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후 메이저리거 158화
“플레이볼!”
구심의 외침과 함께 경기가 시작됐다.
-경기 시작됐습니다! 오늘 경기 다저스의 선발은 예정대로 라이언 윌슨이 등판합니다.
-커브가 일품인 선수입니다만, 기세가 오른 필리스를 잡을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다저스는 오늘 총공세를 예고했습니다. 여차하면 불펜의 모든 선수가 총출동할 겁니다.
-오타니 선수는 내일 경기에 예정되었죠?
-맞습니다. 그래서 오늘 경기 상황이 어떻게 진행되든 등판이 어렵습니다.
다저스는 결국 오타니를 대기 명단에서 뺐다.
그를 5차전에 등판시킨다는 계획이었다.
타자이자 우익수로 출전한 오타니가 외야에서 글러브를 고쳐 끼며 집중력을 올렸다.
‘오늘 경기에서 반드시 이겨서 역전의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 이대로 스윕을 당할 수는 없어.’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오타니만이 아니었다.
‘4승 0패로 지는 건 있을 수 없다.’
‘어떻게든 1승을 올려야 해.’
‘오늘 경기에서 실책이 나오면 앞으로 팬들에게 얼굴을 들 수 없을 거야.’
‘반드시 이긴다.’
다저스 선수단 전체가 같은 생각이었다.
그래서일까?
딱!!
-때렸습니다! 잘 맞은 타구!!
퍽!
-삼유간을 향해 날아간 타구를 유격수 대니얼 워드가 몸을 날려 잡아냅니다! 그리고 곧장 일어나서 1루로 송구!!
쐐애애액-!
퍽!
“아웃!!”
-아웃입니다! 환상적인 수비로 첫 번째 아웃 카운트를 잡아내는 대니얼 워드!
-이게 바로 메이저리그급 수비입니다!
-다이빙 캐치 이후의 동작이 매우 좋았습니다!
조니 로버트가 아쉽게 돌아섰다.
대단히 좋은 호수비가 나오자 라이언 윌슨의 어깨가 가벼워졌다.
그 결과.
퍽!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삼진입니다!! 슬로우커브를 그냥 보내버린 브라이스 하퍼! 허를 찔렸습니다!
-가장 필요한 순간에 아주 좋은 커브를 던지면서 슈퍼스타 하퍼를 돌려세웁니다.
-하퍼 입장에서는 다소 아쉬움이 남는 타석이었어요.
-벌써 투아웃을 잡아내는 라이언 윌슨! 오늘 다저스의 집중력이 매섭습니다!
다저스의 기세가 올라갔다.
그들도 느끼고 있었다.
오늘 경기 자신들의 집중력이 심상치 않다는 걸 말이다.
하지만 아직 큰 벽이 남아 있었다.
“와아아아아!!”
“한! 한! 한! 한!!”
그 벽이란 다름 아닌 수호였다.
그가 등장하자 관중석에서 엄청난 함성이 쏟아졌다.
-투아웃으로 좋은 분위기를 잡아낸 LA 다저스! 하지만 타석에 이 선수가 들어서기에 아직 안심할 수 없습니다!
레코드 브레이커 한수호 선수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수호의 등장에 라이언 윌슨이 침을 꿀꺽 삼켰다.
등장만으로도 투수를 긴장하게 만드는 타자가 된 수호였다.
‘오늘 다저스의 분위기가 상당히 좋네요.’
[ㅇㅇ 그러게.]
[앞선 치른 경기들과 다르게 매우 좋다.]
[아무래도 지면 끝이니까. 평소보다 집중력이 좋은 듯.]
[문제는 이 집중력이 이어지면 너희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는 거임.]
[기세 타기 시작하면 무섭지.]
레전드들의 말에 동의했다.
기세란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있는 것이었다.
특히 LA 다저스처럼 전력이 좋은 팀들의 경우 한 번 기세를 타기 시작하면 무서워진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 기세를 타기 일보 직전의 상황이었다.
‘결국 제가 해야 한다는 소리네요.’
[그렇지.]
[널 잡으면 저 기세는 시리즈 자체를 집어삼킬 가능성이 크다.]
[원래 전력은 쟤들이 위임.]
[그런 애들이 본격적인 실력을 발휘하는 거지.]
전력의 우위는 다저스가 차지하고 있었다.
단지 수호의 엄청난 활약에 그 전력이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수호를 잡아낸다면?
그래서 기세에 불이 뿜기 시작한다면?
전문가들의 예상대로 흘러갈 가능성이 농후했다.
‘그것만은 막아야죠.’
그걸 알기에 수호는 초반부터 집중력을 높였다.
“후우…….”
1회 초.
2사에 주자는 없다.
무엇보다 선수들의 집중력이 높았다.
다저스의 감독은 생각했다.
‘여기에서 수호를 고의사구로 내보내면 불타오르기 시작한 지금 이 분위기를 깨게 된다.’
사실 4차전을 앞두고 고의사구 작전도 생각하고 있었다.
수호가 인터뷰에서 폭탄 발언을 터트렸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 당장은 치욕보다 1승이 더 중요할 때였으니까.
하지만 이런 상황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녀석을 내보낸다면 기세를 내 손으로 끄게 되는 거다. 그럴 경우 오늘 경기는 그냥 내주게 되어 있어.’
하필이면 이 순간에 기세가 불타오르기 시작하다니.
아쉬울 따름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승부하도록 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승부하라는 사인밖에 없었다.
불타기 시작한 선수들의 의욕을 자신이 나서서 끌 자신은 없었으니 말이다.
‘감독의 허락도 떨어졌겠다.’
새뮤얼의 손이 바쁘게 움직였다.
‘수호를 잡아보도록 하자.’
앞서 나온 동료의 호수비와 파트너인 라이언의 투구를 받아서일까?
오늘 새뮤얼의 자신감은 하늘을 찔렀다.
‘이런 날에는 꼭 사고를 치게 마련이지.’
무엇보다 포수로서의 감이 있었다.
그는 경험 많은 베테랑이었다.
당연히 많은 경험을 했었고 투수들을 만나왔다.
그리고 오늘 라이언의 상태는 매우 좋았다.
‘로버트를 상대할 때는 조금 불안했는데, 대니얼이 호수비로 안타성 타구를 잡아준 게 컸다. 그거 이후로 안정을 되찾았어.’
투수는 멘탈에 좌지우지된다.
특히 수비의 실책에 크게 흔들릴 정도로 외부요인에 큰 영향을 받는다.
반대로 말하면 수비가 잘한다면 투수의 컨디션이 올라간다는 소리다.
그리고 하퍼를 상대할 때 라이언의 투구는 그의 컨디션이 아주 좋을 때의 공이었다.
‘수호라고 해도 쉽게 때릴 수 없을 거다.’
수호를 얕보는 게 아니었다.
정확히 판단하고 있었다.
앞서 3번의 게임에서 그를 상대해 봤기에 뼈에 사무치도록 알게 되었다.
한수호가 얼마나 괴물인지 말이다.
그런데도 라이언에게 기대하는 건 그만큼 그의 공이 좋다는 소리였다.
‘아웃코스 낮게 가자고.’
‘오케이.’
그래도 만에 하나를 위해 아웃코스를 택했다.
이곳이 독이 될 수 있다는 건 이미 경험했다.
그런데도 택한 건 수호의 몸쪽은 지옥과 같았기 때문이다.
‘사막 건너는 게 싫다고 불지옥에 뛰어드는 꼴이지.’
그래도 오늘 라이언의 상태를 봐서는 사막은 아닐 거란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수호라 하더라도 오늘은 쉽지 않을 거다.’
새뮤얼이 미트를 내밀자 라이언이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그리고 킥킹에 이어 모든 힘을 집중시켜 공을 뿌렸다.
“흡!!”
쐐애애애액-!!
그의 손을 떠난 공이 맹렬한 속도로 날아들었다.
정확히 새뮤얼이 원하던 코스였다.
보더라인을 살짝 걸치는 코스였다.
완벽한 공이었다.
역시 오늘 라이언의 상태는 매우 좋았다.
여기까지는 새뮤얼이 모두 의도한 대로였다.
하지만 새뮤얼이 한 가지 간과하고 있는 게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착각이었다.
‘이 공이면 수호라 해도…….’
바로 수호의 한계를 스스로 알고 있다는 착각 말이다.
후웅!!
수호는 끝은 누구도 알지 못했다.
스스로도.
그리고 그를 지켜보는 레전드들도 말이다.
딱!!
-때렸습니다!! 이번 타구 큽니다!!
번개같이 돌아간 배트에 맞은 타구가 끝없이 날아갔다.
그 모습은 마치 불타오르던 다저스의 기세를 그대로 꺼버리는 강력한 물줄기와 같았다.
-우측 담장을 넘어갑니다!! 한수호 선수가 첫 타석에서부터 홈런을 추가하며 이번 포스트시즌에서만 6개의 홈런을 기록합니다!!
6홈런.
그리고 이 기록을 달성함과 동시에 불타오르던 다저스의 기세를 꺼버리는 수호였다.
* * *
야구에는 흐름이란 게 있다.
그 흐름을 타기 시작하면 경기는 한 번에 기울 수 있었다.
방금 전 타올랐던 다저스의 기세가 바로 그런 흐름을 잡아가는 단계였다.
만약 다저스가 수호를 잡아냈다면?
오늘 경기를 아주 쉽게 풀 수 있었을 거다.
하지만 결과는 놓쳤다.
그 결과는 뼈아팠다.
뻐어억-!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삼진입니다. 새뮤얼 선수가 삼진으로 돌아서면서 다저스가 8회 역시 득점을 내지 못하고 이닝을 마감합니다.
어느덧 경기는 8회가 됐다.
수호의 첫 타석 홈런 이후 필리스는 빠르게 점수를 내기 시작했다.
그 결과 8회가 되었을 때 두 팀의 점수 차는 어느덧 7점까지 났다.
스코어 7 대 0.
완패라는 말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경기였다.
“끝났어.”
“희망을 버려야겠어.”
“하아…… 설마 이렇게 허무하게 끝날 줄이야.”
“도대체 이런 전력을 가지고도 이기지 못한다면 어쩌자는 거야?”
경기장을 찾은 팬들은 성토했다.
야유를 쏟아붓는 그들은 그나마 팀에 애정이 있기에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었다.
실망이 너무 크거나 그저 유희를 위해 경기장을 찾은 이들은 이미 자리에서 일어났다.
덕분에 다저스타디움 경기장 여기저기에는 빈자리가 보였다.
매진이 된 경기답지 않았다.
그만큼 다저스의 경기력은 팬들을 실망하게 만들었다.
-이제 경기는 9회 초, 필리스의 공격으로 이어집니다!
경기는 기울었다.
필리스 선수들 역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다.
딱!!
-때렸습니다! 출루에 성공하는 브룩스!
-필리스의 방망이가 식지 않네요. 첫 타자부터 출루에 성공합니다!
필리스 더그아웃은 여유로웠다.
수호 역시 벤치에 앉아 휴식을 취하면서 경기를 바라봤다.
그런 수호에게 매디슨 감독이 다가왔다.
“수호, 몸 상태는 어떤가?”
“괜찮습니다. 체력적으로도 큰 문제는 없고요.”
“다행이군. 그래도 자네가 원한다면 9회에는 교체해 주도록 하겠네.”
수호는 9회 초에 타석에 서지 않으면 수비에만 나서면 된다.
거기에서 7점 차가 뒤집히지 않는다면 경기는 그대로 끝난다.
여유가 있는 상황이었기에 매디슨은 수호의 체력안배를 위해 배려를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수호는 마음대로 교체할 수 있는 선수가 아니었다.
루키 신분에 이런 대우를 받는 거 자체가 파격적이었다.
그러나 올 시즌 수호가 남긴 성적을 생각하면 이게 당연한 것으로 보였다.
“배려 감사합니다. 하지만 아직 경기가 끝나지 않았고 마지막 순간까지 제 손으로 직접 공을 받고 싶습니다.”
“그런가? 자네의 뜻이 그러하다면 말리진 않겠어. 그래도 잘 생각해 보게.”
“알겠습니다.”
매디슨 감독이 돌아가자 이번에는 하퍼가 다가왔다.
“7점 차가 뒤집힐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럴 일은 없다고 봅니다. 그래도 변수를 만들고 싶지 않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방심은 없구나?”
“그런 말도 있잖습니까?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요기 베라! 나도 그 말 참 좋아하지.”
[클클, 뭘 좀 아는 놈이네.]
요기 베라의 채팅에 실소가 나올 뻔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하퍼가 수호의 어깨를 두드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네 손으로 직접 경기를 끝내라고.”
“예.”
다저스는 불펜을 가동해 마지막 세 개의 아웃 카운트를 잡아냈다.
그리고 9회 말.
수호는 마지막 경기를 끝내기 위해 마스크를 썼다.
[네 말대로 끝날 때까지 끝난 건 아니다. 마지막까지 방심하지 마.]
[야! 그거 얘가 아니라 내가 한 말이거든?]
[누가 했든, 그게 중요하냐?]
[와-! 내 트레이드마크 같은 말을 두 눈 뜨고 뺏기네.]
[너 이미 눈 감았거든?]
투덕거리는 레전드들의 채팅에 긴장이 풀렸다.
‘여기에서 끝내겠습니다.’
덕분에 편한 마음으로 수호는 캐처 박스에 앉을 수 있었다.
* * *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필라델피아 필리스가 디펜딩챔피언 LA 다저스를 4승 0패로 이기고 내셔널리그의 새로운 챔피언이 되었습니다.]
필리스가 다저스에게 완승을 거두며 챔피언십 시리즈 우승팀이 되었다.