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후 메이저리거 257화
인터뷰에서 70홈런을 선언했던 이유는 간단했다.
‘반드시 이루겠어.’
스스로에게 압박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실 이 기록을 달성하지 못하더라도 누구 하나 그에게 뭐라 할 사람은 없었다.
69홈런을 기록하더라도 충분히 잘한 기록이었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메이저리그 최다홈런 1위였다.
거기에 상대 투수들이 그와의 승부를 피하기 바빴다.
이런 와중에 이 정도의 홈런을 기록했다는 것만으로도 그의 위대함을 알리기에 충분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수호가 스스로 70홈런을 달성하겠다는 배수의 진을 친 이유는 간단했다.
‘할 수 있을 때 한다.’
레전드들이 항상 하는 이야기였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수호도 같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이번 기회를 놓치게 된다면 2년 연속 70홈런이란 기록을 달성하기 위해선 다시 2년이란 시간이 필요해진다.
‘지금 할 수 있을 때 하는 게 최선이지.’
문제는 로키스의 전략이다.
[승부를 피하면 답이 없지 않냐?]
[딱히 고의사구를 하는 건 아닌데. 승부를 하다가 안 되면 고의사구로 내보내도 된다는 생각으로 공을 던지니.]
로키스의 투수들은 수호와 승부를 하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절대 좋은 공은 주지 않았다.
차라리 고의사구로 내보내는 한이 있더라도 마지막 순간까지 유인구를 던져왔다.
그리고 선구안이 좋은 수호는 그런 공들을 모두 그냥 보냈다.
‘상대가 그런 전략을 써온다면 저도 전략을 조금 바꿔야겠죠.’
[어떻게 바꾸려고?]
‘이제부터는 출루가 아니라 아웃이 되더라도 상대의 공을 때리는 공격적인 스타일로 바꿀 생각입니다.’
그동안에 수호는 출루를 통해 뒤의 동료에게 기회를 이어주는 선택을 내려왔다.
즉, 개인의 기록보다는 팀을 위한 플레이를 더 해왔다는 소리다.
하지만 이미 포스트시즌 진출을 확정 지은 상황에서 굳이 그런 플레이를 이어갈 이유는 없었다.
[정답인 듯.]
[그게 좋겠지.]
레전드들 역시 수호의 생각에 동의하며 그의 플레이 스타일 변화에 찬성했다.
물론 이게 독이 될 수도 있다.
갑작스러운 스타일 변화는 그의 밸런스를 무너뜨릴 수도 있었다.
무엇보다 스트라이크존을 벗어나는 공을 때려내기 위해서는 기존과 다른 스윙 메커니즘을 가져가야 했다.
메커니즘에 변화를 주기 시작하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좋은 감각을 잊어버릴 수 있었다.
‘하지만 이대로 기회를 놓칠 순 없다.’
리스크가 있긴 했지만, 지금은 70홈런 달성을 위해 모험을 할 필요가 있었다.
무엇보다 수호는 작년에도 투수들의 집중견제에 대비해서 행크 애런과 동기화를 했었다.
덕분에 존을 벗어나는 공에도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다.
‘완전히 존에서 벗어난다는 게 조금 다르긴 하지만, 어쨌든 오늘 경기에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걸 쏟아붓자.’
4번의 기회.
그중에 한 번을 잡아야 했다.
* * *
후웅-!!
퍽!!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사…… 삼진입니다! 한수호 선수가 삼진으로 타석에서 물러납니다!
-완전히 존에서 벗어나는 공에 무리하게 배트를 돌리면서 삼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보기 드문 장면이 연출됐다.
수호가 범타가 아닌 삼진으로 타석에서 물러난 것이다.
-올 시즌 한수호 선수가 기록한 삼진을 단 17개에 불과했습니다. 지금 막 18개로 증가하게 되었네요.
-그만큼 삼진을 당하는 횟수가 적었던 한수호 선수를 삼진으로 잡아내다니. 피터 투수의 컨디션이 매우 좋아 보입니다.
더그아웃으로 향하는 피터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그려져 있었다.
‘내가 그 한수호를 삼진으로 잡아냈어!’
한수호가 누구인가?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강한 포식자였다.
2년 연속 정규시즌 MVP가 확실시되는 선수가 바로 그였다.
그런 한수호를 삼진으로 잡아냈다.
그 사실에 피터는 흥분했다.
“아주 좋았어!”
“나이스 볼이었다!”
“오늘 컨디션 좋은데?”
거기에 동료들이 자신을 향해 보내오는 찬사에 피터의 어깨에는 더욱 힘이 들어갔다.
‘오늘 사고 치는 거 아니야?’
그런 자신감은 피터의 피칭에 변화를 주었다.
뻐어어억-!!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삼진입니다! 피터 선수, 오늘 경기 5번째 탈삼진을 잡아내며 2회 역시 무실점으로 이닝을 마감합니다!
-1회에는 한수호 선수를 삼진으로 잡아내더니 2회에는 3명의 타자를 모두 삼진으로 돌려세웠습니다!
2이닝 5탈삼진.
지금까지 이런 페이스를 기록했던 적이 없었던 피터는 더욱 자신의 공에 자신감을 가졌다.
‘오늘 할 수 있다! 사고 칠 수 있다고!’
본인의 공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가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러한 신뢰는 그의 공을 더욱 묵직하게 만들었다.
딱!!
퍽!
“아웃!!”
-3회 세 번째 아웃카운트가 올라갑니다! 오늘 경기 9개의 아웃카운트를 잡는 동안 단 한 명의 주자도 내보내지 않는 완벽투를 선보이는 피터입니다!
-피터 투수가 이렇게 훌륭한 선수였나요? 대단히 좋은 공을 던지고 있습니다!
-한수호 선수를 삼진으로 잡아낸 것이 피터 투수에게 큰 자신감을 준 거 같습니다.
해설위원들도 피터가 왜 이렇게 좋은 공을 던지는지 눈치챌 수 있었다.
그만큼 수호를 삼진으로 잡아낸 것은 피터에게 큰 동기부여가 되었다.
그리고 이런 사실을 수호 역시 잘 알고 있었다.
‘날 삼진으로 잡아내더니 공의 질이 달라졌다.’
[그러게.]
[빠르고 묵직해졌어.]
[무엇보다 스트라이크를 잡으러 들어가는 공에 망설임이 사라졌다.]
[저런 녀석은 꼭 사고를 치는 법이지.]
레전드들 역시 피터의 공을 보고 그가 달라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만약 이대로 놔둔다면 피터는 퍼펙트게임을 달성할지도 몰랐다.
그만큼 오늘 경기에서 그가 던지는 공은 사고를 쳐도 이상할 게 전혀 없었다.
[네가 자신감을 제대로 심어주었네.]
[불타게 만든 게 너였으니, 그걸 끄는 것도 네가 해야 할 일이다.]
레전드들의 말에 동의했다.
피터가 불타오르면서 타자들을 압도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걸 내버려 둘 생각은 없었다.
‘물론이죠.’
자신의 개인적인 기록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도 불타고 있는 피터의 자신감을 꺼줄 필요가 있었다.
* * *
4회 말.
다시 마운드에 오른 피터는 첫 타자인 로버트를 상대로 공격적인 피칭을 이어나갔다.
뻐어억-!!
“스트라이크! 투!!”
-초구 슬라이더에 이어 2구 역시 몸쪽을 강하게 찌르는 포심 패스트볼을 던집니다!
-필리스의 리드오프인 로버트 선수를 상대로도 공격적인 피칭을 이어나가는 피터 선수입니다.
로버트는 3할 3푼의 시즌 타율을 기록했다.
이는 메이저리그 전 구단 1번 타자 중 5위에 해당하는 수치였다.
그만큼 그는 올 시즌 좋은 활약을 펼쳤다.
그런 성적을 거둔 로버트를 상대로도 피터는 자신감을 잃어버리지 않았다.
‘첫 타석에서는 이 정도로 공이 좋지는 않았는데.’
두 번째 타석에 들어선 로버트는 피터의 공이 이전과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젠장…… 수호 녀석이 제대로 녀석을 각성시켰네.’
이해되는 부분이었다.
만약 자신이 투수였고 상대인 수호를 삼진으로 잡아냈다면 자신감은 하늘을 찔렀을 것이다.
문제는 그렇게 찌르는 자신감으로 자신에게 완벽한 공을 던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공격적인 피칭을 해서 공 자체는 단조로워졌는데.’
첫 타석보다 피터의 볼 배합은 단순해졌다.
이건 포수의 변화가 아닌 피터의 고집일 가능성이 컸다.
실제 마운드에서 피터가 고개를 젓는 횟수가 늘어나고 있었다.
‘한 번 공을 빼자.’
‘싫어. 바로 승부를 하겠어.’
이번에도 자신이 직접 사인을 보낸 피터의 모습에 포수인 조니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쩔 수 없지. 지금 흐름이 좋은데. 이 흐름을 깨는 리드를 할 수는 없어.’
조니 역시 피터의 공이 매우 훌륭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순간 가장 필요한 게 바로 흐름이라는 것도 잘 알았다.
그렇기에 피터의 고집을 받아주기로 결정했다.
‘몸쪽 패스트볼.’
‘좋아.’
승부를 보자는 조니의 사인에 피터가 고개를 끄덕이고 곧장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그리고 전력을 다해 공을 뿌렸다.
“흡!!”
쐐애애애액-!!
그의 손을 떠난 공이 로버트의 몸쪽을 강하게 파고들었다.
로버트는 그 공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배트를 돌렸다.
‘2구 연속 몸쪽으로 던지면……! 좋은 먹잇감……!!’
2구 연속 몸쪽으로 들어오는 공이었기에 이번에는 때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공이 마지막 순간 솟아오르는 듯한 착각과 함께 배트가 허공을 갈랐다.
후웅!!
뻐어억!!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삼진입니다! 로버트 선수를 삼진으로 돌려세우는 피터 선수! 환상적인 패스트볼로 필리스의 선봉장을 돌려세웁니다!
로버트는 미트에 꽂힌 공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분명 제대로 때렸다고 생각했는데. 내 생각보다 공이 덜 떨어졌다.’
그만큼 볼 끝이 살아서 들어왔다는 소리였다.
이런 공을 때리는 건 쉽지 않았다.
로버트는 2번 타자인 메이튼에게 그 정보를 전달하고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마침 대기 타석으로 향하는 수호를 발견하고는 볼멘소리를 했다.
“네 덕분에 피터가 제대로 각성했잖아.”
“하하, 공이 많이 좋긴 하지?”
“날 헛스윙으로 만들었으니 당연하지. 하지만…….”
“볼 배합이 단순해졌고요.”
“뭐야? 알고 있었어?”
“더그아웃에 오래 앉아 있어야 하니까.”
“그럼 어떻게 해야 할지도 알고 있겠네. 어쨌든 볼 끝이 좋아서 마지막까지 살아서 들어온다는 것 정도는 참고해.”
로버트의 조언에 고개를 끄덕인 수호가 가볍게 배트를 돌렸다.
‘모든 준비는 끝났다.’
컨디션이 좋은 피터를 상대할 준비가 말이다.
* * *
딱!!
-타구 높게 떠오릅니다! 중견수가 거의 제 자리에서 공을 잡아내며 두 번째 아웃카운트가 올라갑니다!
-4회 두 번째 타자까지 범타로 돌려세우면서 지금까지 단 한 명의 타자도 1루 베이스를 밟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말 이러다가 오늘 사고를 치는 게 아닐까 싶네요.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가장 큰 산을 넘어야 합니다.
카메라가 타석으로 들어서는 선수를 비추었다.
-한수호 선수가 피터 선수의 완벽한 투구를 막기 위해 두 번째 타석에 들어섰습니다!
타석에 선 수호가 배터박스를 정돈하더니 이내 배트를 들어 올렸다.
-아아-! 한수호 선수가 예고 홈런을 선언합니다!!
-역시 한수호 선수! 상대 투수가 얼마나 컨디션이 좋든지 자신의 페이스대로 경기를 끌어갑니다!
평소의 피터였다면 이런 수호의 도발에 별로 신경 쓰지 않았을 거다.
그만큼 격차가 나는 선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첫 타석에서 나에게 삼진을 당했으면서…… 예고 홈런을 한다고?’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는 피터의 자존심에 스크래치를 내기 충분했다.
반면 포수 조니는 그런 수호를 경계했다.
‘이 녀석이 예고 홈런을 선언하면 반드시 이루고 말았어. 조심해야 해.’
하지만 피터의 눈은 불에 타오르고 있었다.
반드시 수호를 삼진으로 잡겠다는 의지가 불타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초구부터 자신이 직접 사인을 보냈다.
‘승부 하겠어.’
그의 고집에 조니는 고민하다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인을 교환한 로키스의 배터리! 과연 피터 투수가 어떤 공을 던질지! 와인드업에 이어 1구를 던집니다!!
와인드업에 들어간 피터가 전력을 다해 공을 뿌렸다.
‘이번에도 널 잡아내겠어!!’
타닥!!
“흡!!”
쐐애애애액-!!
그의 손을 떠난 공이 수호의 몸쪽을 강하게 파고들었다.
오늘 경기 그가 던진 최고의 공이었다.
하지만 코스가 너무 단조로웠다.
무엇보다 수호는 이 공을 노리고 있었다.
타닥!!
정확히 노리고 있던 수호의 배트가 매섭게 돌아갔다.
후웅!!
먹잇감을 노리고 돌아간 그의 배트가 그대로 공을 낚아챘다.
딱!!
-때렸습니다!!
경쾌한 소리와 함께 끝까지 돌아간 배트가 등을 때리고 나오자 수호는 그대로 배트를 던졌다.
휘릭!!
-그리고 배트를 던진 한수호 선수!! 타구는 좌측 담장…… 좌측 담장…… 좌측 담장을……!!
카메라가 왼쪽 펜스를 넘어가는 타구를 비추었다.
-넘겼습니다!! 시즌 70번째 홈런을 달성하는 한수호 선수입니다!!
2년 연속 70홈런이라는 대업을 기록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