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후 메이저리거 163화
수호와 저지의 홈런이 터졌다.
하지만 차이가 있었다.
-스코어는 2 대 1! 양키스가 저지의 투런포로 1점을 앞서나가고 있습니다!
-한수호 선수의 따라가는 점수가 바로 터졌지만, 아쉽게도 동점이나 역전으로 이어지지는 못했습니다.
-그의 앞에 주자가 출루에 성공하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주자가 나갔던 저지와 그러지 못했던 수호.
이것은 1점이란 차이를 만들어냈다.
문제는 오늘 경기의 수준이 매우 높게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퍽!!
-몸을 날려 공을 잡아내는 3루수 브룩스! 역동작에서 그대로 1루로 공을 던집니다!!
퍽!
“아웃!!”
-아웃입니다!! 환상적인 캐치로 세 번째 아웃 카운트를 잡아내는 필리스!!
필리스가 호수비를 보여주면.
퍽!
“아웃!!”
-유격수 공을 잡아 2루로! 첫 번째 아웃 카운트가 올라가고 2루수는 곧장 1루로 공을 뿌립니다!
퍽!
“아웃!!”
-아웃입니다! 더블플레이가 만들어지면서 양키스가 필리스의 공격 기회를 삭제합니다!!
양키스 역시 호수비로 돌려주었다.
두 팀의 수준 높은 플레이는 팬들을 열광하게 만들었다.
문제는 이런 경기가 이어지면서 1점이란 차이가 좁혀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두 팀이 실수 없는 경기를 펼치면서 1점이 좁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한수호 선수의 차례가 와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1점이 뒤진 상황이었지만, 필리스 팬들이나 선수들은 조급해하지 않았다.
수호가 타석에 들어선다면 그가 어떻게든 해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호의 세 번째 타석이 돌아왔다.
-한수호 선수가 1사 상황에 타석으로 들어섭니다.
-1루에는 브라이스 하퍼가 출루에 성공한 상황, 마운드에는 오늘 경기 단 1실점으로 필리스 타선을 잘 막아낸 코스타의 뒤를 이어 마르텐 데 로예가 마운드에 오릅니다.
-네덜란드 출신인 마르텐은 올 시즌 훌륭한 시즌을 보내면서 양키스 불펜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네덜란드 출신 메이저리그.
흔한 건 아니었지만, 없는 것도 아니었다.
간혹 뛰어난 선수들이 나타나니까 말이다.
투수가 바뀌었다는 사실에 필리스 팬들은 기대했다.
“수호가 이번 이닝에 한 방 날리면 역전이야!”
“맞아! 투수까지 바꾸었으니, 상대하겠단 소리겠지!”
“이번에 역전 가자!!”
하지만 팬들의 기대는 금방 깨졌다.
-아-! 여기에서 구심이 1루를 가리킵니다!
-투수를 교체했지만, 한수호 선수와의 승부는 하지 않는 양키스입니다!!
-냉정하게 말씀드리면 이게 당연한 겁니다. 지금 상황에서 양키스는 한수호 선수와 승부를 할 이유가 없어요!
카메라에 잡힌 장비를 벗는 수호의 모습이 씁쓸해 보였다.
* * *
1차전이 끝났다.
[뉴욕 양키스가 필라델피아 필리스를 2 대 1로 누르고 월드시리즈 1차전을 승리로 가져갔습니다.]
[기대를 모았던 애런 저지와 한수호 선수의 대결에서 두 선수 모두 홈런을 때려냈지만, 애런 저지는 2점 홈런을, 한수호 선수는 솔로 홈런을 기록하면서 승부가 갈렸습니다.]
[이후 한수호 선수를 상대로 뉴욕 양키스는 2개의 고의사구를 던지면서 그와의 승부를 피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한편 이번 시즌 맥과이어와 소사의 대결을 재현하면서 배리 본즈를 넘어선 한수호와 애런 저지의 승부로 관심이 모인 이번 1차전을 중계한 폭스스포츠는 전국 시청률 27.2퍼센트를 기록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는 1980년대 이후 처음으로 20퍼센트를 돌파한 기록으로 집계되었습니다.]
1차전 승리는 양키스로 돌아갔다.
수호가 어떻게든 되돌리려 했지만, 그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1차전을 뺏긴 필리스 입장에서는 다소 급해졌다.
2차전에서 최소한 월드시리즈를 원점으로 돌려야 했다.
만약 이에 실패한다면 양키스의 홈구장인 뉴욕으로 간 뒤에는 시리즈가 끝날 수 있었다.
당연히 필리스 선수들은 어떻게든 경기를 뒤집기 위해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하지만 그건 양키스 선수단 역시 마찬가지였다.
“자!! 하나만 막자!!”
“하나만 막자!!”
“막자!!”
-양키스 선수들이 수비를 하며 기합을 외치고 있습니다.
-시리즈에서 이기고 있는데도 양키스는 방심하지 않고 있습니다.
두 팀 모두 2차전에서도 수준 높은 경기력을 선보였다.
마치 오늘 경기가 마지막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들은 빈틈없는 수비와 공격을 펼치며 박빙의 경기를 이어나갔다.
딱!!
-때렸습니다!! 브라이스 하퍼의 안타!! 2사 이후 좋은 기회를 잡는 필리스입니다!
-끝까지 물고 늘어진 브라이스 하퍼의 끈기가 만들어낸 안타입니다!
수준높은 경기를 이어나가던 두 팀 중 먼저 기회를 잡은 건 필리스였다.
스코어는 1 대 1의 상황에서 수호의 앞에 주자가 나갔다.
-그리고 타석에는 한수호 선수가 들어섭니다!
-오늘 경기 1안타 1볼넷 1득점 경기를 펼치고 있는 그에게 타점의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수호는 오늘 경기에서 이미 1득점을 기록했다.
처음에는 양키스가 또 피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그들은 승부를 걸어왔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야기가 달랐다.
-아-! 다시 고의사구 사인이 나왔습니다! 구심이 1루를 가리키면서 한수호 선수가 장비를 벗고 있습니다!
-양키스가 주자 있는 상황에선 한수호 선수와의 승부를 피하고 있습니다.
이걸로 양키스의 전략을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주자가 있을 때는 나와 승부를 피한다는 소리네.’
[와~ 치사한 새끼들 ㅋㅋ]
[그런데 나도 감독이었으면 이렇게 했겠다.]
맞는 말이다.
양키스의 선택은 규칙을 위반한 게 아니었다.
팬들의 비난을 살 순 있지만, 그렇다고 선수로서 이의를 제기할 순 없었다.
“우우우우우-!!”
“꺼져라!! 양키 새끼들아!!”
“너희가 무슨 악의 제국이냐?!!”
“이게 야구야?!”
“우린 야구를 보러 왔다!!”
“정정당당하게 붙어라!!”
물론 필리스의 팬들은 엄청난 야유를 쏟아냈다.
하지만 수호는 묵묵히 장비를 벗고 1루로 걸어 나가 다음 플레이를 준비했다.
저들의 선택에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다.’
기회가 오기를 기다리는 것밖에는 말이다.
* * *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필라델피아 필리스 월드시리즈 홈경기로 치러진 1, 2차전에서 모두 패배!]
내셔널리그 챔피언 필라델피아 필리스가 2연패를 당했다.
월드시리즈라는 무대.
그리고 홈 어드밴티지를 얻은 1, 2차전을 모두 내주었음을 감안할 때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1, 2차전의 경기 내용 자체는 비판받을 곳이 없었다.
두 팀 모두 집중력 있는 경기를 펼치면서 수준 높은 플레이들을 보여주었다.
이게 메이저리그구나!
이게 월드시리즈 경기구나!
이런 말들이 연달아 나오는 경기들이었다.
문제는 양키스와 한수호에게 있었다.
[결정적인 순간마다 한수호와 승부를 피한 양키스!]
[월드시리즈 우승을 위해 자존심을 버린 뉴욕 양키스! 과연 진정한 승리라 할 수 있는가?]
[뉴욕 현지에서도 비난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중!]
[고의사구 작전, 과연 시대에 맞는 발상인가?]
필리스가 패배한 이유는 명백했다.
수호에게 기회가 찾아올 때마다 양키스가 승부를 피했기 때문이다.
만약 양키스가 승부를 피하지 않았다면 경기는 최소한 1승 1패로 대등하게 펼쳐졌을 거다.
그러나 양키스는 아예 그런 단초를 제공하지 않았다.
수호가 타석에 들어올 때 주자가 있다면 양키스는 뒤도 보지 않고 고의사구를 지시했다.
그 결과 수호는 2경기에서 단 1타점을 올리며 팀의 공격에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리고 이런 장면은 팬들을 실망시키기에 충분했다.
[월드시리즈 2차전, 전국 시청률 12.4퍼센트 기록!]
[1차전 27.2퍼센트 대비 14.8퍼센트 하락한 수치!]
[전문가들 한목소리로 ‘양키스의 고의사구 작전은 팬들이 원하는 야구가 아니다’라고 양키스의 선택을 비판!]
[일각에서는 ‘고의사구 역시 야구의 한 부분이다. 그걸 비난해서는 안 된다’라고 하기도.]
의견은 갈렸다.
하지만 압도적으로 많은 이들이 양키스의 선택을 비난했다.
그러나 결과는 바뀌는 게 없었다.
[1, 2차전을 잡은 양키스가 월드시리즈 우승트로피를 차지할 가능성은 88퍼센트!]
[3차전을 승리로 가져오지 못할 경우 사실상 월드시리즈 우승은 힘들어진다!]
[역대 메이저리그 역사상 3연패 이후 4연승 우승은 전례가 없다!]
언론들은 과거의 데이터를 모두 꺼내오면서 3차전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다.
그만큼 홈경기 2연패는 필리스에게 뼈아픈 결과였다.
당연히 이동하는 비행기의 선수들 역시 분위기가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와…… 다들 말 한마디 없네.]
[그러게 말이야.]
[필리스 비행기가 이 정도로 조용한 건 오랜만인 듯?]
[사실상 시즌 후반에는 한 번도 없었지.]
레전드들의 채팅대로였다.
선수들은 누구 하나 입을 열지 않았다.
마치 입을 열면 안 된다고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수호 역시 이런 분위기에는 굳이 입을 열지 않았다.
아니, 그럴 정신이 없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이미 다음 경기를 생각하느라 정신이 없었으니까.
‘양키스는 계속 절 상대하지 않겠죠?’
[ㅇㅇ 그렇겠지.]
[걔네들이 너와 상대하는 건 결국 주자가 없을 때임.]
[그것도 1점 차 승부일 때는 안 할걸?]
[하긴, 2차전에서도 그랬지.]
2차전에서 수호가 타점이 없었던 이유는 양키스가 교묘하게 승부를 피했기 때문이다.
아마 3차전에서도 그럴 가능성이 컸다.
‘그럼 결국 저는 이대로 지켜볼 수밖에 없다는 거군요.’
[방법이 없긴 하지.]
[고의사구가 규칙을 어기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양키스가 승부를 피하긴 했지만, 잘못한 건 아니니까.]
레전드들도 수호의 편만을 들을 수 없었다.
규칙에 어긋나지 않는 이상 그들이 잘못한 건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 말을 들은 수호는 한 가지 생각이 번뜩였다.
‘즉, 규칙을 어기지만 않으면 된다는 거군요.’
[응? 맞지.]
[규칙이 우선이긴 하지.]
[그런데 왜?]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 * *
월드시리즈 3차전이 열리는 양키 스타디움.
뉴욕 양키스의 홈구장이자 텃밭이었다.
필리스 팬들이 원정을 오기는 했지만, 응원에서부터 압도적으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
“오늘 경기로 끝내자!!”
“필라델피아 촌놈들한테 기회도 주지 마라!”
“제왕 양키스 나가자!!”
양키 스타디움 대부분을 채운 뉴욕 팬들의 함성이 쏟아졌다.
하지만 이런 응원에 주눅이 들 정도였다면 필리건이란 이름으로 불리지 않았을 거다.
“저 겁쟁이 뉴욕 도시 새끼들 목을 따버려!!”
“누가 우리 필라델피아 보고 촌놈이라 했냐?!!”
“야 이 새끼들아! 한판 뜰까?!”
“고의사구나 던지는 놈들이 말이 많다!!”
“아가리 좀 닫아라, 새끼들아!!”
“어디서 꼬랑내 안 나냐?! 매일 뉴욕 치즈나 퍼먹는 놈들이 입을 여니까! 아주 냄새가 고약하네!!”
“뭐라고?!”
“어디서 눈을 부라려? 확마!!”
선수들이 경기를 시작하기 전부터 팬들의 난투극이 시작될 거 같았다.
분위기가 살벌했지만, 타석에 들어서는 필리스 선수들의 집중력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았다.
‘오늘 경기에서 지면 모든 게 끝난다.’
선두타자로 들어선 조니 로버트는 배트를 바라보며 집중력을 올렸다.
‘반드시 출루해야 해.’
자신이 출루해도 해결이 될지는 몰랐다.
하지만 포기할 순 없었다.
일단 출루해야 하는 자신의 임무를 수행해야 했다.
그리고 조니 로버트는 그 임무를 수행할 능력이 충분히 있는 선수였다.
퍽!
“볼, 베이스 온 볼.”
-볼넷입니다! 첫 타자 조니 로버트가 6구 승부 끝에 볼넷으로 출루에 성공합니다!!
-경기 시작부터 좋은 찬스를 잡는 필라델피아 필리스입니다!!
기회가 이어졌다.
그리고 타석에는 슈퍼스타 하퍼가 들어섰다.
‘자식, 그런 집중력 있는 모습을 보인다면…….’
하퍼는 로버트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
“흡!!”
쐐애애액-!!
투수가 던진 공에 하퍼의 배트가 매섭게 돌아갔다.
후웅!!
딱!!
‘나도 실력 발휘를 해야 하잖아!!’
-때렸습니다!! 좌익수 앞에 떨어지는 안타! 조니 로버트의 출루에 이어 안타를 때려내는 브라이스 하퍼!! 무사 1, 2루 찬스를 맞이합니다!!
절호의 찬스를 잡은 필리스.
그리고 타석에는 이 찬스를 해결해 줄 선수가 들어오고 있었다.
-타석에 한수호 선수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그를 비추던 화면이 양분되어 양키스 더그아웃을 비추었다.
그곳에는 구심을 향해 손짓을 하려는 감독이 보였다.
-아~ 또 고의사구를…….
캐스터가 고의사구를 입에 담으려는 그 순간이었다.
-어? 저게 뭐죠?
왼쪽 화면에 잡히고 있던 수호가 배트를 어깨에 걸친 채로 왼손 검지로 외야를 가리켰다.
-이건 마치 베이브 루스의 예고 홈런을 연상케 하는 장면입니다!!
예고 홈런.
베이브 루스의 상징과도 같은 장면이 된 그 모습을 재현하고 있었다.
다른 곳도 아닌 베이브 루스의 홈그라운드인 양키 스타디움, 그것도 월드시리즈에서 말이다.
그 모습을 본 관중들은 입을 다물었고 고의사구를 지시하려던 감독도 움직임을 멈췄다.
마치 시간이 멈춘 것 같은 그라운드에서 수호의 눈에만 보이는 채팅이 올라갔다.
[베이브 루스 : 미친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