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후 메이저리거 165화
메이저리그 역사상 예고 홈런은 하나의 사건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데드볼 시대의 종말을 알리는 새로운 야구의 신, 베이브 루스의 존재를 세계에 각인시키는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베이브 루스는 메이저리그라는 사업의 패러다임을 바꾼 위대한 선수입니다! 그런 그를 가장 잘 나타내는 사건이 바로 예고 홈런이었죠!
-맞습니다. 베이브 루스를 가장 잘 상징하는 사건이자 뉴욕 양키스의 시대를 알리는 사건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예고 홈런을 터뜨린 베이브 루스의 홈그라운드인 양키 스타디움에서 또 하나의 전설이 쓰였습니다!
베이스를 모두 돈 수호가 홈플레이트를 밟았다.
-또 하나의 예고 홈런을 기록한 한수호 선수가 이제 막 홈플레이트를 밟았습니다!
-역대 메이저리그 역사상 이런 선수는 없었습니다! 이번 시즌 가장 위대한 시즌을 기록하고 있는 한수호 선수가 필리스를 승리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수호에 대한 찬사가 쏟아졌다.
그만큼 예고 홈런은 시리즈의 향방을 미궁으로 만드는 한 방이었다.
그리고 이건 단순히 예상에서 끝나지 않았다.
뻐어억-!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삼진입니다! 필라델피아 필리스가 3 대 0으로 앞서고 있는 상황! 승리까지 이제 아웃 카운트 단 1개를 남겨두게 되었습니다!
9회까지 박빙의 승부를 펼친 두 팀의 점수는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수호의 예고 홈런이 두 팀이 낸 유일한 점수가 되었다.
예고 홈런이 터진 뒤로 필리스 선수단은 마치 각성이라도 한 것처럼 이전보다 더 높은 수준의 플레이를 보여준 것도 하나의 이유였다.
딱!!
“마이!!”
-타구 높게 떴습니다! 중견수가 외치면서 자리를 잡고 공을 포구합니다!
퍽!
“아웃!!”
-세 번째 아웃 카운트가 올라가면서 경기 종료! 필라델피아 필리스가 뉴욕 양키스를 누르고 월드시리즈 스코어를 1승 2패로 만듭니다!
-필리스에게는 매우 중요한 1승이 올라가는 순간입니다. 만약 오늘 경기에서도 패배했다면 정말 앞날이 깜깜했을 테니까요.
-역시 한수호 선수가 해줘야 살아나는 필리스입니다!
수호의 예고 홈런이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 * *
거의 모든 언론에서 수호의 예고 홈런을 메인으로 다루었다.
[양키 스타디움에서 일어난 베이브 루스의 재림!]
[한수호, 베이브 루스의 예고 홈런을 양키 스타디움에서 재현하다!]
[양키스가 승부를 피할 수 없게 만든 한수호의 세리머니! 의도된 것이었나?]
[한수호 경기 후 인터뷰에서 ‘예고 홈런을 한 것은 양키스가 승부를 피할 수 없게 만들기 위해서 한 것이다’라고 밝혀!]
[기발한 전략이 월드시리즈의 향방을 다시 미궁으로 향하게 했다!]
분명 월드시리즈임에도 불구하고 수호에 대한 기사만 쏟아졌다.
그만큼 이번 예고 홈런은 월드시리즈를 넘어서는 파장을 일으키는 사건이었다.
당연히 야구팬들의 반응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예고 홈런 지렸다.
-경기 후 인터뷰 들어보니. 의도했다던데?
-양키스가 자꾸 피하니까, 피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든 거네.
-와…… 어린데도 머리가 진짜 잘 돌아간다.
-그런 상황에 양키스가 피할 수 없었겠지.
-피하면 그건 또 그것대로 문제임 ㅋㅋ
└ㄹㅇㅋㅋ
-이게 바로 진퇴양난이지.
한국 커뮤니티는 수호의 기발했던 아이디어에 환호했다.
미국의 레딧 역시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베이브 루스의 재림이다.
-난 베이브 루스보다 더 뛰어나다고 봄.
└왜?
└└사실 베이브 루스는 예고 홈런에 의문이 많잖아. 하지만 수호의 예고 홈런은 말 그대로 현실이고.
-뭐가 됐건 우리는 한수호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메이저리그가 새로운 시대를 맞이했다는 건 확실한 듯.
-난 올해 메이저리그 입문했는데. 이 정도로 재밌을 줄은 몰랐다.
-1차전은 기대에 비해 별로였고 2차전은 정말 쉣이었는데. 3차전은 정말 기대 이상이다.
팬들의 이런 반응은 실제 수치에도 바로 나타났다.
[월드시리즈 3차전의 시청률이 공개됐다.
3차전부터 5차전까지 전국 중계를 맡은 ESPN은 1회까지 7.8퍼센트의 전국 시청률을 기록하던 3차전은 한수호 선수의 예고 홈런이 나온 뒤, 26.6퍼센트까지 상승했다고 밝혔다.
이날 평균 시청률은 22퍼센트를 기록하면서 2차전에 실망했던 미국 야구팬들이 돌아왔다고 평가했다.]
1차전과 비슷한 시청률로 올라오면서 팬들의 관심이 돌아왔다는 게 알려졌다.
만약 3차전에서도 양키스가 수호를 피하는 전략을 썼다면 시청률은 바닥을 기었을 거다.
물론 가정에 불과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 가정을 내세운 게 롭 만프레드 커미셔너라는 점이었다.
‘고의사구에 대해 본격적으로 논의해 봐야겠어.’
롭 만프레드 커미셔너는 메이저리그에 많은 변화를 일으킨 인물이었다.
내셔널리그에 지명타자를 도입하고 피치클락, 베이스크기 확대 등.
다양한 시도를 통해 메이저리그 팀들의 공격력을 전반적으로 상승시켰다.
이에 대해 비판적인 여론도 있었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그가 커미셔너를 맡은 이후 메이저리그의 관객이 돌아왔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각 구단의 수뇌진들 역시 롭 만프레드의 결정에 반기를 들지 못했다.
‘이번 월드시리즈는 역대급 월드시리즈로 끝날 거다.’
그런 롭 만프레드의 시선이 월드시리즈의 끝으로 향했다.
그 끝에는 앞으로 메이저리그를 이끌 선수가 누가 될 것인지 세상이 알게 될 것이다.
‘물론 이미 결정이 난 일이지.’
롭 만프레드 본인의 마음은 이미 결정을 내렸다.
‘메이저리그의 미래는 한수호가 이끌 거다.’
한수호라는 스타가 메이저리그를 이끌 거라는 사실에 베팅하기로 말이다.
* * *
2승 1패.
뉴욕 양키스 입장에서는 홈에서 불의의 일격을 맞았다.
‘젠장…… 어떻게든 녀석을 피했어야 하는데.’
결정을 내린 양키스의 감독, 앤더슨이 인상을 구겼다.
그는 자신의 결정을 후회했다.
무엇보다 그 결정으로 인해 자신이 어떤 질책을 받게 될지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마치 부모님에게 혼나러 가는 기분이군.’
한숨이 절로 나왔다.
50대가 되어서까지 이런 기분을 느낄 줄이야.
하지만 그는 단장실의 문을 열었을 때 이건 그 정도의 사안이 아니란 걸 알게 되었다.
“왔는가?”
그의 눈앞에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소파의 상석에 앉은 남자, 그리고 그의 옆으로 앉아 있는 두 사람은 분명 양키스의 실세인 사장 앨런 조지와 단장 파커 매튜였다.
그들조차 상석에 앉지 못하게 만든 인물은 양키스의 주인이자 제국의 왕인 할 스타인브레너였다.
“앉지.”
“……예.”
구단주 할 스타인브레너가 직접 경기장을 찾다니.
월드시리즈이니 찾는 건 가능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경기 전에 자신과 면담을 하는 건 이야기가 달랐다.
‘하필이면 어제 그런 일이 벌어지고 나서 면담이라니…….’
가시방석이란 게 이런 걸까?
자리에 앉은 앤더슨은 당장이라도 일어나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때 할 스타인브레너가 입을 열었다.
“앤더슨, 자네에게 묻고 싶은 게 있네.”
“아, 예.”
“단장이 말하길 3차전에서도 한수호를 고의사구로 내보내라는 작전을 이미 논의했다고 하던데.”
“……맞습니다.”
“그런데 왜 그와 승부를 했지?”
역시 이 문제로 자신을 호출한 것인가?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있는 그대로를 말해야 하는 걸까?
온갖 의문이 머리를 지배했다.
그리고 이내 결단을 내렸다.
지금 이 순간은 변명으로 피할 순간이 아니었다.
당시 자신의 선택에 후회가 없었기에 그는 있는 그대로를 말했다.
“당시 한수호는 명백하게 양키스를 도발했습니다. 단순히 세리머니가 아니라 양키스의 역사를 걸고 도발을 시전했던 겁니다.”
“양키스의 역사라…….”
“예. 단순히 예고 홈런이 목적이었다면 필라델피아에서도 시도했을 겁니다. 하지만 그는 굳이 뉴욕에서 그것을 시도했습니다.”
“그렇지. 그리고 사실인지 아닌지 모르지만, 인터뷰에서 우리를 도발하기 위해 했다고 말했지. 하지만 단순히 우리의 작전을 파훼하기 위해서 한 것일 수도 있지 않나?”
“맞습니다. 그랬을 경우 제가 낚였겠죠. 하지만 저는 양키스의 감독으로서 프라이드가 있습니다. 그건 메이저리그의 누구라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뉴욕 양키스.
또 다른 이름은 악의 제국.
단순히 돈을 많이 쓰기에 악의 제국이란 이름을 수십 년간 독점할 수 있었던 건 아니다.
그 기간 동안 다른 구단들 역시 막대한 돈을 투입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누구도 양키스만큼의 성과를 얻지 못했다.
그래서 양키스는 제국이란 별명을 독점할 수 있었다.
“한수호는 단순히 도발이 아닌 제국의 아성에 도전한 겁니다.”
“으흠.”
제국의 아성.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 오늘 자리는 감독 앤더슨을 질책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자네의 생각과 내 생각이 일치하는군.”
“예?”
“그 상황에서 승부를 한 건 정확한 판단이었어. 만약 그를 피해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린다 해도 그 누가 우리 양키스가 진정한 챔피언이라 말하겠는가?”
할 스타인브레너의 시선이 단장 파커 매튜에게 향했다.
그는 이번 작전을 기획했던 인물이기에 다급히 시선을 피했다.
“우리 악의 제국은 돈으로 우승을 샀지. 하지만 승부에서는 피한 법이 없었어.”
할 스타인브레너의 시선이 단장실 한쪽 벽을 가득 채운 트로피로 향했다.
저 트로피를 손에 넣기 위해 아버지와 형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가?
그 노력을 결정체에 도전하는 자를 상대로 피할 생각은 없었다.
“이번 월드시리즈에서 우리가 승부를 피할 일은 없을 걸세.”
한수호를 얕보는 건 아니었다.
“필리스에 한수호가 있다면 우리에게는 애런 저지가 있네. 두 선수가 만난 월드시리즈에서 제대로 붙는 걸 보고 싶군.”
할 스타인브레너.
그는 경영자이기 이전에 한 명의 메이저리그 팬이었다.
당연히도 한수호와 애런 저지의 맞대결을 보고 싶었다.
그것이 비록 월드시리즈의 패배로 이어진다 하더라도 말이다.
“부끄럽지 않은 승부를 하게나.”
이 말을 위해 경기 전 모든 수뇌진을 불러모았다.
할 스타인브레너의 말을 들은 앤더슨은 가슴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게 느껴졌다.
“알겠습니다.”
이 사실은 앤더슨을 통해 선수단으로 전해졌다.
“구단주의 직접적인 오더가 떨어졌다. 앞으로 우리는 필리스와 정면으로 붙는다.”
“한수호와도 붙습니까?”
“그래. 필리스에 한수호가 있다면 우리에겐 저지가 있다. 주눅 들 거 없어!”
“오오!”
“알겠습니다!”
“저지 너만 믿는다!!”
클럽하우스의 분위기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리고 이런 분위기는 필리스 선수단 역시 마찬가지였다.
“시리즈를 원점으로 돌리자!!”
“이번 월드시리즈는 우리가 우승해야 해!!”
“우승 트로피를 가지러 가자!!”
전날 있었던 수호의 예고 홈런은 하루가 지났음에도 클럽하우스 전체에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두 팀의 사기는 월드시리즈 들어 최고조에 이르렀다.
사기가 오른 두 팀이 충돌하는 월드시리즈 4차전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