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후 메이저리거 164화
수호는 그동안 몇 차례 예고 홈런을 기록했었다.
연습경기는 물론이거니와 인터뷰에서 홈런을 때리겠다 말하고 진짜 그것을 실현에 옮겼다.
하지만 페넌트레이스에서 제스처를 취한 적은 없었다.
-첫 번째 예고 홈런 때 베이브루스와 비슷한 제스처를 취했지만, 사실 논란의 여지가 좀 있었거든요.
-맞습니다. 당시에도 많은 이가 맞다 아니다로 논재을 벌였죠.
수호 역시 알고 있었다.
자신의 예고 홈런에 논란이 많다는 걸 말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 논란을 종식시킬 생각이었다.
스윽-
-아-! 한수호 선수가 배트를 잡아 외야를 가리킵니다!!
-이번에야말로 예고 홈런을 분명히 하겠다는 의지로 보입니다!!
-과거 베이브 루스의 예고 홈런도 계속 논쟁이 되고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이 장면을 먼 미래에 보더라도 논쟁은 없을 거 같습니다!!
-맞습니다! 한수호 선수가 베이브 루스의 홈그라운드였던 뉴욕의 성지 양키 스타디움에서 베이브 루스의 예고 홈런을 선언했습니다!!
예고 홈런 하나만으로도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다.
그런데 양키 스타디움에서 그걸 했다는 건 명백하게 뉴욕 전체를 도발하는 것이었다.
베이브 루스는 뉴욕의 상징이나 다를 바가 없는 선수였으니 말이다.
당연히 그 반응은 엄청났다.
“망할 새끼!!”
“저 새끼 몸에 던져버려!!”
“여기가 어디라고 예고 홈런이야?!!”
“야 이 새끼들아!! 저 새끼 걸어서 내보내지 마!!”
“반드시 승부해라!!”
“너희들도 남자라면 승부해!!”
양키스 팬들의 엄청난 야유와 욕설이 쏟아졌다.
그들의 반응은 메이저리그에서도 악행으로 유명한 필리건들조차 움찔하게 만들었다.
“오우…… 양키 녀석들이 저렇게 욕설을 찰지게 했나?”
“우리가 저래야 하는 거 아니야?”
“방금까지는 그랬지. 그런데 수호가 선을 좀 세게 넘었다.”
“차라리 필라델피아에서 저러지. 왜 뉴욕에서 저런대?”
“우리 오늘 무사히 나갈 수 있겠지?”
양키스 팬들이 내지르는 분노가 자신들에게 튈까 걱정하는 필리건들도 있었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다.
“수호야!! 잘했다!!”
“그래!! 네가 그래야 우리 필리스의 기둥이지!!”
“배짱 한번 마음에 드네!!”
“처음부터 그 배짱이 마음에 들었다!!”
수호의 행동에 대부분의 필리건이 환호를 질렀다.
자연스레 필리건과 양키의 응원 대결로 이어졌다.
응원이라고는 해도 반쯤은 욕설과 야유, 그리고 환호가 뒤섞여 있는 혼돈의 상태였지만 말이다.
이런 분위기를 만들어낸 수호는 여유롭게 자신의 루틴을 밟아갔다.
그런 수호에게 양키스의 포수 로만 코퍼가 물었다.
“도대체 어쩌자고 그런 미친 짓을 한 거냐?”
“딱히 미친 짓은 하지 않았는데?”
“전설의 홈그라운드에서 그와 똑같은 제스처를 했는데. 그게 미친 짓이 아니라고?”
“응. 오히려 그 전설이 봤으면 좋아하지 않았겠냐?”
물론 좋아하기 이전에 미친놈이라고 하긴 했지만.
어쨌든 중요한 건 그 이후의 반응이었다.
[제대로 미쳤네. 마음에 든다! 그래!! 슈퍼스타라면 그렇게 한번 미쳐야지!!]
자신의 행동에 오히려 좋아했다.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얌전하게 야구 하는 것보단 확실하게 눈에 띄는 게 더 좋은 법이야!]
이런 스타일이었다.
[뉴욕? 알 게 뭐야!! 내가 먼저 예고 홈런이란 길을 닦았으면 그걸 이어서 하는 놈이 나와야지!! 지금까지 아무도 안 했다가 다른 놈이 하니까, 이제 와서 열을 올린다고?! 그게 더 이상한 거 아니냐?]
오히려 수호의 행동에 응원을 보냈다.
사실 그와 동기화를 이루었던 수호였기에 어느 정도 반응을 예상했다.
그래서 더욱 자신 있게 예고 홈런을 선언할 수 있었다.
‘이걸로 녀석들도 생각이 바뀌겠죠.’
지금만 해도 그렇다.
자신의 예고 홈런에 양키스 더그아웃이 바빠졌다.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바로 고의사구를 낼 거 같던 그들이지만, 지금은 다시 논의를 하고 있었다.
경기장이 어수선해졌기에 시간을 조금 더 벌 수 있었던 게 양키스에겐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젠장, 어떻게 하지?”
“일단 작전대로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팬들의 분위기가 이런데 작전대로 가자고? 정말 그렇게 갔다가는 난리가 날 수 있어.”
“그렇다고 수호와 승부를 했다가는 오늘 경기를 패배할 수도 있습니다.”
“으음…….”
수석코치의 말에 고민이 되었다.
수호는 양키스의 벤치를 머리 아프게 만들었다.
단순히 제스처 하나로 말이다.
그리고 이건 수호가 노리던 바였다.
‘머리가 아프겠지.’
[당연하지 ㅋㅋ]
[머리 깨질 거다.]
[시간은 없고 관중들 반응은 역대급이니까.]
[여기에서 승부해도 문제고 그냥 내보내도 문제임.]
[진퇴양난이지.]
[올~ 사자성어도 아냐?]
[ㅋㅋㅋ 이 저도는 기본이지.]
레전드들 역시 강 건너 불구경을 하고 있었다.
양키스 벤치가 머리 아파하는 게 멀리서도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결단을 내렸다.
‘과연 어떻게 나올까?’
사인을 보내는 그들을 보며 수호가 타석으로 들어갔다.
만약 저 사인이 고의사구라면 자신은 타격할 기회가 없을 거다.
구심이 1루를 가리킬 테니 말이다.
하지만 타석에 설 때까지 구심의 반응은 없었다.
[올~]
[계획대로 됐네?]
통했다.
스스로 생각해서 내밀었던 도박의 한 수가 말이다.
* * *
-고의사구는 없습니다!!
캐스터의 목소리 톤이 높아졌다.
그만큼 양키스의 선택은 많은 관심을 모았다.
-결국 양키스가 자존심을 택했습니다!
-이게 당연한 거죠! 아무리 한수호 선수가 무섭더라도 다른 곳도 아니고 양키 스타디움에서 예고 홈런을 선언했는데! 양키스가 피하면 안 됩니다!!
만약 수호가 필리스의 홈구장에서 예고 홈런을 선언했다면 이야기는 달랐을 거다.
다른 곳도 아니고 양키 스타디움에서 예고 홈런을 했다는 게 그들의 자존심을 제대로 건드렸다.
-고의사구를 택하진 않았지만, 쉬운 승부도 해오진 않을 겁니다.
해설위원의 말은 사실이었다.
뻐어억-!!
“볼.”
-초구 볼입니다. 구속은 97마일의 빠른 공이 외곽에 꽂힙니다!
-비록 볼이 되었지만, 분명한 건 승부할 생각도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아직까지는 긴가민가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2구가 미트에 꽂히는 순간 모든 사람의 머리에 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뻐어어억-!!
“스트라이크!!”
-2구 스트라이크입니다! 몸쪽 묵직하게 꽂히는 패스트볼!!
-양키스가 한수호 선수와 승부를 결정 지은 거 같습니다!!
양키스가 승부수를 던졌다는 것을 말이다.
* * *
수호가 타석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배트를 가볍게 돌리며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원하는 스토리대로 흘러가고 있다.’
[원하는 밥상이 차려졌지.]
[반찬도 모두 올라왔고.]
[이제 숟가락만 뜨면 된다.]
[야, 우리는 포크로 찍어야 한다고 해야 하지 않냐?]
[아~ 거참! 뭐 그런 걸 따져!!]
이런 순간까지 저런 만담이라니.
덕분에 긴장이 풀렸다.
[예고 홈런이란 거에 너무 잡혀 있지 않아도 된다.]
요기 베라의 조언이었다.
[하지만 해야지.]
뒤이어 베이브 루스가 말했다.
[맞아. 네가 불 질렀으니. 알아서 꺼야지.]
테드 윌리엄스의 말이었다.
[간지 나게 때리고 와라.]
타이 콥의 채팅까지 올라갔다.
알고 있다.
남자답지 못하게 여기에서 우는소리를 할 생각은 없었다.
애당초 그럴 생각이었다면 처음부터 그런 짓을 하지 않았을 거다.
자신이 없었다면 예고 홈런 같은 미친 짓은 하지 못했을 거다.
‘다녀오겠습니다.’
마음을 다잡고 타석에 섰다.
“후우……!”
깊게 숨을 몰아쉬고 배트를 쥐었다.
타격 자세를 취하자 마운드에 있는 3선발 투수, 마이클 워커가 사인을 교환하고 세트포지션에 들어갔다.
‘두 명의 타자를 연속으로 출루시켰다. 정상 컨디션이 아니란 소리다. 하지만 나한테 던진 두 개의 공은 상태가 좋았어.’
원래 좋은 공을 던지는 투수다.
처음에는 긴장해서 제대로 기량 발휘를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수호 본인에게 던진 공을 봤을 때 분명 구위가 좋았다.
‘앞에 두 사람에게 던진 공은 논외로 봐야겠지.’
녀석의 컨디션이 최상이라 생각하고 상대할 필요가 있었다.
‘볼카운트는 원볼 원스트라이크.’
워커가 마운드 위에서 1루와 2루에 있는 주자들을 눈으로 확인했다.
견제구를 던질 생각은 없을 거다.
지금은 오로지 자신과 상대해야 할 테니 말이다.
‘몸쪽 승부도 피하지 않을 거다.’
2구에 몸쪽을 던졌기에 바로 오지는 않더라도 언제든지 올 가능성이 높았다.
그때 베이브 루스의 채팅이 올라갔다.
[너무 생각을 깊게 하지 마.]
[ㅇㅇ 동물이 되었다 생각하고 쳐라.]
[너의 그 본능적인 타격을 믿어.]
본능적인 타격.
맞았다.
언제부터 이렇게 생각하면서 때렸을까?
수호는 머리에서 생각을 비웠다.
그리고 집중력을 일깨우며 본능만을 남겼다.
‘어디로든 와라.’
그의 눈이 빛났다.
‘반드시 넘겨주마.’
사냥감을 기다리는 맹수의 것처럼.
그때 워커가 슬라이드 스텝을 밟았다.
타닥!!
스트라이드를 내디딘 그가 있는 힘껏 공을 뿌렸다.
“흡!!”
쐐애애애액-!!
워커의 손을 떠난 공이 매서운 속도로 날아들었다.
코스는 수호의 몸쪽을 파고드는 공이었다.
그걸 본 순간 수호의 머리에서 위험신호가 울렸다.
‘2구 연속 몸쪽이라고?’
아무리 허를 찌르는 작전이라 해도 자신에게 두 번 연속 몸쪽 공을 던지지는 않을 거다.
무엇보다 자신의 본능이 위험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나라면…….’
타닥!
수호는 본능적으로 오픈 스탠스가 아닌 클로즈드 스탠스를 디뎠다.
클로즈드 스탠스는 몸쪽이 아닌 바깥쪽으로 흘러나가는 공을 때리기 위한 스탠스였다.
그리고 이런 수호의 선택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휘릭!!
홈플레이트로 날아오던 공이 바깥쪽으로 휘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워커의 주 무기 중 하나인 프리즈비 슬라이더였다.
횡의 변화가 심해 마치 사이드암이 던지는 것과 같은 효과를 보였다.
지금 역시 수호에게서 도망쳐 가장 먼 곳으로 휘어져 나갔다.
평소의 스탠스였다면 공을 놓쳤을 거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바깥쪽으로 휘어져 나가는…….’
휘릭!
정확히 클로즈드 스탠스를 밟으며 히팅 포인트를 바깥쪽으로 만들어냈다.
‘공을 던지게 하겠지!’
부앙!!
사실 수호는 본능에만 맡기지 않았다.
경험이 쌓이면서 자연스레 예측을 하게 되었고 본능과 섞이면서 바깥쪽 코스를 정확히 노렸다.
그렇게 돌아간 배트는 맹수의 발톱처럼 미트로 들어가려던 공을 낚아챘다.
딱!!
-때렸습니다!!
경쾌한 소리와 함께 날아가는 타구가 보였다.
그것을 본 순간 수호는 느꼈다.
‘넘어갔다.’
마지막 순간까지 팔로스로를 끝낸 수호는 돌아오는 배트를 쥔 손에 힘을 풀었다.
휘릭!!
-한수호 선수는 배트를 던졌고!!
카메라가 허공에서 화려하게 회전하는 배트와 우중간 펜스를 향해 날아가는 타구를 동시에 쫓았다.
-타구는……! 우측 담장! 우측 담장!! 우측 담장을……!!
캐스터의 숨이 넘어가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기다란 외침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공이 펜스 밖, 관중석에 떨어지는 순간.
-넘어갔습니다!!!!
“와아아아아아!!”
캐스터의 외침과 동시에 관중석에서도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한수호 선수가 그것도 양키 스타디움에서!! 예고 홈런을 성공시킵니다!!
또 한 번의 사건이 터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