날아드는 것과 같은 착각이 든다.
무엇보다 공을 잡고 있는 손이 나중에 노출되면서 미리 예측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강속구 유형의 투수들은 이런 디셉션이 약한 게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라파엘은 디셉션이 상당히 훌륭해서 타자들을 어렵게 만들었다.
‘문제는 이 녀석인데.’
타석으로 들어오는 선수를 바라보며 수호가 경계심을 드러냈다.
“짜식, 잘생긴 얼굴 오랜만에 봐서 눈을 뗄 수 없는 거냐?”
파드리스의 슈퍼스타.
매니 마차도.
2010년대 후반부터 2020년대 초반의 메이저리그를 주름잡았던 선수다.
지금은 나이가 듦에 따라 과거의 영광으로 불리고 있지만, 올 시즌 확실한 부활의 신호탄을 쐈다.
혹자들은 전성기 이상의 실력이라 평가를 할 정도였다.
“오늘 경기는 우리가 이긴다.”
“그건 끝까지 가봐야 아는 거죠.”
“내기할까?”
“제가 무조건 이길 거기 때문에 너무 불리하신 거 아닙니까?”
기 싸움에서 밀리지 않는 수호의 모습에 마차도가 피식 웃으며 타석에 섰다.
“그럼 선빵을 날려주도록 하지.”
마차도의 투지가 느껴질 정도였다.
‘처음에는 네가 원하는 대로 해봐.’
마차도를 경계하긴 했지만, 지금은 라파엘의 공이 너무 훌륭했다.
굳이 변화를 줄 필요가 없었기에 경기 전, 상의했던 대로 라파엘을 리드해 나갔다.
라파엘 역시 고개를 끄덕이고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오늘 내 공은……!’
라파엘이 무게중심이 앞으로 쏠리면서 스트라이드를 내디뎠다.
‘최고다!!’
“흡!!”
쐐애애애액-!!
라파엘의 손을 떠난 공이 바깥쪽 낮은 코스를 날카롭게 찔러왔다.
오늘 던진 공들 중 가장 훌륭한 공이었다.
그때였다.
타닥!!
마차도가 간결한 스트라이드를 내딛고.
후웅!!
배트가 묵직하게 돌아갔다.
정확한 궤적을 그리며 돌아간 배트는 그대로 홈플레이트 앞에 도달한 공을 낚아챘다.
딱!!
-때렸습니다!!
마차도의 배트에 맞은 공이 빠르게 날아갔다.
‘아차!’
수호의 시야에 닿는 공이 빠르게 날아 그대로 관중석에 꽂혔다.
-넘어갔습니다!!
“와아아아!!”
경기장을 찾은 파드리스의 원정팬들의 함성이 뒤를 이었다.
그리고 배트를 던지며 마차도가 수호에게 말했다.
“일단 1 대 0.”
선전포고를 날리는 그의 모습에 수호가 고개를 저었다.
* * *
마차도에게 불의의 일격을 당했지만, 라파엘은 무너지지 않았다.
뻐어억-!!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삼진입니다!! 후속 타자를 삼진으로 처리하면서 이닝을 마감하는 라파엘 알바레즈!!
-마차도에게 한 방을 허용하긴 했지만, 후속 타자를 깔끔하게 돌려세우면서 추가 실점을 하지 않는 에이스입니다!
마운드를 내려와 더그아웃에 돌아온 라파엘이 수호에게 다가왔다.
“다음 타석 때는 너의 방법을 써보자.”
“그래.”
마차도의 컨디션이 심상치 않음을 깨달은 라파엘의 제안에 수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이 필리스의 공격이 전개되었다.
딱!!
-때렸습니다!!
선두타자 로버트가 때려낸 타구가 3루 라인을 타고 흘러나가려는 순간.
퍽!!
-아아-! 매니 마차도가 안타성 타구를 잡아냅니다!!
마차도가 공을 낚아챘다.
그리고 땅을 박차 점프한 그는 몸을 돌리며 1루를 향해 공을 뿌렸다.
쐐애애액-!!
퍽!!
“아웃!!”
-아웃입니다!! 마차도가 환상적인 플레이로 필리스의 선봉장을 돌려세웁니다!
-마치 전성기 시절 매니 마차도를 보는 것 같은 수비였습니다!
전성기 3루수 매니 마차도는 리그 탑클래스 수준의 수비능력을 보여주었다.
타격 능력도 수준급이었지만, 수비만큼은 넘사벽이란 말을 들을 정도로 훌륭했다.
나이가 들면서 이제는 그러한 수비를 보여주지 못해 많은 팬들이 아쉬워했었다.
그런데 오늘 전성기를 연상케 하는 수비가 나오자 팬들은 엄청난 환호를 보냈다.
“마차도가 돌아왔다!”
“엄청난 수비였어!!”
“역시 파드리스의 캡틴!!”
“너만 믿고 있었다고!!”
팬들의 환호를 듣는 그를 대기 타석에서 바라보는 수호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확실히 오늘 컨디션이 좋은 게 느껴지는 수비였어.’
첫 타석 홈런, 그리고 바로 이어지는 엄청난 호수비까지.
이 모든 것들이 좋은 컨디션이기에 나올 수 있는 것들이었다.
‘라파엘의 강속구를 초구부터 받아쳐서 홈런을 만들어내고 빠른 타구를 저런 몸놀림으로 잡아낼 수 있다는 건 그만큼 몸 상태도 좋다는 의미겠지.’
동체 시력은 몸 상태에 많이 좌지우지되는 부분이었다.
지금 마차도의 플레이를 보고 있으면 그 동체 시력이 무척이나 뛰어났다.
오늘 마차도의 컨디션이 얼마나 좋은지 잘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확실히 주의해야 할 선수야.’
이미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두 번의 플레이로 그걸 확인할 수 있었다.
덕분에 많은 정보를 얻어낸 수호는 타석에서 자신의 타석을 기다렸다.
‘일단 경기를 원점으로 만들어야 해.’
초반부터 끌려가는 승부하는 건 상당히 위험했다.
한시라도 빨리 경기를 원래대로 돌려둘 필요성이 있었기에 대기 타석에서부터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파드리스의 에이스인 헨드릭도 강속구가 인상적인 녀석이지.’
헨드릭의 평균구속은 95마일.
최고구속은 99마일까지 나오는 강속구형 투수였다.
그의 주무기 중 하나인 커브는 12/6로 떨어지는 궤적을 그렸다.
특히 제구력이 아주 좋아서 타자들을 상당히 애를 먹이는 공이었다.
후웅!!
퍽!!
“스윙, 스트라이크 투!!”
-헨드릭의 커브에 메이튼의 배트가 헛돕니다!
-이게 바로 헨드릭의 주무기인 폭포수커브입니다.
-대학 선배였던 클레이튼 커쇼에게 배워서 그런지 상당히 좋은 궤적을 그리고 있습니다.
21세기 최고의 좌완투수로 불리는 클레이튼 커쇼에게 전수받은 만큼 헨드릭의 커브는 일품이었다.
그리고 그 공을 공략하기에 메이튼의 배트는 날카롭지 못했다.
뻐어억-!!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삼진입니다! 두 타자 연속으로 돌려세우는 메이튼의 강속구!!
-직전에 던진 80마일의 커브가 지금의 강속구를 더욱 강력하게 만들어준 겁니다!
고개를 떨어뜨린 메이튼이 더그아웃으로 돌아가다 수호에게 말했다.
“커브 이후에 날아오는 패스트볼을 조심해야 해. 생각보다 공의 체감속도가 더 빨라.”
“제구는 어때?”
“상당히 골치 아파. 여기저기 찌르고 들어오는데. 녀석이 원하는 곳에 정확히 들어오는 느낌이야.”
“오케이, 고마워.”
정보를 얻은 수호는 타석으로 들어섰다.
배터박스를 정비하는 그에게 파드리스의 포수인 도일이 말했다.
“요즘 연애한다고 아주 소문이 제대로 났던데.”
[어떻게든 멘탈을 흔들려고 하네.]
[ㅋㅋ 하필 경기 전날에 그런 기사가 떠서 공격대상이 되냐.]
[하지만 우리 수호도 행복할 권리가 있다!]
레전드들의 채팅이 어지럽게 올라갔다.
사실 포수가 타자의 집중력을 흩뜨리게 만들기 위해 말을 거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이다.
특히 선수들끼리는 개개인의 사생활을 아는 경우도 있기에 그 부분을 공격하기도 했다.
이런 경우는 나이가 어릴수록 더 잘 통하기에 도일은 수호를 계속해서 도발했다.
“밤일을 너무 열심히 해서 오늘 체력이 일찍 떨어지는 거 아니야?”
약간의 선을 넘는 발언까지 하는 도일의 말에 배터박스를 정리하던 수호의 발이 멈췄다.
‘통했나?’
도일은 자신의 도발이 먹히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를 품었다.
하지만 그런 도일의 기대감은 이어지는 수호의 말에 산산이 부서졌다.
“당신은 밤일 몇 번 했다고 체력이 떨어지는 타입인가 보네요?”
“뭐라고? 야 인마! 내가 얼마나……!”
“둘다 선은 적당히 지켜.”
대화를 듣던 구심이 나서서 둘을 제지했다.
구심의 구두경고에 변명을 하던 도일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망할 놈이! 두고 보자……!’
상대의 나이가 어리기에 도발을 하려던 작전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오히려 도발을 시전했던 도일이 더욱 열이 받은 상황.
수호는 그런 도일의 변화를 감지하고 입꼬리를 올렸다.
[우와~사악한 놈.]
[여기서 반격기를 먹이네.]
[역시 한 번의 삶을 거저 산 게 아니구나?]
‘저런 수준 낮은 도발에 걸릴 정도로 멘탈이 약하진 않습니다.’
수호의 말에 레전드들이 동의하듯 채팅이 빠르게 올라갔다.
그걸 보던 수호는 타격자세를 잡았다.
“후우…….”
깊게 호흡을 뱉은 그의 눈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무표정한 얼굴로 투수 헨드릭을 바라보는 그의 시야에 닿는 모든 것이 어둠으로 물들었다.
평소라면 투수인 헨드릭에게 모든 정신이 집중되었겠지만, 오늘은 조금 달랐다.
‘도일의 호흡이 평소보다 거칠다. 아마 내 말에 흥분해서 그런 거겠지.’
포수인 도일의 상태를 조금 더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그리고 도일이 평소와 다른 상태라는 걸 감지할 수 있었다.
‘흥분한만큼 볼배합이 평소보다 단순해질 가능성이 높다.’
도일의 볼배합은 상당히 좋은 걸로 유명하다.
하지만 흥분한 그라면 평소와 다른 사인을 보낼 가능성이 있었다.
‘그럼 초구가 패스트볼로 들어올 확률이 높겠지.’
생각을 정리한 수호의 집중력이 다시 온전히 헨드릭에게 향했다.
그러자 헨드릭의 움직임이 슬로우모션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와인드업에 이어 킥킹에 들어간 그가 스트라이드를 내디뎠다.
“흡!!”
쐐애애애액-!!
그의 손을 떠난 공이 매서운 속도로 날아들었다.
하지만 그건 일반인들의 시야에서나 그런 것이었다.
수호는 공이 멈춘 것처럼 보였다.
아웃코스 로우를 정확히 찔러오는 공을 확인하고 다리를 내디뎠다.
타닥!
클로즈드 스탠스를 내딛은 그의 히팅포인트가 외곽으로 형성됐다.
그리고 있는 힘껏 배트를 돌렸다.
후웅!!
묵직하게 돌아간 배트가 존을 통과하는 공을 그대로 낚아챘다.
딱!!
-때렸습니다!!
타구는 순식간에 날아 그대로 관중석을 넘어 경기장 밖으로 사라졌다.
-넘어갔습니다!! 초구를 공략해 장외홈런을 만들어내는 한수호 선수!!
-엄청난 홈런을 만들어낸 한수호 선수가 베이스를 질주합니다!!
완벽한 노림수로 홈런을 만들어낸 수호가 2루를 지나 3루를 막 지날 때, 마차도를 지나쳤다.
수호는 베이스를 밟음과 동시에 마차도에게 들릴 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시 원점입니다.”
“이 자식…….”
이제 막 경기가 시작됐다는 걸 알리며 수호가 3루 베이스를 지나 홈플레이트를 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