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후 메이저리거 161화
양키스의 배터리는 신중했다.
‘몸쪽?’
‘아니. 녀석에게 몸쪽은 위험해.’
메이저리그 최고의 투수란 간판이 붙은 안드레아 코스타.
복수심에 불타고 있는 그였지만, 그렇다고 흥분하거나 무모한 접근을 하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더 냉정하게 접근했다.
‘한수호는 엄청난 타자다. 아주 미세한 틈이라도 보인다면 녀석은 다시 내 공을 담장 밖으로 날려 버릴 거야.’
한 번 패배했기에 알 수 있다.
수호가 괴물이란 걸.
그 괴물을 잡으려면 최선의 수를 만들어야 했다.
‘아웃코스?’
‘그래.’
‘포심으로 갈래?’
‘아니. 슬라이더로 가겠어.’
코스타의 주 무기 중 하나인 슬라이더.
포심처럼 날아오다 급격하게 변한다.
그래서 커터와 혼동하기도 했다.
하지만 커터보다는 회전수가 높아 변화가 더 컸다.
‘오케이.’
포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준비는 끝났다.
이제 승부를 할 시간이었다.
“후우…….”
오랜 시간 기다렸다.
수호에게 복수하기를.
이제 그 시간이 다가왔다.
가슴이 떨렸다.
두려워서가 아니다.
녀석을 잡을 기회가 생겼기 때문이다.
두려움이 아닌 설렘이었다.
‘잡는다.’
정신을 집중했다.
와인드업에 이어 킥킹에 들어갔다.
촤앗-!
장신의 코스타가 다리를 차올리는 모습은 박력 있었다.
힘을 모아 그대로 무게중심을 옮겼다.
자연스레 몸이 앞으로 무너졌다.
스트라이드를 내디뎠다.
콰직!
발이 마운드에 닿으며 몸이 앞으로 쏠렸다.
발을 지면에 고정한 채 하체를 회전시켰다.
휘릭!!
뒤이어 회전을 상체로 올렸다.
힘이 이동하는 게 느껴졌다.
허리, 상체, 어깨를 지나 손끝으로 이동했다.
“흡!!”
촤아앗-!!
기합과 함께 힘을 방출시켰다.
손끝으로 마지막까지 실밥을 긁어냈다.
그 결과.
쐐애애애액-!!
공이 매섭게 날아갔다.
엄청난 속도였다.
눈 한 번 깜빡이자 어느덧 홈플레이트 앞으로 다가왔다.
수호는 이미 시동을 걸었다.
‘아웃코스.’
눈이 공의 속도를 따라갔다.
발을 지면에 고정하고 하체를 회전시켰다.
팔을 몸에 붙이고 상반신을 회전시켰다.
하지만 배트는 돌지 않았다.
모든 힘을 집중시켜 한 번에 돌리는 게 수호의 스윙이었다.
그때였다.
휘릭!!
공의 궤적이 변했다.
아웃코스에서 휘어져 밖으로 도망쳤다.
마치 술래잡기를 하는 거 같았다.
하지만 이건 술래잡기가 아니다.
집에 들어오는 도둑을 잡는 거다.
굳이 도망치는 도둑을 쫓을 필요는 없었다.
우뚝!!
회전하던 수호의 상체가 멈췄다.
금방이라도 나갈 거 같던 배트가 움직이지 않았다.
뒤이어 공이 미트에 꽂혔다.
뻐억!!
굉장한 소리였다.
소리만 들었다면 슬라이더가 아니라 포심이라 해도 믿었을 거다.
“볼.”
하지만 소리와 달리 결과는 코스타가 원하는 대로 나오지 않았다.
‘좋은 공이었지만, 내 스윙은 배트가 먼저 나가는 게 아니야.’
만약 배트와 상체의 회전이 비슷하게 이루어지는 스윙이었다면, 헛스윙이 됐을 거다.
수호였기에 멈출 수 있었다.
그의 시선이 전광판으로 향했다.
‘슬라이더의 구속이 91마일이라……. 이러니 한 시즌에 300개 이상의 탈삼진을 잡아내는 거지.’
[거의 월터 존슨 수준이네.]
[빅 트레인의 구속과 닮아 있다.]
[확실히 요즘 애들의 공이 무섭긴 하다니까.]
월터 존슨.
1900년대 초반을 주름잡던 투수 중 한 명이다.
그와 비교하다니.
대단한 재능인 건 분명했다.
‘확실히 좋은 공이야. 이전과 공의 성격 자체도 바뀌었다.’
코스타와의 첫 싸움은 지금도 기억에 남았다.
양키스의 에이스.
아메리칸리그 최고의 투수.
그런 선수와의 만남이었기에 긴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는 수호의 완승이었다.
2타수 2안타 1타점.
그런 결과가 나온 이유는 하나다.
‘당시의 녀석은 방심했었다. 그래서 1차원적인 승부를 해왔지.’
자신은 루키였다.
당시 주목받긴 했지만, 리그를 정복할 거란 생각은 누구도 못 했다.
코스타 역시 마찬가지였다.
4연타석 홈런이 인상 깊긴 했지만, 그게 전부였다.
자신의 상대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1차원적인 승부를 펼쳤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딱!!
“파울!!”
-2구 마지막 순간에 떨어지는 체인지업! 빗맞히면서 타구가 파울라인에 떨어집니다!
-코스타의 공이 위력적이네요. 무엇보다 정면승부보다는 볼 배합을 잘해나가면서 한수호 선수의 허를 찌르고 있습니다.
정면승부는 최대한 피했다.
3구, 4구 역시 장기인 패스트볼이 아니라 브레이킹볼을 위주로 던져왔다.
딱!!
“파울!”
-4구 역시 파울입니다! 볼카운트는 여전히 원볼 투스트라이크! 한수호 선수가 이렇게 애를 먹는 건 처음 보는 거 같습니다!
-확실히 코스타 선수의 피칭이 매섭습니다. 무엇보다 볼 배합이 인상적이네요!
압도적인 AL사이영상.
그 명함이 괜히 생긴 게 아닌 듯했다.
확실히 좋은 공들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설 순 없었다.
“후우…….”
수호가 심호흡을 뱉고 타석에 섰다.
더욱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반드시 출루한다.
1회 저지가 안타를 때리지 못했을 때 확실히 분위기를 가져올 필요가 있었다.
그래야 이번 1차전을 쉽게 가져갈 수 있었다.
‘여기까지 날 몰아넣었으니…….’
‘여기까지 몰아넣은 이상…….’
‘잡으려 할 것이다.’
‘반드시 잡겠어!’
원볼 투스트라이크.
투수에게 유리한 카운트다.
에이스급 투수라면 반드시 잡아내고 싶을 것이다.
한수호라는 대어를 말이다.
여기까지는 쉽게 예측이 가능했다.
‘문제는 어떤 공을 던지느냐인데.’
수호는 코스타의 생각을 읽어내려 했다.
여기에서 어떤 공을 던질까?
[포심 아니겠음?]
[ㅇㅈ]
[쟤의 가장 큰 무기잖아.]
[너한테 아직 안 던졌으니 포심으로 나올 가능성이 높겠네.]
레전드들의 조언이 이어졌다.
수호 역시 비슷한 생각이었다.
자신에게 던진 4개의 공이 모두 브레이킹볼이었다는 점.
그리고 그가 자신을 꼭 잡고 싶어 한다는 점.
두 가지 이유가 겹쳐 포심에 마음이 기울었다.
‘포심으로 간다.’
결정을 내린 수호가 타격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사인을 교환한 코스타가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잡는다.’
의지를 다지고 5번째 공을 뿌렸다.
“흡!!”
쐐애애액-!!
그의 손을 떠난 공이 매서운 속도로 날아들었다.
코스는 아웃코스 낮게 들어왔다.
‘포심!’
공의 변화는 크지 않았다.
스트레이트 형식으로 들어오는 공에 수호가 스트라이드를 내디뎠다.
타닥!
그리고 있는 힘껏 배트를 돌렸다.
후웅!!
그의 배트가 홈플레이트 뒤를 막 지날 때였다.
휘릭!!
홈플레이트 바로 앞에서 공에 변화가 생겼다.
좌우의 횡적인 변화가 아닌 밑으로 뚝 떨어졌다.
시야에서 사라질 뻔도 했지만, 수호의 상체가 뒤에 있었기에 공이 떨어지는 걸 확인했다.
‘스플리터?’
예상하지 못했던 공이다.
코스타는 이번 시즌 스플리터를 던진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보지도 못했던 공이기에 예상하기도 힘들었다.
하지만 수호의 운동능력이 그 공에 반응을 일으켰다.
무게중심을 낮추고 스윙의 궤적을 바꾸었다.
전력으로 배트를 돌리는데 궤적을 바꾸는 건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타고난 힘과 하체, 그리고 손목 힘이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
딱!!
-때렸습니다!!
공을 때려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궤적을 바꾼 탓에 정타는 만들어지지 않았다.
[달려!!]
[뛰어라!!]
[넘어가진 않는다!]
[하지만 빠질 거임!!]
레전드들의 채팅이 빠르게 올라갔다.
수호도 같은 생각이었다.
정타는 아니지만, 충분히 장타는 만들어낼 수 있는 코스였다.
수호가 속도를 높였다.
빠지는 코스에 따라 3루나 홈까지 노릴 생각이었다.
그리고 속도를 높이는 선수가 한 명 더 있었다.
“내가 잡겠어!!”
바로 애런 저지였다.
-펜스 앞에 자리했던 애런 저지가 달려 나옵니다!
수호의 장타력을 의식해 우익수 애런 저지는 펜스 바로 앞에 위치해 있었다.
하지만 타구는 앞으로 떨어지는 중이었다.
만약 그가 정상적인 우익수 위치였다면 잡는 데 무리가 없었을 거다.
-전력으로 달려 나오는 애런 저지! 과연 잡을 수 있을 것인가?!
달려 나오던 애런 저지가 육중한 몸을 날렸다.
슈퍼맨처럼 날아오른 그가 글러브를 뻗었다.
퍽!!
촤아아앗-!!
그의 몸이 그라운드 위에 떨어져 앞으로 미끄러졌다.
카메라가 그런 애런 저지를 클로즈업했다.
그때 치켜든 글러브 사이로 공이 보였다.
-잡았습니다!! 애런 저지의 슈퍼플레이로 한수호 선수의 안타가 지워집니다!!
-정말 엄청난 플레이가 나왔습니다! 2m에 달하는 애런 저지가 슈퍼맨 캐치를 하다니! 오늘 경기 최고의 명장면이 아닐까 싶습니다!
-코스타 선수의 스플리터 역시 대단했습니다. 설마 저 선수가 월드시리즈에서 스플리터를 던질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코스타 선수가 스플리터를 던졌었나요?
-메이저리그에 데뷔했던 해에 잠깐 던졌었습니다. 하지만 부상의 위험 때문에 봉인했었죠.
-그 공을 월드시리즈에서 던졌다는 거군요.
-한수호 선수를 잡기 위해서는 허를 찔러야 한다고 생각한 듯합니다.
-그럼 한수호 선수는 올 시즌 처음 보는 코스타의 스플리터를 받아쳐 외야까지 공을 날려 보낸 거란 소립니까?
-맞습니다. 정말 대단한 선수들입니다.
코스타가 던진 스플리터.
올 시즌 처음 본 그것을 받아쳐 외야로 날려 보낸 수호.
거기에 장신의 애런 저지가 슈퍼맨 캐치로 그걸 잡아내는 모습까지.
-이게 바로 월드시리즈입니다!! 엄청난 플레이들을 보여주는 선수들에게 관중들이 기립박수를 보내고 있습니다!!
-1회부터 선수들의 엄청난 플레이가 나오면서 관중들을 흥분시키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환상적인 플레이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그 플레이를 만들어낸 선수들은 각자의 생각을 가지며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부상의 위험 때문에 봉인했던 스플리터를 던졌는데도 그걸 안타로 만들어냈다고?’
코스타는 이를 악물었다.
비록 정타는 아니었지만, 처음 본 비장의 무기를 외야로 날려 보냈다.
그것이 충격이었다.
‘다음 타석에는 반드시 삼진을 잡겠어.’
그가 다짐을 하는 사이.
수호 역시 자신의 손에 남은 감각을 느끼며 더그아웃에 들어갔다.
‘스플리터라. 생각보다 까다로운 공이야. 이번 대회에서 저 공을 던진다면 상당히 고전하겠는데.’
수호는 자신의 데이터에 코스타의 스플리터를 입력했다.
그것을 치기 위해서는 이전 기억에 남아 있던 코스타의 이미지를 바꿀 필요가 있었다.
‘다음 이닝에는 반드시 넘겨주겠어.’
결국 저 괴물 같은 코스타를 넘어야 이번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슈퍼맨 캐치로 수호를 아웃으로 돌려보낸 애런 저지 역시 다음 타석을 기약했다.
‘수호가 홈런을 때려내기 전에 내가 먼저 기록해야 한다. 그래야 이번 월드시리즈의 분위기를 가져올 수 있어.’
각자의 생각과 각오를 다지면서 더그아웃에 들어가는 그들을 카메라가 잡으며 1회가 마무리됐다.
시작부터 관중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플레이로 집중도를 끌어올린 세 사람의 플레이에 다른 선수들 역시 자극을 받았다.
그리고 그 자극은 그들의 플레이에 집중력을 더하게 만들었다.
-숨이 막힐 듯한 선수들의 1회 플레이가 마무리됐습니다!
월드시리즈는 이제 막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