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후 메이저리거 209화
광호가 숙소로 돌아온 건 저녁식사가 끝난 뒤였다.
숙소로 들어오는 그의 얼굴이 사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만큼 충격적인 소식을 전해 들은 탓이었다.
“괜찮냐?”
수호의 한마디에 광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
“괜찮기는! 그 양아치 새끼가 혼자 죽기 싫어서 네 발목까지 잡고 끌어내리고 있는데!”
그때 소파에 앉아 있던 이성훈이 일어나며 말했다.
그의 존재를 이제야 눈치챈 광호가 수호를 바라봤다.
흔들리는 눈동자를 통해 그의 생각을 읽은 수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성훈 형님도 알고 있어.”
“우리 아버지도 연관되어 있으니까. 모르는 게 오히려 이상하지.”
“죄송합니다…… 선배님. 괜히 저 때문에 코치님까지…….”
“네가 사과할 일이 아니야. 박세준 그 양아치 탓이니까.”
박세준은 한국에서 기자와 인터뷰를 가졌다.
그 내용은 간단했다.
-여자친구를 폭행한 건 잘못했다. 하지만 내가 팀에서 방출당한 건 협회와 팀의 거래를 숨기기 위해서다.
이 내용은 한국에서 큰 파장을 일으켰다.
프로 구단과 협회의 거래라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특히 그 거래가 국가대표를 결정하는 일에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난리가 났다.
“아버지가 뭐라 하시던?”
“코치님은 이번 일과 관련해서 자신의 잘못은 없다고 일관되게 주장하셨어요. 문제는 다른 분들이 그 사실을 믿어줄지가 문제죠.”
“후우…… 진실을 이야기해 줘도 믿어주질 않는 가장 답답한 상황이군.”
국가대표 선발에 비리가 있을 거라는 건 그동안 카더라로 돌던 소문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얼마 전까지 현역선수였던 이의 입을 통해 처음으로 공개됐다.
그 파장은 예상보다 더 클 수밖에 없었다.
“너는 어떻게 하기로 했어?”
“나는…… 일단 회의를 통해 거처를 결정하기로 했어.”
그리고 이번 폭로의 중심에는 광호가 있었다.
정확히는 박세준이 광호를 걸고 넘어졌다.
국내에서는 당연히 임광호에 대한 여론이 바닥까지 떨어진 상황이었다.
“나 어떻게 해야 되냐…….”
“정신 차려, 인마! 네가 벌써 넋을 놓으면 어떻게 해?”
“맞아. 잘못이 없는데. 네가 멘탈을 놔버리면 박세준 걔가 원하는 대로 되는 거다.”
수호의 말에 광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내가 감독님을 만나보도록 할게.”
“네가?”
“응. 이번 일에는 나도 연관되어 있으니까. 그걸 밝히고 정확한 상황 설명을 해드려야지.”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이성훈이 수호의 말에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의 질문에 수호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대답했다.
“박세준의 비리를 알아보도록 시키고 그 사실을 이두성 위원님에게 전달한 게 보라스 코퍼레이션의 김명훈 지부장님입니다.”
“김 지부장이라면…….”
“예. 제가 시켰습니다. 광호가 이 사실을 알고 상담했던 게 저였거든요.”
이건 이성훈도 모르고 있던 비하인드였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수호가 방을 나섰다.
* * *
대표팀에는 비상이 걸렸다.
“도대체 일 처리를 어떻게 했던 겁니까?!”
박창준의 일갈에 이두성이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미 설명했듯이 부끄러운 짓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박세준이 언론에 대고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겁니까?”
“맞습니다. 이미 그는 벼랑 끝에 몰렸습니다. 그러니 어떻게든 대표팀에 흠집을 내고 싶었을 겁니다.”
“허! 그럼 아무런 증거도 없이 지금 이런 짓을 저질렀다고요?”
“한국야구를 등질 생각이라면 못 할 짓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두성의 말에 박창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맞는 말이었지만, 이두성의 말을 온전히 믿는 것도 웃긴 일이었다.
어쨌든 그는 이번 사태의 중심에 서있는 인물이었으니 말이다.
그때였다.
똑똑!!
“한수호입니다.”
예상치 못한 인물이 감독실을 찾았다.
중요한 안건을 이야기 중이었기에 돌려보내는 게 옳았지만, 수호는 그럴 레벨의 선수가 아니었다.
비록 경력은 짧았지만, 한국을 대표하는 메이저리거였다.
그런 그의 방문을 무작정 무시할 순 없었기에 양대호 감독이 입을 열었다.
“들어오게.”
문이 열리고 들어온 수호가 고개를 숙였다.
“갑자기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이번 사태에 대해 저도 이야기를 해야 할 거 같아서 찾아왔습니다.”
“음? 그게 무슨 소린가?”
“이번 사태를 가장 먼저 안 것은 임광호 선수이고 그가 상담을 해온 대상이 바로 저였습니다.”
“뭐?”
“그게 무슨 소린가? 자네도 이번 일을 사전에 알고 있었다는 건가?”
“맞습니다. 그리고 이번 일에 대해 정보를 드린 쪽이 제 에이전시인 보라스 코퍼레이션 쪽입니다.”
“허……!”
이게 무슨 소린가 싶었다.
이두성을 제외한 다른 이들의 얼굴이 굳어질 정도의 이야기였다.
“정확히 무슨 이야기인지 설명하게.”
양대호 감독의 말에 수호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중간에 이두성이 이야기를 건네 받으려 했지만, 양대호 감독이 막아섰다.
“선수의 입에서 직접 듣는 게 맞는 거 같군. 자네의 입장은 차후에 다시 듣도록 하지.”
양측의 이야기가 다를 수 있기에 각자의 입장에서 모든 이야기를 들은 뒤 결정을 내릴 생각이었다.
이런 부분에서 양대호는 분명 사려가 깊은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런 부분이 국가대표 감독직을 맡을 수 있는 이유가 되었고 말이다.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럼 자네는 친구인 임광호를 위해 연관이 되어 있는 것도 아닌 일에 끼어들었다는 거군.”
“친구의 일입니다. 연관이 아예 되어 있지 않다고 말하는 건 이상합니다.”
“흠, 그래. 자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그래서 보라스 코퍼레이션까지 움직여서 박세준의 비리를 찾아냈다는 건가?”
“대표팀에 비리가 있었다면 그 정보를 전달하는 것도 대표팀에 들어갈 선수로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걸 협회가 아닌 이두성 당시 위원에게 전달한 이유는?”
“협회 내부에 누가 아군인지 알 수 없었으니까요.”
“그게 무슨 소리지?”
“한국야구는 인맥이 큰 힘을 발휘하는 곳입니다. 그런 곳에서 강대성 위원과 인연이 있는 이에게 이번 일이 전해졌으면 과연 제대로 처벌이 이루어졌을까요?”
수호가 한국야구의 가장 아픈 부분을 찔렀다.
양대호 역시 이 말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기에 헛기침으로 그의 시선으 피했다.
“그럼 지금 한국에서 일어난 박세준의 이야기는 무슨 이야기인가?”
“그 부분은 제가 설명해야 할 거 같습니다.”
이번에는 이두성이 끼어 들었다.
“본래 임광호 선수도 국대에서 제외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국대에 투수가 부족합니다. 특히 150㎞가 넘는 강속구를 던지는 투수가 부족한 상황이었습니다.”
이두성은 임광호를 선발하게 된 경위를 설명했다.
“거기에 박세준까지 빠지면서 대체할 수 있는 자원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임광호를 넣었다는 겁니까? 이런 일이 터질 수도 있다는 건 상식적으로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예. 그것도 고민했습니다만, 제 짧은 생각으로는 임광호 선수의 실력이라면 충분히 국민을 납득시킬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박세준이 이렇게 나올 거라는 건 예상하지 못했습니까?”
양대호 감독의 질문에 이두성이 고개를 숙였다.
“죄송하지만, 정말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본인의 커리어를 전부 거는 일이니까요.”
“애초에 스피어스에서 방출되는 순간, 커리어가 끝났으니 똥이라도 뿌리겠다는 생각이겠죠.”
수석코치의 말이 정답이었다.
박세준은 자신이 끝났으니 마지막 순간에 똥이라도 뿌리고 사라지겠다는 생각으로 기자회견을 자처했던 것이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은 양대호는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그럼 임광호 선수를 뽑는 데에는 아무런 뒷거래가 없었다는 겁니까?”
“예. 그 부분은 제 커리어를 걸고 장담할 수 있습니다.”
선수로서 최고의 커리어를 보낸 이두성의 미래는 밝았다.
지도자로서 앞으로 몇십 년은 더 활약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이두성이 스스로의 커리어를 걸 정도였으니 그의 말에 신뢰도가 높아졌다.
그의 대답을 들은 양대호가 결단을 내렸다.
“그럼 반박 성명을 내고 임광호를 데리고 가는 걸로 하죠.”
“감독님! 그건 너무 위험합니다!”
수석코치의 만류에도 양대호 감독은 단호했다.
“사실이 아닌 일로 멀쩡한 선수를 내치는 게 더 어이없는 일이겠지. 그리고 나는 이두성 위원을 믿습니다. 자네의 눈이라면 그 선수가 분명 대표팀에 필요하겠지.”
이두성은 선수를 잘 보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 사실을 양대호 역시 잘 알고 있었다.
“비록 지금 당장은 국민이 우리 대표팀을 욕할 수 있지만, 사실이 모두 밝혀지면 우리의 결정을 이해할 겁니다.”
수석코치는 자신과 둘이 있을 때와 다른 양대호 감독의 모습에 고개를 저었다.
‘이런 모습을 보여주니 내가 계속 따르는 거긴 하지만…… 위험한 도박이다.’
만약 이번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면 양대호의 미래까지 불안해질 수 있다.
그 사실을 알고도 이런 결정을 내린 양대호의 결단을 응원하면서도 걱정이 되는 수석코치였다.
* * *
양대호는 이런 결정을 곧장 선수단에게 전달했다.
선수단을 모두 소집한 그는 직접 마이크를 잡고 그들에게 이번 결정을 전달했다.
“최근 한국에서 벌어진 박세준의 폭로에 대해 사실관계를 모두 했지만, 사실이 아니라는 걸 확인했다. 임광호는 정당하게 국가대표 자리를 따냈으니 괜히 이상한 소식에 흔들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세준이의 이야기는 조금 다르던데요.”
그때 한 선수가 입을 열었다.
박세준과 같은 팀이었던 대한 스피어스의 좌익수인 최혜성이었다.
그의 질문에 이두성이 마이크를 잡았다.
“박세준은 이번 대표팀 합류를 위해 직접적으로 비리를 저질렀다. 그리고 여자친구 폭행을 구단에 알리지 않았고 무엇보다 여자친구 쪽을 돈으로 매수하려다 실패하니 협박까지 했다.”
“하지만 그건 모두 여자친구 쪽 주장이라고……!”
“그래. 그리고 사실로 곧 밝혀질 거다. 박세준이 그 사실을 숨긴 이유는 국가대표에 합류해서 군대 면제를 받은 뒤, 처벌을 받을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박세준의 계획을 알게 된 선수단이 술렁였다.
“협회에선 그 사실을 알고 박세준을 선발하는 걸 제외시켰고 구단에도 강력하게 경고를 했던 거다.”
“뭐, 이런 이야기는 곧 조사를 통해 모두 밝혀질 것이다. 협회도 국내에서 대응에 나설 것이니 너희들은 집중해서 이번 올림픽을 잘 마무리하는 걸로 생각하자.”
“예!”
감독이 결정했으면 선수단은 따라야 한다.
표면적으로는 말이다.
속으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지만, 대답하는 선수단을 보며 양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 * *
다음 날.
선수단이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연습을 위해 이동했다.
당연하게도 이런 대표팀을 기다리고 있는 건 기자들이었다.
한국에서 파견된 수많은 기자들의 표적은 임광호였다.
그들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광호가 나오자 마이크를 들이댔다.
“임광호 선수! 박세준 선수가 국내에서 임광호 선수가 비리로 국가대표에 합류했다 폭로했는데, 사실입니까?”
“이두성 위원에게 뒷거래를 제안했다는데. 한 말씀 해주시죠!”
“박세준 선수는 선의의 피해자였다는데, 맞습니까?”
엄청난 질문이 쏟아졌다.
흔들리는 눈빛으로 기자들을 바라보던 임광호를 이성훈이 이끌고 버스 안으로 이동했다.
기자들이 다급히 그런 임광호에게 질문을 던졌지만, 아무런 대답도 듣지 못했다.
“어? 한수호다!”
그때 기자들의 타깃이 호텔에서 나오는 수호에게 향했다.
“한수호 선수! 임광호 선수의 사건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친구인 임광호 선수의 비리를 알고 있었습니까?”
“임광호 선수는 원래 이런 일을 저지를 선수였나요?”
“이번 사태에 한수호 선수도 관련있다는 말이 돌고 있는데 사실입니까?”
기자들의 질문에 수호가 입을 열었다.
“광호는 아무런 잘못이 없습니다. 이번 일은 전 프로선수인 박세준이 악의를 가지고 저지른 짓입니다.”
“그걸 어떻게 믿을 수 있죠?”
“방금 하신 말씀에 책임질 수 있나요?”
책임이라는 말에 수호의 시선이 그 기자를 주시했다.
“책임이라니 어떤 책임 말입니까? 제가 옷이라도 벗을까요? 그걸 원하시는 겁니까?”
기자의 입을 다물게 만드는 한마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