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후 메이저리거 235화
애런 저지가 메이저리그를 대표한다는 건 반론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었다.
신인 시절 최다홈런을 시작으로 2022시즌에는 내츄럴로 63개의 홈런을 때려내며 현대야구 최초의 60홈런을 넘어섰다.
그리고 작년 시즌, 수호와 함께 70홈런이란 고지를 넘어 배리 본즈의 기록을 갈아치운 그는 미국 내에서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물론 수호에게 최종적으로 패하긴 했지만, 그게 그의 상품성을 훼손시킬 순 없었다.
오히려 수호가 활약을 이어갈수록 그와 비등한 승부를 펼친 애런 저지의 가치도 같이 높아지고 있었다.
-인터뷰에서 애런 저지는 미국에서 개최하는 대회이니만큼 반드시 우승하겠다고 밝히지 않았습니까?
-맞습니다. 애런 저지만이 아니라 미국 대표팀은 미국에서 개최하는 대회이니만큼 반드시 우승하겠다는 의지가 강합니다.
미국은 본래 애국심이 강한 나라로 유명했다.
어릴 때부터 나라에 봉사하는 군인들에 대한 교육을 받기에 더욱 그러한 부분들이 강조됐다.
메이저리거들이 이번 올림픽에 열정적으로 임하는 이유였다.
“네가 다시 마스크를 써서 그런지 우리 애들이 제법 고생하네.”
타석에 들어선 저지의 말에 수호가 웃으며 마스크를 썼다.
“최고의 칭찬이네.”
“하지만 나한테는 통하지 않는다.”
타격자세를 잡는 그를 보며 수호가 정면으로 시선을 옮겼다.
‘확실히 그렇겠네. 나한테까지 집중력이 느껴질 정도로 경기에 집중하고 있다.’
[평소보다 집중력이 높은 거 같은데.]
[이런 녀석이 미국을 대표하다니. 크으-! 역시 우리 미국이다.]
레전드들 역시 대부분은 미국인이다.
당연히 조국에 대한 애정이 깊었다.
그렇기에 무작정 수호를 응원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어디까지나 중립의 입장에서 경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바깥쪽 낮은 코스.’
수호의 사인에 고개를 끄덕인 한성태가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상대는 현존 최강의 타자다. 내 모든 걸 처음부터 걸어야 해.’
애런 저지가 얼마나 괴물인지는 모든 사람이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선수를 상대로 힘을 아끼고 있을 이유는 없었다.
‘어차피 오늘 경기에서 긴 이닝을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
팀 내에는 훌륭한 투수들이 많이 있었다.
자신의 체력이 일찍 떨어지더라도 뒤를 맡아줄 선수들은 얼마든지 있었다.
‘전력으로 간다.’
집중력을 끌어올린 그가 뒤이어 킥킹에 들어갔다.
촤앗-!!
발을 차올린 그가 힘을 축적한 상태로 무게 중심을 앞으로 옮겼다.
콰직!!
뒤이어 스트라이드를 내디딘 한성태가 몸을 빠르게 회전시켰다.
휘릭!!
모든 힘을 끌어올려 손끝에 집중시킨 그가 그대로 공의 실밥을 긁었다.
촤아앗-!!
“흡!!”
쐐애애애액-!!
단말마의 기합과 함께 쏘아져 나간 공이 수호가 원하는 코스로 정확히 날아 들어갔다.
그 순간이었다.
후웅!!
수호의 눈앞으로 거대한 그림자가 지나갔다.
그리고 그 그림자는 홈플레이트 위를 통과하려는 공을 그대로 집어삼켰다.
딱!!
-때렸습니다!!
경쾌한 타격 소리와 함께 날아가는 타구와 그것을 바라보며 배트를 던지는 애런 저지가 보였다.
“넘어갔다.”
타석에서 타구를 예측한 저지의 말에 수호 역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넘어갔네.’
거의 동시에 타구가 펜스를 넘어 관중석에 떨어졌다.
-넘어갔습니다!! 애런 저지의 벼락같은 홈런이 터집니다!!
선취점을 올린 애런 저지가 베이스를 돌아 다시 홈으로 돌아왔다.
“결승으로 가는 건 우리 미국이다.”
홈플레이트를 밟으며 선언하는 저지의 말에 수호가 마스크를 벗으며 대답했다.
“그럴 수 있을까?”
“뭐?”
“다음 이닝에 두고 보자고. 지금 점수가 어떻게 되는지 말이야.”
지지 않고 답하는 수호를 보며 애런 저지가 더그아웃으로 들어갔다.
‘저지의 홈런은 어느 정도 예상했다. 다행스러운 건 앞에 주자를 내보내지 않았단 점이야.’
한성태가 저지를 잡지 못할 거라는 건 어느 정도 예상했다.
분명 좋은 공을 던지는 한성태였지만, 애런 저지는 메이저리거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실력을 지닌 선수였다.
아무리 한성태라 하지만, 그런 그를 온전히 상대할 수 있을 거란 기대는 할 수 없었다.
‘그래도 1점으로 막은 건 충분히 잘한 거야.’
다득점을 준 게 아니었기에 경기의 흐름을 내준 건 아니다.
한성태는 본인의 역할을 충분히 해줬다고 할 수 있었다.
‘중요한 건 따라가는 점수를 빠르게 내는 거지.’
이번 이닝을 여기에서 마감하는 게 가장 중요했다.
수호는 다시 정신을 집중하고 한성태를 리드하기 시작했다.
* * *
스코어 1 대 0.
애런 저지에게 불의의 일격을 당했지만, 한성태는 거기에서 더 흔들리지 않았다.
[좋은 투수네.]
요기 베라의 말대로였다.
한성태는 분명 뛰어난 투수였다.
구위도 좋았지만, 가장 뛰어난 건 멘탈이었다.
점수를 내주더라도 금세 자신의 공을 던져 후속 타자들을 돌려세울 수 있었다.
오늘 역시 한성태는 홈런을 맞은 직후, 타자들을 돌려세워 이닝을 마감했다.
‘1점만 내주었으니 다행이죠. 더 점수 차가 벌어졌다면 초반의 흐름이 완전히 넘어갈 수 있었어요.’
[1점으로 지켰으니 1회 말이 중요하겠네.]
[미국의 선발투수는 라이언이네.]
라이언은 신시내티 레즈의 에이스 투수다.
아직 27살의 젊은 나이인 그는 메이저리그 4년 차를 맞이했다.
작년 시즌은 부상으로 중간이탈했지만, 올 시즌에는 전반기에만 12승 1패 평균자책점 2.54를 기록하면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올 시즌 가장 유력한 사이영상 후보자 중 한 명이었다.
‘원래 포텐셜을 대단했던 선수였는데. 올 시즌 마치 각성한 것처럼 엄청난 활약을 보여주고 있는 녀석이죠.’
[재능 하나는 충분하지.]
[부상으로 쉬었던 게 오히려 녀석에게는 득이 되었어.]
메이저리거들이 1년에 치르는 스케줄은 가혹하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힘들었다.
특히 선발투수들의 부담은 나날이 높아지고 있었다.
평균구속이 올라가면서 그런 부담은 더욱 커지고 있었다.
당연히 휴식시간이 더욱 길게 필요했다.
하지만 리그가 진행되는 도중에는 쉴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부상과 피로가 축적되는 일이 잦았다.
라이언 역시 그러한 선수였다.
하지만 부상으로 반년가량 쉬게 되면서 그러한 피로가 모두 날아갔다.
즉, 온전한 몸 상태로 맞이한 시즌이란 소리였다.
‘휴식으로 완벽한 몸 상태를 만든 덕분에 지금의 성적을 낼 수 있게 되었단 뜻이군요.’
[ㅇㅇ 정확히는 포텐셜이 터졌단 소리지.]
[원래 재능은 많았지만, 몸 상태가 그걸 뒷받침하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부상으로 휴식하면서 제대로 치유했나 보네.]
백 퍼센트 몸 상태를 얻게 된 라이언의 투구는 환상적이었다.
뻐어억-!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차우식 선수가 삼구삼진으로 돌아섭니다!
-라이언의 공이 정말 무시무시하네요.
-최고구속 158㎞까지 찍히면서 1회지만, 강속구로 차우식 선수를 찍어 눌렀습니다!
선두타자인 차우식이 돌아서고 두 번째 타자인 이성훈이 타석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대기타석에 들어선 수호는 집중해서 라이언의 투구를 관찰했다.
‘라이언의 딜리버리 동작이나 디셉션 모두 훌륭하다. 하지만 변화구와 패스트볼의 디셉션에 차이가 있어.’
이는 대부분의 투수가 가지고 있는 차이였다.
물론 이 차이가 거의 구별되지 않는 투수들도 있었다.
이런 선수들의 디셉션은 매우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과거 팀 린스컴이 이러한 유형의 투수였다.
그리고 현대야구에서 이름을 알리고 있는 투수들 역시 디셉션이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라이언은 명백한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뻐어억-!!
“스트라이크!”
그리고 이러한 데이터는 보면 볼수록 수호에게 쌓여 나갔다.
수호가 영역으로 들어가 발휘하는 통찰력은 이런 데이터를 기반으로 더욱 정확도를 높여간다.
그렇기에 수호는 대기타석에서부터 투수의 동작 하나하나를 집중해서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이성훈 역시 마찬가지였다.
‘확실히 커브를 던질 때와 패스트볼의 디셉션에 차이가 있다. 공을 끌고 오는 딜리버리 동작도 미세하게 차이가 있는 거 같고.’
이성훈은 천재라는 수식어가 걸맞은 선수였다.
수호만큼은 아니었지만, 투수가 던지는 모습을 보고 통찰력을 발휘하는 정도의 레벨은 충분했다.
오늘 경기에서도 그러한 모습은 잘 드러났다.
쐐애애액-!!
-2구 던졌습니다!
라이언이 던진 2구가 이성훈의 몸쪽을 파고들었다.
100마일에 근접하는 강속구였다.
테일링이 심하게 흔들리는 공이었지만, 이성훈은 주저 없이 배트를 돌렸다.
후웅!!
그의 배트가 간결한 궤적을 그리며 공을 낚아챘다.
딱!!
-때렸습니다!!
마지막 순간 공이 변화하며 스윗스팟을 벗어났다.
하지만 이성훈은 마지막까지 스윙을 가져가면서 타구를 날려 보냈다.
-유격수 키를 넘기는 안타! 안타를 만들어내는 이성훈 선수!!
-아주 좋은 스윙으로 안타를 만들어내면서 한수호 선수의 앞에 주자가 나갑니다!
-역시 천재 이성훈! 최근 페이스가 좋은 라이언의 공을 아주 잘 때려냈어요!
1루에 도착한 이성훈이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며 세리머니를 이어나갔다.
그 모습을 보며 타석에 들어선 수호가 가볍게 배트를 돌렸다.
“네 앞에서 웬만하면 주자를 내보낼 생각이 없었는데 말이야. 이성훈은 역시 쉽게 상대할 수 있는 녀석이 아니야.”
미국대표팀의 마스크를 쓴 러치맨의 말에 수호가 피식 웃었다.
“한국에는 나 말고도 경계해야 할 선수들이 많아.”
“물론 알고 있지. 하지만 너만큼 경계해야 할 대상은 없어서 말이야.”
“그래서 날 내보낼 생각이야?”
수호는 미국의 작전을 알아볼 생각으로 러치맨을 떠봤다.
그러한 의도를 모를 리 없었던 러치맨이 마스크를 쓰며 말했다.
“그것도 하나의 작전이라면 작전이지.”
자리에 앉는 그를 보며 수호가 라이언을 바라봤다.
‘능구렁이가 다 됐다니까. 일단 초구를 봐야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 알 수 있겠네.’
4강이다.
이제 한 번만 이기면 결승까지 나아갈 수 있는 상황.
비록 비난이 있긴 하겠지만, 수호를 고의사구로 내보내는 것도 미국의 옵션 중 하나일 것이다.
물론 그런 작전으로 갈 경우 수호에게도 생각이 있었다.
‘고의사구로 내보낸다면 초반부터 달린다.’
바로 자신의 발을 백 퍼센트 활용할 생각이었다.
물론 그건 미국 대표팀이 어떻게 할 것이냐에 따라 결정될 일이었다.
-1사 1루의 찬스에서 미국대표팀의 라이언 투수가 사인을 교환하고 1구를 던집니다!
-한수호 선수와 승부를 할지 궁금하네요.
라이언이 슬라이드 스텝을 밟고 강하게 공을 뿌렸다.
“흡!!”
쐐애애애액-!!
뻐어억!!
“스트라이크!!”
-초구 몸쪽을 강하게 찌르는 스트라이크! 라이언 투수의 공이 보더라인 안쪽으로 들어옵니다!
-아무래도 미국 대표팀이 한수호 선수와 승부를 하는 걸로 결정한 거 같습니다.
공을 라이언에게 돌려준 러치맨이 다시 캐처박스에 앉으며 말했다.
“네가 아무리 뛰어난 선수라 해도 우린 미국 올스타다. 너와의 승부를 피할 생각은 없어.”
미국 대표팀은 야구에 대한 엄청난 프라이드를 가지고 있었다.
제아무리 수호가 메이저리그에서 엄청난 활약을 펼치고 있다 하더라도 그와의 승부를 피할 생각이 없었다.
그건 그들의 프라이드가 꺾이는 일과 같았다.
“그렇단 말이지.”
정면승부를 하겠다는 그들의 의지를 확인한 수호의 눈이 빛났다.
“그럼 나도 전력으로 상대해 주지.”
집중력을 끌어올린 그가 영역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