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후 메이저리거 216화
예고 홈런.
수호를 일약 스타덤에 올렸던 퍼포먼스였다.
특히 예고 홈런의 원조라 할 수 있는 베이브 루스의 팀이었던 양키스의 홈구장에서 했던 예고 홈런은 미국에 큰 충격을 주었다.
거기에 그걸 성공시켰을 때의 전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예고 홈런은 어느덧 수호를 상징하는 퍼포먼스가 되었다.
그런 예고 홈런을 다른 선수가 했다.
그것도 올림픽이라는 국제대회에서 말이다.
당연히 이 사실은 엄청난 화제가 되었다.
-스즈키 슌타로 예고 홈런 선언!
-ㅁㅊ. 국제전에서 예고 홈런을 하네 ㅋㅋ
-슌타로 쟤도 어지간히 관종이다.
-저래가지고 못 하면 그건 또 무슨 쪽팔림이냐?
-감히 우리 수호를 따라 함?
-베네수엘라! 자존심이 있으면 참교육 가즈아-!!
-이건 헤드샷 가도 이상할 게 없다.
인터넷이 발칵 뒤집혔다.
리그에서 예고 홈런을 해도 큰 화제를 불러일으킬진대, 국제전에서 이러한 퍼포먼스를 결정한 그에게 많은 관심이 쏠리는 건 당연했다.
그리고 반감을 가진 이들도 많았다.
수호는 월드스타였다.
그런 그와 같은 퍼포먼스를 했다는 것만으로도 그에 대한 반감을 가지는 팬들은 많았다.
-과연 스즈키 슌타로 선수가 예고 홈런을 성공시킬 수 있을지! 베네수엘라의 선발투수 라울 카스트로가 공을 던집니다!
라울 카스트로가 전력을 다해 공을 뿌렸다.
헌데 그가 뿌린 공이 슌타로의 머리를 향해 날아들었다.
단순히 위협구가 아니었다.
마치 맞추겠다는 각오가 담긴 공이었다.
하지만 스즈키 슌타로는 상체를 뒤로 젖히는 걸로 그의 위협구를 가볍게 피했다.
뻐어억!!
“볼.”
구심이 판정을 내림과 동시에 마스크를 벗고 마운드로 걸어갔다.
“한 번 더 이런 위협구를 던지면 경고 없이 퇴장이야!”
강력한 경고를 내린 구심이 다시 자리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며 해설진이 바쁘게 상황을 중계했다.
-라울 카스트로에게 구두 경고를 하는 구심입니다.
-방금 공은 맞히겠다는 의지가 담긴 공이었습니다. 경고가 아니라 퇴장이 나오더라도 이상할 게 없었어요!
-구심이 경고를 한 것도 스즈키 슌타로 선수의 도발이 먼저였다고 판단을 내린 듯합니다.
해설진의 말은 사실이었다.
구심이 자리로 돌아가면서 슌타로에게도 조용히 구두로 경고했다.
“자네도 도발은 적당히 하도록 해.”
“예, 예.”
물론 그 경고에 주눅들 슌타로가 아니었다.
그런 성격이었다면 애초에 그런 퍼포먼스를 하지 않았을 테니까.
‘위협구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지.’
다시 타격자세를 잡은 슌타로의 눈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위협구를 던졌으니 내가 쫄았을 거라 생각하겠지?’
그는 머릿속으로 라울 카스트로의 생각을 읽어갔다.
그리고 한 가지 결정을 내렸다.
‘반응이 느려졌을 거라 생각하고 승부를 걸어올 테고 말이야.’
그의 예상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라울 카스트로 2구 던집니다!
쐐애애액-!!
라울이 던진 2구가 몸쪽으로 붙어서 들어왔다.
그리고 슌타로는 그걸 놓치지 않았다.
‘내가……!’
타닥!!
다리를 내디딘 그가 있는 힘껏 허리를 돌렸다.
‘가장 좋아하는 코스다!’
후웅!!
그가 돌린 배트가 그대로 공을 낚아챘다.
딱!!
-때렸습니다!!
공이 배트에 맞는 순간 슌타로는 알 수 있었다.
‘넘어갔어.’
그것을 확신한 듯 손에 쥐고 있던 배트를 던졌다.
휘릭!!
-그리고 슌타로는 배트를 던졌고!! 타구는 우측 펜스를 넘어 관중석에 떨어집니다!! 그랜드슬램을 작렬하는 스즈키 슌타로!!
예고 홈런을 성공시키는 일본의 괴물이었다.
* * *
어수선한 분위기의 한국대표팀이 두 번째 기회를 잡은 건 이성훈의 안타에서였다.
딱!!
-때렸습니다! 좌중간을 가르는 장타 코스!
투수의 2구를 받아친 이성훈이 장타를 만들어냈다.
1루를 통과해 그대로 2루로 달린 그는 공이 2루수의 글러브에 도착하기 전에 베이스를 밟았다.
-안전하게 2루 베이스에 도착하는 이성훈의 2루타!! 역시 메이저리거다운 타격을 보여줍니다!
-천재 이성훈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닙니다. 투수가 던질 공을 정확히 파악하고 결대로 밀어치면서 장타를 뽑아냈어요!
이성훈의 타격 실력은 한국에 있을 때보다 일취월장했다.
무엇보다 욕심을 내지 않는다는 부분이 가장 칭찬을 받을 부분이었다.
[괜히 욕심부리면 폼에 힘이 들어가게 마련이지.]
[본인의 장점을 잘 살리는 타자야.]
[ㅇㅈ. 메이저리그에서 뛰다 보면 자연스레 폼이 커지는 동양인 선수가 많지.]
[본인의 강점을 잘 알고 그걸 잘 적용하고 있어.]
레전드들 역시 그런 이성훈의 재능을 높게 평가하고 있었다.
-뒤이어 한수호 선수가 타석으로 들어섭니다!
-주자가 있는 상황에서 한수호 선수가 타석으로 들어오는 만큼 달아나는 점수를 기대해 볼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수호가 타석에 들어오는 것만으로도 점수를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건 도미니카 대표팀 역시 잘 알고 있었다.
-아-! 여기에서 도미니카의 더그아웃이 움직입니다. 그리고 구심이 1루 베이스를 가리킵니다!
-한수호 선수를 피하는 선택을 내리네요.
도미니카는 괜히 위험한 수호와의 승부를 택하지 않았다.
‘어차피 1루가 비어 있는 상황이다. 위험한 수호와 상대할 바에는 차라리 뒤에 있는 타자들과 승부하는 게 더 편해.’
그들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선택이었다.
1루 베이스가 비어 있는 상황에서 무리해서 수호와 승부를 하는 건 멍청한 짓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선택은 정답이었다.
뻐어억-!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삼진입니다! 스탠딩 삼진을 당하는 최영석 선수!
-2구를 놓친 게 가장 아쉽네요. 사실상 실투였는데. 그 공이 파울이 되면서 볼카운트가 몰렸습니다.
한국대표팀의 가장 큰 약점은 선수층이 얇다는 점이었다.
잘하는 선수들의 경우 메이저에서 활약을 할 정도다.
실제 수호와 이성훈이 메이저리그에서 주전으로 뛰며 유의미한 성적을 남기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선수들은 이야기가 달랐다.
한국에서야 대표급으로 뽑히는 선수였지만, 국제적으로 본다면 수준이 떨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도미니카 대표팀은 그 부분을 정확히 찌르고 들어갔다.
딱!!
-때렸습니다! 하지만 이 공은 높게 뜹니다! 중견수 거의 제자리에서 공을 잡아냅니다!
퍽!
“아웃!”
-두 번째 아웃 카운트가 올라갑니다.
무사 1, 2루라는 찬스에서 아무런 공격도 하지 못한 채 2사 1, 2루가 되었다.
1루에서 발이 묶인 수호는 답답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해결하지 못하니 결국 점수를 내지 못하는구나.’
[어쩔 수 없음.]
[도미니카 애들이 수준이 낮은 것도 아니니까.]
[애초에 마운드에 있는 쟤만 하더라도 메이저리거 아니냐.]
[한국대표팀의 수준이 떨어지는 건 아니지만, 메이저 수준은 아니란 소리지.]
수호가 한국인이기에 레전드들 역시 채팅에 유의하고 있었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하면 한국대표팀은 이번 대회에서도 이렇다할 성적을 남기기 어려웠다.
만약 수호가 없었다면 최하위의 전력을 가지고 있다 판단을 받았을 거다.
‘한국대표팀은 수호가 있기에 위험하다. 반대로 말하면 수호만 위험하다. 수호만 피한다면 다른 타자들을 상대할 만하다는 소리지.’
물론 이 결정으로 인해 비난을 받을 것이다.
승부를 피한 겁쟁이란 말을 들을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없었다.
‘승리하면 모든 게 해결된다. 패자가 될 바에는 비난받는 승자가 되는 게 우선이다.’
규정을 어기는 것도 아니었다.
반칙으로 승리를 쟁취한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그러지 않은 이상 큰 비난의 대상이 될 일은 없었다.
뻐어억-!!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세 번째 아웃 카운트가 올라갔다.
-결국 무사 1, 2루의 찬스에서 아무것도 해보지 못하는 한국대표팀! 기회를 이렇게 날려 버리고 맙니다!
한국대표팀의 답답한 공격력이 여실히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 * *
공격에서 물꼬가 트이지 않으면 자연스레 수비에서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마운드의 한성태는 흔들리지 않았다.
뻐어억-!!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삼진입니다! 오늘 경기 10번째 탈삼진을 기록하는 한성태 선수!!
-역시 국가대표 에이스다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공격이 다소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지만, 한성태는 흔들리지 않았다.
물론 도미니카의 강력한 타선을 완전히 막을 순 없었다.
딱!!
-때렸습니다! 유격수 점프!! 아~ 글러브에 맞고 굴절되는 타구! 다행히 중견수가 백업을 들어오면서 1루에서 주자가 멈춥니다!
-조금 더 정확한 타이밍에 점프했다면 충분히 잡을 수 있었을 텐데 아쉽습니다.
주자가 나가는 상황이 만들어지면서 한성태가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규성이였다면 잡을 수 있었을 텐데.’
그런 아쉬움이 남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마음에 담아두진 않았다.
‘집중하자, 집중.’
그러나 마음 한편에 빈틈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도미니카 대표팀은 그런 한성태의 빈틈을 놓치지 않았다.
타닥!!
-아-! 한성태 선수가 공을 던지는 순간, 주자 뛰었습니다!!
한성태의 견제가 약한 틈을 놓치지 않고 주자가 초구부터 2루를 노렸다.
하지만 그건 실수였다.
퍽!!
“흡!!”
쐐애애액-!!
-한수호 선수의 앉아쏴!!
공이 미트에 꽂히는 순간, 수호가 상체를 뒤로 젖히며 2루로 공을 뿌렸다.
낮게 날아간 공은 마치 자석에 이끌리듯 2루수 차우식의 글러브에 빨려들어 갔다.
퍼퍽!!
“아웃!!”
-아웃입니다!! 자동태그가 될 정도로 정확한 송구를 날려 보낸 한수호 선수!! 엄청납니다!!
-이게 바로 메이저리그 최고 포수의 송구입니다! 팝타임이 무려 1.79초가 나왔습니다!
-특히 앉아쏴로 던졌는데도 저런 정확도를 보여주다니. 정말 대단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마치 숨 쉬듯 주자를 지워버리는 수호의 모습에 한성태는 고개를 저었다.
‘저런 녀석과 함께 호흡을 맞출 수 있다니. 이번 올림픽에도 참여한 건 정답이었어.’
사실 한성태는 국가대표 은퇴를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올림픽에는 꼭 참가하고 싶었다.
그 이유는 바로 수호에게 있었다.
데뷔와 함께 메이저리그 최고의 선수가 된 그와 호흡을 맞추면 어떨까 싶어 내린 결정이었다.
그리고 그 결정은 그의 선수 생활 최고의 선택 중 하나가 되었다.
“자! 남은 아웃 카운트는 두 개다!!”
마운드에 있는 한성태가 야수들을 향해 소리쳤다.
* * *
도미니카의 공격력은 이번 대회 한 손에 꼽힐 정도로 대단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 공격력을 지니고 있기에 1점의 차이는 언제든지 뒤집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왜 따라잡지 못하는 거지?’
스코어 2 대 1이 계속 이어졌다.
수호를 봉쇄하면서 어떻게든 추가점을 낼 기회를 만들려고 했다.
그리고 실제로 기회를 만들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번번이 기회가 사라졌다.
퍽!!
“아웃!!”
-한수호 선수의 페이크 송구에 걸려든 3루 주자가 주루사를 당합니다!!
-한수호 선수의 센스가 또 한 번 빛을 발합니다!!
그리고 기회가 날아갈 때마다 그 중심에는 수호가 있었다.
‘공격에서만 수호를 막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도미니카의 패인은 수호의 능력이 공격에서만 발휘된다고 생각했다는 점이다.
‘그의 진정한 능력은 단지 공격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었어…….’
-남은 아웃 카운트는 단 하나!! 한수호 선수의 사인을 받은 국가대표 마무리투수 정승우 선수가 공을 던집니다!!
“흐읍!!”
쐐애애액-!!
딱!!
-때렸습니다! 하지만 높게 떠오른 타구!! 한수호 선수가 마스크를 벗고 타구를 쫓아갑니다!
타구가 파울 지역으로 날아갔다.
도미니카 대표팀의 더그아웃으로 떨어지는 타구를 끝까지 쫓아간 수호가 안전펜스를 한 손으로 잡고 팔을 내밀었다.
퍽!!
-잡았습니다!! 한수호 선수가 마지막 아웃 카운트를 잡아내면서 우리나라 대표팀이 강적 도미니카 대표팀을 2 대 1로 첫 승을 기록합니다!!
자신의 눈앞에서 몸을 돌리는 수호를 보며 도미니카 대표팀의 감독이 입술을 깨물었다.
‘수비에서도 그를 막았어야 한다.’
자신의 실책을 깨달았지만, 이미 승리를 내준 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