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후 메이저리거 232화
수호가 타석에 들어서자 머시 감독이 더그아웃을 나왔다.
그러자 구심이 곧장 1루를 손으로 가리켰고 수호는 장비를 벗기 시작했다.
-2연타석 연속 고의사구로 출루하는 한수호 선수입니다.
-캐나다가 한수호 선수를 봉쇄하기 위해서 자존심을 버렸네요.
-1사 1루의 찬스를 맞이하는 한국 대표팀! 여기에서 캐나다를 향해 일격을 날려야 합니다!!
해설진이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팬들은 알고 있었다.
-아무래도 한국은 8강까지 끝인 듯.
-수호를 막아버리면 할 수 있는 게 없지.
-캐나다가 한국의 약점을 정확히 잡아냈네.
-하…… 이렇게 올림픽도 막을 내리냐?
-다른 애들이 수준 조금만 높았어도……
한국과 캐나다.
과거에는 비등한 대결 구도를 형성했던 두 나라였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캐나다는 미국과 근접한 환경 덕분에 메이저리그의 시스템을 빠르게 접한다.
거기에 피지컬 역시 그들과 비슷한 데다가 최근에는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선수들이 다수 포진했다.
덕분에 제2의 미국이라 불릴 정도의 전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반면 한국은 전력이 나날이 떨어졌다.
덕분에 수호가 없는 상황에선 제대로 상대가 되지 않았다.
-타석에 들어서는 최영석 선수, 여기에서 한 방을 날려 캐나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동감입니다.
캐나다의 작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기에 해설진은 타석에 선 최영석을 열성적으로 응원했다.
하지만 응원한다고 모든 이가 잘 때릴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뻐어억-!!
“스트라이크!”
-초구 바깥쪽 낮은 코스에 잘 제구된 공을 그냥 보내는 최영석 선수.
-바뀐 투수인 밀러 선수의 구속도 100마일이 나오면서 타자들 입장에선 머리가 아플 거 같습니다.
캐나다의 마운드는 바뀌었다.
조나단이 3실점을 하긴 했지만, 이후에는 모든 타자를 돌려세우면서 본인의 역할을 충분히 해냈다.
이후 마운드에 오른 밀러 역시 강속구를 주무기로 삼는 투수였다.
이로써 머시 감독이 노리는 게 무엇인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한국 타자들이 강속구에 약하다는 걸 정확히 노리고 있네요.’
[ㅇㅇ 그런 듯.]
[확실히 강속구에 약한 면모가 있지.]
[그나마 때리는 애들이 이성훈이나 차우식 정도 아니냐.]
맞는 말이다.
최영석이나 이후 나올 김대웅 역시 저 강속구를 공략하기 어려울 거다.
결국, 다른 방향으로 활로를 뚫어야 한다는 소리다.
“후우…….”
수호는 그 활로를 이미 생각해 두고 있었다.
이번 대회 앞서 수호는 감독에게 그린라이트를 부여받은 상태였다.
작년 시즌 50-50이라는 전 세계 야구 역사상 유일한 기록을 세웠던 수호이기에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번 대회에서 아직 달리지 않았다.
상황이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1루에 출루를 하면 앞에 주자가 있는 경우가 있었다.
아니면 홈런으로 바로 홈을 밟았기에 굳이 달릴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루상에 주자는 나 하나밖에 없고 유일하게 걸리는 점이라면 밀러가 왼손 투수라는 점이네.’
밀러는 좌완이었다.
즉, 공을 던지기 전에 수호를 정면으로 볼 수 있다는 의미였다.
정확한 타이밍을 잡아내는 게 쉽지 않았다.
[그게 문제 됨?]
해밀턴의 채팅에 수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문제없죠.’
일반적인 경우 1루 주자가 좌완을 상대로 도루를 뺏는 건 무척이나 어렵다.
아무래도 스타트가 우완을 상대로 하는 것보다 느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보통 선수의 이야기였다.
작년 시즌 수호가 기록한 50개의 도루 중 20개는 좌완을 상대로 뺏었다.
‘굳이 리드폭을 크게 가져갈 필요는 없다. 평소대로 움직여서 상대의 경계를 풀어둘 필요가 있어.’
도루에서 가장 중요한 건 투수의 타이밍을 뺏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에 대한 경계심을 떨어트릴 필요가 있다.’
수호는 이번 대회에서 달리는 모습을 자주 보이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이럴 순간이 올 수도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수호가 이번 대회에서 도루가 제로인 이유는 그럴 기회가 없던 게 첫 번째였다.
하지만 일부러 그런 부분도 없지 않아 있었다.
그 이유는 바로 이런 순간을 위해서였다.
‘도루를 기록하지 않으면 결국 사람들의 뇌리에서도 내가 도루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게 되지.’
[아무래도 인식이 흐려질 수밖에 없지.]
[넌 안전한 주자라고 생각하는 경향도 늘어날 테고 말이야.]
[그리고 이런 순간에 달리는 게 가장 효율이 좋지.]
레전드들의 조언을 들으며 수호가 무게중심을 낮추었다.
그런 수호를 바라보던 밀러는 이내 신경을 껐다.
‘좌완인 내 신경을 끌려고 별짓을 다 하는군. 어차피 달리지 않을 걸 알고 있어.’
좌완이기에 생길 수 있는 자존심이었다.
하지만 그건 자만에 가까웠다.
그리고 수호는 밀러가 가진 자만을 놓치지 않았다.
‘무게중심이 앞으로 향한다.’
영역에 들어간 수호의 눈에 밀러의 몸이 앞으로 쏠리는 게 보였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수호의 발이 지면을 박찼다.
타닥!!
-한수호 선수 뛰었습니다!!
스타트는 완벽했다.
밀러의 무게중심이 앞으로 쏠렸기에 1루에 공을 던지는 건 무리였다.
그렇게 스타트를 건 수호는 자세를 최대한 낮추어 저항을 최소한으로 만들었다.
‘보폭은 최대한 짧게.’
도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건 가속도를 내는 것이다.
짧은 거리를 전력으로 달리는 것이기에 얼마나 빠르게 가속도를 내느냐에 따라 도루의 성공유무가 갈린다.
가속도를 빠르게 붙이기 위해서는 보폭을 짧게 하는 방법이 가장 유용했다.
메이저리그 초기 최고의 대도로 불렸던 빌리 해밀턴이 이런 방식을 애용했다.
‘슬라이딩은 낮게!’
2루 베이스를 사정거리에 둔 순간, 수호가 지면을 박차서 몸을 날렸다.
거구의 몸이 거의 지면에 닿을 정도로 날아 미끄러지듯 베이스를 향해 나아갔다.
촤아아앗-!!
퍽!!
“세이프!!”
-세이프입니다! 한수호 선수의 허를 찌르는 도루로 2루 베이스를 훔칩니다!!
-이야~ 한수호 선수가 이번 대회 단 한 개의 도루 시도조차 없었는데, 중요한 순간에 도루를 성공해 냅니다!
-캐나다의 밀러 투수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도루에 허를 제대로 찔렸어요!
수호의 도루 성공은 한국대표팀의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이거 하나로 경기의 양상이 바뀌는 건 아니었다.
-올~ 수호 간만에 뛰었네.
-이번 대회 처음인 듯.
-저 거구로도 잘 뛰네.
-하지만 경기 양상에는 큰 차이가 없을 듯.
-그건 ㅇㅈ
-득점권을 가면 뭐 하냐. 점수를 내지 못하는데.
2루까지 진루에 성공한 수호지만, 문제는 홈으로 들어오는 게 힘들다는 점이다.
그걸 알기에 밀러 역시 크게 흔들리진 않았다.
‘1루에 있으나 2루에 있으나 그게 그거지.’
물론 그의 생각도 맞았다.
그리고 그러한 사실을 수호 역시 잘 알고 있었다.
‘득점권이지만, 2루에 있는 건 점수를 내는 데 있어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결국 3루까지 달려야 한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었다.
‘다행스러운 점은 밀러가 날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2루 도루에 성공했지만, 밀러는 수호를 크게 견제하지 않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1루에서 2루를 가는 것보다 2루에서 3루를 가는 게 더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러한 기본적인 상식은 수호를 조금 더 자유롭게 만들었다.
-한수호 선수의 센스있는 주루플레이로 득점권에 주자가 나갔습니다.
-이 기회를 반드시 살려서 추가득점을 내야 합니다.
지금이 절호의 기회라는 걸 모든 이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쉽지 않다는 점 역시 경기를 보는 이들은 잘 알고 있었다.
‘내가 밀러의 공을 때려서 수호를 홈으로 불러들일 수 있을까?’
타석에 선 최영석은 긴장되기 시작했다.
‘일단 진루타라도 생각하자.’
밀러의 공을 노려서 때리고 싶다 해서 그럴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걸 알기에 최영석은 최대한 진루타라도 만들 생각으로 타석에 들어섰다.
마운드에 선 밀러 역시 최영석에게 모든 집중력을 쏟으면서 자신의 공을 던질 준비를 끝냈다.
-1사 주자 2루의 찬스에서 밀러 선수가 2구 던집니다!
밀러의 몸이 앞으로 쏠리는 순간이었다.
타닥!!
수호의 발이 다시 한번 지면을 박찼다.
-아아-! 한수호 선수 뛰었습니다!!
3루로 내달리는 그의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하지만 밀러의 발이 이미 앞으로 향했기에 몸을 돌리는 건 무리였다.
그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빠르게 공을 던지는 것뿐이었다.
“흡!!”
쐐애애액-!!
그의 손을 떠난 공이 매서운 속도로 날아들었다.
최영석은 공이 지나가는 걸 기다렸다가 센스 있게 배트를 돌렸다.
후웅!!
힘없이 돌아간 배트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우타자인 그였기에 배트를 돌림으로서 포수가 3루로 공을 던지는 데 약간의 딜레이를 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실제 포수는 최영석을 피해 공을 던지기 위해 옆으로 비켜서야 했다.
“흡!!”
쐐애애액-!!
포수의 손을 떠난 공이 매서운 속도로 날아 3루수의 글러브를 향했다.
빠르게 달려 3루 베이스를 사정권에 둔 수호가 다시 몸을 날렸다.
낮게 깔리며 날아간 수호의 거구 위로 공을 잡은 3루수의 글러브가 내려쳐졌다.
촤아아앗-!!
퍽!!
그라운드 위를 미끄러지는 소리와 함께 둔탁한 소리가 연달아 들려왔다.
모든 사람의 시선이 일제히 3루심에게 향했다.
그는 글러브의 위치와 수호의 손을 정확히 확인하고는 이내 양손을 좌우로 펼쳤다.
“세이프! 세이프!!”
-세이프입니다!! 한수호 선수가 연속 도루에 성공하면서 3루까지 내달립니다!!
-이게 바로 한수호 선수입니다!! 작년 메이저리그 홈런 신기록을 달성할 당시에도 상대팀들의 견제를 받기만 했던 한수호 선수!! 그러나 그러한 견제들을 도루로 무너트렸었습니다!!
-그 모습을 올림픽에서도 보여주면서 캐나다 대표팀을 흔들고 있습니다!!
-저 거구의 몸에서 어떻게 저런 민첩함이 나오는지 정말 미스테리한 선수입니다!
-이걸로 한국대표팀이 추가득점을 올릴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냈습니다!
1사 3루의 찬스를 맞이했다.
이제는 외야플라이 하나면 단숨에 득점도 가능한 상황이었다.
여기에서 1점을 올린다는 건 경기의 양상을 바꿔놓을 수 있었다.
그렇기에 밀러의 얼굴이 일그러질 수밖에 없었다.
‘젠장……. 설마 연속 도루를 해낼 줄이야.’
제대로 허를 찔렸다.
만약 자신이 견제를 했다면 이런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까?
이런 가정은 쓸모없었다.
지금 중요한 건 타자를 삼진으로 돌려세우는 것이었다.
‘이제 주자에게선 신경을 끄면 된다. 타자만 전력으로 잡아내면 3루에 있든 말든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아.’
맞는 말이었다.
3루에 주자가 있다지만, 삼진으로 타자를 모두 돌려세우면 결국 들어오지 못하게 된다.
그리되면 경기는 여전히 캐나다에 유리한 상황이었다.
그 사실을 떠올리며 허리를 숙여 로진을 손에 잡는 순간이었다.
타닥!!
지면을 박차는 소리에 이어.
“백홈!!”
3루수의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린 밀러의 눈에 홈으로 내달리는 수호가 보였다.
“왓더……!!”
욕설이 육성으로 튀어나온 밀러가 다급히 홈으로 공을 뿌렸다.
쐐애애액-!!
너무 다급하게 던진 탓인지 제구가 흔들렸다.
타석에서 물러나는 최영석의 머리를 향해 날아가는 공에 그가 다급히 자세를 낮췄다.
후웅!!
그런 그의 머리 위를 공이 지나갔고 포수가 다급히 공을 잡으려 이동했다.
덕분에 비어버린 홈플레이트 위를 수호가 미끄러지듯 통과했다.
촤아아앗-!!
“세이프!”
-홈인!! 한수호 선수가 홈스틸을 성공시키면서 팀의 4번째 득점을 스스로 올립니다!!
연속적인 3개의 도루.
거기에 마지막에는 기습적인 홈스틸로 점수를 올린 수호가 주먹을 불끈 쥐며 포효했다.
“아자!!”
동시에 전광판의 점수가 올라갔다.
-스코어는 4 대 3!! 한국대표팀이 다시 앞서 나가기 시작합니다!!
발로 만든 1점으로 경기의 양상이 역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