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후 메이저리거 193화
알바레즈는 혼란스러웠다.
‘정말 몸에 맞히라고?’
왜 이런 사인을 보냈을까?
물론 언급이 없던 건 아니다.
하지만 일종의 상징이라 생각했다.
그만큼 자신을 믿을 수 있겠냐는 의미 말이다.
그래서 그럴 수 있다고 대답했다.
‘초구부터 몸에 맞히라는 게 말이야?’
혹시나 잘못 보낸 게 아닐까?
하지만 수호의 움직임은 전혀 그런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눈짓으로 타석에 있는 타자를 확인하는 걸 봐서는 그의 사인이 잘못 나온 거 같지는 않았다.
‘젠장……!’
수호는 경고했었다.
만약 자신의 사인을 거부한다면 그 순간 자신과의 파트너십은 끝이라고.
‘생각이 있기에 몸에 맞히라는 사인을 했겠지.’
절박한 심정이 믿음으로 바뀌었다.
수호는 작년 시즌 괴물 같은 활약을 펼쳤다.
그로 인해 팀의 중심이 되었다.
새롭게 합류한 알바레즈도 그 사실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신인들은 물론이거니와 베테랑들조차 수호에게 신뢰를 보냈다.
‘믿는다. 믿어야 한다. 지금 내 상태로는 팀의 에이스를 맡을 수 없어.’
책임감이 그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이 책임감을 나눠 가지겠다는 남자가 나타났다.
그는 앞으로 자신과 함께 경기를 이끌어나갈 선수다.
그런 그를 믿지 못한다면 누구를 믿을 수 있겠는가?
‘믿어라!’
알바레즈가 각오를 다졌다.
-사인을 교환한 알바레즈가 와인드업에 들어갑니다.
와인드업에 들어간 알바레즈가 뒤이어 공을 뿌렸다.
“흡!!”
쐐애애액-!!
그의 손을 떠난 공이 매서운 속도로 날아들었다.
타자는 몸쪽으로 날아오는 공을 확인했지만, 상체를 뒤로 젖히지 않았다.
오히려 배트를 돌렸다.
공이 타자의 몸이 아닌 정확히 몸쪽 보더라인을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후웅-!!
뻐어어억!!
“스윙, 스트라이크!!”
-초구 스트라이크입니다! 몸쪽을 강하게 찌르는 97마일의 강속구에 타자의 배트가 헛돕니다!
-초구부터 아주 좋은 공이 들어갔습니다! 타자가 반응했습니다만, 워낙 좋은 공이었기에 정타로 만들어내진 못했습니다.
남들이 보기엔 스타트가 좋았다.
하지만 알바레즈 본인은 당황하고 있었다.
‘난 분명 몸에 맞힐 생각으로 던졌는데.’
공은 자신의 의지와는 반대로 정확한 코스를 찔렀다.
무엇보다 이상한 건 수호의 반응이었다.
‘자신의 리드를 따르지 않으면 분명 포수를 교체한다고 호언장담을 했던 녀석이 왜 그냥 앉아 있는 거지?’
모든 게 의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걸 고민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바깥쪽 높은 코스.’
수호가 사인을 보내왔기 때문이다.
‘지금은 고민할 때가 아니다.’
의문은 있었지만, 지금 해야 할 건 그의 리드에 맞춰 공을 던지는 것 뿐이었다.
* * *
딱!!
-때렸습니다! 하지만 중견수 정면으로 향하는 타구, 안전하게 잡아내면서 이닝 마감합니다!
-알바레즈가 이번 시범경기 처음으로 삼자범퇴로 1회를 무실점으로 만들고 마운드를 내려갑니다.
카메라가 마운드를 내려가는 알바레즈를 잡았다.
그런 그에게 수호가 다가와 미트를 내밀었다.
“나이스 피칭.”
“어? 어어…… 고맙다. 그런데 수호, 내가 너의 사인을 무시한 건…….”
“아니라는 거 알고 있습니다. 제가 보냈던 사인대로 몸을 맞히려고 했지만, 본능이 그걸 거부한 거겠죠.”
“……알고 있었나?”
“예. 그리고 그럴 거라 생각했습니다. 애초에 몸에 맞힐 수 있는 선수가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왜 그런 사인을 냈던 거지?”
“죄송하지만, 일종의 테스트였습니다. 정말 제 말대로 해주실 수 있는지에 대한 시험이죠. 그리고 다른 하나는 망설임을 없애기 위해서였습니다.”
“시험이라…….”
자신의 말을 곱씹는 알바레즈를 수호는 유심히 살폈다.
자신이 한 말은 사람에 따라 기분 나쁠 수 있었다.
‘한국이었다면 시험했다는 말이 나오자마자 욕부터 날아왔겠지.’
[한국이라면 ㅇㅈ]
[주먹부터 날아오지 않았을까?]
[충분히 그럴 수 있지.]
일단 알바레즈가 곰곰이 생각한다는 것이 상당히 좋은 소식이었다.
그리고 고민하던 그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대로 초구를 던진 뒤부터는 공을 던지는 게 상당히 편해졌어. 덕분에 올 시즌 처음으로 삼자범퇴 이닝을 만들어냈다.”
“확실히 공에 망설임이 사라졌어요. 덕분에 타자들이 정타를 만들어내지 못했던 거죠.”
“음, 이전의 컨디션으로 돌아왔다는 건가?”
“그건 이제부터 알아보면 되겠죠.”
경기는 끝나지 않았다.
“그래. 이제 시작이지.”
하지만 알바레즈의 자신감은 이전과 달라져 있었다.
그리고 이게 본래 그의 모습일 것이다.
‘과연 3천만 달러나 주고 데려온 알바레즈가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벌써부터 기대되네.’
자신의 컨디션을 찾은 에이스의 투구를 기대하는 수호였다.
* * *
알바레즈가 돌아왔다.
뻐어억-!!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삼진입니다! 오늘 경기 9번째 탈삼진을 잡아내며 5이닝 노히트 경기를 이어가는 알바레즈!!
-노히트 경기도 놀랍습니다만, 그의 탈삼진 수확 능력도 정말 눈이 부실 정도입니다!
최고 구속 99마일의 강속구와 슬라이더 커브, 그리고 체인지업을 골고루 던지며 에이스다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게 바로 필리스가 원하던 에이스 알바레즈의 모습입니다!
-그동안 걱정하게 만들었던 이전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3천만 달러라는 거액의 몸값을 하게 된 알바레즈를 향해 필리스 팬들은 환호를 보냈다.
“알바레즈 최고다!!”
“그래! 이 모습을 바랐다고!!”
“네가 새로운 에이스다!!”
팬들의 환호에 알바레즈는 모자를 벗어 인사하며 더그아웃으로 돌아갔다.
“나이스 알바레즈!”
“나이스 피칭이야!”
“오늘 공 미쳤는데?”
“아주 좋아!!”
동료들과 하이파이브하며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 알바레즈는 음료를 마시며 숨을 돌렸다.
“후우…….”
그라운드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에 타석으로 들어가는 수호가 보였다.
‘나의 문제점을 단숨에 파악하고 거기에 따른 솔루션을 바로 제시하다니. 도대체 넌 뭐냐?’
메이저리그 2년 차.
알바레즈 역시 그때를 경험했었다.
루키시즌보다는 나았지만, 크게 다른 건 없었다.
주위를 보기보다는 오직 자신의 실력을 키우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무엇보다 메이저리거라는 자리에 푹 빠져서 헤어 나오질 못했었다.
‘그런데 수호는 자신의 실력은 물론이거니와 주위를 보는 눈도 있다. 그것도 해결책을 제시할 정도의 지식도 가지고 말이지.’
이건 보통 베테랑도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알바레즈는 타자가 아닌 투수였다.
포지션이 다른 자신에게 조언을 한다는 건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데 수호는 아무렇지도 않게 조언을 했고 또한 그것을 따르자 자신에게 각인되었던 일종의 트라우마가 나아졌다.
‘괴물 같은 녀석.’
괴물이란 말은 자주 들었지만, 자신이 직접 경험하니 그 말도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딱!!
-때렸습니다!! 그리고 이번 타구는 좌측 담장을 넘어갑니다!!
-오늘 경기에서도 역시나 홈런을 터뜨리면서 팀에게 승리를 안겨줄 준비를 완성한 한수호 선수입니다!
모든 걸 갖춘 수호가 그라운드를 도는 모습을 보며 알바레즈는 생각했다.
‘천재. 그 말로밖에 표현할 수가 없다.’
역사에 길이 남을 천재와 함께 뛴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찬 알바레즈였다.
* * *
알바레즈의 마지막 등판이 마무리됐다.
[필리스의 새로운 에이스 알바레즈가 6이닝 노히터 11탈삼진을 기록하며 시범경기 첫 승을 올렸습니다.]
[불안한 모습을 보여주던 새로운 에이스 알바레즈의 호투에 단장 마크 레이어는 “그는 매 시즌 좋은 모습을 보여주던 투수다. 이번 시즌 역시 분명 좋은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 생각했다”라고 밝히며 새로운 에이스에 대한 신뢰를 보여주었습니다.]
[한수호 선수는 5회 말, 선두타자로 나와 솔로 홈런을 비롯해 3안타, 4타점을 기록하며 절정의 타격감을 보여주었습니다.]
수호 역시 홈런을 기록하면서 새로운 시즌에 대한 기대감을 끌어올렸다.
그리고 이런 모습은 시범경기 내내 이어지고 있었다.
-한수호 선수가 팀이 뒤지고 있는 8회 말, 세 번째 타자로 타석에 들어섭니다.
-1사에 주자는 1, 2루의 찬스를 맞이했습니다. 여기에서 큰 거 한 방이 나온다면 단번에 역전까지도 노려볼 수 있습니다!
팀이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타석에 들어선 그는 평소처럼 평온해 보였다.
‘오랜만에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상황이군.’
타석에 들어선 그는 이전과는 다른 집중력을 보여주며 투수가 던진 초구부터 공격적으로 배트를 돌렸다.
쐐애애애액-!
딱!!
-때렸습니다!! 그리고 한수호 선수는…… 배트를 던졌습니다!! 우측 담장! 우측 담장!! 우측 담장을 그대로 넘어갑니다!! 쓰리런을 작렬시키며 스코어를 역전시키는 한수호 선수!!
-역시 역전의 사수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한수호 선수입니다!
역전을 만들어내는 홈런으로 팀을 승리로 이끄는 모습은 이제 당연한 게 되었다.
그리고 그의 불어난 체중으로 인해 50-50클럽은 이제 어렵지 않겠냐는 말이 나올 때쯤에는.
퍽!
“세이프.”
-투수가 1루에 나가 있는 한수호 선수를 향해 견제구를 던집니다.
-작년 시즌 50-50클럽에 가입했던 한수호 선수지만, 올 시즌에는 아직 도루를 기록하지 않은 그이기에 투수의 견제가 다소 신기하네요.
-그렇습니다. 그래도 리드폭이 길었다고 판단했는지. 견제구를 던지면서 한수호 선수에게 경고를 날리네요.
리드폭이 줄어든 수호를 본 투수의 신경이 오직 타자에게 향했다.
그리고 공을 던지기 위해 슬라이드 스텝을 밟는 순간.
타닥!!
-한수호 선수 뛰었습니다!!
바로 도루를 시도하며 투수의 허를 찔렀다.
퍽!!
쐐애애액-!!
공이 미트에 꽂히자마자 다시 2루로 던진 포수였지만, 그가 던진 공보다 수호의 터치가 더 빨랐다.
퍽!
“세이프!!”
-도루 성공!! 올 시즌 시범경기 첫 도루에 성공하면서 자신이 왜 세계 최초의 50-50클럽 가입자인지를 확실히 보여주는 한수호 선수입니다!!
사람들이 우려한 속도의 저하를 깔끔하게 없애주는 도루를 성공시키며 자신의 존재감을 더욱 드러냈다.
이런 수호의 활약과 더불어 필리스 선수단은 전반적으로 훌륭한 경기력을 보여주었다.
[2027시즌 월드시리즈 우승팀인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질주가 심상치 않습니다.]
[이번 시범경기에서 벌써 20승을 올리면서 단독선두로 질주하고 있는 필리스는 한수호 선수의 홈런포와 전반적으로 뛰어난 타자들의 타격력과 안정된 마운드로 작년보다 더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올 시즌 페넌트레이스 우승 역시 필리스가 차지할 것으로 예상하며 필리스가 다시 한번 리그를 지배할 것이란 의견을 내놓고 있습니다.]
필리스는 시범경기에서 21승 6패의 성적을 기록하며 공식적인 일정을 모두 마무리했다.
가장 돋보였던 선수는 역시나 수호였다.
[한수호 선수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시범경기 최다 홈런인 20개의 홈런을 때려내며 페넌트레이스를 기다리게 만들었습니다.]
[이번 시범경기에서 30개 구단이 때려낸 홈런이 모두 1527개가 나오면서 경기당 1.8개의 홈런이 나오는 신기록이 작성됐습니다. 이는 작년 대비 0.4개가 증가한 수치로 2028시즌에 얼마나 많은 홈런이 나올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고 있습니다.]
시범경기가 모두 종료됐다.
이제 페넌트레이스가 열릴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