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후 메이저리거 233화
캐나다의 머시 감독은 머리가 아파 왔다.
‘홈런이 무서워서 고의사구로 내보냈더니. 이번에는 발로 점수를 만들어낸다고? 그것도 다이렉트 홈스틸로?’
수호가 발이 빠른 선수라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대회에서 그는 달리지 않았다.
그래서 체력안배를 위해 달리는 걸 자제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출루를 시켜도 무섭지 않다고 착각했다.
그건 말 그대로 착각에 불과했다.
‘녀석을 내보내는 거 자체가 엄청난 리스크를 만드는 거였다.’
한수호라는 선수를 봉쇄하기 위한 작전은 실패로 돌아갔다.
고의사구는 그를 묶어둘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날개를 달아주는 행동에 불과했다.
‘고의사구를 버려야 한다.’
머시 감독은 자신의 실책을 깨달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1점만 주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것 역시 머시 감독의 착각이었다.
딱!!
-때렸습니다!! 한복판에 들어오는 공을 때려낸 최영석 선수! 중견수 앞에 떨어지는 안타를 만들어냅니다!
“저런……!”
지금껏 공에 배트를 대지 못하던 최영석이 안타를 때려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한수호 선수의 홈스틸 때문일까요? 제구가 흔들리기 시작한 밀러 투수입니다.
-공의 구속도 155㎞까지 떨어졌습니다. 심리적인 타격이 상당한 거 같습니다.
-155㎞도 분명 빠른 공이지만, 스트라이크존의 한복판에 들어온다면 충분히 공략할 수 있습니다.
수호의 홈스틸은 단순히 1점을 올리는 이상의 효과를 냈다.
마운드를 지키고 있는 투수인 밀러의 멘탈을 제대로 흔들어놓은 것이다.
머시 감독은 바빠질 수밖에 없었다.
“지금 불펜에 준비된 녀석이 있나?”
“확인해 보겠습니다.”
밀러를 등판시키고 1회도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그를 교체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머시 감독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추가 점수를 더 줄 수는 없다.’
여기에서 점수를 더 내준다면 오늘 경기를 내줄 가능성이 컸다.
어떻게든 한국대표팀의 기세를 잠재울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그가 준비를 끝내기 전에 한국대표팀이 불의의 일격을 날렸다.
딱!!
-때렸습니다!!
타석에 들어선 김대웅의 배트가 초구부터 매섭게 돌아갔다.
그리고 날아가는 타구를 바라보며 김대웅이 배트를 던졌다.
-배트를 던진 김대웅!! 그리고 이번 타구는 우측 담장…… 우측 담장…… 우측 담장을 그대로 넘어갑니다!! 투런포를 작렬시키는 김대웅!!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던 김대웅의 한 방이 터지면서 경기가 급격하게 기울었다.
* * *
뻐어어억-!!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삼진입니다!! 정승우 선수가 마지막 아웃 카운트를 올리면서 한국이 강적 캐나다를 누르고 4강 진출에 성공합니다!!
한국이 4강 진출에 성공했다.
카메라에 잡히는 한국 선수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지금 이 순간의 기쁨을 표출했다.
수호 역시 동료들과 함께 하이파이브를 하며 4강 진출을 자축했다.
“고생했다.”
“형도 수고하셨습니다.”
“이야~ 진짜 캐나다 애들이 널 고의사구로 내보낼 때는 어려운 경기가 될 거라 생각했는데. 어떻게 다이렉트 홈스틸을 노릴 생각을 하냐?”
“타이밍이 보였으니까요. 그리고 메이저리그에서 뛸 때도 이런 일이 자주 있었습니다.”
“하긴 그쪽의 견제가 더 심했겠네.”
정말 장난 아니었다.
메이저리그는 수호를 피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 동원했었다.
그래서 수호는 자신만의 파훼법을 만들어야 했다.
그 방법이 바로 도루라는 수단이었고 말이다.
“어쨌든 오늘 경기도 네가 수훈 선수인가 보다.”
차우식이 한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자 PD가 다가오는 게 보였다.
“한수호 선수, 인터뷰 준비해 주세요.”
“예.”
그날 경기의 수훈 선수는 경기 후 인터뷰를 통해 간단하게 소감을 밝힌다.
수호는 예선부터 단골 수훈 선수로서 카메라 앞에 섰었다.
덕분에 인터뷰를 진행하는 김지연 아나운서와 제법 친해졌다.
“오늘 경기 수고하셨어요!”
단발머리에 새하얀 피부가 인상적인 김지연 아나운서의 축하에 수호가 고개를 살짝 숙였다.
“감사합니다.”
“자, 바로 들어갈게요.”
인사를 나누는 사이 카메라 뒤에 서있던 PD가 수신호를 보냈다.
곧이어 카메라가 돌기 시작하고 아나운서가 수호에게 축하의 인사를 건넸다.
“한수호 선수 오늘 경기에서도 홈런은 물론이거니와 홈스틸까지 달성했는데요. 홈스틸에 대해 먼저 물어보고 싶어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나요?”
“이번 대회에서 저는 도루를 극도로 자제했습니다. 작년 메이저리그에서 뛸 때 상대들이 제 홈런을 경계하고 또 그걸 막기 위해 고의사구로 절 내보내는 걸 보고 이번 대회에서도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봤습니다.”
“와…… 그럼 캐나다가 고의사구를 할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도루를 일부러 시도하지 않으셨다는 말인가요?”
“예. 상대 쪽에서 고의사구 작전으로 나온다면 거기에서 허를 찌를 생각이었습니다.”
수호의 인터뷰는 큰 화제가 되었다.
-한수호 인터뷰 봤음?
-ㅇㅇ 와…… 저게 21살짜리가 생각할 수 있는 거냐?
-뭐라 그랬는데?
-상대팀이 고의사구로 내보낼 수 있기 때문에 도루를 자제했다던데?
-헐…… 그럼 비장의 한수호 준비했다는 거임?
-ㅇㅇ 그렇다네.
-21살짜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게 아닌데?
-양대호 감독이 그렇게 지시한 게 아닐까?
-그럴 가능성이 높을 듯.
-양 감독이 이런 작전 하나는 잘 하지.
사람들은 양대호 감독이 수호에게 그런 지시를 내렸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러한 오해는 그날 저녁 양대호 감독의 인터뷰로 인해 풀렸다.
[양대호 감독, 한수호에게 특별한 지시를 내린 적이 없다고 밝혀!]
[양대호 감독은 한수호 선수에게 도루를 숨기라는 등과 같은 지시를 한 적이 없다.
선수가 스스로 생각해서 그렇게 행동했을 뿐이다. 라고 밝히며 일각에서 거론된 자신의 숨은 작전이 아니라 한수호 선수의 의도적인 작전이었음을 공식화했다.]
[양대호 감독은 자신이 지시한 건 한수호 선수에게 내린 그린라이트였을 뿐이라고 밝히다.]
양대호 감독의 인터뷰는 수호를 향한 팬들의 반응을 더욱 뜨겁게 만들었다.
-이야…… 한수호 정말 난 놈이네.
-21살의 나이에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니. 대단하다.
-양대호 감독도 수호에게 그린라이트 부여한 건 잘했네.
-명장 소리를 괜히 듣는 게 아닌 듯.
-선수의 특징을 잘 파악하고 있으니 그린라이트도 부여할 수 있었지.
-수호도 쩔고 양대호 감독도 쩔었다.
팬들은 두 사람에게 모두 박수를 보냈다.
그리고 이러는 사이 미국과 일본의 경기도 마무리로 접어들었다.
뻐어억-!!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삼진입니다! 미국대표팀이 4강에 진출합니다!!
미국은 스코어 11 대 4라는 압도적인 전력으로 4강 진출에 성공했다.
[한국대표팀 4강에서 우승 후보 미국을 상대한다!]
그리고 미국의 진출로 한국과 미국의 대결이 결정됐다.
반대편에서는 일본이 4강 진출에 성공하면서 한국이 미국을 누르게 된다면 결승전에서 한일전이 펼쳐질 가능성이 열렸다.
[우승까지 앞으로 단 2경기!]
국민의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 * *
한국대표팀의 활약은 전 국민의 관심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야구 꿀잼이네.
-역시 이겨야 볼 마음이 생긴다니까.
-수호가 고의사구로 나갈 때는 진짜 여기까진가 했었다.
-김대웅도 한 방을 날린 게 절묘했지.
-진짜 ㅋㅋ 김대웅 가닥이 죽지는 않는구나.
-노장은 죽지 않는다. 단지 사라질 뿐.
-베테랑의 힘이었지.
-이번 대표팀 신구조합이 잘 이루어지는 거 같지 않음?
-ㅇㅈ. 수호와 임광호 정승우 같은 신인 애들이 한 자리 차지한 것도 좋고 김대웅이나 임민태 같은 베테랑이 딱 무게를 잡아주니 보기 좋더라.
-이게 진짜 대표팀이지.
대표팀에 대한 국민의 불만은 어느덧 사라졌다.
불과 반년 전만 하더라도 국민들은 대표팀에 큰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대회에서는 새로운 얼굴이 대거 투입되었고 또 그들이 좋은 활약을 펼치면서 국민들에게 인정받고 있었다.
그들이 성적을 내기 시작하자 올림픽 초반에 있었던 불미스러운 이야기는 사라진지 오래였다.
그래서 한국에 뜬 하나의 기사는 대중의 관심을 크게 끌지 못했다.
[전 야구선수 박세준 검찰에서 폭력혐의로 3년 구형!]
박세준은 결국 법의 처벌을 받게 되었다.
그가 외치던 국가대표의 비리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사라진지 오래였다.
의혹을 받던 선수들이 모두 좋은 활약을 펼친 덕분이었다.
그리고 이런 결과는 대표팀 내부에서도 좋은 분위기를 형성하게 만들었다.
“수호야, 미국 대표팀에서 특히 조심해야 할 선수가 누가 있을까?”
어느덧 대표팀에 녹아든 수호에게 정승우가 물었다.
그의 질문에 다른 투수들도 귀를 기울였다.
“일단 가장 조심해야 하는 건 애런 저지입니다. 그 녀석은 정말 괴물이에요.”
“하긴…… 괴물이긴 하더라.”
“이번 대회에서도 벌써 홈런 5개던데.”
“장타율도 8할에 달하고.”
“뭐, 쳤다하면 대부분 외야까지 날아가니까.”
미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선수는 역시 애런 저지였다.
작년 시즌 수호와 함께 메이저리그의 새로운 역사를 쓴 그를 조심해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바비 위트 주니어 역시 조심해야 합니다. 녀석의 주루플레이는 거의 저와 비슷한 수준이에요.”
바비 위트 주니어.
그 역시 작년 수호와 도루 부문에서 박빙의 승부를 펼쳤던 선수였다.
만약 부상이 아니었다면 바비 위트 주니어가 최다도루 타이틀을 가져갔을 가능성이 컸다.
“그리고 마이크 트라웃 역시 노장이지만, 여전히 한 방을 가지고 있는 선수죠.”
메이저리그의 전설인 마이크 트라웃.
이번 대회가 마지막 대표팀이란 것을 공표한 그는 우승에 대한 열망을 감추지 않고 있었다.
“무엇보다 미국대표팀은 자국에서 열리는 대회이니만큼 우승에 대한 동기부여가 강한 상태입니다.”
“하긴…… 홈그라운드에서 열리는 대회, 거기에 종주국인 미국이니 반드시 이기고 싶겠지.”
“어우…… 그렇게 의욕이 충만한 녀석들과 싸울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머리가 아프네.”
그때 투수조에서 가장 베테랑인 임민태가 나서면서 말했다.
“분명 미국대표팀이 가진 우승에 대한 열망은 그 어느 때보다 높을 거다. 하지만 그건 우리 역시 마찬가지일 거야.”
선수들이 그를 바라봤다.
“그동안 우리는 국제대회에서 이렇다할 성적을 내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에 그 기회를 얻어냈어. 이번 기회를 살려야 한다.”
“민태의 말이 맞다.”
이번에는 김대웅이었다.
그는 야수조에서 가장 베테랑인 선수였다.
“미국대표팀의 네임밸류는 한 명, 한 명이 모두 대단하다. 하지만 우리는 그보다 더 높은 네임밸류를 가진 선수와 함께 경기에 뛰는 것이다.”
선수들의 시선이 수호에게 향했다.
“그러네.”
“현재 모든 메이저리거 중에서 가장 네임밸류가 높은 건 수호지.”
“애런 저지도 대단하지만, 수호는 그런 애런 저지를 누르고 최다홈런을 차지했잖아.”
“바비 위트 주니어도 빠르지만, 최다도루 타이틀을 얻은 건 수호였고.”
“무려 8관왕을 차지한 선수인데, 당연하지.”
“이런 녀석과 함께 뛴다면 미국도 무섭지 않지!”
수호의 존재만으로도 대표팀의 사기가 올라갔다.
“이제 단 두 번만 이기면 우리는 금메달을 손에 넣는다.”
“예!”
“반드시 우승하자!!”
“알겠습니다!!”
한국대표팀의 기세가 그 어느 때보다 높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