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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후 메이저리거-200화 (199/340)
  • 회귀 후 메이저리거 200화

    자리에서 일어난 러치맨이 수호를 바라보며 말했다.

    “오랜만이네. 안 보는 사이에 도대체 뭘 하면 그렇게 몸이 커질 수 있는 거야?”

    “당연히 운동이지.”

    “웨이트 좀 한다고 그렇게 커질 수 있는 스케줄이 있으면 공유 좀 해줘. 내 별스타그램 아이디 알고 있잖아.”

    “하하! 영업비밀을 알려달라고 하는 건 너무 날로 먹겠다는 거 아니야?”

    러치맨과는 비슷한 또래였고 또한 같은 포지션이라는 공통점이 있었기에 농담을 주고받기도 했었다.

    수호 역시 그와 편하게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타석에 섰다.

    ‘분위기가 바뀌었어. 확실히 리그 최고의 타자답네. 방금 전까지 농담을 주고 받았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의 집중력이야.’

    수호의 변화를 감지한 러치맨이 고개를 저었다.

    ‘한 번이라도 공이 이상하게 들어가면 바로 넘어간다.’

    선취점이 중요하다는 건 러치맨 역시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한 번의 실수도 내줄 생각이 없었다.

    ‘녀석의 머릿속에도 로버트가 전해준 정보가 있을 거야. 그렇다면 바깥쪽의 존을 더 넓게 잡고 있을 거다.’

    그는 일부러 로버트에게 잘못된 정보를 주입시켰다.

    선봉장인 그의 역할을 감안했을 때 그 정보는 후속타자들에게 모두 전해질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브라이스 하퍼는 분명 잘못된 정보를 가지고 타석에 들어섰다.

    그렇기에 평소보다 더 손쉽게 요리할 수 있었다.

    ‘수호 역시 잘못된 정보를 알고 있을 거다. 그러니 그걸 집중적으로 공략해야 해.’

    수호는 모든 구단에 있어서 경계대상 1호였다.

    그건 러치맨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초구부터 신중하게 사인을 내보냈다.

    ‘몸쪽.’

    고개를 끄덕인 투수가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과연 한수호 선수의 첫 타석은 어떻게 될까요? 1구 던집니다!

    뻐어억-!

    “볼.”

    -초구 볼입니다. 몸쪽을 노린 공이었지만, 반개 정도 공이 빠지면서 아쉽게도 볼이 됐네요.

    -오늘 구심의 스트라이크존이 몸쪽보다는 바깥쪽에 후한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해설진조차 구심의 스트라이크존을 오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타석에 있는 수호는 아니었다.

    ‘몸쪽은 정상적으로 잡아주고 있다. 그렇다면 바깥쪽 역시 정상적일 가능성이 높다.’

    스트라이크존을 이미지화 하는 건 무척이나 중요했다.

    자신의 존을 형성하고 거기에 맞는 배팅존을 만들어야 했다.

    때로는 그 배팅존을 움직이면서 상대 투구에 적용해야 했기에 스트라이크존을 이미지화 하는 건 무척이나 중요했다.

    ‘정상적인 스트라이크존이라 가정하고 이미지를 잡으면 된다.’

    이미지를 잡았으니 해야 할 건 모든 정신을 집중해서 원하는 공을 낚아채는 것이었다.

    ‘바깥쪽으로는 유인구를 던질 가능성이 높다.’

    ‘바깥쪽으로 던져서 배트를 끌어내야 해.’

    오늘 경기의 핵심은 스트라이크존의 아웃코스였다.

    두 선수 모두 그곳을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원하는 바는 달랐지만 말이다.

    ‘몸쪽을 인식시켰으니 바깥쪽을 던지겠지.’

    ‘몸쪽을 인식시켰으니 바깥쪽의 반응이 느릴 거다.’

    수호의 생각대로 러치맨의 아웃코스 사인이 나왔다.

    그걸 확인한 투수가 와인드업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수호의 눈이 빛났다.

    ‘유인구라는 걸 타자가 알아차린 이상…….’

    수호의 눈에만 보이는 가상의 배팅존이 점점 아웃코스로 이동했다.

    “흡!!”

    쐐애애액-!!

    투수의 손에서 공이 떠나는 순간, 그의 배팅존이 고정되었다.

    뒤이어 수호는 클로즈드 스탠스를 밟으며 가상이 아닌 실제 배팅존을 바깥쪽으로 더욱 이동시켰다.

    그걸 확인한 러치맨의 눈이 커졌다.

    ‘읽혔다!’

    부앙!!

    그걸 깨닫는 순간, 러치맨의 눈앞으로 검은 그림자가 지나갔다.

    뒤이어 돌풍이 마스크의 빈틈을 뚫고 들어와 그의 얼굴을 간지럽혔다.

    그리고.

    딱!!

    경쾌한 소리와 함께 타구가 날아갔다.

    러치맨의 시야에 화려하게 허공을 회전하는 배트가 보였다.

    -때렸습니다!! 그리고 이번 타구는 우측 담장…… 우측 담장…… 우측 담장을 넘어갑니다!!

    -한수호 선수가 메이저리그 역대 연속안타 3위에 이름을 올립니다!!

    39경기 연속 안타기록이 홈런으로 장식되는 순간이었다.

    그라운드를 도는 수호를 보며 러치맨은 고개를 저었다.

    ‘완패다. 내가 계획했던 모든 작전을 1회부터 산산이 부숴버렸어.’

    자신의 작전은 나쁘지 않았다.

    실제 리그 최고의 리드오프 중 한 명인 조니 로버트나 슈퍼스타 브라이스 하퍼조차 속아 넘어갔으니까.

    ‘문제는 상대가 나빴다.’

    앞의 두 선수 모두 훌륭한 선수들이었다.

    하지만 지금 타석에 들어선 선수는 리그 최고의 스타플레이어이자 선수인 한수호였다.

    ‘젠장…….’

    완패였다.

    * * *

    수호의 39경기 연속 안타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큰 화제를 만들어냈다.

    [조 디마지오의 불멸의 기록에 도전하는 한수호!]

    [테드 윌리엄스 다음은 조 디마지오를 노린다!]

    [레코드 브레이커는 이번에도 기록달성에 성공할 것인가?]

    가장 많은 관심을 받는 건 역시나 조 디마지오의 기록을 넘어설 수 있느냐였다.

    그동안 메이저리그 역사에 다양한 기록들이 만들어졌다.

    그중에는 앞으로 깨지지 않을 거라 말하는 기록들도 있었다.

    조 디마지오의 기록이 불멸의 기록으로 뽑히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조 디마지오의 56경기 안타는 대표적인 불멸의 기록으로 불리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그 대표적인 이유는 일단 리그의 구장들이 전체적으로 작아졌습니다.]

    [작아졌다는 건 수비수들의 수비범위가 더 좁아졌다는 소리겠군요.]

    [맞습니다. 과거보다 안타를 만들어낼 확률이 낮아졌습니다. 실제 조 디마지오가 56경기 연속 안타를 만들어냈던 시절보다 지금이 평균안타수가 줄어들었습니다.]

    TV에서는 연일 수호가 조 디마지오의 기록을 깰 수 있을지에 대해 보도를 내보냈다.

    특집프로그램을 만들어 그의 기록도전에 대해 과학적으로 접근했다.

    이런 관심이 모이는 이유는 수호이기 때문이었다.

    [영원한 4할 타자로 남을 거라 생각했던 테드 윌리엄스의 기록을 깬 수호는 조 디마지오의 기록도 깰 수 있을 것인가?]

    [배리 본즈의 기록을 1위 자리에서 끄집어내린 한수호는 이번에도 기록 달성에 성공할 수 있을까?]

    고작 1년.

    데뷔 시즌, 그가 메이저리그에 끼친 영향은 막대했다.

    그런 그가 새로운 기록에 도전한다는 거 자체가 엄청난 화제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수호는 이런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다는 듯 활약을 이어나갔다.

    딱!!

    -때렸습니다! 그리고 이번 타구는 좌중간을 가릅니다!! 한수호 선수가 오리올스와의 2차전 4번째 타석에서 안타를 추가합니다!!

    -한수호 선수의 기록이 40경기까지 늘어납니다!

    수호는 아슬아슬한 상황에서도 기록을 연장해 가며 대중의 기대감을 끌어올렸다.

    * * *

    수호가 메이저리그에서 새로운 기록에 도전하고 있을 무렵.

    한국에서 광호는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결국에는 이렇게 되는구나…….”

    모든 게 완벽했었다.

    전지훈련도 열심히 했고 돌아와서 시범경기에서도 좋은 활약을 펼쳤다.

    전지훈련에서 피나는 노력을 한 덕분일까?

    자신감이 붙었고 실제 공의 구속도 크게 늘어났다.

    코치들과 감독님은 연일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선배님들에게도 좋은 소리를 들었다.

    그 결과 1군 엔트리에 들었고 중간계투로서 좋은 성적을 내기 시작했다.

    ‘선발로 나갈 때까지만 하더라도 정말 세상 모든 걸 다 가졌다고 생각했는데…….’

    예상치 못했던 선발전환이었다.

    하지만 선발은 모든 투수의 꿈과 같은 일이었다.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되고 돈과 명예를 얻을 수 있었다.

    그래서 이를 악물고 노력한 끝에 선발로서 적응했다.

    퀄리티 스타트도 기록했고 좋은 성적을 올렸다.

    신인왕 후보로 이름이 오르내렸고 이대로 시즌이 끝나면 그것도 꿈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모든 건 거품이 꺼지듯 한순간에 사라졌다.

    ‘차라리 몰랐다면 좋았을걸…….’

    자신이 국대에 뽑히고 싶다 이야기한 것도 아니다.

    그냥 열심히 야구를 하고 있었을 뿐인데, 갑자기 주변에서 자신을 비리의 중심에 세웠다.

    문제는 그걸 가서 따질 수도 없다는 것이었다.

    ‘그냥 언론에 터뜨려 버릴까……?’

    궁지에 몰린 광호는 그런 생각까지 했다.

    그냥 폭탄을 터뜨려서 이 모든 일을 공론화해 버리면 마음이 편할 거 같았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내 야구인생도 끝나겠지…….’

    10대의 모든 시간을 투자해서 겨우 잡은 기회였다.

    이 기회를 자신의 잘못도 아닌 일로 끝내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그를 나서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때였다.

    “뭐야? 우리의 신인왕 후보께서 이런 곳에 혼자 있고.”

    “아…… 선배님.”

    잘생긴 얼굴의 남자가 다가왔다.

    박세준.

    대한 스피어스의 미래이자 현재로 불리는 선수였다.

    그가 다가와서 일어나려는 광호의 어깨를 지그시 눌렀다.

    “뭘, 일어나려고 그래. 어차피 나이차이도 많이 안 나는데. 그렇게 깍듯이 대하지 않아도 돼.”

    “감사합니다…….”

    “고민이라도 있는 거야? 표정이 안 좋은데?”

    “그냥…… 요즘 성적이 잘 안나오니까요.”

    “하긴, 이번에 다시 중간계투로 돌아가게 됐다면서?”

    “벌써 들으셨어요?”

    “코치님이랑 이야기 하고 오는 길이야. 들어보니까, 원래 포지션으로 돌려서 페이스를 찾게 해줄 생각인 거 같던데?”

    “아예, 내려가는 게 아니라요?”

    “응, 그건 아닌 거 같더라.”

    박세준의 말에 광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전 이제 선발로는 돌아가지 못하는 줄 알았어요.”

    “하하! 설마 그렇게 잘 던지던 애를 몇 번 못했다고 바로 내치겠냐? 그럴 일은 없으니까. 하루라도 빨리 원래 컨디션을 찾도록 해.”

    “감사합니다…… 선배님의 말을 듣고 보니 제가 이렇게 주눅들고 있을 때가 아닌 거 같아요.”

    “맞아. 원래 투수라는 건 리듬이란 게 있어. 잘할 때가 있으면 못할 때도 있는 거지. 그러니까, 너무 그렇게 주눅들어 있을 필요 없다.”

    “감사합니다. 선배님의 말씀을 듣고보니 힘을 내야 할 거 같네요.”

    “그래. 힘내고! 하루라도 빨리 선발로 돌아와라.”

    “옙!”

    자신을 격려하고 돌아가는 박세준을 보며 광호는 고마움을 느꼈다.

    그런 광호의 모습을 힐끔 바라보던 박세준의 입가에 비웃음이 그려졌다.

    ‘지금이라도 힘내야지. 앞으로 잘못하면 영원히 야구를 못하게 될 텐데 말이야.’

    만에 하나 이번 사태가 알려지면 광호는 미끼로서 사람들의 이목을 잡아줄 것이다.

    그때까지는 지금과 같은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실력도 되지 않는 임광호를 넣기 위해 노력한 프런트. 타이틀 좋잖아?’

    그를 미끼로 잡은 이유는 간단했다.

    그냥 눈에 띄였기 때문이다.

    ‘그러게 누가 나보다 더 눈에 띄래? 그러니까, 이런 일에 휘말리는 거 아니겠냐?’

    딱히 악감정이 있는 건 아니다.

    그저 길을 걷다가 운이 나쁘게도 차에 치인 것과 같은 일이다.

    ‘뭐, 이번 일이 겉으로 드러날 일은 없을 테니까.’

    이번 일은 비밀리에 진행이 되고 있었다.

    그만큼 심각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구단측에 약점이 잡히는 게 좀 걸리지만, 아버지가 어떻게든 무마해 주겠지.’

    구단에 약점이 잡히는 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는 또 다른 믿는 구석이 있었다.

    그렇기에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그가 다시 걸음을 옮기려던 때였다.

    “이두성 위원님이요?”

    그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광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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