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후 메이저리거 187화
전지훈련이 끝났다.
친구들은 한국으로, 수호는 곧장 플로리다로 향했다.
플로리다에서 열리는 스프링캠프에 합류하기 위함이었다.
‘작년과는 다른 위치에서 시작하게 되는군요.’
[작년에는 아무도 기대를 하지 않았던 신인이지만, 올해는 모든 사람이 기대하는 슈퍼스타의 입장으로 캠프에 합류하는 거지.]
[작년에는 성적을 내지 못하더라도 사람들이 기다려 줬지만, 올해는 다를 거다.]
[성적이 나지 않으면 작년에 있었던 활약이 거품이란 소리를 들을 거야.]
수호도 잘 알고 있었다.
인내심이 강한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그러지 못했다.
사람들은 당장의 성적을 원했다.
작년에 아무리 좋은 성적을 올렸더라도 지금의 성적이 중요했다.
특히 수호에게는 그 잣대가 무척이나 높을 것이다.
‘거품이란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초반부터 달려야겠군요.’
[그렇지.]
[전력질주 하자.]
[그냥 싹 쓸어버려!]
레전드들의 말에 수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비행기는 곧 플로리다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검문대를 통과한 수호를 보라스가 마중 나왔다.
“오랜만입니다. 작년보다 몸이 더 좋아진 거 같군요?”
“김명훈 지부장이 도와준 덕분에 최상의 몸 상태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하하! 그래요? 그 친구가 일을 잘하긴 하지요.”
비시즌 기간, 자신을 도왔던 김명훈의 공로를 치켜세워주는 걸 잊지 않은 수호가 보라스와 함께 걸었다.
“공항에 많은 기자들이 몰렸습니다. 그냥 게이트를 통과하게 된다면 안전사고가 우려되는 상황이기에 기자회견을 준비한 상태입니다.”
“그렇군요.”
“이건 예상 질문입니다. 한번 읽어보시고 대비를 하시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보라스가 건넨 태블릿PC를 받아 든 수호를 향해 보라스가 말을 덧붙였다.
“물론 강요는 아닙니다. 답변을 하는 건 수호의 자유지만, 이왕이면 이대로 답변을 하는 것이 수월하게 흘러갈 수 있습니다.”
“보라스 씨의 생각도 그걸 원하시는 겁니까?”
“음…….”
수호의 질문에 보라스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 건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괜한 리스크를 만들 필요가 없다는 데에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그건 한수호의 스타일이 아니긴 하죠.”
“맞습니다. 제 스타일이 아니죠. 그리고 팬들 역시 그걸 원하는 게 아닐 겁니다.”
수호가 태블릿PC를 다시 건넸다.
“준비해 주신 건 참고하도록 하겠습니다.”
앞장서서 걷는 수호를 보며 보라스가 고개를 저었다.
“빅마우스가 다시 발동하겠군.”
이번 기자회견도 그냥 지나갈 거 같지는 않았다.
* * *
기자회견장에는 엄청난 숫자의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얼추 잡아도 100명에 달했다.
국가 역시 다양했다.
미국은 물론이거니와 한국, 일본, 중국, 대만 등.
각국의 기자들이 모이면서 수호에 대한 관심을 집중시켰다.
그때 문이 열리며 수호가 들어오자 카메라 플래시가 연달아 터졌다.
‘눈뽕이 따로 없네.’
[ㅋㅋㅋ 이때 눈 감으면 이상한 사진 찍히겠다.]
‘절대 눈 안 감습니다.’
괜히 이상한 사진이 나도는 걸 보고 싶지는 않았기에 근성을 가지고 눈을 감지 않았다.
자리에 앉자 보라스도 그의 옆에 자리했다.
그리고 보라스 코퍼레이션의 직원이 사회를 보면서 기자회견이 시작됐다.
“뉴욕타임즈의 레너드입니다. 작년에 화려한 데뷔시즌을 치르면서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슈퍼스타가 되셨는데요. 올 시즌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올해 역시 MVP를 수상하는 것입니다.”
“오오-!”
“LA타임즈의 가드너입니다. 대중은 올해 역시 한수호 선수가 70홈런을 넘길 수 있을 것인지, 그리고 궁극적으로 77홈런을 넘어 80홈런에 도달할 수 있을지 궁금해하고 있습니다.”
“상대가 저를 피하지 않는다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확실히……!”
수호의 대답은 거침없었다.
마치 대중과 언론이 가려운 곳을 정확히 알고 있다는 듯 확실한 대답으로 그곳을 긁어주었다.
‘그래도 그렇게 대형사고까지 터지진 않는군.’
옆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는 보라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수호의 지금 대답도 수위가 상당히 높은 편이었다.
70홈런이라니?
MVP라니?
하지만 수호는 교묘하게 목표한다고 표현하면서 직접적으로 하겠다는 표현을 삼갔다.
그것만으로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중이 원하는 대답을 하면서도 확신까지는 주고 있지 않아.’
상당히 능구렁이 같은 대답이었다.
이런 유형의 대답들은 대부분 경험 많은 베테랑들이 할 수 있었는데.
수호가 이런 모습을 보이니 새삼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궁금했다.
그러나 그가 원하는 대로 기자회견이 조용히 흘러가진 않았다.
“텐조신문의 다이스케입니다. 최근 마무리된 WBC에서 한국대표팀은 예선 탈락을 했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쉽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전부입니까?”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보셔서 아쉽다는 감정을 설명해 드렸는데. 더 뭐가 필요한가요?”
“한국을 대표하는 선수로서 대표팀이 나아가는 방향이라든지, 앞으로 한국야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은 전혀 없으신 겁니까?”
“그럼 그렇게 물어보셨어야죠. 그리고 저는 이제 프로 2년 차가 되는 선수입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선수는 맞습니다만, 아직 한국야구의 미래를 언급할 정도의 경력은 없습니다.”
수호의 대답에 다이스케 기자가 다시 입을 열려고 할 때.
수호가 먼저 선수를 쳤다.
“한국야구의 위기론은 하루 이틀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리고 내부적으로도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겠죠. 그게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진 전 모릅니다.”
대답하는 수호를 보며 보라스는 조마조마했다.
‘조금 수위를 낮춰주면 좋겠는데.’
하지만 보라스의 염원은 통하지 않았다.
“해결책을 내놓은 사람들이 무능해서인지 아니면 시스템적으로 아직 정착하고 있는 단계인지는 전 모릅니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야구팬의 마음이 떠나기엔 충분한 시간이라는 거죠.”
어떻게 들으면 한국야구 전체를 싸잡아서 비난하는 대답에 보라스의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그러나 수호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작년 저는 한국에 들어가서 쉬는 동안 KBO의 총재님을 직접 만나 뵙고 이런 이야기들을 전달했습니다. 제 나름대로 할 역할은 충분히 했다고 생각합니다.”
수호가 총재를 만났다는 말에 기자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워낙 비밀스럽게 만났고 이후에도 별다른 이야기가 흘러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다이스케 기자가 다시 물었다.
“KBO의 총재를 만난 이유가 있나요?”
“올림픽 합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올림픽에 합류하는 겁니까?!”
“예. 이번 미국 올림픽에서 국가대표에 합류할 겁니다.”
그동안 수호의 국가대표 합류에 대해 여러 루머가 돌았다.
하지만 공식적인 입장이 나온 적은 없었기에 사람들은 수호의 입에서 공식 입장이 나오길 목말라하며 기다렸다.
그리고 그 갈증을 해결해 줄 공식 입장이 나왔다.
그것도 수호의 입에서 직접 말이다.
* * *
[한수호 미국올림픽에서 한국 국가대표로 합류할 것!]
[스프링캠프 합류 기자회견에서 한국 국가대표로 합류할 것이라 밝힌 한수호!]
[WBC에서 예선탈락이란 고배를 마신 한국 국가대표팀에 메이저리그의 슈퍼스타 한수호가 합류한다?!]
[절체절명의 한국 국가대표팀에 합류하게 될 한수호는 누구?]
수호의 발언에 이어 각종 기사들이 쏟아졌다.
당연히 국내는 발칵 뒤집혔다.
기자들은 이번 기사에 대해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KBO를 찾았다.
“한수호 선수가 국가대표에 합류한단 발표가 정말입니까?”
“아직 확정은 아닙니다.”
“확정은 아니라니 무슨 말씀이십니까?”
“국가대표 최종 명단은 기술위원회의 회의를 끝낸 뒤, 최종적으로 선발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한수호 선수가 발탁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겁니까?”
“그건…….”
KBO 직원은 FM대로 대답하려 했지만, 이내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수호가 합류하겠다고 한 이상 그가 국대에 뽑히지 않을 가능성은 1도 없었다.
기자들에게 시달리는 직원의 모습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이가 있었다.
총재인 김중호였다.
“허허, 한수호 군이 메이저리그에 합류하자마자 대형사고를 터뜨려 주는군.”
“난감하게 되었습니다. 아직 기술위원회에서 충분한 논의를 거치지 않은 상태인데.”
이두성의 말에 김중호가 고개를 저었다.
“오히려 잘 됐어. 그가 합류한다는 것만으로도 꺼져가는 국내의 야구 열기에 다시 불이 붙을 테니까.”
“하지만 논란의 여지도 있습니다. 그동안 국가대표 선발과 케이스가 다르다 보니…….”
“그 선수 자체가 일반적인 케이스를 벗어난 선수 아닌가?”
김중호의 한마디에 이두성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수호는 이미 한국야구의 범위를 넘어선 선수다.
그가 합류한다면 위원회 입장에서는 그냥 쌍수를 들고 환영할 방법밖에 없었다.
그게 정답이기도 했고 말이다.
“언제까지 기자들이 저러고 있는 걸 볼 수 없지. 공식적인 발표를 하도록 하게.”
“괜찮겠습니까? 원로들의 반발이 꽤 강할 텐데요.”
“그들의 반발을 걱정하다가는 야구의 미래 자체가 어두워질 거야.”
한국야구가 망가진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그것 중에는 삼연으로 이어지는 한국문화의 고질적인 부분도 있었다.
특히 관례를 무시하는 일에 언제나 입에 거품을 물고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런 것들에 목매달고 있다 보면 기회를 놓치게 마련이었다.
김중호는 그 꼴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다.
“이번 기회에 싹 다 뜯어고쳐야 해.”
그렇지 않으면 한국야구는 이대로 사라질 것이다.
그것을 막기 위해서는 누군가는 총대를 메야 했다.
스스로 그 총대를 차고 있는 김중호를 보며 이두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준비하겠습니다.”
그 역시 함께하기를 말이다.
* * *
수호의 발표에 발맞춰 KBO 역시 빠르게 입장을 내놓았다.
[KBO, 한수호 선수가 국가대표에 합류할 것을 발표!]
[이례적인 국가대표 발탁 이유를 설명하는 이두성 기술위원회 의원!]
[전례 없이 국가대표에 미리 선발된 한수호 선수!]
[한수호 선수의 국가대표 미리 선발에 대해 불편함을 드러낸 야구계 원로들.]
[국가대표는 성적과 실력도 중요하지만, 국가를 상징하는 이의 인품과 마인드가 중요하다. 그 확인절차를 무시하는 위원회의 이번 선택은 잘못되었다고 소신을 밝힌 야구계 원로 A 씨!]
예상대로 일부 야구인들의 반발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들과 커넥션이 있는 언론들은 연일 국가대표의 상징성을 언급하며 언론플레이를 하려 했다.
하지만 대중은 바보가 아니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
-이게 말이야 방구야?
-실력 우선으로 뽑아야지. 무슨 인품이니 마인드니. 개소리하네.
-무엇보다 한수호가 그동안 무슨 사고를 친 적이나 있나?
-수호의 인품이면 충분하지.
-무엇보다 수호가 국가대표에 합류하겠다고 하면 쌍수를 들고 환영해야 하는 거 아님?
-헛소리하는 틀딱들. 틀니 좀 뺏어라.
-이러다가 수호가 안 한다고 하면 어쩌려고 저러냐?
└말이 씨가 된다.
대중들은 야구계 원로라는 사람들을 비난하며 수호의 국대 합류를 환영했다.
하지만 원로들과 연결된 언론들은 연일 그들의 의견만 실으면서 여론조작에 열을 올렸다.
그리고 이런 분위기는 수호의 귀에도 들어갔다.
“한수호 선수, 한국에서 최근 한수호 선수의 국가대표 선발에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데요.”
기자들은 이에 대해 수호의 의견을 물어보기 위한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수호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또 한 번 폭탄을 터뜨렸다.
“그러게요. 이건 저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네요.”
수호가 난감하다는 듯 머리를 긁더니 대답했다.
“그럼 국대 합류하지 말죠,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